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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복되십니다.향기로운선한목자

연중 27주일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01004 연중 27주일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찬미 예수님

1.이제 연휴의 마지막 날입니다. 
기나긴 연휴, 행복하고 기쁘게 보내셨나요?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연휴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지겹고 힘든 연휴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2.오늘 복음에서 포도밭의 주인이 소출을 받아오라고 자기의 종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종들을 붙잡아 매질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3.그 포도밭은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을 허락하시고, 그 인생에서 수확을 기대하시고, 또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이 자기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인생안에 있는 주인의 뜻을 무시해버립니다.. 그 뜻을 외면하고, 철저히 그 뜻을 묵살해버립니다.. 심지어는 왜 내가 고생해서 얻은 것을 그에게 바쳐야 해. 이건 말도 안돼 하면서 반항을 합니다.. 내 인생은 내것인데 내맘대로 할 수 있지, 무슨 상관이야, 웬 간섭이야 하면서 주인이 보낸 메시지를 매질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4.포도밭의 주인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떻게 허락하고, 섭리한 인생인데 그 인생의 주인을 몰라주는게 너무 너무 섭섭합니다.. 갈취하기 위해서 수확물을 요구하는게 아닌데 더 큰 사랑을 주기 위해서 삶의 수확물을 바치라는 것인데 주인은 너무 애가 탑니다.

5.그래서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주겠지 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저자를 죽여버리고, 그의 상속재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하면서 그 아들을 죽여버립니다..

6.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마지막 사랑에도 거부하고, 배신하고, 난도질을 해댑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나는 이 세상에서 철저하게 내 욕심을 채우고, 나 하나 잘 살면 되지,, 사람은 다 능력대로 사는거야,, 못사는 놈들까지 내가 어떻게 책임져야 해.. 나는 싫어. 나 혼자 잘 살거야,, 까짓거 좀 비겁하면 어떻고, 좀 치사하면 어떻고, 좀 악랄하면 어때,, 죽으면 그만인데.,, 내 인생 내꺼니까 상관하지 마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인생밭의 주인의 뜻과 사랑을 무시합니다..

7.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끊임없이 전해지는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생에서 엄청난 결실을 이루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회피하거나 도망가지 말고, 끊임없이 우리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면 고통속에서도 한줄기의 빛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빛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구원하는 하느님의 빛인 것입니다.. 그 빛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인생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변화시켜 줄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의 빛인 것입니다..

8.사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고, 그 선함은 하느님의 선물인데, 그 선함은 죽을 때까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함에 따라 살아가지 못합니다. 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정당한 소출을 바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그럴까요?

9.문득 조성모의 가시나무새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한번 같이 들어 보시겠습니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곳없네
내속엔 헛된바램들로
당신이 편할곳 없네
내속엔 내가어쩔수 없는어둠
당신에 쉴자리를 뺏고
내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매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처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은 쉴곳없네.

10.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치 피정을 하는 느낌입니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가시들 때문에 내 주위의 사람들이 아파합니다. 나 역시도 나의 가시 때문에 아파합니다. 그 가시들은 나를 찌르고서 남을 찔러대기 때문입니다.

11.어느날 문득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시가 가득한 내 가슴을 주님께서 끌어 않아 주십니다. 주님의 품은 참 크고 따스합니다. 갑자기 내 마음이 편해집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와 이웃을 사정없이 찔러대던 그 가시가 주님의 몸에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주님은 내 삶의 가시를 빼내어 주시기 위해서 나를 꼭 껴않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가시가 내 삶에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 아픔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삶의 가시를 당신 몸에 가득 품고 계십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주님 몸에 있는 상처가 바로 나의 상처요, 나의 가시오, 나의 아픔이며 좌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12.오늘은 저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사제는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책을 쓰신 헨리 나웬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현대 사회의 사목자를 상처 입은 치유자로 정의하며 자기가 입은 상처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원천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입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목자의 상처는 그 사목자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상처입은 사람을 이해하게 되며, 치유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13.오늘 축일을 맞이하면서 상처입은 치유자의 모습을 많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저의 삶에서 수많은 상처들을 허락하셨을까?  왜 아직도 그 많은 상처들속에서 때로는 괴로워 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저 자신이 움추려 들기도 하는 것일까?  저의 사부이신 프란치스꼬 성인처럼 때로는 자유로운 것 같기도 한데 왜 아직도 마음깊은 곳에는 아픔이 존재하는 것일까? 질문을 던져 보게 됩니다...

14.사제는 한 본당에 부임하게 되면 그 공동체와 혼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좋든 싫든 한 평생을 살아야 하듯이 사제도 좋든 싫든 그 본당에서 임기를 채워야 합니다... 공동체마다 그 모습이 다 다릅니다. 어떤 공동체라 하더라도 사제는 늘 어둠과 싸우는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안에 존쟁하는 어둠과 악을 미워하며 싸우게 됩니다.. 그러나 경험컨대 항상 어둠과 악의 세력이 저의 힘보다는 쎕니다... 저는 번번히 상처받고 힘들어 합니다... 때로는 열정이 넘쳐서 상처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분별력이 모자라서 상처받기도 합니다...

15.사제생활 35년가까이를 돌이켜 보면 수많은 애증의 세월이지 않았나 보여집니다.. 때로는 말할 수 없이 사랑하고, 또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고, 평화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번민과 고뇌에 싸여있을 때도 많습니다... 부부간의 애증의 세월,  부모와 자녀간의 그 애증의 세월들처럼 사제의 삶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16.수많은 사목적인 기쁨들,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수많은 어둠과 죄악들도 뼈져리게 체험하곤 합니다...
수많은 하느님의 자비와 수많은 어둠들로 인한 상처가 존재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7.예수님의 죽음을, 그 상처를 다시한번 묵상해 보게 됩니다.. 그 처절한 죽음의 모습은 바로 인간을 사랑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분의 부활은 상처입은 치유자의 모습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둠과 죄를 통해예수님의 죽음을 허락하시지만 그 어둠을 통해 빛의 부활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