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가 뭣인지 혼례가 뭣인지도 모르고 치른 초례와 장례를 치른지 1년후
4대독자 손자를 하루빨리 장가보내 자손을 보시겠다는 장보등 할아버지의 욕심에
11살이된 1894년생 우리 아버지는 문단리의 우씨댁
1892년생 13살짜리 낭자와 다시 혼례를 치르게 되셨단다.
전사의 일도 있고하여 장보등 할아버지께서 물어먹듯 당부하셨단다.
이번에도 초례만 치르고 집에돌아오면 너는 내 손자가 아니다.
내 말을 거역하여 또 다시 상객의 팔뚝을 물어 뜯거나 집으로 돌아온다고
우새스러운 꼴을 보인다면 가문의 수치이니 내치고 두번 다시 받아주지 않겠으니
어찌되었든 사흘은 처가댁에서 지내다 와야한다고 엄명을 내리셨단다.
이제 아홉살 철부지가 아닌 11살 새신랑이 되었으니
또다시 집에 돌아가겠다고 할수도 없고할아버지의 엄명이 무서우니
죽는한이 있더라도 사흘은 견뎌야지..하시며 아버지께서도 체념을 하셨단다.
그 대신...13살 새색시가 밤새 족두리를 벗지못하고
녹의홍상 활옷차림으로 호롱불밑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있는대도
새신랑 노릇을 어찌하는줄 모르는 아버지는 하루종일
초례치르랴 할줄도 모르는 새신랑 노릇하랴
얼마나 피곤하셨던지 나 몰라라 큰大자로 들어누워 코를 골다가
다음날 한나절이 되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고단한 잠에 취하시어
첫날밤...바지를 적시는 실수까지 하셨단다.
한편으로 장보등 할아버지 께서는
이제는 색시를 삼년씩 친정에 두었다가는
또 다시 무슨변을 당할지 모르신다며
사흘만에 우씨 손자며느리를 시댁으로 불러 들이셨다는데
신행길을 떠나는 말 잔등에 높이앉은 11살 어린 새신랑은
어찌나 이쁘고 잘 생기셨던지
온 동에사람들이 몰려나와 수군대며 배웅을 해주었다고....
키가 자그만하고 오동통하고 성격이 온순하고 너그러운 문단댁
우씨 성의 복남씨가 내 큰엄마가 되신다.
노부부에 철부지 손자...
세식구가 살던 적적하던 집에 열세살 어리디 어린 새색시가 들어오니
집안은 조금씩 화색이 돌기 시작하고
문간채의 하인들도 맡은일 열심히 해내고 놉을얻어 짓던 농사도 풍년이 계속되어
수십간의 곡간은 미쳐 나락을 다 들이지 못할정도로 넘쳐나게 되었단다.
어느해 조선8도에 전염병과 흉년이 들어
먹을것은 떨어지고 유리걸식하는 떠돌이들이 무리를 지어 흘러 들어와
아버지가 시시던 소천면에도 밥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줄 을 서게되고
병막에는 장질부사를 앓는 사람들이 먹지도 못하고 수두룩 죽어나게 되었을때
장보등 할아버지께서 곡간을 열어 행려병자와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죽을 쒀서 나누어 주라며 행낭채 마당에 큰 무쇠솥을 3개나 내걸고
7-8개월 동안을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어 구황에서 건져주셨다고 한다.
굶주린 이들이 산에 들에 다니며 풀뿌리와 나무뿌리
소나무의 껍질까지 베껴먹던 시절이라고 하셨다,
그때가 아버지 나이 열 서너살쯤
어리디 어린 부잣집 새서방님이었던 아버지는 그때도 아마 분명 철부지 였으리라.
어느날...
죽은 아이를 며칠때 업고 다닌다고 소문이 무성한 젊은 색씨가
죽을 얻어가고 돌아서면 또 다시 줄을 서서 죽을 받아가곤하여
아버지께서 당신은 내가보니 벌써 두어번이나 죽을 얻어갔는데
다른사람도 얻어먹어야 할것 아니요..하고 줄 밖으로 나가시오 하고 밀어내니까
그 젊은 새댁은 그 자리에서 벌러덩 나딩굴면서
이 댁 젊은 서방님이 나를 밀쳐서 업고 있던 아이가 내 밑에 깔려 죽었다고
내 아이 살려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패악을 부려
사랑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하인들의 아뢰는 소리에 깜짝놀라
젊은 아낙을 내실로 불러들여
내 손자가 아낙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얼마나 분통터지겠느냐
오죽하면 죽은 아이를 산에 묻지 못하고
죽 한그릇이라도 더 얻으려고 업고 다녔겠느냐
내가 새댁의 그 마음 다 안다.
아이는 편한길 가게 묻어주고 멀리가서 초막이라도 짓고 살만큼 도와주겠다.
철없는 손자의 무례를 대신 사과할테니 용서하라며 엽전 꾸러미를 한 다발을 안겨주자
소란을 멈추고 그 길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세상에....2000년대도 아닌...
백여년 전에도 그런 행동으로 협박을 하고 이익을 취하였다니
참 믿어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물론...오죽하면 그런짓을 했을까...싶기도 하지만
그 일이 있은후...
아버지는 죽을 나누어주는 장소에는 얼씬도 하지말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에
문밖출입이 어려웠다고 하릴없이 문단댁의 방에서
소꿉장난같은 신혼생활을 지내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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