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 하세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
팔월 한가위 잘들 지내셨는지요?
추분이 지나고 나니
아침저녁 소슬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화단의 귀뚜라미 소리도
더욱 청아하게 들리는 가을입니다.
이 하늘 높고 아름다운 가을날에...
저는 추석차례 후유증이란 증상으로
마치 중병환자가 된것처럼
자리에 누워 지내고 있답니다.
더구나 이번 추석명절은 차례준비를 혼자서 하다보니
더욱 제 몸을 혹사하게 되는것이...
저는 언제까지나 55년생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나이먹은 제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까닭에
야속하기만 합니다.
안그래도 7월달은 기제사 여러번 들어있고
7월 29일 시조부님 기제사를 모시고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서
잇달아 추석차례를 모시려니
얼마나 마음이 바쁘던지요.
김치며 물김치도 담아야 하고
둘만 살지만 청소도 정성껏 해야함은 물론이고
이번에는 찹쌀 동동주까지 한말반을 담았는데
시기가 맞지않아 차례상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어쨌던 이것 저것 준비하랴
산꼭대기에 둥실하니 서있는 아파트까지
혼자 오르내리기도 힘에 벅찬데
시장봐서 끌어 올리랴..
다듬고 씻고 음식 만드랴...
또 남편이나 서방님께서 좋아하는 가오리 사다 말리랴
전부칠것 어물도 미리 미리 사다 소금뿌려 말리랴...
아이구,,,그리고 혼자서 나물 다듬으랴 지지고 볶고...
열나흣날 밤을 꼬박새우고....
더구나 식혜를 삭히는데 예전과 달리
12시간을 경과해도 밥알이 뜰생각을 안하니
새벽 3시에 겨우 식혜를 끓여
바람 시원한 베란다에 내놓고 나니,,
잠자리에 든게 새벽 4시....
그것도 너무 힘이 드니 잠도 오지 않고
아픈허리 부여잡고 실갱이 하다보니
벌써 동녘이 훤하게 밝아 오더군요.
저희는 차례를 지내는것도
서방님네가 혼자계시는 장모님을 뵈러
농장으로 가셔야 하니
되도록 빠른 시간에 차례를 지내게 됩니다.
들어누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끙끙대다가
7시 30분 작은집 가족이 들이 닥치니
바쁘게 움직여 8시에 차례를 올리고
아침 식사는 먹는지 마는지
동서네 집에 보낼 음식싸느라고 정신이 없었답니다.
올해 따라 몸도 많이 아팠는데
멀리 분당에 있는 동서보고 일하로 오라기도 뭣하고
혼자서 해결 하다보니
제 나이엔 너무 무리가 되었나봐요.
작은집 식구들이 돌아가자 말자 들어누워 앓는데
지금 며칠째인지도 모른답니다.
그러길래 일에 욕심내면 안되는건데...
시집와서 45년동안 맏며느리란 굴레 때문에
어느 하루 편할날 없이 살아온 제 반평생...
맏며느리로 살아온 45년,,,
저도 이젠 휴식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어요.
7년전 디스크 수술한 후로도
조금만 과로를 하면
수술전과 같은 증상으로 고생을 했었는데
아이구...이젠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졌는지
조금만 무리를 해도 그 여파가 상당히 오래 가더라구요.
디스크 환자인 저는 바닥에 앉는것이 가장 힘이들고...
그래서 음식점가면 염체불구하고
주방에서 쓰는 플라스틱 의자 달라고 해서 사용합니다.
이제는 음식점에서도
디스크환자에게 의자를 준비해 놓은곳도 있더라구요
제게 가장 힘드는 일은 서서 일하는것입니다.
체중이 있으니 장시간 서서 일하면 다리에 마비가 와서
구부러 지지 않을때도 있구요.
어떨때는 무릎이 뻣정다리 처럼 구부러 지지않는것이
꼭 무쇠 팔다리의 마징가 젯트가 이랬었나 하고
생각할때가 많아요.
아이구...이런 몸을 해 가지고 날밤을 새며
차례준비를 해야 한다니....
그렇다고 아이들이 가까이 있어 도와줄수가 있나?
세 동서들도 추석이면
세상떠난 서방님들의 차례를 모셔야 하니
저는 항상 막내동서랑 일을 해야하는데...
분당에서 금호동 까지 오려면
길에서 허비하는시간이 더 많다고
혼자서 준비하다 보니
이렇게 몸져 누워 일어날 수가 없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척추외과 선생님 말씀대로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지
아니면 간병인을 두고 호사를 부리면서 편하게 살던지..
좌우양단간에 결정하라는데...
제가그랬네요
이제 음력 9월 곧 시어머님 기일이 다가오는데
그 후에나 쉴수 있을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 선생님...
형제가 당신뿐이냐 동서들도 없느냐?
