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원이 만세 4
준원이가 태어나고 새언니는 가끔 무릎이 시리다고 했다.
아버지는 산후통인가 보다 하시며 걱정이 대단하셨다.
그러면서도 조금 미안해 하시는 눈치였다.
아마 우리집 구조 때문이었을거다.
우리집은 5층짜리 빌딩인데, 빌딩이라고 바닥에 대리석이 반질반질 하다거나
출입구에 자동문이 달려있거나 하는 빌딩이 아니라
1층에는 아버지의 한의원이 있고 중간층 들에는 세입자들이 살고 있고,
5층 꼭대기층이 우리집이다.
5층 짜리 짜리몽땅 아파트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언니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니까 아버지는 건물구조 때문에 언니가 아기 가지고서도
5층까지 매일 오르락 내리락했기 �문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언니가 무릎이 시리다고 말이 떨어지자마자 왠만한 장보기는 내가 대신 해야했고,
언니가 외출할 때 마다 아버지가 너무 신경을 쓰시니까
아예 언니도 왠만하면 문 밖에 나서는 걸 자제하고 있었다.
사실은 출산후에 몸이 많이 불어서 예전에 입던 옷이 잘 안맞기도 해서,
멋장이 우리언니는 펄렁한 임신한 후 샀던 옷들을 다시 입긴 싫어서 였던 것 같기도 하고.
요즘같이 슈퍼마켓에서 집집마다 배달을 해주던 때도 아니었기 때문에,
매일 장보러 쪼르르 내려가는것도 큰 일이었다.
“엄마,내 친구네는 아파트 사는데 수퍼에다 전화로 주문하면 박스에 담아서 다 배달해주고,
세탁소에서도 싹 다림질 해서 집집마다 배달 해준다고 하던데?”
“아이구,그건 아파트니까 그렇구 우리집은 일반 가정집이니까 누가 배달 해준다던?
그리고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5층까지 배달해달라면 욕이나 먹지…”
아,왜 우리 아버진 엘리베이터 설치를 안하셔서 고명딸을 이렇게 고생시키는거야…
종아리에 알이라도 배겨봐.그 꼴을 어떻게 본대…나는 노상 궁시렁 거렸다.
“엄마,우리 도르래라도 달아서 줄을 밑으로 내려서
바구니에 물건 담아주면 우리가 끌어올리면 안될까?
이태리 시골에서는 아직도 그런 방법으로 장보기를 한다구..멋지지?”
“이태리 사람이야 끽해야 토마토나 스파게티 국수나 사겠지만,
우리같이 쇠고기 한근,두부,양념거리..그런걸 어찌 다 담아서 끌어올려?
"그러다 팔 빠지겠다”
하긴 종아리에 알이 배겨도 문제지만 팔뚝에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울퉁불퉁해도 별로 예쁘진 않겠지,
나는 생각을 고치고 팔자려니 하기로 했다.
“어머니,저 내일 점심때 친한 동창들끼리 모임이 있는데요
준원이 데리고 나가서 친구들한테 아기도 보여주고 오랜만에 친구들좀 만나고 올께요”
동창회는 내일이라면서 하루 전에 벌써 엄마한테 얘기를 꺼냈다.
“그래,그래라”
엄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언니는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가더니만
옷장을 열고 소동을 피우는 눈치였다.
조금후엔 쪼르르 나와서 다시 옥상에 있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한참이 되도록 내려오질 않았다.
옥상에도 조그만 방이 있어서 광 구실을 하는 방이 있는데,
거기에 철지난 옷이나 이불 같은걸 간수해두고 있다.
아마 옷가지를 찾는 눈치였는데,처녀적 옷은 당연히 안맞을게고
임신복은 입기 싫고 혼자서 패션쇼를 했던 모양이었다.
올라갈땐 육상선수가 무색하게 후다닥 뛰어올라가더니만 내려올땐 터덜터덜 내려온다.
무릎을 조금 구부리고 내려오는게 또 무릎이 시리기 시작한가 보았다.
