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서기 1952년...

2023.2.15
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 10.

10.서기 1952년...

막 일곱살이된..
빌게 뜯어 먹은듯한 꿩 병아리 같은 병약하기 짝이 없는 나는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더러더러 같이 놀아주던 소꿉친구들이 내 곁에서 사라졌단 걸..

친구들이 왜 안 보이냐고 엄마한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걔들은 모두 학교 갔다는 거였다.
그럼 나는 왜 학교 안 가?
하고 물었더니 너는 아직 학교 갈 나이가 아니라고..
그때부터 나는 하루종일 대성통곡으로 온 집안을 시끄럽게 했다
나도 학교 간다고...

학교가 뭔지도 모르고 소꿉친구들이 다닌다니 나도 학교에를 가야 된다고 매일같이 발버둥 치며 행악을 해 대니 견디다 못한 엄마가 하루는 나를 데리고 읍사무소를 찾았다.

어떤 주사양반을 만나 나를 가리키며 저렇게 학교 가지 못해 하루종일 집에서 떼짱구를 놓는다고 무슨 도리가 없느냐고 물었는데 나이가 어려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읍사무소 마룻바닥에 나뒹굴며 읍사무소가 떠나가라 한 시간 넘게 악을 써 가며 앙앙대고 울어재켰다.

쟤가 집에서 매일 저런다고
제발 학교 좀 가게 해 달라고
엄마는 빌고 또 빌어 구체 없다는 듯 주사양반이 종이쪽지 하나를 써 주었는데 그게 아마도 입학 통지서였던 것 같다..

그 이튿날 엄마를 따라 깡충깡충
신나게 뛰어간 학교가 우리 동네
영주중부국민학교 였다.
상덕이오빠도 중부출신이고
내가 1학년 입학했을 때 계덕이 오빠가 5학년인가 되었다.

학교가 뭔지도 모르고 읍사무소에서 발버둥 치고 울어 재킨 덕분에 입학은 했지만 내 친구들은 모두 44년생들이었고 나는 45 년생 하고도 11월 생이었으니 친구들과는 거의 두 살 정도가 차이가 났고 입학 시기도 한 달 정도 늦게 들어간 것이 거의 청강생 수준으로 다니다 못 따라가면 다음 해 정식으로 입학하도록 이야기가 된 것이었다.

그래도 입학생이 되었으니
교과서를 타 가지고 매일같이
공책과 책,필통을 책보에 싸서 허리에 묶어 메고 학교엘 가면 우리 교실은 사변 이후 변소깐 옆에 지어진 가건물로 시멘트 맨바닥에 가마니 떼기를 깔고 수업을 하는데 뒷줄에는 허리까지 따아 늘여 댕기를 멘 치마저고리를 입은 처자들도 여나믄명 있었다.

사변통에 몇 년씩 학교를 못 다닌 문맹처자들이 1학년에 입학하여 같이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언니라 쳐도 몇째 큰 큰언니들이었다.

학교가 좋다고 울고불고 들어간
중부국민학교
부모님들 중 누군가는 학교 수업에 필요한 학용품도 채워주어야 하는데 가난하던 시절이라 공책이며 필통에 연필 지우개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고
ㄱ.ㄴ.ㄷ.ㄹ 는 물론
ㅏ.ㅑ.ㅓ.ㅕ가 뭔지도 모르고
다른 친구들보다 한 달이나 늦게 들어간 학교는 기초가 없어 진짜 청강생처럼 놀러 다녔던 것 같다.
학용품이라곤 그 가난하던 시절 필통에 아버지가 장도칼로 깎아 넣어 준 연필 한두 자루..
그 시대 형편없었던 학용품 품질은 왜 그리도 연필이 잘 부러지는지 몇자 따라 쓰다가 연필심이 부러지면 필기를 못한 체 하루종일 칠판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 적이 수 없이 많았다.

그래도 공부를 못 따라가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무조건 학교 가는 게 좋아 일찌감치 교무실밖 화단에서 놀고 있으면 새하얀 눈썹이 한뼘이나 됨직한 머리카락 하얀 착한 할아버지가 나랑 친구가 되어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아주 귀여워해 줘서 긴 눈썹에 지푸라기를 올리거나 업어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업어주고 안아주고 친구처럼 둘이서 놀았는데 나중에 오빠가 알려줬는데 그분이 박원서
교장선생님이 라고 했다.
철이 없던 나는 학급친구들보다
늘 업어주고 안아주고 같이 놀아주는 교장선생과 한패를 먹고 있었고 유리창 밖에서 사무 보는 교장선생님을 손짓해 불러내서 놀아 달라고 보채는 진짜 철부지였다.

무학인 엄마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몇 달을 학교에 다니다 보니 가. 나. 다. 라. 도 혼자서 깨우치고 신통하게도
100까지 숫자도 셀 줄 알고...

그 당시 1학년이 3 클래스
한 반에 60명씩
1반은 전부 남학생
2반은 남녀공용
3반은 모두 여학생

나는 1학년 입학부터 졸업할 때까지 언제나 여학생전용 3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