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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눈물의 신혼생활1.


눈물의 신혼생활


우여곡절 끝에 시집이라고 오고 보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집안 형편이었다.

 

아무리 객지에서 두 형제가 자취를 했다 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것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겨우 갖춰 진 게 있다면

판자 쪽으로 만들어진 선반 위에 간장 한 병 고추장 한 통

그리고 약 단지에 반 됫박쯤 남아 있던 소금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계절에 상관없이 푸성귀가 나오던 때도 아니고

5일 만에 서는 장날이라고 해야 기껏 해서

구덩이에서 꺼낸 무 며 배추 

그리고 움파가 전부인 세상에 그것도 시골 벽촌에서

사 먹을 만 한 게 달리 없었다.


그래도 마침 공의선생을 조카 사위로 삼아 보려고 애쓰던 

음식 솜씨 빼어난 지서장 부인이 선심 쓰며 담가준 김장 덕분에 

소금 반찬을 면 할수 있었던게 다행이라면 큰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누가 신혼생활이 깨소금맛 이라고 했던가?

꼭지를 틀기만 하면 콸콸 쏟아지던 수도 물을 사용하던 나는

결혼과 동시에 우물물을 길어서 사용해야 한다는

엄청난 난관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에 !!!

그 나마 우물 이라고 내 집 마당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것도…집 구조 라는게 ..

환자가 드나드는 문이야 당연지사 신작로를 향하고 있었지만

 

부엌 대문을 열면 미안 스럽기 짝이 없게도 엉뚱한 남의 집…

버스 정유소집 안마당 으로 통하는 이상한 구조의 집 이었다.

 

우물이 없어서 물 길어 먹기 좋으라고 그랬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집 안마당으로 대문을 낸 걸 묵인하는 

정유소 집인심이 너무나 고마웠다.


물이 귀해 몇 집 걸러 우물이 하나씩 있는 그런 동네여서 그런지

우리 동네 여 나믄 가구는 모두 남숙이 외갓집 우물을 사용하는데

단산면 에서도 물맛 좋기로도 으뜸 가는 우물 이었다.


시집와서 가장 힘들고 속터지는 일은

시시때때로 나를 골탕 먹이는 두레박질 이었다.

 

나는 자라면서 두레박 이라고는 구경도 못해 봤거니와

그눔의 두레박 이란게

밑바닥이 열십자로 깨어진 국군 철모 였으니…

그렇거나 말거나 물 길러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뜬 하게도

잘도 물을 퍼 올리건만…

두레박질에 서툰 나는 한나절을 우물가에서 씨름을 해도 

물 한 동이 채우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것도 아침에 사용할 물은 미리 길어다 둔 때문인지

점심때 부터 저녁 까지는 서너명씩 우물을 애워쌓고 두레박 질을 하는데

나이 어린 처녀들도 어찌나 솜씨들이 좋은지 두레박을 던져 넣으면 

퐁…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깨진 철모로도 거뜬하게 물을 퍼 올리는걸 보면

아줌마 들이야 말로 선수 중에 선수요 챔피온 감이 었다 .


나처럼 한나절을 두레박을 가지고 쩔쩔매다 보면

다른 사람 들에겐 두레박 차례가 안가기 때문에

여간 눈치가 보이는게 아니었다.

 

더러는 보다 못한 남숙이 외할아버지가 능숙한 솜씨로 물을 길어 주시는데

남숙이 외할아버지야 말로 다 깨진 철모로도 

힘 하나 안들이고 동이로 하나 가득 순식간에 채워 주는 별난 재주꾼이라 

존경심이 절로 생겨 우러러보였다.


그렇지만 동이를 채워 주시면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걸 머리에 이자면 또아리가 있어야 하는데 물동이를 치켜든 순간

또아리는 뒤로 나가떨어져 버리고 

간신히 맨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15미터 우리 집 부억까지 가자면

걸을 때 마다 출렁 출렁 앞으로 뒤로 막무가내로 쏱아지는 물벼락은 

감당이 안되는것이었다.


제 아무리 잠자리 잡듯 조심 조심 하건만 ..


물동이는 왕초보임을 어찌 그리 잘 알고

흔들리지 말라고 바가지 까지 엎었건만 

출렁 출렁 거리며 내 얼굴을 비롯해서

쉐타며 치마를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 버선 신발까지 적셔 버리고 만다.


섣달 열 나흣날에 결혼을 하였으니 춥기는 오죽이나 추워

물 다섯 동이쯤 이고 나면

다후다 치마는 얼음으로 풀을 먹인듯 번들 거리고 

온몸은 한속으로 덜덜덜 떨리고 아무리 입을 꾹 다물려고 노력해도 

이빨 부딧치는 소리가 따다다다

흡사 학질 걸린 사람처럼…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 하는게 내 임의 대로 조정이 되지 않을 정도다.


거기다 한술 더떠서….

맨날 물을 이고 다니니까 머리 감을 때 마다 

정수리의 머리가 한 웅큼씩 둘러 빠져 대머리가 되는건 시간문제인 것 같아 

그것 또한 보통 고민이 아닌 잠못자는 고민중에 하나였다


아 ..역시 나는 시집을 오는게 아니었어 ..

아무리 후회해야 이미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었다.


