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어릴적 추억이 담긴 옛 집

2022.10.21일 영주에서

이른 아침 가흥리 마애삼존불을
뵈러 가는데 올케 집에서 어느정도 거리에 있느냐고 물었을때
올케도 친구들도 아침 산책으로 자주가는 곳이라며
영주 토박이들 표현으론

요 앞에~
쪼매만 걸어가면 있어

그러길래 왕복 20분쯤이면
다녀 오겠다 싶었는데 웬걸
자동자길 옆 보행자 통행로를
따라 걸어도 걸어도 끝이없는 길
거의 30분을 걸어서야  
마애삼존불 앞에 당도할수 있었다.

서울로 되돌아 가는길은
친구들과 점심 약속도 있고
이번에는 내가 살던 고향집 순례..

마침 빈택시에 탑승해서 옛날
중앙통 그 넓었던 대로변에 위치한 생가터에 도착했다.

아니..여기가 내가 자라고 시집갈때까지 살던 집이 맞나 싶은게
대궐같던집이 두 채로 나뉘어져
내가 거처하던 코너 집 이던
아랫채 는 동서가구 대리점이 되어 2층이 올려져 있었다.

우리집 담과 경계를 이루고 있던 중앙교회..

옛 건물은 간데없고 그 들판처럼 넓었다고 생각되던 교회 마당은 간곳없고 도로변 가까이
새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
그 옛날 넓고 넓었던 교회 마당에서 그네뛰고 미끄럼타던 기억도 새롭건만 ..
세상에 어른이되어 다시 돌아보는 옛동네는 흡사 100분의 1로 축소된 모형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옛날 활동사진 을  방송하면 동네방네 30리 40리 면 소재지 사람들도 밤길을 달려오곤 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있는 중앙통 대로에 우리집 방문에다 장막을 드리우고 방송을 하면 동네사람들 전부 우리집 방에 모여앉아 활동사진 본 기억도 새롭구만 지금 가서보니 그 넓디 넓었던 중앙통이 겨우 왕복 4차선쯤 되는 도로였네.

영주에서 태어나
가근동 풍기에도 가 보지못한
내 기억의 한 자락엔
이 세상에서 중앙통이 제일큰 도로였고 우리집이 가장 큰 집 으로만 입력되어 있었는데

내가 살던 옛동네는 그때 그대로 발전이 없고
논 이며 밭 이 었던 곳들은
고층 아파트와 큼직큼직한 신식 건물들이 들어차 발전하고 있는 영주시의 모습을 보여주니 좋았다..

동서가구의 모습을 찍고있을때
주인인듯한 분이 문을열고 어떤것을 찾으시냐는 물음에 내가 스무살때 까지 자란고향집이었다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들어와서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원래의 우리집은 규모가 큰 여관이었고
지금의 하나로 화원이 가족들이 머무는 윗채였고 아랫채인 동서가구가 합해서 한채였는데 우리는 윗채에서 거주하고 아랫채는 여관의 객실로 사용했는데 여관을 관두게 되자 두채로 분리해서 팔게 되었다는 내말에 깜짝 놀라며 그러면 지금도 큰집인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큰 집 이었을까 하며 아쉬움을 나눴다.

그래도 내가 자란 고향집이 내부는 털어내어 창고형 건물이 되었지만 뼈대는 옛 그대로 남아있어 고마웠다.

이제 언제 또 다시
고향 영주를 찾게 될런지
미지수 지만 ..
여고 동창 모임을 통해
늘 꿈에 그리던 가흥리  마애삼존불과 고향집을 방문할수있어 더 없이 기쁘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누리 오리장작 구이집  (0) 2023.01.28
눈물겨운 생일 선물  (0) 2023.01.28
가흥리 마애삼존불.  (0) 2023.01.28
진심이 담긴 대녀의 생일 선물  (0) 2023.01.28
한스빌의 작은 음악회  (0) 202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