“새아기야, 옥상방에서 뭐 찾을 거라도 있니? 써늘한델 왜 올라가?”
“어머니..내일 동창회 나갈려고 옷을 입어봤더니 맞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허리춤도 다 적구요, 애기 낳고 밖에 나갈일이 없어서 신경쓰지 않고 있었더니
저 아줌마 다 된거 같아요.”
언니가 완전히 울상이었다.
이럴 때 집안 여자들 몸집이 비슷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우리 엄마는 전형적인 후덕한 맏며느리 타입이고
언니는 살집은 없어도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고
나는 아담한 체구인데다 키도 언니보다 훨씬 작고 팔은 정말 정말 짧다
우리 서씨 집안은 옆짱구 머리에 짧은팔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내 치마나 바지는 어떻게 꿰어 입어볼지 몰라도
내 상의를 입는 것은 정말 무리였다.
또 그때 언니는 몸이 최고로 불어있어서 어차피 내옷은 맞지도 않았지만..
언니는 잘난 아들을 동창회에 데리고 나가서 자랑도 하고싶었고,
애기 낳았어도 처녀같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게 뻔한데 이젠 다 글러버린 일이었다.
저녁 내내 시무룩 하더니 이미 밤이 깊었는데 언니가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운을 뗀다.
“저기…어머니….준원이 좀 봐주세요,저 금새 어디 다녀올께요.”
“어디? 이 밤중에 어딜 가려구?”
“저기 동대문 시장에라도 가서 옷 하나 사입을려구요..”
“어? 언니 나도 가자 헤헤헤 잘됐다. 시장 구경도 하고 콧바람도 좀 쐬야지,
금남시장의 꼬리꼬리한 냄새만 맨날 맡았더니 나도 이제 동대문의 매연을 좀 맡아봐야 겠어”
그런데 엄마가 못가게 말리는 거였다.
“얘,가뜩이나 무릎 아프다고 하면서 그 복잡한델 이 밤중에 가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사람들 한테 치여서 안돼..잘 걷지도 못하는 애가….쯧쯧쯧”
언니는 거의 울상이었구
나도 준원이 흉내를 내면서 아랫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우는 흉내를 해보이면서
엄마한테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에이 저리 좀 비켜봐. 근데 얘,내일 몇시에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
“예,강남에요 xxx 식당에서요,
“어 그래? 거기 xxx 백화점이랑 가까운데 아니냐? 그럼 이렇게 하자.
너 무릎 아파서 준원이 데리고 나가는것도 무리고
입을 옷도 없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다 같이 나가자.
내가 준원이 업고 따라 나설 테니까 다 같이 나가서
백화점 가서 너 옷 한벌 사입고,식당까지 아기 델다주고
우린 다른 테이블에서 밥먹고 있을 테니까
느이 모임 끝나면 내가 준원이 도로 업고 오면 되겠다..
오면서 장거리 봐가지고 오면 되니까 너도 따라 나서고.”
나를 가리킨다. 그러니깐 나는 시장 장보기용 딸인 것이었다.
“엄마 그럼 나도 옷 한벌 해주나?”
“그래,해주마. 느이 새언니랑 똑 같은 옷으로 사줄꼐.”
“아~ 쫌!”
엄마는 내가 누구랑 똑 같은 옷 입는걸 너무 싫어하는걸 알고는 일부러 나를 약올렸다.
언니는 입이 좀 나왔던게 엄마의 제안을 듣고는 금새 활짝 웃으면서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또 어디다 전화를 하는지 킬킬킬 웃는 소리도 가끔씩 들리고 하더니만
조금 있다 방에서 나오더니
“어머니,저희 내일 모임장소를 xxx 백화점 내의 식당가로 옮겼어요.
제가 친구한테 어머님이 아기 업고 따라 나오신다고 했더니
애들이 어머니 너무 걷게 하기 죄송스럽다고 그냥 백화점 안에서 만나재요”
“오호~ 언니 좋아 좋아..
