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7 연중 26주일 두아들, 두 개의 산
찬미 예수님
1.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자연은 일년동안의 온갖 풍파를 다 이겨내고, 우리에게 가을의 아름다움을 선사해줍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의 온갖 풍파를 하느님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이겨낼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출간된 미국의 데이비드 브룩스라는 사람의 두 번째 산이라는 책으로 오늘의 강론을 해볼까 합니다. 중점적인 줄거리를 말씀드립니다.
2.인생에는 두 개의 산이 있다.
첫 번째 산은 살면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표이다. “난 의사가 될거야, 난 기업가가 될거야” 이 첫 번째 산에서 우리는 특정한 인생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 과업이란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재능을 연마하고,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이 첫 번째 산은 성공하기, 남들에게 존경받기, 제대로 된 사회집단의 일원이 되기, 개인적인 행복을 누리기이다. 즉 좋은 집, 화목한 가정, 멋진 휴가, 맛난 음식, 좋은 친구들이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일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이 첫 번째 산의 정상에 올라 성공을 맛보고 또 끝내 손에 넣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이게 내가 바라던 전부인가”? 또 어떤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호된 실패의 시련을 겪으며 나가떨어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난 예기치 않게 옆길로 빠진다. 사업의 실패, 자식의 죽음, 암투병, 온갖 사고등을 겪는다.
이들은 당혹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의 계곡에서 헤맨다. 계곡에 떨어진 사람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시기는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드러내며,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이 사실은 진정한 자기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고통에 맞닥뜨리면 움츠러든다. 이들은 평균이상으로 더 두려워하고 분개한다. 이들은 겁에 질려 자신의 깊은 내면을 외면한다. 그리하여 인생이 갈수록 더 쪼그라들고 더 외로워진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슬픔을 끌어않고 사는 노인들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이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한 채, 끊임없이 화를 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또 어떤사람들에게는 이 계곡이 자기발견과 성장의 계기가 된다. 고통의 시간들은 오히려 자신의 좀 더 깊은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시기에 오히려 자신 깊은 곳에 자아를 초월해서 타인을 보살피고자하는 어떤 열망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들은 드디어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이웃을 자기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진 사람들은 용감해져서, 자기 중심에서 타인중심으로 바뀌어 간다. 바로 이지점에서 사람들은 아! 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첫 번째 산이 알고 보니 내 산이 아니었구나, 그 산보다 더 큰 또다른 산이 여기에 있었구나! 이 두 번째 산이 바로 내 산이로구나!
첫 번째 산이 자아를 세우고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 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급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 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은 첫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첫 번째 산은 정복한다. 정상이 어디인지 멀리서 확인하고 그곳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간다. 그러나 두 번째 산은 다르다. 두 번째 산이 나를 정복한다. 나는 어떤 소명에 굴복한다. 그리고 그 소명에 응답해, 내 앞에 놓여 있는 어떤 부당함이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 한다. 첫 번째 산에서는 야심을 품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며 독립심을 발휘하지만, 두 번째 산에서는 관계를 중시하고 친밀하며 무엇에도두려워하지 않는다.
3.오늘 복음을 이 두가지 산의 관점에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1)맏아들은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싫습니다라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갑니다.
아버지의 포도밭은 바로 두 번째의 산, 즉 자아를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맏아들은 자신이 누려왔던 첫 번째 산이 좋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환호가 있었습니다. 그는 첫 번째 산에서 나름대로 자신이 이룬 인생의 성공에 쁘듯하였고,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깊은 곳에서는 이게 내가 원하는 기쁨이었나? 라는 회의와 갈등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런 회의와 갈등은 자신이 누리는 행복으로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자신이 평생토록 쌓아올린 모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괜히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첫 번째 산이 무너지고, 계곡에 휩쓸리는 고통을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야 그는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살수는 없어! 하면서 그는 다시금 두 번째 산을 향해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의 그 영화로운 삶이 그에게는 언제나 굴레였습니다. 마치 에집트의 고기냄비처럼 언제나 그의 발목을 잡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저 멀리 두 번째의 산에서 바라다보고 계시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힘을 다해 한걸음, 한걸음 두 번째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2)아버지는 두번째 아들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두 번째 산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산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아들은 아주 명석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잘 알고 있었고, 또 두 번째 산의 의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당당하게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두 번째 삶의 길은 결코 매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두 번째 산의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힘든 길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온갖 핑계와 합리화를 해댑니다. 갈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편안하고 안정적인 오늘이 좋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수완으로 모든 일을 잘 풀어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이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그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바쁘게만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3)아버지는 두 번째 아들에게 심한 인생의 고초를 허락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에게 첫 번째 아들처럼 인생의 온갖 풍랑을 허락하면 두 번째 아들은 완전히 포기하고, 지금보다도 훨씬 더 못한 삶을 살아갈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피가 끓지만 참으실 수 밖에 없으십니다. 더 안좋은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저 스스로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두 번째 산을 올라가지 못하는 두 번째 아들을 안타깝게, 애타게 바라만 보고 계실 수 밖에 없으십니다.
4.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이기때문이 아니라 그 죄 때문에 첫 번째 산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첫 번째 아들처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 즉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삶이 무너져 있기에, 첫 번째 산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기에 예수님의 생명력으로 두 번째 산을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죄인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은 아픈 이들, 가난한 이들, 실패한 이들에게 참다운 구세주가 되어주십니다. 인생이 망가지고, 구겨지고, 참담해진 이들에게 구원이 되어주십니다. 성공해서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실패해서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구원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아멘
찬미 예수님
1.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자연은 일년동안의 온갖 풍파를 다 이겨내고, 우리에게 가을의 아름다움을 선사해줍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의 온갖 풍파를 하느님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이겨낼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출간된 미국의 데이비드 브룩스라는 사람의 두 번째 산이라는 책으로 오늘의 강론을 해볼까 합니다. 중점적인 줄거리를 말씀드립니다.
