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2018
1.어제 저녁에 성모님의 밤 행사가 있었습니다. 예년과는 달리 성모님을 꽃가마에 태우고 행렬이 있었고, 어둠속에서 촛불을 밝혀들고, 새로 창단된 소년레지오 학생들의 낭낭한 선창으로 묵주의 기도가 있었으며, 중고등부 학생들의 노래와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이들의 과달루페 성모님의 무언극이 있었습니다.. 정말 소박하지만 정과 사랑이 넘치는 성모님의 밤이었습니다.. 금호동에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습니다..
2.문득 성모님은 어떤 동네에서, 어떤 분위기에서 자랐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성모님이 자라신 나자렛이라는 동네는 산언덕위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이었습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사실 잘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산중턱에 텃밭을 일구고, 그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토굴과 같은 움막속에서 생활을 하였으며, 경제적으로 빈곤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추측컨대 그 동네사람들은 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기에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주 잘 아는 동네였습니다...그래서 때로는 아옹다옹하기도 하지만 이웃집의 아픔이 내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동네에서는 그 동네를 떠나서는 살아가기 힘든 묘한 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3.그래서 성모님은 시골 구석에 사는 가난하고 비천한 자신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누구보다도 크고, 깊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기뻐 뛰노나니 그분께서 당신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자들을 흩으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라고 찬송할 수 있으셨습니다.
4,하느님께서는 부유하고, 권력있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자들을 택하시지 않고, 가난하고, 비천하고, 힘없고, 굶주리는 이들을 선택하시는 자비를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5.그래서인지 성모님의 발현을 체험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동네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고, 내세울게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루르드에서의 벨라뎃다도 아버지가 사업에 완전히 실패해서, 집도 없었고, 그녀는 천식환자였습니다.. 어디하나 세상에 내 놓을 것이 없는 비천한 환경이었습니다.. 파티마의 세소년도 마찬가지이고, 과달루페의 후안디에고도 그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6.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마찬가지이셨습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능력도 별로 없는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참 어리석은 선택이셨던 것입니다..
7.왜 하느님의 선택과 예수님의 선택기준은 이 세상의 판단기준과는 다른 것일까요?
8.우리가 사는 세상은 똑똑해지고, 능력있고, 잘 생긴 사람, 또는 이쁜 사람들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똑똑해지고, 능력있기 위해서 그야말로 목숨을 겁니다.. 또 잘 생기기 위해서, 이뻐지기 위해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겁니다..
9.저도 한때는 잘나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좋았습니다.. 못나고, 무식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싫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에게 배신과 아픔을 준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0.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못나고, 자라온 환경에 문제가 많고, 무능력한 사람들을 이뻐하시고, 그들을 선택하시는 걸까? 하느님의 판단기준은 뭘까?
11.확실히 하느님께서 보시는 눈은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드러난 면을 보지 않고, 숨겨져 있는 이면을 보시는 분이 아닌가 합니다.. 누구나 똑똑하고, 능력있고 싶어하지만 그리 되지 못한 아픔을 보시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즉 예컨대 성격이 이상한 사람들을 우리는 싫어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이 그리 될 수 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알고 계시기에 더 더욱 마음을 쓰시고, 애정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못 생긴 사람들이 그리 된 연유를 아시기에 그에게 더 더욱 마음 아파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의 그 이면의 심정을 알고 계시기에 더 더욱 힘을 내도록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12.우리는 때로 미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이해못해서 안달을 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연히 미워하는 사람들,분노하는 사람들, 이해못하는 사람들을 더 더욱 애처럽게 바라보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13.때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용납하지 못해도 하느님께서만은 우리 존재를 인정해주시고, 우리의 가치를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내 삶의 수많은 연유와 사연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4.진정한 사랑은 뭘까?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 미움이 솟구치는 사람들, 분노와 욕설이 터져나오는 사람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우리의 삶을 꼬이게 만드는 사람들, 이유도 없이 괜히 미운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혼란스럽고, 괴로울때가 많기 마련입니다..
15.우리가 하느님처럼 그 사람들의 이면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의 삶의 연유와 사연을 알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의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상처를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도 우리의 미움을 넘어서서 사랑과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16.우리가 이 다음에 죽어서 다시 만나서 그들의 그 한많은 삶의 사연들과 우여곡절들, 수많은 상처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을 한없이 미워하고, 증오하고, 분노했던 우리 자신의 좁은 속이 얼마나 부끄러워질까를 생각해보면 그때 좀더 참을걸, 그때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할걸하는 후회가 물밀 듯이 닥쳐올 것입니다..
17,어떻게 하면 사람들로부터 좀더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마음속의 풍랑과 격랑으로부터 안정과 고요함과 침착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내 자신을 벗어나서 하느님께서 내 안에 머므르시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크고, 광대하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 내 안에 머므르셔야 나도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8.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당신이 우리를 귀하게 창조해주셨으니 하느님께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나를 사랑해주십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은 그 이면을 보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 현상을 보지 않고, 그 삶에 있어왔던 과정과 연유와 사연들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19.우리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세상에서 다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더라도 어머니는 그 자식의 이면과 내면을 보기에 어떤 경우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천배, 만배 확대하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20.오늘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축일입니다.. 하느님의 천지창조때 이미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계셨고, 예수님의 수난때 그 깊은 고통속에서도 성부와 성령께서 함께 계셨으며, 또한 이 성령의 시대에 성부와 성자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으로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온전히 일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바로 사랑의 신비인 것입니다..
21,우리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은 우리 인간의 진정한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22.하느님의 눈으로 주위의 사람들의 이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할 때 우리에게는 그 신비스런 사랑의 힘과 능력이 함께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이면을 보고 계시기에 우리가 살아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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