요즘 강남에 안 나가봤는데 백화점에서 시간 때우면 안 심심하고 좋지…
헤헤헤 그리고 언니부터 후딱 사입고 나는 천천히 둘러보고 이것저것 다 입어봐야지”
그리하여 그 다음날
,언니는 약간 헐렁한 임신복에 핸드백만 고급스러운 정장용을 들고 –
아마 새옷을 사면 매치가 되도록 미리 신경을 쓴 눈치였다-
엄마와 아기가방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아기가 하나 생기니까 준비물도 너무 많아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게
출퇴근시간의 전철 안에서 이리저리 밟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얘,우유 미리 타지 말자…식당에서 보리차 얻어서 타 먹이지 뭐”
“어머니,기저귀는 몇 개나 넣을까요?”
”혹시 모르니까 긴바지 하나 넣고,윗도리도 하나 여벌로 넣자.”
“준원이 좋아하는 딸랑이도 넣을까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난 벌써 준비 끝내고 아기와 눈 맞추면서 놀고 있었고
엄마와 언니만 정신 없이 부산을 떨어댔다.
“아,고만 좀 하고 나가자.
언니도 옷 좀 이것저것 골라보려면 지금 쯤은 나가줘야 한다구.”
“너도 그러고 있지말고 준원이 이거 좀 입혀봐라”
엄마가 파란색 줄무니가 들어가 있는 세라복 같은 티셔츠와
세라복의 줄무늬와 같은 색의 짙은 군청색 고무줄 바지를 내쪽으로 던져 주었다.
“여름 끝물이라 좀 더울지도 모르지만 ..
혹시 백화점 안에는 냉방장치가 너무 잘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긴거 입혀야지..”
좀 큰애도 아니고..
5개월 좀 넘은 아기한테 옷을 입히려니까 안그래도 더운데 진땀이 흘렀다.
“엄마 준원이 머리통이 너무 커서 티셔츠가 안들어가”
“아이구 이것아,거기 똑딱이 단추 있쟎어,그걸 열고 입혀야지..눈썰미하고는..쯧쯧”
요즘 아기옷은 다들 유명 디자이너들이 만드는가 보다,
세라복 앞여밈에 감쪽같이 똑딱이 단추를 숨겨두다니 말이다.
어쨌든 억지로 덮어씌우려고 낑낑거리느라 나도 힘들고 준원이도 힘들었는데
어찌어찌 해서 겨우 다 입혀놓았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아기 가방안에 들은 물건들과 젓병,손수건,아기 여분 턱받이 등등
일일이 검사를 하더니 완전군장을 갖추고 구보훈련을 나서는 신병들을 바라보듯이
우리를 한번 쭉 훑어보더니만 흐뭇해 하셨다.
“엄마는 준비 안해?”
“아이고 내 정신 좀 봐….아이구 나 참..”
‘아이구 원씨야’를 연발하면서 엄마는 서둘러 집에서 편하게 입던 고무줄 반바지를 벗어던지고
‘강남용’ 주머니 둘레에 빤짝이가 두줄로 박힌 예쁜 반바지를 입고 나섰다.
“얘,애기 포대기 가져와라.”
“왜? 아 폼 안나게 업고 갈려구? 더워 죽겠는데 애를 업고 가자구?”
“어머니,유모차 가져가죠…”
“아이고 여기서 내려가자면 한참인데 유모차를 누가 들고 내려가?
그렇다구 느이 다 늙은 시아버지한테 유모차 내려달라구 하련? 그리고 업고 가는게 더 편해”
“그래두 어머니…그럼 너무 죄송해서….제가 업을꼐요”
“아,언니는 가서 옷도 이것저것 입고 해야하는데
애 업고 있으면 말짱 헛일이니까 그냥 가자고 제발…늦겠다 쫌~”
내가 나서서 나쁜 딸년 역할을 하지 않으면
언니가 내처 그러고 울상으로 서서 애기 업고 간다고 할까봐
언니한테 빨랑 포대기 가져오라고 좀 짜증을 부렸다.
