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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MILANO

아름다운 꿈의 섬 이졸라 벨라

 

이졸라 벨라                                        2002   7  11

밀라노에 도착한 이틀후

[그러니까 2002년 7/9일도착]

우리는 세심하게 계획을 세워  처음으로 가까운 이졸라 벨라로 가기로 했다


이졸라벨라는 내게 사연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2000년도에 준원이랑  미국에서  20일동안  밀라노 다니러  왔을때
귀국을 이틀앞두고  사제관에 초대받아서 저녁식사를 칠성씨네와 같이 했었다.


식사후 얘기꽃을 한창피우고 있을때 

마침 IMF때문에 조기 귀국하는 택승이네가

귀국하기전 마지막 여행으로 이졸라벨라를 구경하고 싶다고
성악하는 칠성씨에게 안내좀 해달라고 전화를 하자 
신부님께서 들으시고는  준원이도 몇번씩 밀라노에 왔지만 

이졸라벨라 구경 못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세식구가 합류해서 여행하라시며
소형차인  칠성씨 차와 신부님의  대형차를 바꿔주시며 

모친도 모시고 다녀 오라고 분부를 내리셨다.

 

세상에나 고맙기 그지없으시지 !
연준이와 나는 너무나 고마워서 어쩔줄을 몰라했었다


몇년씩 이태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연준이는 차가 없는 관계로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어딜가던 누가 데리고 가주지 않으면 아무리 가 보고 싶어도  꿈밖의 일이었고
한국에서 엄마가 오던 누가 오던지  남의신세를 지지 않고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태리란 나라...

그렇게 연준이가 가보고 싶어한 이졸라벨라
엄마가 몇번씩 이태리에 와도 못보여줘서  연준이의 한이됐던곳
드디어 이졸라 벨라를 가게 되었구나하고 신부님께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러나  기쁜것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
우리는 이졸라 벨라 구경을 할수 있는것만 기뻐했지
점심이나 간식을 준비해서 가야 한다는 말에는 기쁨도 잠시 ,

낭패 해버리고 말았다.


이미 밤은 깊어 수퍼는 어디고 문닫은지 한참이고

과일이던 음료수던 뭔가는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김밥을 싸려 해도 뭔가 반찬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아무리 궁리를 해봤지만
두가족이 하루종일 먹거리를 준비한다는데
염치없이 빈손으로 따라가 남들 음식먹는것 눈요기나 하자면

얼마나 눈치가 보이겠나?

 

그리고 두집 다 아이들이 있어
준원이가  혹시라도 먹는것때문에 상처받게 될까봐

천재일우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었다.


그래서 온갖 궁리 끝에..칠성씨 한테는 준원이가 갑자기 열이나고 해서

못가게 되었다고 둘러 댔지만 사실은 참으로 맘이 아팠었다.


왜냐하면 ...

옛날  칠성씨네랑 택승이네랑 인스부룩 갔을때가 기억났기 때문에  ...

 

그때 인스부룩에서 나는 신부님들의 저녁담당이라

수도원 마당에서 참나물을 띁고있었고

슬기엄마와  택승이 엄마는 신부님들을 따라 고기를 사러 수퍼에를 갔었다.


그런데 수퍼에서 돌아온 슬기와 택승이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었고

그걸본 준원이가 자기도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어찌나 졸라대던지

차가있나 수퍼가 어디인지 알수가 있나???

누구던지 데리고 가야만 해결이 날판인데 모두들 배가 고픈 나머지

준원이의 애원을 모른체하고...
그때 슬기랑 택승이가 먹는 아이스캔디 를 보고

"할머니 나두 저거사줘 먹고싶어!!!"

하며 울던게 하필이면 생각이 날게 뭔가?

 

내가 그때 얼마나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는지 아무도 몰랐을꺼다.

 

아이스크림 먹고싶다고 보채는 준원이를

속상한 나머지 얼마나 야단을 쳤는지....
준비없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가는것은 우리 모두 상처가 될뿐
인스부룩에서의 일은  두번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였다.

그 이졸라벨라를  이젠 준원이가 없는 지금에야  가게 되었으니.....


그런데 이졸라벨라는 기차가 다니는 곳도 아니고

버스를 타고 가는곳도 아니고  
내차가 있어야 한다는데   무슨수로 구경할꼬?
걱정하는 내게  혜령이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있다고
자기친구 다비데가 하루 봉사 해주기로 했다고 걱정말고  다녀 오자고 한다.


다비데는 누군가 하면 사십대초반의 방송국에서 일하는

아주아주아주  착한 아저씨래나?
프리랜서 처럼  자기일만 끝나면 쉴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진 다비데는 
우리 식구와 하루를 보내려고 이미 어제밤을 꼬박세워 근무를 했다는 것이다 .


고맙기도 하지 !


11일 아침 9시 우리는 다비데를 현관앞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했다.
머리가 이미 희끗희끗한  다비데는 흔히보는 이딸리아노 처럼
빨강색 티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로 한껏 멋을 부리고 현관앞에 세워둔
빨간색의 소형 자동차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노였던가?)

