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려 오기만 하면 온갖 호강 다 시켜 준다고 큰소리 뻥뻥치던 남편은
물을 긷던 빨래를 하던 아예 나 몰라라 작정을 한 모양인지…
거기다 한술 더 떠 살림을 맡고 있던 시동생 마져 쪽문을 열고
빨리 밥 달라고 맛있는 거 해 내라고 성화를 대지 않나?
뭐가 있어서 맛 있는 것 만들어 바치라는 걸까?
그래도 시골 생활이 처음인 형수가 군불을 지피면서
생솔가지 타는 연기에 눈물을 흘릴라 치면 얼른 나와 불도 때 주고
밤에는 더러 가다 물도 한동이 몰래 길어다 주고 …
나보다 여섯살이 많은 시동생은 큰 형수라고 그렇게 잘 해 줄수가 없었다
두가지만 빼 놓고는…
바로 그 한가지가 ..
시장 볼 돈을 타서 쓰지 않는다고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공의 진료소도 보통의 시장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게
어디가 아파서 병이 나더라도 사방 4-50리 첩첩산중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
그나마 장날이면 장도 볼겸 병원에 들릴 겸 해서 진료소도 장날이면 환자가 좀 있는 편이다.
하지만 간호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진찰하랴 약지으랴 주사 놓으랴바쁘게 움직이는 것 뻔히 보면서
진료중에 일일이 시장볼돈 달라기도 뭣하고
꼭 필요한 만큼의 돈을 설합에서 꺼내가면 감히 여자가 남자의 허락 없이 돈을 꺼내 쓴다고
그날 저녁은 아무리 나름대로 성찬을 차려도 밥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 바로 시동생 이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나?
아니… 내가 닭띠라고 암탉 운운 하는건 아닐까?
나는 하도 기가막힌 나머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화장을 못하게 하는 것…
나는 원래부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인지
얼굴에 죽은깨가 있어서 거울을 볼때마다 그렇게 속이 상할 수가 없었다.
웬수놈의 죽은깨…
모란꽃이면 뭐해 ?
죽은깨 때문에 개나리도 꽃도 아니구만…
거기다 정작 처녀적엔 아버지 무서워 감히 화장 이라곤 한번도 해보지 못했구만…
시집와서 제일 기쁜건 색색 가지 화장품을 예물로 받은 것이 었는데
이젠 나도 내 맘대로 화장도 할수 있다고 좋아 한건 잠깐~
그래도 갖 시집온 새색씨가 어여쁘게 화장 하는게 어디가 어떻다고
정작 남편은 가만 있구만 시동생인 주제에 그리도 잔소리를 해대는지
내가 아무리 시동생 보다는 여섯살 이나 아래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형수라는 사람인데 할 소리가 따로있지..
얼굴 마주볼 때 마다
화장이 진하네
입술이 빨갛네
눈썹이 치켜졌네
미주알 고주알
감놔라 배놔라
나 원 참…
할 수 없이 시동생 눈치가 보여 생활비도 백원 이백원 타쓰는 신세에다
화장품이라곤 로션만 발라도
음식에서 화장품 냄새가 나서 먹네 못먹네…
참…시어머니가 따로 없었다.
내 살다가 시동생 한테 된 시집살이 하게 될 줄이야 꿈도 못꾼 일이지
그리고..어쩌다 반지라도 낄라치면 ..
외출 하는것도 아닌데 집안에서 왜 그런 거 끼냐 에서부터
황금은 서로 부딧치기만 해도 닳는 법인데
그렇게 주야장창 끼고 있다간 나중에 다 닳아 빠지겠다는 둥
사.사.껀.껀…
그렇다고 우물물 길러 가면서 끼는 것도 아니요
연탄불에 밥해 먹을 때 끼는 것도 아니구만
어쩌다 조금 한가 해서 내 반지는 잘 있는가 하고 인사차 잠깐 패용 했다가는
어김 없이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손가락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오금이 저려서 도로 빼 놓지 않고는 못 배긴다.
아니 내꺼 내가 끼는데 왜 그렇게 잔소리가 심한지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얕보고 그러는건지 깐보고 그러는건지
에고 내 팔자야..
어쨌던 시집살이는 남편까지 합세 하서 완전 셑트로 하게 되어 버렸다.
아무리 고집세고 깐깐 하지만 본성은 아주 착한 사람이어서
보통때는 형수한테 온갖 마음 다 써주고 이야기도 잘해준다.