언니가 아기장에서 포대기를 들고 왔는데,
사내아기 업는다고 그랬는지 하늘색 꽃무늬가 있는 포대기였는데
넓이는 보통 포대기보다 반 밖에 안되었다.
“엉,요즘에 배낭같이 생긴거 많이 쓰던데 그거 없어? 그럼 애기도 편하고 엄마도 편하쟎아.”
“어..있는데 준원이는 그거 싫어하더라..
샅이 조여서 그런지 그 안에 넣어서 맬라치면
양다리를 쭉쭉 뻗팅기면서 킹킹거려서 오래 못다녀,
“아이고..쪼끄만게 좋은거 싫은거 표를 다 내고 있네…
.이거 사진 찍어서 증거로 남겨둬.
나중에 준원이 크면 ‘내가 널 업어키웠느니라’ 하면서 팍팍 부담 좀 주라구.”
아기를 들쳐업다 말고 엄마는 도로 준원이를 내려 놓더니만
“아가,가서 반바지로 가져와라.
더운데 또 포대기로 둘러싸면 얘 땀띠 나겠다.”
아,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외출준비였다.
진짜로 아기가 “혹”이란 표현에 100 프로 동감했다.
다시 긴바지를 벗겨내고 짧은 반바지로 갈아입힌 다음에
엄마는 준원이를 들쳐 업었다.
그런데 포대기 끈을 아기 엉덩이 밑으로 엮어 돌려서 가슴 아래서 묶는게 아니라
한쪽은 엉덩이 아래로 돌리고 다른 쪽은 어깨쪽으로 사선으로 돌려서 가슴 아래서 잡아맸다.
“이래야 오래 걸어도 애기가 안 미끌어지고 좋지…요즘 애기 엄마들 보니까 다 이러더라..”
참 준원이는 복도 많지,
할머니가 준원이 샅이 아플까봐 배낭 대신 포대기로 업고 다니고
혹시라도 엉덩이가 밑으로 빠질까봐 길거리 다니면서 젊은 애기엄마들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도 꼬박꼬박 봐두었다가 이렇게 요령껏 보살펴 주니..
“얘가 나중에 커서 엄마한테 고마운 줄 알아야 하는데…”
“아이구 손주새끼 이쁘니까 업고 다니는거지,어디 나중에 보답 받을려고 그러는거냐?”
이휴~ 하기야 내리사랑이라고 내 전성기도 이제 다 갔네 싶었다.
금남시장 쪽으로 내려가면 xxx 백화점에서 고객을 위한 셔틀버스가 온다.
시간 맞춰서 버스를 타고는 강남쪽으로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준원이는 엄마 등에 매달려서 그새 잠이 들어있었고,
엄마는 좌석에 편하게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한쪽 엉덩이만 디밀고는
꾸부정하게 통로 쪽으로 몸이 많이 쏠려 있었다.
“엄마 좀 이쪽으로 기대”
“아이고 애를 업고 어떻게 기대니?
나도 등이 자꾸 굽는지 이렇게 약간 구부리고 있어야 더 편해”
거짓말 인 줄 뻔히 아는데도 엄마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잘도 둘러댄다.
“엄마 요즘엔 정말 세상 좋아졌다..
아기배낭에 반포대기에..
나 애기때 사진보면 할머니가 나 업고 있는데
내 애기담요로 싸고 기저귀로 둘러서 묶었던데…
아 참,그 주황색 돼지담요 어쨌어?”
내가 초등학교 다닐적만 해도 내 애기적 담요를 가지고 있던 기억이 있다.
앞면은 주황색이고 뒷면은 크림색인데
돼지인지 동물 그림이 주황색 바탕엔 크림색으로,
크림색 바탕엔 주황색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앞뒤 구분이 없이 똑 같은 동물그림인데도
난 주황색 쪽이 앞면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 주황색 담요는 낡아서 좀 하늘하늘 했지만 그래도 아직 따뜻했고,
설날이나 추석때 작은아버지들이 다 모이면 그 담요를 펴놓고 화투를 치시곤 했다.