2.인생에는 두 개의 산이 있다.
첫 번째 산은 살면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표이다. “난 의사가 될거야, 난 기업가가 될거야” 이 첫 번째 산에서 우리는 특정한 인생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 과업이란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재능을 연마하고,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이 첫 번째 산은 성공하기, 남들에게 존경받기, 제대로 된 사회집단의 일원이 되기, 개인적인 행복을 누리기이다. 즉 좋은 집, 화목한 가정, 멋진 휴가, 맛난 음식, 좋은 친구들이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일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이 첫 번째 산의 정상에 올라 성공을 맛보고 또 끝내 손에 넣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이게 내가 바라던 전부인가”? 또 어떤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호된 실패의 시련을 겪으며 나가떨어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난 예기치 않게 옆길로 빠진다. 사업의 실패, 자식의 죽음, 암투병, 온갖 사고등을 겪는다.
이들은 당혹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의 계곡에서 헤맨다. 계곡에 떨어진 사람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시기는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드러내며,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이 사실은 진정한 자기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고통에 맞닥뜨리면 움츠러든다. 이들은 평균이상으로 더 두려워하고 분개한다. 이들은 겁에 질려 자신의 깊은 내면을 외면한다. 그리하여 인생이 갈수록 더 쪼그라들고 더 외로워진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슬픔을 끌어않고 사는 노인들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이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한 채, 끊임없이 화를 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또 어떤사람들에게는 이 계곡이 자기발견과 성장의 계기가 된다. 고통의 시간들은 오히려 자신의 좀 더 깊은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시기에 오히려 자신 깊은 곳에 자아를 초월해서 타인을 보살피고자하는 어떤 열망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들은 드디어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이웃을 자기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진 사람들은 용감해져서, 자기 중심에서 타인중심으로 바뀌어 간다. 바로 이지점에서 사람들은 아! 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첫 번째 산이 알고 보니 내 산이 아니었구나, 그 산보다 더 큰 또다른 산이 여기에 있었구나! 이 두 번째 산이 바로 내 산이로구나!
첫 번째 산이 자아를 세우고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 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급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 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은 첫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첫 번째 산은 정복한다. 정상이 어디인지 멀리서 확인하고 그곳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간다. 그러나 두 번째 산은 다르다. 두 번째 산이 나를 정복한다. 나는 어떤 소명에 굴복한다. 그리고 그 소명에 응답해, 내 앞에 놓여 있는 어떤 부당함이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 한다. 첫 번째 산에서는 야심을 품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며 독립심을 발휘하지만, 두 번째 산에서는 관계를 중시하고 친밀하며 무엇에도두려워하지 않는다.
3.오늘 복음을 이 두가지 산의 관점에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1)맏아들은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싫습니다라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갑니다.
아버지의 포도밭은 바로 두 번째의 산, 즉 자아를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맏아들은 자신이 누려왔던 첫 번째 산이 좋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환호가 있었습니다. 그는 첫 번째 산에서 나름대로 자신이 이룬 인생의 성공에 쁘듯하였고,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깊은 곳에서는 이게 내가 원하는 기쁨이었나? 라는 회의와 갈등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런 회의와 갈등은 자신이 누리는 행복으로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자신이 평생토록 쌓아올린 모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괜히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첫 번째 산이 무너지고, 계곡에 휩쓸리는 고통을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야 그는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살수는 없어! 하면서 그는 다시금 두 번째 산을 향해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의 그 영화로운 삶이 그에게는 언제나 굴레였습니다. 마치 에집트의 고기냄비처럼 언제나 그의 발목을 잡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저 멀리 두 번째의 산에서 바라다보고 계시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힘을 다해 한걸음, 한걸음 두 번째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2)아버지는 두번째 아들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두 번째 산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산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아들은 아주 명석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잘 알고 있었고, 또 두 번째 산의 의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당당하게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두 번째 삶의 길은 결코 매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두 번째 산의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힘든 길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온갖 핑계와 합리화를 해댑니다. 갈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편안하고 안정적인 오늘이 좋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수완으로 모든 일을 잘 풀어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이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그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바쁘게만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3)아버지는 두 번째 아들에게 심한 인생의 고초를 허락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에게 첫 번째 아들처럼 인생의 온갖 풍랑을 허락하면 두 번째 아들은 완전히 포기하고, 지금보다도 훨씬 더 못한 삶을 살아갈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피가 끓지만 참으실 수 밖에 없으십니다. 더 안좋은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저 스스로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두 번째 산을 올라가지 못하는 두 번째 아들을 안타깝게, 애타게 바라만 보고 계실 수 밖에 없으십니다.
4.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인이기때문이 아니라 그 죄 때문에 첫 번째 산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첫 번째 아들처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 즉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삶이 무너져 있기에, 첫 번째 산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기에 예수님의 생명력으로 두 번째 산을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죄인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은 아픈 이들, 가난한 이들, 실패한 이들에게 참다운 구세주가 되어주십니다. 인생이 망가지고, 구겨지고, 참담해진 이들에게 구원이 되어주십니다. 성공해서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실패해서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구원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아멘
'당신은복되십니다.향기로운선한목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중 27주일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0) | 2020.10.03 |
---|---|
추석 합동 위령미사 (0) | 2020.09.30 |
성 김대건 안드레아,성 정하상 바오로 대축일 (0) | 2020.09.20 |
연중 24주일 만달란트를 빚진 사람. (0) | 2020.09.20 |
연중23주일 코로나 시대 (0) | 2020.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