시동생은 우스개도 잘하고
형이 술이라도 취해서 경주마처럼 날뛰면 달래기도 선수고
어쨌던 내가 할 일도 도맡아 수고도 해주고
그렇게 7개월을 한집에 살다가 경찰 공무원 시험을 봐서 순경으로 취직이 되는 바람에
서산으로 떠나게 되어 우리는 본격적이 신혼 살림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그렇지만
행복하고 아기자기한 걸로만 알고 있던 신혼생활은
자꾸만 깨진 철모를 닮아 가고 있었으니…..
밀밭 근처도 못 간다는 남편은시동생이 떠나고 부터는
무서운 사람이 없어서 인지 매일 같이 술집에 처박혀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고
시동생이 있었으면 업어라도 오건만…
남편이 거나하게 대취해서 집으로 돌아올때면
달리 소식 전해주는 사람 없이도 난리 법석 치는 소리로 제절로 알게 된다.
온 동내를 아래 위로 치달으며 고래 고래.
나도 장가 갔다고…
우리 색씨 이쁘다고….
니 들이 …모조리 다 우리 집 와서 내 색씨 한번 보면 알게 될 거라고
고래 고래 지르는 소리로 술이 취한 척도를 가늠 할수 있을 만큼 발전된 나는
심장이 널뛰듯 두근 거리고 진료소 문을 박차는 소리에
그만 실신 지경에 빠지고 만다
아니..술 주정도 전염이 되는가?
아니면 남숙이네 우물 물 때문 일까?
아니…남숙이 외할아버지랑 증상이 거의 같은데 아무래도 우물물에 문제가?
나는 누구 한테 물어 볼수도 없는 되지도 않는 생각에 하루종일 고개를 갸웃거려본다.
그래도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어떨 땐 남숙이 외할아버지가 부축해서 데려오고
더러는 집에서 100m 거리에 있는 지서의 순경들이 부축해서 데려 올수 밖에 없는 것이
동네는 완전히 공포 분위기에 빠져 버리고
우리 남편 술 취해서 동네 쓸고 다닌다고 소문 나면
짓던 개도 꼬리를 스스르 말아 버린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하긴 넓지도 않은 도로를 아래 위로 치 달으면서
야호~~도 아니요 야 후~~도 아닌 괴상한 소리를 질러 대니
안면방해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무조건 너 아니면 임마 였다.
심지어 순경 부인 한테도 임마 점마 하고 호통을 쳐 대니
순경들이 잡아다 데려 올수 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한가지…
남편은 괴상한 술버릇을 가지고 있어서 좀처럼 부축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에 술버릇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 딱하다고 팔짱끼고 같이 왔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큰 변을 당하고 만다
서의사…집에 다 왔으니 어여 들어 가라꼬…
하는 소리 다 내뱉기도 전에
비호같이 달려 들어 인정 사정 볼것없이 어깨 쭉지나 팔뚝 같은 곳을 물어 뜯어 버리니
기함을 하는건 두말 하면 잔소리다.
주사를 아는 사람은 진료소 문을 열자 말자
잡은 손을 뿌리치고 떠밀어 던져 놓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가 버리는 거였다.
그리하여 동네에 회자된 이야기가 있었으니
“공의 선생은 양띠가 아닌가비여 개띠 하고도 미친개 띤 가비라”
우리 남편은 31년 양띠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우리 남편을 개띠라고 우기기 까지 했다.
양띠가 우째 사람을 무노? 개띠 라서 그런가베 안글나? 하며
아…우리 남편 술만 입에 안대면 그리도 착하며 얌전하고 인정많은 공의 선생이구만
그눔의 술이 원수제....
삼년 동안의 공의 생활로 얼마나 기상천외한 버라이어티 쇼를 보여 줬으면
친애하는 단산 면민 들은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단산공의 서재수를 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라고 한다더라….
그 곳에서 큰아들을 낳았고 3년 동안의 공의 생활을 접고
영주 친정이 있는 곳에서 한의원을 개업할 때 까지
참으로 많은 추억들이 묻혀 있는 단산면 옥대리…
동네 어른들은 지금도 잘 계시는지?
동네는 얼마나 많이 발전 했는지
남숙이 외갓집 우물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2년 동안 눈물의 신혼생활을 했던 단산면이
지금은 돌아가지 못할 고향처럼 뇌리에서 추억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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