화투패가 짝짝 잘 들러붙는 최고급 담요라고 하셔서
엄마는 안 버리고 보관해두었고,
그 후에 하얀 푸들 새끼강아지를 들여왔을 때 내 주황색 돼지이불은 푸들 강아지,
방울이의 침대가 되었었다.
“그게 어디 돼지였니? 곰돌이지..”
“잉? 그게 곰돌이였어?
사실 돼지같아 보이지도 않았지만 절대로 곰돌이 일거라고는 상상 안해봤었는데..
그렇게 싸구려 담요를 사주었으니 디자인이 그렇게 돼지도 아닌 것이 곰돌이도 아닌 것이 그랬지..
어쨌거나 그게 곰돌이였다니,새롭네”
“얘좀 봐,그게 왜 싸구려야???…그게 그래뵈도 딸이라고
아버지가 일부러 시장 나가셔서 딸내미 색깔로 주황색으로 사오신건데…
그거 아니었음 넌 오빠들 덮던거 시퍼런거 덮었을텐데.”
하여간 세상은 좋아져서 내 애기적 하곤 많이 달라졌다.
사진 속의 우리 할머니는 날 등에 업고
주황색 돼지곰돌이 담요로 싸매서 내 기저귀로 쳐매어 묶었는데
매듭을 묶고도 기저귀가 길어서 발치께로 늘어져 있다,꼭 한복의 고름처럼.
난 얼굴이 솥뚜껑 만큼이나 넓적하고
머리숱은 새까맣게 많아서는 하늘을 향해 삐죽 솟아있고
한 손엔 할머니의 은비녀를 빼서 움켜쥐고 있다.
모두 흑백사진 속의 바랜 오래된,
정말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지만,
흑백사진 인데도 주황색 담요는 조금 더 어둡고,
흰 기저귀는 너무나 하얗고,내머리는 정말 새까맣다.
할머니가 가끔씩 내 아기적 얘기를 해주셨는데,
쳐매업으면 얼마나 무거운지 허리가 빠지는 것 같은데다가
내가 쪽진 머리에서 은비녀를 빼서 얼마나 자근자근 씹어댔던지
은비녀가 아주 못쓰게 되버렸다는 얘기등,
업고있으면 지난가던 사람들이 모두들 “어~ 장군감이다”해대고,
할머니가 듣기 싫어서 “양념 손녀딸이예요”하면 새로 하나 더 낳으라고 해서
속을 뒤집어 놓곤 했다는 얘기들…
“그럼 할머닌 엄청 챙피했겠네,나 업고 나가는게?”
“우리 똥강아지가 얼마나 이쁜데,
어렸을 적에 못나야지 삼신 할미가 더 잘 보살펴 주는 법이여,
지금은 우리 똥강아지가 이렇게 이쁘기만 한데..”
아이구 쪼글쪼글 우리 이차분할머니,
바싹 마른 손등을 손가락으로 집어 올려서
지방기 없은 피부가 한참동안 그렇게 늘어나 있으면 담벼락이라고 하고,
잘 땐 할머니 앞섶으로 손을 넣어서 쪼글거리는 젖을 만지면서 잠들었는데..
내가 이젠 세상에 안계신 우리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왜 꿈에 안나오냐고 꼬부랑 할망구라고 몹쓸소리 하면서
이렇게 사무쳐 보고싶어 하듯이 준원이도 나중에
우리엄마를 할머니라고 귀이 여기고 대접해줄까?
안그러면 죽음이지…
난 잠들어있는 준원이에게 마음속으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잘해라~ 너 우리엄마한테
꼬부랑 할머니 어쩌구 하면 너의 까까대머리 사진을 전단지로 만들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다 뿌려버릴거니까…”
어느 덧 백화점 후문에 도착했다.
