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연중 28주일 본당의 날, 혼인잔치
찬미 예수님
1.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햇볕을 받은 나뭇잎들이 반짝 반짝 춤을 춥니다. 시야가 널리 트여서 먼산도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입니다. 하늘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지요? 온갖 구름들이 각가지의 모습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기온도 딱 적당해서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기는 해도 쾌적하고 기분좋습니다. 우리의 피부에 닿는 공기가 상쾌하고, 한해를 마감하는 자연의 고즈넉함에 마음이 편해지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2.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는 오늘 본당 설립 19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9년전의 이 지역은 철물공장과 면직공장지대였다고 합니다. 도림동 성당에서 이곳을 분가했을때는 아마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초대신부님과 두 번째 신부님의 그 젊은 날의 사제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세 번째 신부님에 의해서 신자분들의 열성이 불을 붙기 시작합니다.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사제와 교우분들은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되어 지금의 이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교우분들은 그때의 추억과 열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성전을 지을때의 그 기억은 참으로 신앙의 귀중한 기억일 것입니다. 그때 함께 계셨던 살아계시는 하느님께 대한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하실 것입니다.
3.지금 보아도 이 성전은 정말 그당시 최선을 다해 지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작은 대지에 효율적으로 지어진 거룩한 성전입니다. 저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대성전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기도할 수 있는 이 성전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외의 모든 공간도 기도와 열성이 느껴질 정도로 잘 지어졌습니다. 성전 건축당시의 신부님과 신자분들의 열성과 신앙에 대해 다시한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4.네번째 신부님과 다섯 번째 신부님을 거쳐서 제가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곳에 와 보니 뭔가 주님의 깊은 뜻이 있음이 느껴집니다. 저에 대해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사제생활의 거의 모든 삶을 어렵고 힘든 본당에서 지냈습니다. 서울 변두리 본당에서 출발을 하였고, 본당의 기득권을 쥐고 있던 사람들과의 문제로 힘든 투쟁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전임신부의 공석으로 부임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는 막막함속에서 사목이 이뤄지지 않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반면에 제가 해보고 싶은 사목을 다 해본 본당에도 있었고, 본당역사가 50년이 넘는 지역에서도 살아보았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에 울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은총과 선의의 신자들의 기도덕분에 모든 본당에서 임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자부하는 것은 그 본당에서 그 당시에 해야했고, 필요한 일들은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5.안식년을 걸쳐 새로운 마음과 용기와 의지를 갖춰주신 주님께서 왜 이 본당에 저를 보내셨을까? 수없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마도 그 답은 제가 이 본당을 떠날 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6.이곳 문래동에 오자 마자 코로나가 터지게 되었습니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상황에서 모든 사목은 거의 중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단체와 구역이 간신히 숨만 쉬고 있습니다. 미사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속에 과연 하느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저는 나름대로 한가지 결론을 내립니다. 이제 공동체는 더 이상 외적인 행사나 친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 공동체는 보다 더 깊은 내적인 신앙의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지나치게 외양만 키우는 모습속에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내적인 신앙의 성숙은 저 멀리 가고, 그저 친교와 나눔이 전부인 것처럼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8.이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도록 이 힘든 시기를 허락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과의 만남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깊은 인내와 침묵속에서, 기도와 말씀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우리 삶에 어떤 존재이셨는지를 드러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내 신앙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9.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모습은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과 공동체는 그동안에 쌓여왔던 경험들과 지식들을 통하여 신념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과 아집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들여다 보는 내적 성찰의 자세가 없으면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10.요즘 나훈아의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참 대단합니다. 나이 70에 어떻게 그런 열정과 의지, 깨어있는 정신을 갖고 있는지 부럽기도 합니다.
나훈아의 신곡중에 테스형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테스형이 뭐야 하다가 소크라테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1.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 테스형!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가장 깊은 인생의 진리를 남겨주고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났습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입니다.
우리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내가 내 자신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내 자신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에 모든 슬픔과 고통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12.나자신을 아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나 자신을 아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내가 너희안에 머무를 것이고, 너희는 진정한 자유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나자신을 아는 것이고,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아는 최적의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하느님의 능력이며, 사랑이고, 치유이며, 희망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인이라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지 않느다면 그의 신앙은 변질된 것이며, 그가 믿는 신앙안에는 세상이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13.사람과의 만남이 절제되어야 하는 이 코로나 시기는 바로 하느님 말씀과 기도로의 초대의 시간인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 교회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도록 초대하는 시간인것입니다.
14.하느님께서는 이 시간들을 통하여 우리가 변화되도록, 우리 공동체가 변화되도록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우리 공동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이 변화의 진통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15.우리가 변화되는 길, 우리 공동체가 변화되는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씀과 기도밖에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만이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진정한 자기자신으로 변화시켜주실 수 있으며, 말씀과 기도만이 하느님의 힘과 평화가 머무르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16.제가 처음 이 본당에 부임했을 때 인사말에서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에서 입을 수 있는 비단 옷들을 한 벌씩 선물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교만한 말이었는지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그 비단옷은 결코 저의 힘으로 장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옷이 만들어질때는 들실과 날실이 엮여야만 합니다. 결단코 저의 힘으로는 이 두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들실을 짜고, 여러분은 날실을 짜주셔야만 합니다. 혼인잔치의 비단옷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17.오늘 복음에서 혼인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에게 호된 불호령이 내립니다. ‘이 자의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둠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에서 입어야 하는 혼인예복을 부지런히, 성실히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쫒겨난 뒤에는 어떤 변명도, 합리화도, 핑계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18.본당 19주년을 맞아 교우여러분들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느님마음에 드는 혼인잔치의 기쁨으로 가득찬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십시다.
