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채. 지금의 동서가구 건물이다
아랫채와 붙어있던 윗채.
화원이 있는자리가 그 당시 3칸으로 나뉘어 쌀가게가 세 들어
있었다 .가게 안쪽으로 사랑방과 안방이 있었고 나무헛간과 커다란 닭장과 장독대와 큰 마당에 펌프가 있던 윗채 건물.
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12.
12. 천석꾼 만석꾼.
6.25가 끝나고 낡은 옛집에서 둘째 언니가 결혼식을 올린 건 기억나는데 작은 언니 결혼식은 웬일인지 전혀 기억에 없다.
그 당시 작은 형부는 안면에서 기차곱배에 마루타를 실어 도회지로 실어내는 큰 목상이어서 쓰러져가는 아랫채를 다시 짓기 위한 서까래를 결혼선물로 주었기에 초가집이던 아랫채를 허물고 방이 6개인 날아갈듯한 기와집을 올렸다.
*지금의 동서가구 자리가
아랫채이다.*
새로 문을 연 여관도 옛 명성에는 못 미치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내가 1학년 때쯤 작은언니가 결혼을 했고 그 당시 형편으론 감히 꿈도꾸지 못할 신혼여행을 부산으로
다녀오면서 내 선물로 빨간 우단 운동화를 사가지고 온 기억이 생각난다
작은언니 마저 결혼하고 나서는
월북하고 없는 형부 때문에 밤낮으로 경찰들의 사찰에 시달리며 시댁 근처에서 삼 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보따리 장사 방물장사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던 큰언니네 4 식구가 친정으로 돌아오게 되어 안방식구가 여섯 명으로 불어난 즈음이다.
그 시절엔 왜 그리 쥐들이 많았는지..
초가지붕인 윗채는 아랫채의 두 배쯤 되는 대지에 도로에 면한 3개의 큰 가게가 있었는데 미곡상들에게 세를 놓았었기에 곡식을 파 먹으려고 드나드는 쥐 들이 많았다.
안방과 사랑방에 대청이 있는 주택 천정은 온통 쥐 오줌으로 얼룩지고 반쯤은 내려앉았고 밤이면 밤마다 천정을 우르르 몰려다니는 쥐떼들의 소란은 말할 것도 없고
미곡상들이 세를 들어있는 가게와 안방은 창호지 바른 미닫이 문이 경계였기에 쌀 창고에 창궐하는 쥐들이 창호지를 뜯고 들어와 방안을 쏘다니기도 하는 사람과 쥐가 함께 생활하는 진풍경을 연출하던..
*이번 고향을 찍어 온 옛집 사진.*
지금 화원을 하고 있는 곳이
옛날 3칸으로 분리되어 쌀가게에 세를 놓은 집이었다.
쌀가게와 맞 닿아 옛말로는
이칸장방 이라고 두 개짜리 방을 터서 하나로 만든 큰 방인 사랑방과 대청을 사이에 두고 방 3개를 합친 것 같은 아주 커다란
안방이 있었다.
천서군 만석꾼 이야기는
지금 생각하면 70여 년 전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까마득한 옛 이야기이다.
무명 솜이불을 덮고 잤으니
그때가 겨울이었지 싶다.
그날따라 상동에서
물건 구입하러 온 손님들이 많아
아랫채의 객실 하나에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숙박을 하는데 객실 6개가 이미 초만원이었고 아주머니 2분이 잘 곳이 없어 안방에서 같이 자게 되었다.
아주머니 두 분은
손님이라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나는 조카 셋과 나란히 윗목에 눕고 내 옆에 엄마가 누웠는데 그날따라 시끄럽게 구는 쥐들의 등쌀에 방구석에 쥐약을 놓았었다.
어쨌든 빨간색 물약에 쌀을 불려
방구석에 약을 놓고 잠들었는데
자다가 누군가 내 발을 집적거려서 영숙이가 그러나 싶어 나도 톡톡 걷어차면서도 뭔가 이상해서 이불속에 뭐가 있는 것 같다고 소리를 냅다 질렀다.
