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원이 만세 5 1996년 9월
준원이와의 짧았던 만남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이태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동안 얼굴을 익힌 탓에 준원이를 마주보면서 짝짜꿍을 한 뒤에 손을 내밀면
내게 안기려고 팔을 쭉 뻗어 오거나,보행기를 탄 채 전속력으로 달려오곤 했었는데
그런 잔재미도 없이 이태리에서 혼자 지낼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혹덩어리 라고 매일 구박하더니만, 이제 이태리 돌아가려니까 좀 아쉽냐?”
엄마도 나를 비웃었다.
“에이,그냥 콱 눌러앉아 살까? 준원이 돌잔치 보고싶은데…”
“어마마 얘좀 봐.. 돌잔치 하려면 몇 달이나 더 남았구만….
얼렁 가서 공부해야지,무슨소릴.”
공부도 아직 남아있었지만
무엇보다 세들어 살고있는 아파트를 너무 오래 비워두면 안될 것 같기도 했다.
하기사 가난한 유학생 살림이라고 가져갈 것도 없겠지만…
이러면 나의 오디오가 화를 내지 않을까 모르겠다.
음악한답시고 오디오는 좋은거 들여놓고 썼는데,
혹시라도 빈집털이가 들어서 오디오를 달랑 들고 가버리면 어쩐다지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어떤 도둑이 하릴없이 유학생 집에 들어가서 물건 집어가겠냐고 하지만
그건 엄마가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한국의 결혼문화,
특히 혼수에 대해서는 이태리 애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금방 결혼하고 온 신혼부부만 상대로 빈집털이를 해서
결혼패물만 홀랑 들고 간 사고가 여러 번 있었고,
신고를 해봤자 이태리 경찰도 잘생기기만 했지
도대체 업무를 안하니까 신고는 하나마나다.
한국 유학생들은 남의 나라에 사는 죄로 자꾸 경찰들 조르면 불이익을 당할수 있다는 생각에
아깝지만 사람 안 다쳤으니 액땜 했다 치고 잊자고 해버린다.
나는 그런 경우가 없었으니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기분 나쁠 것 같고
나 같으면 경찰서 마당에 자리깔고 누워서 도둑놈 잡아내라고 할 것 같은데,
나만 빼고 모두 착한가보다.
그리고 도둑들도 얼마나 용감하지 앞뒤 안가리고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수법이다,
일명 배째라! 수법 말이다.
서울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가끔 소매치기들이 극성을 부리곤 하는데 우리나라 소매치기 선수들은
정말 올림픽에 그런 종목이 있다면 다들 금메달 감이다.
표시 안나게 상의 안감을 잘라내고 손지갑만 살짝 빼 간다던지,
핸드백을 귀신같이 안쪽을 잘라내고 돈지갑만 살짝 빼간다.
물론 돈 있는 표적도 정확히 포착하는 재주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태리 애들은 좀 다르다.
일단 천하태평에 게으르기 까지 한 애들이 소매치기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지하철이 혼잡하던지 한산하던지 전혀 상관 안한다.
또 어디서 보고 들은건 있는지
면도칼로 윗 저고리 안쪽을 뜯어내는 “안창따기”를 주로 써먹는데,
솜씨가 없는 건 둘째치고 도대체가 프로근성이 없어서 일단 면도칼로 쑤시고 본다.
그러다보니 안창을 다 뜯기도 전에
표적이 되었던 사람은 와이셔츠까지 찢기는 건 물론이고
정도가 심하면 왼쪽 가슴을 칼로 마구 긁히기 까지 한다.
그 정도에서 얼른 칼을 놓고 도망 가는것도 아니고
이젠 끝까지 손으로 더듬거리면서 지갑을 빼내다가는 주인하고 몸싸움을 벌이기 일쑤다.
빈집털이 역시 같은 방법이다.
빈집이라고 생각한 집에 가서
이웃에서 내다보거나 말거나 드릴로 열쇠구멍 뚫고 본다.