“내가 잔칫상을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잔치에 오시오” 아멘
찬미 예수님
1.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햇볕을 받은 나뭇잎들이 반짝 반짝 춤을 춥니다. 시야가 널리 트여서 먼산도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입니다. 하늘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지요? 온갖 구름들이 각가지의 모습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기온도 딱 적당해서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기는 해도 쾌적하고 기분좋습니다. 우리의 피부에 닿는 공기가 상쾌하고, 한해를 마감하는 자연의 고즈넉함에 마음이 편해지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2.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는 오늘 본당 설립 19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9년전의 이 지역은 철물공장과 면직공장지대였다고 합니다. 도림동 성당에서 이곳을 분가했을때는 아마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초대신부님과 두 번째 신부님의 그 젊은 날의 사제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세 번째 신부님에 의해서 신자분들의 열성이 불을 붙기 시작합니다.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사제와 교우분들은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되어 지금의 이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교우분들은 그때의 추억과 열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성전을 지을때의 그 기억은 참으로 신앙의 귀중한 기억일 것입니다. 그때 함께 계셨던 살아계시는 하느님께 대한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하실 것입니다.
3.지금 보아도 이 성전은 정말 그당시 최선을 다해 지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작은 대지에 효율적으로 지어진 거룩한 성전입니다. 저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대성전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기도할 수 있는 이 성전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외의 모든 공간도 기도와 열성이 느껴질 정도로 잘 지어졌습니다. 성전 건축당시의 신부님과 신자분들의 열성과 신앙에 대해 다시한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4.네번째 신부님과 다섯 번째 신부님을 거쳐서 제가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곳에 와 보니 뭔가 주님의 깊은 뜻이 있음이 느껴집니다. 저에 대해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사제생활의 거의 모든 삶을 어렵고 힘든 본당에서 지냈습니다. 서울 변두리 본당에서 출발을 하였고, 본당의 기득권을 쥐고 있던 사람들과의 문제로 힘든 투쟁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전임신부의 공석으로 부임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는 막막함속에서 사목이 이뤄지지 않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반면에 제가 해보고 싶은 사목을 다 해본 본당에도 있었고, 본당역사가 50년이 넘는 지역에서도 살아보았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에 울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은총과 선의의 신자들의 기도덕분에 모든 본당에서 임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자부하는 것은 그 본당에서 그 당시에 해야했고, 필요한 일들은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5.안식년을 걸쳐 새로운 마음과 용기와 의지를 갖춰주신 주님께서 왜 이 본당에 저를 보내셨을까? 수없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마도 그 답은 제가 이 본당을 떠날 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6.이곳 문래동에 오자 마자 코로나가 터지게 되었습니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상황에서 모든 사목은 거의 중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단체와 구역이 간신히 숨만 쉬고 있습니다. 미사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속에 과연 하느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저는 나름대로 한가지 결론을 내립니다. 이제 공동체는 더 이상 외적인 행사나 친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 공동체는 보다 더 깊은 내적인 신앙의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지나치게 외양만 키우는 모습속에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내적인 신앙의 성숙은 저 멀리 가고, 그저 친교와 나눔이 전부인 것처럼 변질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8.이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도록 이 힘든 시기를 허락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과의 만남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깊은 인내와 침묵속에서, 기도와 말씀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우리 삶에 어떤 존재이셨는지를 드러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내 신앙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9.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모습은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과 공동체는 그동안에 쌓여왔던 경험들과 지식들을 통하여 신념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과 아집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들여다 보는 내적 성찰의 자세가 없으면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10.요즘 나훈아의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참 대단합니다. 나이 70에 어떻게 그런 열정과 의지, 깨어있는 정신을 갖고 있는지 부럽기도 합니다.
나훈아의 신곡중에 테스형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테스형이 뭐야 하다가 소크라테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1.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 테스형!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가장 깊은 인생의 진리를 남겨주고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났습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입니다.
우리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내가 내 자신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내 자신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에 모든 슬픔과 고통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12.나자신을 아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나 자신을 아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내가 너희안에 머무를 것이고, 너희는 진정한 자유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나자신을 아는 것이고,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아는 최적의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하느님의 능력이며, 사랑이고, 치유이며, 희망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인이라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지 않느다면 그의 신앙은 변질된 것이며, 그가 믿는 신앙안에는 세상이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13.사람과의 만남이 절제되어야 하는 이 코로나 시기는 바로 하느님 말씀과 기도로의 초대의 시간인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 교회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도록 초대하는 시간인것입니다.
14.하느님께서는 이 시간들을 통하여 우리가 변화되도록, 우리 공동체가 변화되도록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우리 공동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이 변화의 진통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15.우리가 변화되는 길, 우리 공동체가 변화되는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씀과 기도밖에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만이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진정한 자기자신으로 변화시켜주실 수 있으며, 말씀과 기도만이 하느님의 힘과 평화가 머무르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16.제가 처음 이 본당에 부임했을 때 인사말에서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에서 입을 수 있는 비단 옷들을 한 벌씩 선물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교만한 말이었는지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그 비단옷은 결코 저의 힘으로 장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옷이 만들어질때는 들실과 날실이 엮여야만 합니다. 결단코 저의 힘으로는 이 두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들실을 짜고, 여러분은 날실을 짜주셔야만 합니다. 혼인잔치의 비단옷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17.오늘 복음에서 혼인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에게 호된 불호령이 내립니다. ‘이 자의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둠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에서 입어야 하는 혼인예복을 부지런히, 성실히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쫒겨난 뒤에는 어떤 변명도, 합리화도, 핑계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18.본당 19주년을 맞아 교우여러분들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느님마음에 드는 혼인잔치의 기쁨으로 가득찬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십시다.
“내가 잔칫상을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잔치에 오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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