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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손자에게 나의 뿌리알려주기

11.나의 전성기초등학교시절

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 11.

나의 전성기 초등학교 시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3명의 엄마가 낳은
시샘 많은 이복 동기들 속에
잡초처럼 세파에 휘둘리며 부대끼며 철부지로 자란 나.,
사변 이후 몰락한 가정에서
온 가족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으로 살아 가느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누구도 나에게 신경 써 주는 사람 없었고 제대로 응석 한번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야생화처럼 스스로 알아서 자란 가엾던 나..

학교에 입학하고도
기초적인 한글공부는 물론
기초적인 덧샘 뺄 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 구구단은 어떻게 9단까지 외웠는지..
어떻게 한글은 떼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내가
천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매년마다 열리는 학예회는 영주극장을 빌려 발표회를 했는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언제나 나는
우리 학급 60명 중에서 단 3명 뽑히는 학예회 대표주자 였다.

마른버짐에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까칠 밤송이 같던 단발머리..

또래보다 거의 두 살이나 어린
소녀라서 그랬는지 그 당시 선생님들 보시기에 귀엽고 예쁘게 보였었는지 언제나 무용수로 뽑혀 꿈의 연극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1학년때도 물론이고 2학년때는
하얀 눈 3명
빨간 꽃 3명
파랑새 3명 을 뽑았는데
3 반인 우리 반에선
우리 동네 3 총사
셋 중에 제일 똑똑하고 예쁘고 당찬 유낭일
얼굴이 하얗고 보조개가 예쁜
신혜경
그리고 나.
셋이서 눈꽃새 동요에 나오는
파랑새 역할로 뽑혀 무용지도를 받았는데 낭일이 와 혜경이는 수줍음 때문에 무용동작을 못 따라 하는 바람에
결국 3반에선 나 혼자 파랑새 역으로 7명이서 극장 무대에 서게 되었다.

(파랑새~ 파랑새~ 어째서 파랗니?
파란 콩~먹으니~ 파랗지~)

아직도 동요가사며 음절이 생생한데 옛날 기억을 살려 그런 노래가 존재했는지 오늘 구글에서 동요가사를 찾아보니
세상에나...
눈꽃새라는 동요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70년 전 연극무대에 섰던
눈꽃새 가
아직도 초등학교 2학년 동요로
전승되고 있다니 신기 신기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그 시절 파격적인 무릎 위로 올라가는
파란색 잉크로 물들인 명주
깡총 주름치마를 입고 시집간 언니가
신던 살색 스타킹을 빌려 신고
머리에는 파란색 새를 오려 붙인 머리띠를 동이고 팔랑팔랑 무대를 뛰면서 날아다닌 기억이 아직도 어제 같다..

난생처음 딸이 무대에 오른다며
치마저고리를 단정하게 입고
자주색 댕기를 드리우고 은비녀를 찌른 엄마가 무대를 바라보며 환히 웃던 모습도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에 편린으로 생생히 남아있다..

학예회 때마다 한 반에 3명 뽑히는 합창단원으로 5학년때는 외지에서 초빙한 선생님의 지도로 수궁전을 공연했을 때 나는 3반에서 유일하게 스카우트된
토끼 친구1 역할이었다.

주역을 맡은 토끼는 5학년 2반의 귀염둥이 천춘영이었고 전체 지도선생님은 5학년 2반 단임인 전정학 선생님이시라 대부분의 연극 주인공은 남녀 공학인 2반 학생이 전부 차지했고
3반에서 유일하게 뽑힌 사람이
용궁에서 탈출에 성공한 토끼를 환영하는 토끼무리 중 1이 내가 맡은 역할이어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무대를 누비는 토끼역할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가난에 찌들어 예쁜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한 내가 언제나 연극무대에 스카우트된 것은 어째서일까? 철이 없어 천진난만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호기심 많아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성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때 그 시절
내가 그리도 귀엽고 예뻤던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유년시절
그때 그 아름답던 추억의 세계로다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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