우린 여성복 파는 매장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언니도 마음에 드는 옷을 이것저것 입어보더니 다시 울상이 되었다.
“어머니,한 칫수 더 큰게 맞네요..저 살이 너무 많이 쪘나봐요.”
“얘,뭐가 살이 쪘다 그러니..애 어멈이 그럼 몸이 좀 있어야지..
나이 들어서 너무 빼짝 마르면 그것도 복 없어 뵌다 얘.”
고르고 고르다가 언니가 맘을 정했는지 수수한 색깔로 한벌 골랐다.
매장의 직원이 “입고 가실거면 가격표를 떼어 드릴까요?” 언니에게 물었다.
“아녜요.. 안 입고 갈거니까 그냥 싸주세요.”
에잉,이게 뭐야,기껏 갈아입고 동창모임 간다고 핸드백까지 폼나는걸 들고 와놓구선
설마 저 임신복을 입고 갈려구?
언니가 새옷이 든 쇼핑백을 받아들자 마자 엄마 등을 떠밀어서 나오더니만,
”어머니,저 오늘 이옷 한번 입구요 살빼서 옛날 사이즈로 살거예요” 그랬다.
“아니,그래도 그렇지 어차피 오늘 동창 모임 갈 때 입을거면 아까 입지 왜…”
“헤헤헤 매장 아가씨가 가격표 떼어준다 그러쟎아요.
한번도 안입은 척 하고 맘에 안들어서 바꾸는 척 할려구요…”
역시 결혼해서 살림하고 아기도 생기니까 언니도 아줌마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다.
화장실에서 언니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엄마는 그새 묵직해진 준원이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그리고는 다같이 꼭대기 층의 식당가로 올라가서 약속장소로 갔다.
“언니,동창모임에 시어머니나 시누이 데리고 나온 친구 있었어?”
“아니,없었던 것 같아.”
“우리가 이렇게 우루루 몰려가면 다들 불편하지 않을까?”
우린 어느새 언니의 약속장소 앞에 와있었고
다같이 들어갈지 언니만 준원이를 안고 들어가서 보여주고는 다시 나올지를 얘기 하는데
,”어머나..안녕하세요?” 평소 안면이 있던 언니 친구가 아는 척을 했다.
“어머니도 나오셨어요? 같이 들어가서 식사하세요”
“아녜요..우린 볼일도 있고..얘,니가 안고 들어가거라…
우린 좀 둘러보고 조금있다 와볼께.”
엄마가 포대기를 풀어서 포대기 째 언니한테 안겨주고
아기 젖병이 들어있는 가방은 언니 친구에게 부탁해서 안으로 들어다 달라고 부탁하고는
내손을 잡고는 도망치듯이 그 곳을 빠져나왔다.
“엄마, 죄졌어? 같이 밥 먹으면 되지..왜 도망 오듯이 그래?”
“아이고 얘..젊은 사람들이 모이면 시어머니 흉도 보고 그래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러는데,
내가 그 자리가 어디라고 눈치없이 껴서 내가 시어미 노릇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낼까….
너 옷이나 보러가자.”
난 엄마가 ‘시어머니’같지 않아서 너무 좋지만 가끔은 짜증 스러울때도 있다.
이건 아래 위도 없는 것 같고,시어머니가 가끔씩 시어머니 노릇을 해야
예방차원에서 좋을텐데 말이다.
하긴 우리 언닌 착해서 흠 잡을데도 없지만
문제는 엄마가 새언니를 너무 배려 해줘서
언니 친구들 앞에서도 설설 기는게 문제인거였다.
난 괜한 심통을 내다가 새옷 한 벌 생기고는 마냥 신나기만 했다.
“얘,애기 소리 안들리니?”
“엄만..엄마가 무슨 소머즈라고 꼭대기 층에 있는 준원이 소리가 어떻게 여기서 들려?”
