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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손자에게 나의 뿌리알려주기

사려다 만 빨간벽돌집 의 추억

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 36.

축대집에서의 생활도 1년여..

이웃들과도 정이 깊어갈 무렵
어린 삼 남매의 뒤치다꺼리와 시아버님의 호된
시집살이에 점점 지쳐가는
내가 애틋해 보였는지
어느 날 남편 요한 씨가
당신이 이 높은 언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걸 보니
얼마나 힘들겠느냐면서
평지에 살만한 집을 한번 알아보라고
시아버님이 아닌 나에게
넌지시 일러주었다.

나는 나이도 아직 어려
28 살 짜리가 무얼 알아서 집을 보러 다니겠냐고 두려워했지만 부동산을 통해 여기저기 집을 구경하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집 보는 지혜도 터득할 수 있으니 한번 용기를 내어 보라고 부추겼다.

알았다고는 했지만 평지로 내려가자면 우리 집을 팔고 돈을 더 보태야 했기에 집을 산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그때는 파이렉스라는 그릇이 유행이라 동네 아줌마들이 계를 들어서 그릇을 장만했었는데
같이 계를 하던 분 중에  남편이 세무서에 다닌다는 부잣집 사모님이 집을 판다고 부동산에 내어 놓았단 이야기를 하기에
집을 구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국민은행 옆골목으로 들어가면
두 번째 골목 두 번째 집이었는데
남편이 동업하고 있던 한의원 바로 앞골목이었다
그 당시 380 만환에 내놓은 집은 동네의 브록크 집과는 달리
외벽을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집이었는데 대문을 열면  
방 세 칸 정도의 시멘트로 바른 마당이 있어 꽃을 키우는
화분들이 즐비하고  
현관을 들어서면 방이 3개  응접실엔 소파와
티 테이블이 놓인 마루며
실내에 화장실까지 있어
내가 보기에 그 당시 보았던
집 중에  최고의 현대식 양옥 이었다.
그 집 사모님은 계 모임 때마다
금 패물로 휘감은
금호동에서는 보기 드문
귀부인 타입이라
살고 있는 집도 엄청 값지고 훌륭해 보여 이런 집으로
이사를 온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내 평생 소원하던
빨간 벽돌집에도 살아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을 보고 나오다가  그 집과 이웃하며 살고 있는 계 오야
난희 엄마와 마주쳤다.

난희엄마는 코너집에 살면서 가게를 열고 있는
나보다 열 살쯤 많은 분이었다.
남편은 돌아가시고 딸 셋을
데리고 여부하게 사시는
아주 지혜롭고
똑똑한 분이어서
돈 계도 하고 그릇계 등등
많은 계원들을 거느리는
신망이 두텁고 친절한
분이었다.

어딜 다녀오는 길이냐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난희 엄마에게
집을 보고 오는 길이라는
내 대답에 난희엄마는
웃으면서 보고 온 집이
마음에 들었냐고 물었다.

바로 이웃하고 계시는
우리랑 같이 그릇계 하시는
세무서 다니신다는
사모님댁 집을 봤는데
마당은 좀 좁지만 집 내부가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어
살기가 편할 것 같고 거기다
빨간 벽돌집이라서 더 마음에 든다고 하자
아이구 그랬구나 하시며
나를 잠깐 들어오라고 하시면서
애기엄마가 아직 집을 볼 줄 모르는구나~ 하면서
집은 겉을 보는 게 아니고
장래를 보는 거라는
뜻도 모를 말씀을 하시기에 어리둥절 이해가 안되는
내 표정을 보시더니

애기엄마
그 집 실내에 들어가니까
예쁘게 꾸며 놓아서
마음에 쏙 들지? 하기에
네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정말  그 집을 살 수 있다면 평지에다 빨간 벽돌집에다
실내도 살기 편하고..
꼭 이 집을 값이 맞아서 살 수 있으면 좋게 다고 했더니..

당신이 나를 볼 때 젊은 엄마가 나이차이 많은 남편에
호랑이 시부모님 모시고
알뜰살뜰 하게 사는 게
참 마음이 간다면서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아 내게 알려주고 싶다면서..

그 집은 겉만 빨간 벽돌을 쌓아 올렸지만 벽돌 한 켜 속은 옛날 옛적 브록크로 쌓아 올린
오래된 집이고..
지금 애기엄마네 8 식구인데
방 3개로 어떻게 살 거냐고..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
한방을 써도 되지만
아이들이 조금 크면
아들방 딸방 따로 써야 하는데 10년 아니고 5 년 앞을 내다보더라도  적어도
방 4개는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냐고..

그러고 보니
7살  5살 두 아들이 5 년 후면 12살인데 그때는 딸이랑
방을 따로 줘야 하는 건가?
한방을 쓰면 안 되는 건가?
그때는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어
5 년 후 10년 후의 우리의 가족관계를 이야기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마냥 방금 보고 온
전매청집이 뇌리에서 맴돌면서 각인될 만큼 그 집이
매력적으로 보였었다.

난희엄마는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그 나이에
집을 볼 줄 모르는 게
당연하다며 집을 사려면
10년 앞을 내다보고
사야 한다며
그 집에 예쁘게 꾸며 놓은건 이사를 갈때 다 가져가는 것이니
눈 앞의 것에 현혹되지 말고
집 뼈대를 봐야 하는거라면서
백년대계 란 말을 명심하면
실패가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면서
난희엄마가 건내주는 말의 뜻을  곱씹고 되새겼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집을 보러 다니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순진
순수 했던 스물여덟 시절..
난희엄마의
그런 지혜로운 조언에도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아
그 빨간벽돌집 현대양옥이
왜 그리 눈에 밟히던지..

백년대계가 진담이다 싶어
체념하고 도리질을 할수록
더욱 선명히 떠 오르는
빨간  벽돌집
뇌리에서지우느라
한동안 마음 고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