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28 재의 예식후 금요일
1.형제, 자매 여러분! 다들 안녕하신지요?
마음은 무겁기만 한데 어제는 미세먼지 하나 없이 하늘은 푸르고 아름다웠습니다. 다행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무거운 날에 날씨마저 칙칙하다면 더 더욱 찝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제는 성당에서 안양천길을 따라 구일역까지 걸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걷고 계시더군요! 성당 가까이에 이처럼 훌륭한 길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제주에서 안식년을 할 때는 거의 매일 만보이상을 걸었는데 이처럼 가까이에 걷기 좋은 길이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오늘 복음에서는 단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식이란 식욕을 끊은 일입니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단식은 모든 종교에서 수행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단식을 통해 즉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절제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수행인 것입니다. 그 배고픔과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인간 내면에 깊이 잠재되어 있는 온갖 탐욕의 정체를 깨닫고 그 탐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자 하는 것이 단식의 진정한 목적일 것입니다.
3.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주기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허긴 요한 자체가 광야에서 들꿀만 먹고 살았으니 그의 삶, 전체가 단식이기도 합니다. 바리사이들도 그들의 교육과정에서 이런 단식의 수행을 중요시 했습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의 단식은 진정한 수행의 목적보다는 율법의 준수를 통해 남들에게 열심하고, 충실한 신앙인으로 보이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 어떤 목적으로 단식하는가가 보다 더 중요한 관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4.어느날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던 이 시점에 너무 수행보다는 즐거움으로 기울어 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허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를 얻기 위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를 하였습니다. 아마 그 초대들을 예수님께서는 거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세리의 초대도, 바리사이들의 초대도 다 받아들이셨죠.
그 초대의 자리에서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주셨고, 현재 종교의 맹점과 부당함을 거침없이 설파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그 나라를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갖 비유를 통해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5.예수님을 비난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진정성은 외면한 채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예수님의 모습만을 부각하며, 속에 있는 칼날을 숨긴채 나름 젊잖게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과 제자들은 왜 수행을 하지 않습니까? 요한의 제자들도, 바리사이들도 다 수행하지 않습니까? 왜 선생님은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하십니까? 예수님이 듣지 않는 다른 곳에서는 노골적으로 비난을 합니다. 먹보요, 술꾼이라고~~
6.예수님께서는 지혜롭게 대답하십니다. “잔치집에 온 신랑친구들이 어떻게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다.” 예수님의 현존은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기쁨의 잔치인 것이다. 말씀의 잔치, 하느님 능력이 선포되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하느님 사랑의 잔치인 것입니다. 이 순간은 빛으로 가득 찬 순간이며, 기쁨충만한 시간이며, 그 어느때도 경험해보지 못한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을 보여주시는 희열의 시간들인 것입니다. 이 잔치는 그저 기쁨으로 즐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을 이스라엘이 얼마나 기다리며 갈망해 왔던가!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직접 선포되는 그야말로 우주역사에 단 한번밖에 없는 귀중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순간들인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이 순간들은 그저 감사하게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7.그러나 “이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 그날에는 그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앞날을, 그 운명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앞날을 조금도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어떻게 이루어나가실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 그 신랑의 마음을 알고, 그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날에는 단식을 하지 말라 해도, 수행을 하지 말라 해도 단식을 하고, 수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더 깊이 알아듣기 위해서,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 온전한 깨달음을 위해서 단식과 수행은 바리사이들보다 더 구체적이고, 온몸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천상기쁨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8.우리들도 요즘 마치 신랑을 빼앗긴 듯한 기분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미사가 중단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심각한 상황이 되었고, 한국의 가톨릭은 박해시대 이후 처음으로 전국의 모든 미사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언제든 쉽게 할 수 있었던 미사였지만 이제는 그리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사랑으로 오시던 그분을 모시지 못한다는 것은 슬픔을 넘어선 참혹한 아픔이실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9.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신랑을 빼앗긴 듯한 요즘, 우리는 좀더 우리자신을 들여다 보고 하느님을 깨닫는 단식, 즉 수행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아픔을 좀더 하느님안에 성숙해질 수 있는 그리움으로 바꿀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10.오늘 하루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힘내시고, 보다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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