“아이고 자꾸 불안하다 얘…
얘가 처음 혼자서 바깥 나들이에 준원이를 데리고 나와서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또 걱정이 늘어져서 자꾸만 식당가로 올라가서 좀 들여다보고 오라고 성화를 했다.
“우리가 무슨 스파이야? 몰래 들여다 보게?
들어가서 애기 걱정되서 왔다 그러면 되쟎어.”
엄마는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계속 준원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엄마,점심을 아직 안먹어서 배고프니까 이명이 들리는거야.
내가 음감 좋고 소리에 예민한데,내 귀엔 암것도 안들려..”
막상 언니가 친구들과 점심식사하는 식당에 들어서니 엄마 말이 맞았다.
애기가 있다고 테이블이 아닌 온돌방에다 자리를 잡은 모양인데
,언니는 새옷을 입고 조금 불편한 상태에다 무릎도 저리고,
준원이는 준원이대로 모르는 얼굴들이 많으니까 낮가림을 해서 낑낑거리고
언니 친구들은 달래느라고 한마디씩 하느라고 더 어수선하고..
우리가 들어서는걸 보자 언니가 반색한건 물론이고,
준원이도 특유의 울음전의 입술 삐죽거리기를 하더니만 “와앙~” 하고 울어제꼈다.
“아이구 내 새끼” 엄마가 달려들어가 얼른 애기를 안아들자
준원이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엄마 얼굴에 막 부비면서
헝헝헝 서럽게 울어댔다.
“얘,준원이 때문에 밥도 못먹었지..내가 볼 테니까 너 어서 밥부터 먹어라.”
언니는 고맙고 죄송해서 어쩔줄을 모르고,
언니 친구들은 “너 시집 잘갔다 얘”하면서 또 어수선했다.
역시 여자들이 모이면 항상 시끌벅적 하다니깐.
준원이를 달랑 안고 나가면 언니가 �아 나올 것 같고,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데 앉아있으면 언니가 식사를 제대로 못할 것 같아서
우리는 좀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주문하고 주방에 부탁해서 보리차를 얻어서
준원이에게 우유를 먹였다.
준원이는 우느라고 애를 써서 그런지
실내가 시원했는데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했다.
한 살도 안된 것이 할머니나 고모는 만만한 상대라는걸 아는지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악동으로 돌아가서 숟가락을 잡아서 내동댕이 치고
한 순간이라도 눈을 떼면 저지레를 해서 도저히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얼른 식사를 하고는 준원이를 넘겨받고 엄마는 나중에 식사를 했다.
완벽한 가사분담이란 이런 것일까?
“아이구 원..밥을 어디로 먹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얘.”
우리가 식사를 끝낼 때쯤 언니도 먼저 일어서 나오는 눈치였다.
“얘,넌 더 놀다 오너라,우리가 준원이랑 먼저 들어갈꼐.”
“아녜요 어머니…저도 빨리 집에 가서 편한 고무줄 바지로 갈아 입고 싶어요..
어머니,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구…준원이 이리 주세요,제가 업을께요”
“아이구,무릎 아프다고 하면서 무슨 애를 업어,
더군다나 그렇게 차려입고 포대기 두르면 폼 안난다.”
둘이서 서로 준원이를 업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엄마의
“얘,빨리 몸조리하고 둘째 낳아야지”한 마디에 언니는 완패 당했다.
식대를 계산하려고 하니까 벌써 지불이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 저희들이 냈어요.
친구들도 어머니가 손주 업고 여기까지 나오셨다고 너무 보기좋고 부럽다구요
저보고 시집 잘 갔다고 그러면서..식사대접 하고싶다구요.
같이 식사하자고 하면 어머니가 또 도망가실까봐 일부러 아무 말씀 안드렸어요.”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다,둘이서 참 죽이 잘 맞는다.
“얘,저리 가서 택시 타고 가자.”
“우헤헤 잘됐다..난 비데오 가게 앞에서 잠깐 세워줘.”
“아유,어머니 저 때문이라면 괜챦아요 잘 걸어요.
