때때로 생각난다.
김치갱시기..
가난하고 배 고프던 어린 시절
겨울이면 김장김치 쑹덩쑹덩 썰어 넣고 멸치 한 줌 손바닥으로 쓱쓱 비벼 넣은 시큼하고 구수한 국물에
밥알보다는 밀가루 수제비가
듬성듬성 섞인 주린배를 달래주던 추억의 김치갱시기..
김치건더기는 이리저리 제쳐두고
밥 알갱이를 찾아 그릇을 휘젓는 철없는 막내딸에게 눈치를 주던 울 엄마가 생각난다.
어릴 때는 하얀 입쌀밥이 그리도 맛있었는데 6.25. 동란을 거치며 고래등 같은 99칸 저택도 폭격으로 무너지고 농지개혁으로 논밭도
부치던 사람들에게 다 넘어가고
하루아침에 몰락한 우리 집은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 내 얼굴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마른버짐에
땟국 흐르는 가느다란 목덜미가
바람만 불어도 꺾일 듯 위태로웠었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면 어찌
살아남아서 천국 같은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언제나 풍요로운 먹거리 넘쳐나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줄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 입맛 떨어지면 그 옛날 먹던 죽기보다 싫어하던 김치갱시기가
활동사진처럼 눈앞을 스친다.
맞아!! 오늘은 날 잡아서 김치갱시기
를 한번 끓여봐야지 하고
멸치다시를 우린 국물에 신김치 송송 썰어 넣고 잘 익어 새콤한 김치국물도 한 공기에 콩나물도 한 줌투하.. 보글보글 끓으면 고슬고슬 한 찬밥 한 그릇 넣어주고 수제비대신 냉장고 설합 속에 돌아다니는 열개쯤 남은 떡볶이 떡도 반으로 잘라넣어 한소큼 끓였더니 이거야 말로 갱죽이 아니라 일품요리 버금가는 끝내주는 맛이다..
김치갱시기가 이렇게도 맛나다니..
한 대접 담아 후후 불어가며 먹고 있는데 퇴근한 아들이 김치죽 너무 맛있어 보인다고 남은 갱시기 냄비채 들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더 없느냐고 난리다.
이렇게 속 편하고 맛있는 죽은 처음 먹어본다며 내일은 큰 냄비로 한가득 끓여 놓으라고 부탁을 한다.
가난할 때 먹던 갱시기라는 음식이
현대를 살아가는 자식들의 고급진 입맛에도 불구하고 별미 음식으로 사랑을 받게 될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입맛마저 닮아가다니
이런 걸 일컬어 모전자전이라고
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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