친정에서는 막내라 밥 이라고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고

명절이나 제사때는 조카들을 울리지 않고 데리고 노는게 내 임무 였기에

반찬도 어떻게 만드는지 미쳐 배우기도 전에 붙잡혀 왔으니

살림살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짐작도 못하던 나는 

갑작스런 주부역활이 끔찍스럽기 짝이없고

잠들기 전엔 모든게 걱정이고 고민이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것이 의.식.주.가 근본이라 했거늘…

이제껏 엄마가 차려주는 음식만 먹던 나는

그때서야 한시도 물을 벗어나선 살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으니…


쌀도 씻어야 밥도 안치고

야채도 씻어야 반찬 만들고…

설거지 해야지

세수 해야지 …

그리고 군불 솥에 물 길어 놔야 따뜻한 물 쓰지…

세 식구가 벗어 놓은 빨래 해야지…

모든 것은 물로 시작 해서 물로 끝난다는걸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그러자면 나는 아침부터 어쩔수 없이 하루종일 물 물 물 물

그눔의 물 때문에 하루 왼 종일 우물가에서 두레박과 씨름을 해야했다.


그눔의 두레박..

 

철모는 왜 그리도 엎어지지 않는건지

이웃집 열다섯살 짜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한동이를 채우는구만

두레박을 던져 넣으면 물위에 동동동 뜨면서 사람을 미치게 한다.

 

열번에 한번..

어쩌다 제대로 두레박이 작동하여 옳타구나 하고 끌어 올리는 순간

공들여 퍼 담은 물은 내 의사와는 상관 없이 철.철.철 회귀본능…

물동이에 도착 했을때는

도로아미타불… 빈 두레박일 때가.허다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 웬수놈의 두레박 때려 부셔 버리고 

우물가에 두발을 뻗고 통곡이라고 하겠구만…

새색씨 체면에 그럴수도 없고 어찌나 이를 악 물었는지

턱관절에 문제가 생겨 음식을 씹기가 힘들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아니…남편 이나 시동생도 그렇지…

공주처럼 여왕 처럼 대접은 못 해준다 치더라도

열네 살 이나 나이 어린 색시를 데려 왔으면

그런 것 쯤은 도와 줌 직도 하건만..

어쩌면 그리도 나 몰라라 하는지


물 좀 길어 주면 의사 면허증을 뺏어가는가 

아니면 체면에 손상이 오는가..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원망 스럽기 짝이 없고 

속아서 한 결혼 이라고 더 더욱 이를 부득부득 갈수밖에…


때로는

서툰 두래박질 때문에 애태우는 나를 보다못해

공의댁이 두레박질 서툴러서 어쩔꼬? 하시며

남숙이 외할아버지께서 고맙게도…

손수 물을 길어 우리 집 부엌 까지

들어다 주실 때도 있다


그런데…그 남숙이 외할아버지 한테도 커다란 약점이 있었으니…


더러는 타고난 불치병 이라 못 고친다고 하기도 하고

더러는 일본에 징용 끌려가서 배운 도둑질 이라고 들 하는데

정말 술이라도 잡수시는 날에는

어느 누가 감히 범접을 못 할 만큼 돌변해 버리는 것이다.

 

어쩌다 기분 이라도 조금 상해서 술을 드시면

온 동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그 첫번째는


파발마 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아랫동네 윗 동네 할 것 없이

흡사 단거리 선수마냥 쿵쿵쿵쿵 지축을 흔들며 뛰어 다니신다.

 

고래 고래 고함을 쳐 가면서…

 

어쩌다 재수없게 마주치는 사람들은

 때 아닌 육두문자에 큰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니 

오던 길도 돌아가야 할 정도다.


그리고 그 두번째가

어떤 놈도 우리 우물 에서 물 못길어 간다고

대문을 닫아 걸어버리신다.

 

그 시간 영문 모르고

 물동이라고 이고 대문간에 얼씬 거렸다간 

천둥 벼락 같은 고함소리에 놀라

항아리 놓쳐 깨지는건 다반사이고 

기절하기가 십상이다.


그래도 설마 ….

우리야 한마당을 쓰는데 혹시나 하고 …

나한테는 서의사댁 공의댁.하면서 친절하게 잘해 주시는데..

혹시나????? 하고 대문을 열라치면

역시나…..가 따로 없다


~어떤 놈이던지 좌우단간에 

우리 마당에 한 발자국만 들여 놓기만 해봐라 

그눔의 집구석에 신나를 확 뿌리고

불 확 싸질러 버릴팅게 ~하며

 

호령 호령하니 심장병 걸리는건 진짜로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미쳐 물을 못 길어 두었을 때는 할아버지 술 깨기만 고대 하는 수 밖에 

별 뾰족한 도리가 없었다.


어떨땐 분수에 맞지도 않게 나이 어린 내게 90도로 절을 해대며 

의사댁이 를 외쳐 부르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하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따발총 처럼 내 쏘는 육두문자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 할 때가 한 두 번 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울고 싶은 것은 바로 빨래 하는 거였다.


아무리 우물물이 개울물 보다 따뜻 하다지만

한겨울 혹한에 따뜻한 비누물로 비벼놓은 빨래는

삽시간에 얼어붙어 마치도 날새운 비수처럼

 손을 베어 버릴 것 같은 기색이 역역하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맑은 물이 나오도록 빨래 감을 행구자면


물 푸는데 한 시간

행구는데 한 시간….


하이얗고 비단 같이 아름답던 내 손은

어느사이 칼로 그은것처럼 손등은 터져 피가 나고 

밤이면 이불 밑에 따가운 손 비비며 잠을 못 자던 그런 시절

맨소래담도 마음놓고 못 쓰던 스물한살 새색씨 시절이 있었으니….


아이고 내가 미쳤지 왜 시집을 왔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