엄마가 깜짝 놀라 뭐가 있다고 이 난리를 치냐고 야단을 치면서 60촉 전깃불을 환히 밝히고 이불을 걷어 젖히니 약을 먹었는지 겨우 기는 듯이 비틀대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하고 베개로 후려치는데 도망을 가 버렸다.
그 소동에 잠을 깬 아주머니들..
하마터면 막내딸이
쥐한테 물릴 뻔했다니까...
세상에 세상에
천석꾼 만석꾼 날아갔다고
아깝다고 야단이 났다.
엄마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쥐한테 물리면 아얏 소리 하지 말고
천석꾼이라고 소리치면
천석꾼 부자로 살 수 있다고..
그럼 만석꾼이라고 하면
만석꾼 되겠네.. 하모 하모
그런데 누구든지 아얏 소리 먼저 하지 누가 쥐한테 물렸는데 어느 정신에 천석꾼을 찾겠니..
맞다 맞다 해가며
아쉽게 천석꾼 복 날아갔다며
마주 보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주머니들 이야기를 들은 나는
천석꾼 만석꾼의 의미도 모르지만 엄청난 부자라는 것 아무나 될 수 없다는 것쯤으로 이해하고 혹시라도 쥐한테 물리면 천석꾼 만석꾼 불러야지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 들라말라 하는데 또 발 밑에서 꼼지락 대는 느낌이라 바로 툭 건드렸더니 엄지발가락이 따끔하니 깜짝 놀라 엄마야
천석꾼 만석꾼
천석꾼 만석꾼 해 싸면서
악악 대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느무 가시나가 왜 또 이러냐며
불을 키고 이불을 젖히니 조금 전 그 쥐가 또다시 이불속에 들어와서 이번에는 진짜로 내 왼쪽 엄지발가락을 물어 버린 것이다..
두 아주머니들도
자다 말고 놀라 깨서
세상에 세상에
저 어린아이가 연거푸 이게 웬일이고
지 어메가 약 놓은 줄 어찌알고
골라골라 그 딸내미
물어 재키는 거 봐라
쥐가 보통 영물 아닌가베
마자마자 영물이제 영물이여 하며.. 거기다 어른들 말 지내 안 듣고 천석꾼 만석꾼 부르다니
세상에 기도 안 찬다 카믄서
놀랄 노짜라고 하며 혀를 차 댔다..
아지매네 막내딸 때문에 만석꾼 되겠심더 하면서 아직도 얼라가 우째이리 똑똑할고 세상에
이런꼴 첨보네 첨봐..하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날이 밝고 아침 먹으면서 아버지께 밤중의 사단을 말씀드리니
쥐한테 물리다니 어디 보자 하셨는데 그땐 이미 발가락이 발갛게 부어오르면서 발가락을 감싸 쥐면 맥박 뛰듯이 달막 달막거리기 시작했다.
발가락이 이미 성났으니 어디
병원에 한번 가보자 하시기에
절뚝거리면서 따라나섰다가 아버지 등에 업혀 순창병원에 간 기억 아까징끼를 바르고 온 게 생각난다..
이 기억을 살려
요즘세상에는 쥐에게 물리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오늘
구글에 찾아보니
쥐한테 물렸을 경우
파상풍이나 공수병 바이러스로
잘못하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가
있다고 하니
천석꾼 만석꾼은 커녕 지금껏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 어린 시절 쥐가 내 발가락 깨물었을 때 천석꾼 만석꾼이라고 외쳐서 지금껏 여유롭게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 어린 시절
쌀밥이 그리도 먹고 싶었던
배고팠던 시절
얼마나 가난이 가슴에 사무쳤으면 아주머니들 말을 곧이곧대로
그대로 믿고 따라 했을까?
나를 깨물어 준 쥐 때문에..
천석꾼 만석꾼의 주문으로..
천석꾼 만석꾼은 못되지만
비슷하게 살 수 있어
지금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구글에서 퍼 옴
(쌀한 석은 보통 두 가마니에 해당하며 쌀 한 가마니는 약 80kg입니다. 곧 쌀 한 석의 무게는 약 160kg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현재 쌀 20kg 한 포대의 가격이 약 5만 원이니 천석꾼은 연 수입 4억 원, 만석꾼은 40억 원의 자산가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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