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1주일 금호동 송별미사 2018
1.제주와 남부지방에 피해는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태풍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폭염속에 그토록 바라던 비도 어느정도 내렸고, 아직 약간 덥기는 하지만 지난 여름의 그 끔찍한 폭염에 비하면 살만 합니다. 예전에는 30도만 되어도 덥다 덥다 했는데 폭염을 겪은 우리에게 30도정도는 그런대로 견딜만 합니다.
2.여름내내 계속되던 폭염과 열대야에 정말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3.우리네 인생도 때로는 어렵고 힘들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면 좋은 때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시련속에 인내가 생기고, 그 인내는 더 큰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는 아주 유익한 큰 내적인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산을 넘어야 어느정도 높은 산도 넘을 수 있고, 또 그래야 아주 높은 산도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네 인생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과거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항상 숱한 문제와 시련과 고통이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습니다.
5.왜 이리도 우리가 사는 이 인생이라는 시간들이 어려운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6.저는 오늘 이 금호동에서의 마지막 송별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첫강론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왜 저를 금호동으로 보내셨는지 그 의미를 마지막 순간에는 깨달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7.이곳에서의 마지막 강론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감회가 마음속에 스치고 지나갑니다.
8.어둡고, 활기가 없는 성당을 보면서 나는 진짜 주임신부로 자신이 없으니 하느님, 당신이 주임신부를 해주셔야 한다고 강짜아닌 강짜기도, 또 애절한 기도를 바쳤던 그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하느님께서는 확실히 제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하셨습니다. 아마 제 생각대로, 제 고집대로, 제 주관대로만 했으면 아마 본당은 갈등과 아픔으로 산지사방 분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9.저의 성향을 살펴보면 매우 직설적입니다. 그리고 안되는 상황도 정면돌파합니다. 속으로는 어둠을 잘 삭히지 못합니다. 잘 참지 못하고, 제 마음속의 생각이 때로는 아무 여과없이 화살처럼 상대의 마음속에 꽂히기도 합니다.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마음을 쉽게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손해도 많이 봅니다.
10.하느님께서는 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곳으로 보내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보다 더 저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이곳으로 보내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11.저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것, 저의 고집과 주관과 신념마저도 버려야 하느님께서 비로소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제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로 내 삶의 주인이시며, 내 삶의 전적인 주도권을 쥐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2.사제로 서품받았다고 사제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사제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도 진정한,또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제가 되기는 힘들것입니다.
13.그러하기에 하느님께서는 단계별로, 차근 차근히, 인내심을 가지시고 사제로 키워주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꺼번에 높은 산에 오르라 하면 지쳐 쓰러지고, 포기할 것이니까 그저 깔딱고개한번 넘으면 숨한번 쉴 수 있는 평지를 허락하시고, 그 깔딱고개 한번 넘으면 그보다 조금 더 심한 고개를 넘게 하시고, 그 고개를 넘으면 그보다 좀더 높은 산을 오르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14.한 본당에서 임기를 마친다는 것은 하나의 고개를, 하나의 사제의 산을 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15.저는 이제 조금이나마 그분의 뜻과 이끄심을 깨닫게 됩니다. 앞으로도 숱한 인생의 산을 넘어야 할텐데 그 산들은 결코 내 자신의 힘으로 넘을 수 없는 산들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시며, 그분께서 함께 하셔야만, 아니 그분이 전적으로 이끌어 주셔야만 넘을 수 있는 산임을 또한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그 인생의 산들은 나를 온전히 버리고, 하느님의 힘으로 넘어야 하는 산들임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16.이곳 금호동에서의 부르심은 저의 모든 것을 버리라는 부르심이 아닌가 합니다. 저의 생각도, 주관도, 신념도, 고집도, 모두 모두 버려야만 그 크고 험한 인생의 산을 넘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시는 부르심이 아닌가 합니다.
17.저는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또 때로는 한계상황에 부딪히면서, 또 때로는 마음속에 원망과 분노를 갖고서 제가 넘어야 하는 인생의 산, 사제의 산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또 그분께서는 그렇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18.그러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마음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치유를 허락하시고, 평화를 이끌어 내 주셨으며, 온갖 분쟁과 분열을 멈추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했으며, 그 가정이 또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미움과 분노속에 살던 사람들이 비로서 평화와 사랑의 기쁨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알던 한자매는 암에 걸린뒤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이 미사에 나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훨씬 더 밝은 표정이 되어갑니다. 삶에 대한 상처로 마음이 칼날처럼 서 있던 사람들도 부드러워져 갑니다.
19.제가 그동안 해왔던 사목생활이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바쳐 재미있는 본당, 활기찬 본당, 열성이 가득한 본당으로 만들어 오려고 노력했지만 이곳에서처럼 마음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성취감과 감사함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외적인 성전 열 개 짓는 것보다 마음의 성전 하나 짓는 일이 이토록 소중한 일인지는 전에는 사실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치유하시고, 변화시켜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시고, 그 마음속의 모든 어둠을 내쫒아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새삼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때로는 사제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지만 놀라운 일을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시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능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21.예수님께서는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영을 따를 것인가? 육을 따를것인가? 즉 하느님을 따를 것인가? 세상을 따를 것인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22.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고 받아들이면 그 사람안에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그 생명은 이 세상의 모든 어둠과 죄악을 이겨낼 수 있는 하느님의 힘이며, 어떤 상황속에서도 어떤 시련과 고통속에서도 하느님의 평화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은총의 힘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상의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세상은 어둠과 죄악이 가득한 세상이며, 온갖 미움과 분노, 욕심과 탐욕이 가득찬 노예와 같은 삶을 수 밖에 없는 세상인 것입니다.
23.저는 이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생의 산, 새로운 사제의 산을 향해서 떠나갑니다. 또 어떤 시련과 고통이 있을지, 또 어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깔딱고개를 넘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이곳에서 훈련시키시고, 단련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산, 더 높은 자유와 깨달음, 더 깊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삶의 이끄심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24,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여러분의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 강론의 끝말씀은 교황님의 말씀으로 가름하고자 합니다.
“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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