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 35.
73년 2월..
봄이 오기엔 아직 일렀고
한겨울은 지나간 것 같았다.
평생처음 장만한 집이 축대 위에 덩그러니 서 있으니 바람도 추위도 바닥 보다 더 세차게 느껴졌다.
지금의 금호동 4가의 대도빌딩 5층 옥상 주차장에서도 허덕이며 3~4층 정도 더 올라간
지금의 대우 아파트 210동 자리에 옛날 우리가 처음으로 마련한 축대집이 있었다.
바닥에서 8 층높이의 언덕을 매일 오르내려야 함이 여간한 고통이 아니어서 큰아이 유치원을 매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는 일도 버거운데 시장을 보면 그 무거운 시장보따리를 들고 허덕거리며 오르내리면서 이 바닥에 저리 많은 집을 두고 아버님은 하필이면 산꼭대기에 집을 사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2월 중순쯤..
경로당에서 할아버지들이 폐결핵에 직빵으로 잘 낫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님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비법이라며 끓인 물에 무언가 타서 먹으면 좋다니까 요한 씨가 제가 한의사인데 노인들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그대로 따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파스 나이드라짓이 명약이니 노인들 말 듣고 엉뚱한 짓 하시다가는 오히려 해를 입으실 수가 있으니 그런 것 따라 하지 마시라는 요한 씨의 부탁에..
아버님은 알았으니 그만하라고
소리를 냅다 지르셨다.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튿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자
아빠한테 인사를 하려던 둘째가
아버님께서 방문밖에 내어 놓은 끓인 물그릇에 오른발이 빠져버렸다.
펄펄 끓는 물에 발을 덴 다섯 살짜리 어린 손자가 아프다고 펄펄 뛰는데 당신이 약 타먹을 물 쏱았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리가 났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다가 울음소리에 놀라 달려가니
둘째가 뜨겁다고 새파랗게 질려 팔팔 뛰고 있는데 애새끼가 까불다가 끓인 물을 밟아서 저리 난리 친다고..
그만한 일에 안 죽으니
왜 이리 방정 떨고 시끄럽게 구냐고 오히려 둘째의 등짝을 때리며 야단을 치고 있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됐나 봤더니 내복이 발목에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아 너무도 놀란 나머지 눈앞이 캄캄하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 큰일 났다 싶어 병원 가자고
둘째를 둘러업으니 내 등줄기를 잡아채며 돈이 썩어나느냐고 된장 바르면 낫는데 무슨 놈의 병원이냐고 소리소리 지르셨지만 그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두말도 않고 내리막길을 한달음에 강석철 소아과로 미친 듯이 내달았다.
아프다고 펄펄 뛰는 둘째..
선생님이 내복이 상처에 들러붙어 다 아물더라도 상처가 클 거라고 하시며 가위로 옷을 잘라 떼어내는데 살점이 묻어나고 복숭아뼈가 그대로 노출이 될 만큼 심한 화상을 입은 게 보였다.
끓는 물을 밟았을 때 바로 내복만 벗겼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치료가 오래갈 것 같다며 이런 화상을 입고도 다섯 살짜리가 너무도 잘 참아줘서 새 살이 날 때까지 오래도록 고생할 것 같다고 선생님께서 위로해 주셨다.
급한 마음에 병원으로 내달을 때는 몰랐지만 치료를 다 하고 나니
치료비를 안 가져온 게 생각났고 다음날 치료받으러 올 때 드리겠다는 말씀에 얼마나 급했으면 그렇겠냐고 걱정 말고 매일 치료하러 오라고 하셨다.
발바닥에서 종아리까지 붕대로 감은 둘째를 업고 기진맥진 언덕을 올라 집에 도착하니 시애비말 안 듣고 기어코 병원 가더니
호다이 (붕대) 칭칭 감은 꼴좋다.
된장 한종 지면 끝내는 것을 시애비말을 개 방귀로 여기는 꼴이 참 가관이다..라고 하셨다.
차라리 끓는 물 단속 않고 방치했다 화상 입은 손자한테 미안하면 경로당이나 가실 일이지..
하루 종일 된장타령만 하시는 게
너무나 속 상한 나머지 며칠 동안 무슨 푸념을 늘어놓으셔도
못 들은 척 아예 대꾸도 안 했을 정도로 속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68년생 둘째..
58 살 의 둘째 아들은
아직도 오른쪽 복숭아뼈는 피부가 쭈굴거리고 종아리까지 회상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호랑이 시아버님..
요즘 같았으면 이런 시부모 모시고는 못 산다고..
아니 안 살겠다고 보따리
열 번 백번 싸고도 남았겠지만
그때 그 스물일곱 살짜리 며느리는 가슴속으로 피눈물 흘려가며
친정아버지께서 이르신 말씀..
삼종지도와 일부종사 만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기에 무던히도
참고 인내하며 살아왔기에 오늘 이토록 분에 넘치게 삼 남매의 효도를 누리며 사는 게 아닐까?
50여 년 전의 일이 마치도 어제 일처럼 아직도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는 슬픈 옛 이야기가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진다. .

'사랑하는 손자에게 나의 뿌리알려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설의 고향에 나올듯한 옛 절집. (0) | 2025.03.29 |
---|---|
사려다 만 빨간벽돌집 의 추억 (0) | 2025.03.26 |
대망의 냉장고를 가지게 되다니.. (0) | 2025.03.19 |
축대집에 숨겨진 참담한 현실. (0) | 2025.03.08 |
꿈에 그리던 내집을 드디어 마련했다 (2) | 2025.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