드릴로 뚫다가 이웃집에서 나와서 뭐라고 하면 도망가고
아무도 안나오면 문짝 다 뜯어서 한켠에 세워두고
이삿짐용 트럭을 대문 앞에 보란듯이 대놓고 차근차근 물건을 실어나른다.
나는 방학때 서울 오기전에 수위아줌마한테 미리 잘 말해놓고 와서
별 탈은 없겠지만 빨리 이태리로 돌아가서 집이 무사한지 확인도 하고싶었고
무엇보다 조카랑 노는 재미에 푹 빠져서
하루에 한시간씩 꼬박꼬박 노래연습하겠다던 내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내 자신도 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는 날 받아놓으니까 더 불안하네.
나 아무래도 다리미 꽂아놓고 온 것 같은데…불 났으면 어쩌지….
아니,다리미는 코드 뺐고, 주전자 올려놓고 왔나부다…”
“아이고,정신머리 하고는…그럼 빨리 안나 아줌마한테 전화를 해보던지…
잘한다,잘해.
지금까지 팽팽 놀다가 막상 가려니까 다리미를 꽂아놨네 어쨌네…빨랑 가라.”
이태리 공항은 항상 복잡하고 담배냄새로 곧 질식할 것만 같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까지 오는 동안 내내 불안했는데
막상 아파트 건물이 말짱한걸 보니까 지금까지 맘 졸였던게 좀 분하기도 했다.
아파트는 멀쩡했다.
다리미도 뒷꽁지에 코드를 돌돌 말아서 얌전히 놓여있었고,
가스 밸브도 잘 잠겨있고,
주전자도 깨끗이 닦여서 찬장 안에 올려져 있었다.
내가 우렁각시를 키우지 않는 한,내가 다 뒷정리 해놓고 간게 분명했다.
서른도 되기전에 정신머리가 이 모양인데 가사 외우는 것 보면 신기할 정도다.
잘 도착했다고 집에 전화를 넣어주지 않으면 당신 딸내미가 너무 예뻐서
사내놈들이 어디로 납치해 갈거라고 노상 걱정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난 등에 맨 배낭을 채 벗기도 전에 다이얼을 돌렸다.
한국은 이미 시간이 꽤 되었을테지만 모두들 안 주무시고 깨어있을 터였다.
“엄마~~ 나야,잘 도착했어. 집? 말짱하네? 왜,도로 갈까? 헤헤헤헤”
“아이구 얘,준원이가 너 찾는다 글쎄.”
“그래? 걔가 이제 입이 트여서 날 목메여 부른단 말이지?”
“그럴리가 있니..말은 못해도 널 찾는 눈치야.
보행기 탄 채로 이방 저방으로 기웃거리면서 돌아다니더라니깐…
“그래? 짜식..기특하군..역시 업어 키운 보람이 있다니깐…안자면 쫌 바꿔봐봐.”
“말도 못하는 애를 바꾸면 뭘해?”
“준원이 자?”
“안 자.”
“그럼 바꿔봐봐.”
엄마가 전화기를 든채로 언니한테 준원이 좀 데리고 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 시끌벅쩍 하더니만 엄마가 다시 말했다.
“얘,준원이 내가 안고 있거덩? 수화기를 귀에 대줄 테니까 니가 불러봐.”
엄마가 준원이에게 고모가 전화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일부러 조금 뜸을 들였다가 준원이를 불렀다.
“준원아~~~고모야~~~” “…………..”
“준원아? 고모야~~~”
“워워우우우우워워”
준원이가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더니만 전화기에 대고 킁킁거리는지 이상한 동물소리를 냈다.
곧 엄마가 도로 받아서 설명하는 말이,
준원이가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반갑다고 뭐라고 괴성을 질러대더니만
바로 수화기를 입에 대고 빨기 시작하더란다.
그 날 이후로는 시간 계산을 잘 해서
준원이가 깨어있을 시간에 맞춰서 잠 안자고 기다렸다가
전화하고 준원이랑 가끔씩 통화를 했다.