사람이 지금 평생 장애를 안고
휠체어를 타게 될지도 모르는데
언제까지 맏며느리 제사 타령만 하느냐고
저를 호되게 꾸중 시더라구요.
역활분담이란 말도 들어보지 못했느냐 하시면서요.
한번 맏며느리면 영원한 맏며느리라는 제 말과는달리
선생님의 처방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맏이도 막내가 한번 되어보고
막내도 한번 맏이가 되어보는 역활 바꾸기로
지금의 위험한 상태를 현명하게
잘 넘겨보라고 하시네요.
제가..원래 참을성이 많아요.
우리딸이 말했듯이 삼남매 모두
한지의사로 근무하던 남편이 집에서 받아줬답니다.
아기 비실르는것 누가 알면 아기 늦게 나온다고 해서
소처럼 미련하게 참고 참아서
이웃에서들 그랬어요
쥐도 새도 모르게 애기 낳는다고...
어지간히 아픈것은 얼굴 한번 찡그리면 끝나는 저도
이번에야 말로 선생님 말씀대로
역활분담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답니다.
제가...이렇게 허리뼈가 바스라 지도록
죽기살기 맏며느리 책무를 다했다고
누가 저에게 표창장을 줄것이며
내가 몸져 들어누워 보행이 불가능하면
누가 대신 내 발이 되어주겠는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저도...이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69년에 시부모님과 합가하면서
봉제사 물려받아 지금까지 꼭 40년...
열심히 맏며느리로 시부모님 모시면서
조상 받들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젠 몸이 안따라 주니
천상에 휴가를 신청해야지 싶어서요.
그런데...누구에게 휴가를 신청해야 하는지
그것도 참으로 난감한 문제입니다.
제 남편 요한씨는 그러네요
지금까지 정성껏 있는힘을 다해 부모님모셨고
봉제사 받드는것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잘 치워왔으니
이제 쉰다고 해도 그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으니까
편안하게 생각하고 몸을 추스리라구요.
아이구...요한씨가 이런 소리를 다 하다니
참으로 천지가 개벽을 할 노릇입니다.
내 남편이야 그렇게 이해를 해 준다치고 ..
앞으로 2년 정도 휴식을 취해야 겠으니
맏며느리 직분을 누군가
대신 좀 맡아서 하라고 하면
우선 서방님께서 뭐라고 하실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여러분...여러분들이 만약 맏며느리 시라면
이제부턴 좀 쉬시구요
또 만약 여러분들 중에 지차라면...
여러분들은 ...
맏며느리의 애환과 노고를
다시한번 유념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사다 명절이다 ...
그 몇일전 부터 분주하게 일해야 하고...
차례 끝나고 모두들 돌가가고 난 후에도
그릇이며 집기며 제자리에 놓아야 하고
청소며 그 뒷설거지 또한 도와주는 사람 없으면
얼마나 힘이드는지 모르실꺼예요.
다 같이 귀한딸로 태어나 곱게자라서
남의 집에 시집와서 한 식구가 되었으면
맏이다 막내다 따지지말고 같은 여자입장에서
서로 도와주며 이해해주고 노고에 감사할줄 안다면
어떤 명절이 힘들고 어떤 맏며느리가 힘들겠습니까?
수고 했다는 칭찬 한마디..
정말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 한마디..
맏며느리라서 더욱 고생했다며 내미는
조그만 손수건 한장의 선물...
이것이 바로 형제간의 사랑..
동서간의 우애가 아닐까요?...
그래도 이렇게 제사라도 없으면
지척이 살고있는 동기간들과의 왕래도 끊어지니
몸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조상봉제사만은 놓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은 불변입니다.
이산가족..
내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들 이산가족처럼
큰집작은집 외갓집 친가집사촌들이랑도 담쌓고 살면서
이산가족처럼 살더군요.
우리 아버님 6남매 낳으셨으나
벌써 세명의 시동생이 유명을 달리했으니
남아있는 자손들이라도 제사때라도 얼굴 한번 봐야하는데
모두들 살기 바쁘다고하니
같은 서울하늘아래 살고있는 조카들도
언제 얼굴 본지 기억도 없습니다.
나도..작은집 한번 가보고싶고
조카들 어찌사나 한번 가보고도싶지만
이제껏 맏며느리로 살면서 동서네집 가본것이
평생 손꼽아도 다섯번도 안되니
형제간에 어찌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오라지 않으니 갈수없고
만나자고해도 바쁘다니 만날수없고....
어쨌던 이 소피아는
한 동안 맏며느리의 막강한 파워를
잠시 손아랫 동서에게 넘기고
무급휴가로 몸 추스르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모두 풍요한 결실의 가을을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
누구에게도 띄우지 못할편지..
맏며느리 무급휴가 신청한 소피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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