 

모처럼 만에 택시가 아닌 자가용을 타려니 
감격한 나는 발바닥이 다 간질간질 해져 왔다.

그러나 출발하자  말자

있는대로 멋을낸 우리는 동시에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다비데 자가용엔 에어컨이 없네?
문을 열고 달리기 시작하자 뜨거운 바람에다 흙 먼지에다가
사진빨 잘받으라고 밤새 머리에 클립을 말고 난리를 쳤는데 이럴수가?....

질풍같은 바람은 있는대로 멋을낸 우리들의  머리를

삽시간에 망가뜨리고
스타일 완전 구겨 버리는 것이었다.


하기사... 스타일 망가지는건것 쯤은 약과였다
하필이면 운전석 뒤에 앉은 나는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에 왼쪽볼이 

그만 새빨갛게 익어  바늘로 찌르듯 따끔거리는데  뭐라고 말할수도 없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혹시 누가 눈치라도 챌세라 오히려 전전긍긍했다.


더구나 한덩치씩 하는 인석이와 그림이 거기다가 나까지 보태서 
세명의 육중한 체구를  좁아터진 뒷좌석에 구겨 넣고 앉았을랴니
다리에 쥐가  나지를 않나? 어떻게 옴싹달싹 할틈이 없었다.


얼굴이 익기는 다비데도 매 일반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불편할까봐 연신 연준이와 뭐라고 이야기 하는데
아마  에어컨이 없어서  불편하지  그러는것 같았다.
괜찬아 괜찬아 하면서 두세시간  달려 이졸라벨라에 무사히 도착했다.

 

자 !   다왔다 ~~~~~내리자! 
도착하자말자 시간은 벌써 그 웬수놈의 점심시간을 가르키는게 아닌가?
문을 열고 내릴려고하니 이놈의 오금이 붙어서  펴지지가 않네.
아예 발바닥이  자동차 바닥에 붙어 버린듯 

무릎에 우두둑 소리가 난 후에야  움직일수 있었다.


문제는 점심이었는데

자그만한 레스토랑이 눈에 띄였다.

싫건 좋건 식당문이 열려있으니  기회는 바로 이때밖에....
이때 먹지 않으면 굶어야 할판이니 우리는 주차장에  파킹하자말자 

우리들 4식구든 흡사 마라톤 선수들 마냥 한달음에 파바박...

식당으로 꼴인!!!


아니 식당만 해도 그렇다...

하루종일 문을열고 있으면 얼마나 매상도 많이 오르고 

부자 되는건 시간 문제일텐데

 왜 문을 열었다 닫았다  귀찮케 그러고 살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태리 사람들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어쨌건 재빠르게 식사를 끝낸 우리는 

 조그만 배를 타고 이졸라 벨라로 향했다.


4시까지 돌아오는 표를 끊어서  호수를 미끄러져 가며
멀리 아련히 보이는 이졸라벨라의 그림같은 경치에 넋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림이도 식당뒤쪽으로 높이 솟은  산골짜기마다

고색찬란한 성채같은 집들을 보곤 
"어머!!!  여기는 진짜로 이태리네!!!" 만 연발해댄다.
아니 그럼 밀라노는 이태리가 아니란 말인가?


"와!  진짜 진짜 여기야 말로 이태리다 "

하면서 캠코더로  사진찍기에 바쁘다 .
이태리가 이렇게 아름다운줄 정말 몰랐다나?


이졸라벨라의 역사에 대해 

방송국 히스토리 전문직인 다비데의 유식한 설명으로

한층더 감명깊게 관광할수 있었다.


이졸라벨라는...

이태리 유명한 가문의 대대로 전해내려온 재산의 일부분으로서 

그섬 하나로  몇백명의 후손들이 먹고 살수있고
이런 재산이 이태리 곳곳에 산재해 있다니

 그 후손들이야 말로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들일까?


그옛날 유리가 귀한 시대여서 그랬는지

성 바깥쪽엔 그림으로 창을 그렸는데
설명을 듣지 않고는 그 창이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고색창연한 가구며

마치 금방 금물감을 입힌것같은  천정의 그림이며 
식탁에 차려진 그릇들이며 

은빛휘황한 촛대하며
1미리도 틀리지 않게 재단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기하학적인 대리석바닥이며 ...


우리는 그모든  골동품들이 몇세기를 건너뛰면서

우리앞에 나타난 것에 경탄할수밖에...

어디서 얻어 들었는지

인석이는 커다란  핑거볼 같은 은그릇을 보더니  알은체  설명해줬다.


옛날에  유럽사람들은 물이 나빠서 그런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목욕을 너무  안해서  몸에 냄새가 나는것을 막기위해  파티에 가면...
어느집이 제일좋은 향수를 내어놓나? 하는것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바로 저기에 보이는 저런 은그릇에 향수를 떨어트린 물을 담아 놓고 

손님들이  사용하게끔 만들었다..... 

