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이 열 여덟이 되던해
장보등 할아버지께서 그리도 원하던 손주를 보지못하고
1912년 울화병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되셨단다.
문단댁 우씨 손자며느리가 시집온지 7년이요
스무살 물 오른 나이였으니 손주를 보고도 남았겠지만..
손이 귀한 집안이라서 인지 아버지는 남매처럼 큰엄마와 의좋게 지내셨지만
조부모님의 소원인 손자를 안겨주지 못하셔서
저승에 가신 할아버지께서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하셨을거라는...
집안의 대들보가 무너진것처럼...
천지가 무너져도 왼눈하나 깜짝 않을만큼 당차시고
여러명 하인들과 그 식솔들을 거느려도 누구한사람 불평불만 없게 하시고
이재에도 밝아 해마다 땅을 불리시던 할아버지의 사망은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감당할수없는 두려움이였단다.
이제 열여덟살 어린 내가...
어떻게 이 큰 집안과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별탈없이 잘 꾸려나가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고 천지가 아득하여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으셨단다.
갑자기 집안의 주인이 된 열여덟 새서방님
겨울밤이면 동네 친구들과 사랑방에 모여 윶놀이도 하고
조금씩 성숙하여 짐에 술도 마시게되고..
재산은 많은데 지금처럼 사용처도 없고 하니 날이 갈수록
술먹고 노름하고 집에 안들어 가는날도 있었단다.
대가 끓길가 어린 나이에 장가를 보냈건만
소식이 있을때도 되었건만 이팔청준 꽃같은 나이에 바깥으로 나돌며
스무살 새색시는 한숨소리는 깊어지는데 밤이면 친구들과 술과 투전놀이에 빠진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상심이 그 얼마나 크셨을까?
유난히 춥던 어느해 겨울
시골 소천면의 겨울은 지금의 추위보다 더 혹독했으리라.
밤을새며 호롱불 밑에서 놀음을 하던 아버지에게 하인이 달려와서 하는말이
새서방님 빨리 집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노 마님께서 빨리 새서방님 모셔오라고 하십니다...해서
얼른 가자 무슨일이냐 하며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께서 명주 수건이 흠뻑 젓을만큼 슬피울며 하시는 말씀
(아버지 兒名이 수일이라고 하셨는데)
수일아 니가 정신을 놓고 술먹고 놀음을 하는동안
소가 새끼를 낳다가 난산이 되어 보살필 사람이 없어 소리치며 울다가
결국에는 어미소랑 송아지가 얼어죽었다.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이 어디에 또있느냐..하시며
마굿간에 얼어죽은 송아지와 난산으로 어미소까지 죽은걸보니
너무 잘못했다싶어
두번다시 이런일은 없을거라며 용서해달라고 빌었는데
할머니 말씀이 내가 4대 독자 너 하나를 믿고 오늘까지 살았는데
니가 정신을 못차리고 술을 먹거나 놀음에 빠지면 너는 내 손자가 아니다..
이 큰집과 이 많은 재산은 몇대를 두고 불려왔는데
니가 이렇게 정신줄을 놓고 오만방자하게 어린나이에
술과 노름을 가까이 하다가는 마침내 패가 망신하고
안방의 네 색시는
죽은 아이 업고 다니던 여자의 신세와 달라질게 없을것이다.
니가 내 손자라면 정신을 차리고 나이가 어리다고
하인들이 깔보지 않도록
처신을 각별히 해야 한다고 눈물로 당부하셨단다.
아버지께서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오늘 이후로 술이나 노름에 손을 대면 제가 성을 갈겠습니다...
할머니의 손자가 아니란 말씀만 거두어 주십시오...하신 후
내 아버지는 79세에 돌아가실때까지 음복술도 드시지 않을만큼
결단심이 크신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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