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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손자에게 나의 뿌리알려주기

축대집에 숨겨진 참담한 현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 33.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 어른 아이들 할 것 없이
기뻐한 것이 언제나 마당 한귀퉁 이에 지독한 냄새를 피우고
서있던 재래식 화장실을 벗어나 물만 내리면 뽀얀 변기바닥에 깨끗한 물이 고인 수세식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시아버님 께서는
아침저녁 두레상 앞에 모여
식사할 때마다
니들이 누구 때문에 지금 이 호강을 하고 있는 줄 아느냐고.. 할애비 잘 둔 덕에 좋은 집에
사는 거라고..
내가 발품을 얼마나 팔아가며 찾아낸 이 집 때문에 니들이 호강하고 있다고..
마치 당신이 당신 돈으로
집을 사 주신거나 진배없이
앉으나 서나
누구 덕인지 아느냐고...

정말 아침저녁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시아버님의  호호 탕탕 큰소리에는 남편 요한 씨도 말없이 고개를 주억 거리며 듣기만 했다.

그렇게 한 달 쯤 지난
아침 식사 무렵
대문이 부서져라 무섭게 울리는 쿵쾅거리는 소음과 함께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설마 우리 집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러다 연수네 집 대문 부서지겠네.. 라며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웅성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오자 바깥에
무슨 일 생겼나 보다 하며 마루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자 마주친 눈길..

처음 보는 초로의 부부가 이북사투리로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당장 이 눔의 집구석  
주인 좀 나와보라고..

영문을 몰라 대문 빚장을 열며
아니.. 대체 누구시냐고?
누구신데 아침부터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냐니까.
소란??  지금 당신 같으면
소란 안 피게 생겼냐고..
도대체 누구신데 무슨 일로
이렇게 동네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치시냐고 물었더니
나는 당신네 축대아랫집에
사는 사람이다
당신네 똥물 우리 집으로 다 흘려보내고 뭐 소란 피운다고?? 아니 우리가 무슨 똥물을 흘려보내다고 이행패냐고 했더니 당장 자기 집에 내려가서 확인해 보잔다.

밥 먹다가 수저를 움켜쥔 채
두 부부를 따라 아랫집으로 내려갔더니 뒤꼍을 가리키며 따라오란다.
가서 보니 축대밑에는 옛날 방공호처럼 생긴 조그만 땅굴이 있었고 굴속에는 무나 배추등을 보관해 놓고 쓰는 듯했고 바닥에는 좀 냄새가 나는 물이 질척할 정도로 깔려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이게 우리 집과 무슨 문제냐 굴속에서 나오는 물을 왜 우리 보고 화내느냐고 했더니 이게 우리 집 정화조에서 나오는 똥물이라는 거다.
이게 우리집 정화조에서 나오는 건지 어찌 아느냐고 했을 때
그 집 아저씨가 말했다.

윗집을 집장사들이 싸게 사서
고칠 때부터 알아봤다고..
우리 집 마당에 시멘트로 3단 정화조를 묻을 때부터 잘못하면 아랫집으로 물벼락 맞게 생겼으니 정화조 묻으면 안 된다고 결사반대 했었는데 기어이 눈가림 날림공사로 우리가 이런 피해를 입게 되었으니 당장 정화조를 파내라고..

속수무책인 채로 당 하고만 있었는데 아랫집의 형편도 한여름에 달려드는 파리떼며 소란에 더해 행패를 부리고도
남을 만하였다.

우리가 이사를 하고 한 달이 넘어가자 정화조에 모여든 물이 제대로 된 방수처리가 안되서인지 조금씩 새어나가 아랫집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라 우리가 고쳐 피해를 없애드려야 했기에
시아버지께서 부동산에 찾아가서 집장사 부자와 부동산 중개사와 3자 대면으로 만나 이야기했더니
계약상 하자보수에 관한 내역이 없고 이사한후 한달이상 살면서 발생한 일인데다 제대로 하자에 대한  확인도 안 하고 성급하게 계약 한 잘못이 우리에게 있어 어떤 변상이나 수리도 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듣고 오셨다.

그 후 새로운 집수리처를 알아내서
시멘트 정화조를 철거하고 새 정화조를 묻을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집 잘 사줘서 호강에 뻗혔다는 시아버님의 공치사가
쑥 들어간 대신  새벽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을 골라가며
망치로 철대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두드려대던 아랫집 부부가 저승사자 보다 더 무섭고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다.

그 어렵고 힘든 14살 차이의 시남편살이도 힘겨웠는데
시아버지의 시집살이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주눅 들어 살면서.. 집이라는 걸 살 때는 숨겨진 것도 찾아봐야 하는 거구나. 나는 걸 깨닫게 되었고
섣부르게 계약한 집의 하자 때문에 당하는 수모가 죄 없는 며느리가
독박을 쓰는 게 미안하셨는지 호령소리가 수그러 들기 시작했고
나도 눈치보지 않고 맨 정신으로
숨도 쉬고 큰기침도 할 수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바로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 듯..




그 일이 있고 난 후 의심 많은 나는
미국땅에서 아이들 삼 남매의  집을 마련할 때도 같은 집을 평균  다섯 번 이상 돌아보았고 신축싱글 하우스도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며 모델하우스를
열 번 이삼 방문해서 하자보수에 관한 법률에 가장 많은 관심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