 
그런 풍습때문에 유럽의 향수 문화가 발달되것이고  ...

하며그럴듯 하게 말했다.


우리는 거짓말 말라고  

이젠 그런말엔 안속아 넘어간다고  하며 웃는데

다비데는 그말이 맞다고 그러는게 아닌가?

설마하니?
이렇게 문명과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  씻지를 않다니?
우리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다비데는 인석이의 말이 맞다고 했다.


역시 우리아들은 잡학박사다  모르는것 빼고는 다 안다니까?


우리는 동시에 물었다  물이 나빠서 샤워를 잘 안햿을까? 하고
[지금도 이태리는 물에  석회질이 많아 비누거품이 잘일지 않고 

세수하고 나면 얼굴에서 회가루 같은게 떨어지곤한다]


그러나 다비데의 설명은 옛날 사람들이 자주 씻는것을 

건강상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나?


그리고 귀부인들이 목에 주름이 많이 잡힌 턱받게 같은것을 한 이유는 
머리를 잘 안감아서 이가 많이 생겨 몸에 퍼지는것을 막기위해
목에 두른 주름 주머니에 이를 가두기 위해서였다나?


세상에 !

그런 시절도 있었네?
그럼 옛날엔 그랬다 치고 ...

그런데 왜 지금같은 밝은 개명천지에 ...
전철이나 버스를타면  머리 안감은 남자 여자 이탈리안들 때문에 

우리는 코를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는데  그건 왜 그럴까?
참말로 이해가 않되네
꼭 어느나라? 사람들 처럼 머리가 떡이되어 

기름이  졸졸 흐르는게  어째 너무 그렇다 ???

 

우리는 말로 표현할수 없으리 만큼  아름답게 조각된 수백가지의 수목들과 
거기서 풍겨  나오는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향기로운 냄새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으리라곤 믿어지지않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각가지 색깔의 대리석 조각품들   
바다를  뒤로하고 하늘높이  황금빛 찬란한  자태를 뽐내는

천사상앞에서 사진을 찍고
오늘 하루 우리를 위해 수고해준 다비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치오를 선물했다.


돌아오는 선착장에서 인석이는..

낚시광인 세훈이에게줄  커다란 물고기가 그려진 티셔츠 한장을 샀다.

마침 선착장에서 배가 들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열살쯤 되었을까 한 두소년이 릴로 낚시질을 하느걸 지켜보던 인석이가
뭐라고 했던지 아이들이 릴을 넘겨주는게 아닌가?
신이난 인석이가 낚시를 담그자 말자 팔뚝만한 물고기가 덜컥 걸려 들었다
우리가 환성을 지르기도 전에

이태리 아저씨 하나가 씩씩거리며 달려 오더니 쏼라 쏼라 쏼라
손가락으로 연신 물을 가르키면서..
인석이가 알았다고  지금 바로 물에 놓아 줄거라고 하니까  두말 안하고 가는거였다.


나원 참 !  애들 낚시할땐 못본척 하더니...

돌아오는길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그림이가 나를 생각해서  자리를 바꿔준다고 인심을 썼는데 
그게 하필이면 서쪽으로 지는 대야 만큼이나 큰 붉은해가

성한 내 오른쪽뺨을  지져 대는게 아닌가?
에구 지지리도 복도 없지  오며 가며 해받이가 되다니...
어제밤 설친탓에  거기다 하루종일 구경한답시고

피곤하던참에 뺨이야 익건 말건창틀에 고개를  쳐박혀 코를 골다 보니까

어느덧 밀라노 시가지가 보였다.

 

맞어 !
오늘 하루종일 다비데가 선글래스도 안쓰고

눈 찡그려 가며  더위에 우리땜에 고생했는데 싶어
베르디에서  연준이랑 같은 선생님께 수업받는 

외국인 친구가 주방장으로 있는
리스또란떼에 가서  저녁식사를 대접 하기로 했다.
인석이가 쉐프라는걸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주방장은
자기의 요리방법도 가르켜주고 

그집의 메뉴가 적힌 페이퍼도 주고 신경을 많이 써줬다.

 

그런데 한가지....음식은 맛 있었지만 좁아터진 홀에서
주인이 어찌나 독한 담배를 줄기차게  피워 대는지 까무러칠 지경인데다 
거기다 한수더떠서 모기들은 인정사정 볼것없다  작정했는지
무차별로  침을 꽂아대는게  당해낼 장사가 없어 일찌감치 식사를 끝내고 일어섯다.


배도 부르겠다  자가용도 탔겠다  밤바람 시원하겠다.
운전하는 사람이야 힘들건 말건 뒷좌석에 앉은 우리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밤 열한시가 다 되어 집앞에서  내린 우리는

내일 또 어디로 갈지 정하기만 하면  데리러 오겠다는

다비데의 착한 마음씨에 감격하며

우리는 "땡큐 베리마취 몰또 그라찌에"를 합창하며 외쳤다 .


삼층으로 올라가는 좁아터진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이심전심 4심이 되어 동시에 말했다.

역시 우리집이 최고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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