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1주일 2018.6.17.
1.한낮의 기온은 약간 덥기는 해도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합니다.
미세먼지가 좀 덜한 요즘 우리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산은 짙푸른 녹음이 우거져 있고, 맑은 하늘. 이쁜 구름은 우리의 마음을 상쾌하게 합니다.
2.저는 자연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피정지를 선택할 때도 꼭 자연이 살아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선택합니다.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장소는 너무 싫습니다. 도심에 있는 피정집은 더 더욱 싫어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살아있는 자연속에서 만나는 하느님은 제 삶의 청량제요, 영양제요. 제 에너지의 근간이기도 합니다.
3.제가 왜 자연을 이토록 좋아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엄청난 인생의 비밀, 하느님의 비밀이 숨어있음을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4.제가 중학교 1학년때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교리를 가르쳐주시던 수녀님이 “너는 세례명을 뭐라 했으면 좋겠냐고 물으셨고, 저는 별로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그럼 너는 프란치스꼬로 하는게 좋겠다 말씀하셨고, 자연스럽게 저의 세례명은 프란치스꼬가 되었습니다. 생일과 비숫한 날자의 축일을 세례명으로 정하는데 저의 경우는 생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프란치스꼬라는 세례명이 정해졌습니다.
5.작년 11월에 동창신부님들과 이태리 자유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사실 그때 저는 저의 사부이신 프란치스꼬 성인의 아씨시에서 적어도 2박이상 머무를 것을 강하게 이야기 했고, 착한 동창들은 저의 의견을 들어주었습니다. 아씨시에서 머물면서 저는 내적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곳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평화로왔습니다. 아침 저녁의 산보, 아씨시에서의 깊은 기도는 저에게 너무나 큰 힘과 평화와 깨우침이 되었습니다.
6.사부께서는 자연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태양을 형님이라 부르시고, 달을 누님이라 부르시며, 사람들을 괴롭히던 늑대를 설득하기도 하셨고, 새들과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온갖 자연을 사부께서는 진정으로 사랑하셨고, 자연의 온갖 동식물들도 사부께는 마음을 열고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7.저는 제 세례명이 왜 프란치스꼬로 정해졌는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어린 제 마음에 겨자씨처럼 작은 씨앗을 하나 심으셨던 것입니다. 아니 하느님께서 그 수녀님을 통하여 제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주신 것이었습니다.
8.대신학교 시절, 혼란의 그 시절에 저는 서울을 피해 광주신학교에 있었습니다. 서울은 최류탄과 반정부시위에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제가 있던 광주신학교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평온,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신학교 생활이 제 마음속에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매일 매일 2시간에 가까운 자연을 즐기며 하던 산보시간은 제 마음속에 귀중한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9.사람은 이상하게도 이름에 따라 그 삶의 형태가 결정되고, 또 그리 살아가게 됩니다. 프란치스꼬라는 이름을 받은 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학생때부터 자연을 좋아하게 되었고, 자연속에서 평화와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10.서품을 받을 때 교구장님과 면담을 하게 됩니다. 그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물으십니다. 자네는 가난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때 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예, 저는 가난을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부께서 제 마음속에 일러주신 말씀이 아니었을까? 라고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11.저의 사제생활은 외적으로 볼때는 전혀 가난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의 내적인 마음은 물질에 탐욕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있으면 고맙고, 없어도 아무 불편함이 없습니다. 어떤 물건을 꼭 갖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더 잘 먹고, 더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살 뿐입니다. 있으면 좋고, 편하지만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고, 불편하지 않은 삶을 저도 모르게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생각해주셔서 온갖 것을 다해 주려고 하지만 저는 그 마음만이 고마울뿐이고, 필요한 것을 해 주셔서 단지 감사할 뿐입니다. 물질에 그다지 구속을 받지 않는 저의 내적인 마음은 가난을 통해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사부의 간구하심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12.저는 사제생활을 하면서 늘 갈등과 상처가 많았습니다. 그 갈등과 상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왜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걸까? 나는 나름대로 신자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데 왜 그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반대하고, 때로는 배신하는 것일까? 왜 내가 준만큼 그들은 나에게 주지 않는 것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사랑을 해주면 그들도 당연히 나를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이해를 해주면 그들도 당연히 나를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13.아씨시에 머물면서 저는 내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부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하라. 이해 받으려 하지 말고 이해해라는 늘상 알고 있던 말씀이 제 가슴속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 상처는 어떤면에서는 내가 만든 것이로구나. 내가 사랑받으려 했고, 내가 이해받으려 했기에 내 마음속에 갈등과 상처가 생긴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원하기보다 내가 먼저 사랑을 했더라면, 이해를 원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이해를 했더라면 나의 사제생활이 좀더 평화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를 반성해보게 됩니다.
14.사부께서는 자연과 가난을 너무 사랑하셨고, 또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마음속에 한없는 측은지심과 자비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당시 이태리는 마을과 마을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부께서는 이 동네, 저동네를 다 다니시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평화와 기쁨을 심으셨습니다. 물질과 권력에 젖어있던 아씨시는 그야말로 평화의 마을이 되었고, 그 평화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인간을 그 자체로 사랑하시고, 이해하시던 사부의 기도가 지금까지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던 사부에게 하느님의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죽은 이을 살려내시고, 병든이를 고쳐주시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전해주게 하십니다.
15,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뜻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인간의 힘으로가 아니고, 하느님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과 미움을 이겨나가게 하십니다.
16.저도 부족하지만 사부처럼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부족한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의 마음과 보다 더 큰 자비로운 마음을 주십사 기도하고 있습니다.
17.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겨자씨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해주십니다. 겨자씨, 그 씨앗은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이 세상의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18.저의 어린 시절에 하느님께서 수녀님을 통하여 심어주신 프란치스꼬라는 작은 겨자씨는 제 마음속에 항상 있어 왔고, 자연과 가난과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커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신비스럽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뿌린 듯한 작은 겨자씨는 하느님의 섭리속에 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그 인생속에서, 그 신앙속에서 자라고 또 자랍니다.
19.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통하여 인간에게 끊임없이 겨자씨를 뿌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의식을 하지 못해도 그 사람의 신앙과 인생속에서 그 뿌려진 겨자씨를 정성껏 키우시는 분이십니다. 정성을 넘어서서 간절한 마음으로, 그 사랑으로 키워내십니다. 무서리가 내리는 새벽에도, 천둥과 번개가 치는 밤에도, 숨조차 쉴 수 없는 한낮의 폭염속에서도,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릴 것 같은 태풍과 폭우속에서도 그분께서는 눈을 부릎뜨시고 그 작은 씨앗을 노심초사하시며 키워내십니다.
20.내 인생속에는 어떤 겨자씨가 있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나는 누구에게 하느님의 겨자씨를 뿌리고 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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