그냥 셔틀버스 타고 가다가 금남시장에서 장 봐가지고 들어가요.”
“괜챦겠니?”
“예…그대신 금남시장 부턴 제가 업을께요.”
둘이서 너무 하는거 아냐,딸은 옆에 두고 둘이서 너무 엄마랑 딸같이 대화를 하고있었다.
“알았어,내가 업을께…
왜그렇게 돌려서들 말해,그냥 나보고 업으라고 하지.”좀 성질을 부려 보았다.
“아이구,등짝이 넓어야 아기가 편하지,넌 등이 좁아서 애가 잘 안매달려 있을려구 할걸?”
“알았어,그럼 언니는 먼저 집에 들어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엄마랑 난 장봐서 내가 들고갈께”
난 ‘내가’에 힘을 주면서 나도 뭔가 할거라는 뜻을 비쳤다.
준원인 여전히 엄마 등에 매달려서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우리를 쳐다보다 하더니,
갑자기 엄마 머리카락을 획 잡아채어서 엄마 머리가 뒤쪽으로 휘청했다.
“이놈시키가~~”
내가 당장 목소리가 올라가면서 무서운 얼굴로 준원일 쳐다봤다.
멀뚱멀뚱하는 것이 난 제 상대가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너,할머니 머리를 그러면 어떻게 해? 한강에다가 칵 버릴까?”
내가 너무 무서운 소리를 했는지 셔틀 버스에 탄 사람들이 힐끔거리면서 쳐다보자
엄마는 조용히 하라는 신호로 날 한번 쥐어 박고는 포대기를 고쳐맸다.
“얘,준원이 손을 밖으로 못빼게 포대기 안으로 좀 쑥 넣어봐.”
오호 넌 이제 죄수다,꼼짝말고 차렷자세로 매달려 있어봐라.
난 신이 나서 준원이 손을 붙잡아서 꼼짝 못하게 포대기 안으로 밀어넣고는
끈을 바짝 당겨서 엄마 앞으로 돌려주었다.
“임마 낑낑거리지 말고 있어..그러게 왜 그랬어? �치때치”
내가 내손을 때리는 시늉을 하는데도 준원이는 또 울려고 입술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 없이 금남시장에 도착해서..
언니보고 아무리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해도
언니는 계속 우리를 뒤따라 오면서 행여라도 엄마가 뭐라도 살라치면
봉지를 뺏아드는 것이었다.
“언니,그건 내 몫이거덩? 나도 착한 일좀 하고 생색좀 내고 살자 쫌~”
시장 아줌마들이 다들 아는체를 했다.
”아이구 사모님네 오랜만에 나들이 하셨나보네..애기 큰것좀 봐.”
“어디 어디? 세상에나..뽀야니 이쁘네….사모님 닮았다”
그렇게 이쁘면 데려다 하루만 키워보세요 소리가 곧 나올거 같았지만
엄마한테 쥐어박히기 싫어서 꾹 참았다.
언니는 무리해서인지 조금 절룩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얘,제발 좀 들어가서 쉬어라..
니가 그러고 걸으면 내가 시에미 노릇한다고 나쁜소리 난다니깐…
아이구 말 안듣는건 누구한테 배워가지고..”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내가 동네 북이다,내가 유모고 내가 장바구니 드는 봉다리처녀고..쫑알거렸다.
언니가 배시시 웃더니 엄마한테 팔짱을 끼면서
“어머니 너무 감사해요.새옷 사주셔서 너무 감사하구요
준원이 업고 같이 나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구요
,제가 이렇게 사랑받고 사는구나 싶도록 잘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아가씨도…고마워”
칫,저렇게 착해 빠졌으니까 애한테도 맥을 못추고 어쩔줄을 모르지.
“몰라! 언니 이따 층계 올라갈 때 그 통굽 신발 벗고 올라가.
또 무릎 아프다고 그러지말구.”
언니가 나를 쳐다보면서 그저 배시시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