한동안은 동물소리로 시작해서
수화기에 대고 뽀뽀를 하는것으로 의사 소통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옴모” 라고 나를 고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훈련을 시켰는지
“고모 어딨나?” 그러면
벽에 걸려있는 내 사진을 가리키고
“꼬불랑 어디있나?” 하면
내 화가 친구가 그려준 유화
-모래 위에 유성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뒤에 가장자리를 태운 작품인데,
그 타들어간 모양이 꼬불꼬불 하다- 를 가리킨다고 했다. 역시 교육의 힘은 놀랍다.
집에서는 꾸준히 준원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는데
부쩍 부쩍 크는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그런 중에도 아기는 아기인지라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난 벽에 준원이 사진으로 도배를 할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준원이 첫돌이 되었다.
집에서는 첫손주라고 잔치를 거하게 하고
내게도 비데오를 찍어서 보내주었다.
아이구 이쁜놈~~
도령복을 입혀놨는데 어찌나 인물이 훤한지 조명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준원이는 처음 입어보는 한복이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머리에 쓴 도령두건도 싫은지 계속 끄집어 내리고
식구들은 그걸 도로 씌워주느라고 애를 먹고 있었다.
돌상에 하나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한과랑 과일도 높이 괴어놓고
실타래며 연필,지폐들도 늘어놓고 준원이 보고 집으라고 부추기는데
나도 모르게 “준원아 돈 집어 돈집어..” 하면서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준원이는 실타래를 살며시 집으려다가 어른들이
와아~ 하고 탄성을 내면 도로 놓고는 조금 궁리하다가
지폐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서 지폐를 집으려하고,다시 어른들이 와아 하고 탄성을 지르면
도로 연필 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이기만 하는 것이었다.
흥분한 나는 비데오를 보면서
“그래~ 잘 생각했다..짧은 인생,그냥 놀고 먹으면 살아라..”
집에 전화를 넣었다.
”엄마! 준원이 비데오 받았어…아이구 이쁜놈…그래서 결국 뭐 집었어?
실타래? 시시하게 실타래가 뭐냐…. 이제 걸음마 해? 아직?”
준원이는 돌이 지났는데도 걸음마를 못했다.
물론 한걸음씩 뒤뚱뒤뚱 떼어놓긴 하는데,오랫동안 걷지를 못했다.
태어날땐 너무 우량아로 태어나서
간호사들이 가방만 메어 주면 학교가게 생겼다고 농담을 했었다는데
이젠 젖살도 빠지고 얼굴도 얄쌍하니 그리 뚱뚱하지 않은데도 엉덩이가 무거운지
엉덩방아만 찧고 걷지를 못했다. 걸음마를 못하니 당연 말도 느렸다.
엄마는 동창회라도 나가서 친구분들 손주얘기 들어보면
누구는 돌때부터 컴퓨터를 한다지를 않나
글씨를 다 읽는다지를 않나 다들 신동들만 낳았는 모양인데
우리손주는 왜이리 말을 못할꼬 하면서 걱정이 대단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천하태평이었다.
“애가 말할때되면 말하고 걸을 때 되면 걷겠지,
뭘 그리 걱정이야..
너무 일찍부터 무리하게 걸음마 시키는 것도
무릎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안좋아” 하셨다.
온식구가 준원이 입이 트이고 걸음마를 시작하기를 학수고대 하는 동안
시간은 쉬지않고 흘렀다.
엄마랑 통화를 하면
“준원이가 얼마나 똑똑한데..” 하면서 자랑을 하더니만
막상 비데오를 받아서 보면 전혀 딴판이었다.
의사표현은 확실히 하는데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게 아니라
무조건 땡깡을 부리고 울거나 웃음으로 의사표현을 하는것이었다.
엄마 말로는 울음소리가 다 틀려서
준원이가 뭘 원하는지 알아들을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여전히 캥캥거리는 울음소리 하나로 울궈 먹고 있었다.
“엄마..그런데 나 이번 여름에는 서울 못 나갈 것 같아.
.여름에 여기저기 콩쿨도 있고…
엄마가 준원이 데리고 오면 안돼? 나 맛있는 것도 해주고..”
“에이..내 손주라고 내 맘대로 할수있나…오빠랑 언니한테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