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 18.
지금 생각해도 고맙기 그지없는 문기 어머니는 아직도 생존해 계시기는 할까?
서로 왕래가 없이 지낸지가
50 여년이 지나 소식조차 모르지만 우리가 어렵던 시절
가장 큰 도움을 주셨던 분 이기에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고마움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는
우리에게 친 형제 이상으로
크나큰 도움과 사랑을 주셨던 이웃사촌 문기어머님..
자그마한 키에 쌍꺼풀진 눈매
친절하고 다정한 문기엄마는
우리 집에 두 번째로 찾아온 환자였다.
집이 금강양화점공장 옆
깔끔한 양옥에 사시는데
그 당시 사립학교인
리라국민학교에
3남매를 보내는 부잣집
마나님이 셨는데
남편분이 기술자로 몇 년째
월남에 가셔서 많은 돈을 벌어 보내주시고 있었고
집에는 일하는 언니도 있어
하루종일 심심하면 들리는 게
우리 한의원이라
올 때마다 동네 아주머니들
한 사람씩 데리고 와서
진찰을 받게 해 주시고
단골을 만들어 주셨다.
그 시대 남편분 없고
집안 부유한 사모님들은
춤바람 나기 십상 이었지만
인정이 많고 배려심 많은 문기엄마는 시장길과는
반대편인 우리 한의원을
자주 드나들면서
진찰 잘하고 약 잘 짓는 한의원 이라며 수시로 친구와 친척들을 데려다주었고 약을 먹고 병이 나으면 당신일 처럼 기뻐해 주셨다.
더러 가다 당신 집으로
나를 불러
객지에서 애들 데리고
고생한다며
따뜻한 밥상도 차려주시고 반짝반짝 빛나는
부엌살림 솜씨도 자랑하시고
거실 한쪽에 놓인
장식장에 자리한 청자와 백자 항아리와 접시들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
문기 어머니야 말로
스물다섯 어린 새댁의 눈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알뜰살뜰한
살림의 여왕처럼 보였다.
문기 어머니의 눈부신 활약으로
한 사람 두 사람
단골 환자가 생기고 또 그분들의 소개로 환자가 조금씩 늘어나자
요한 씨는 대전에 계시던 부모님을 모셔오기로 생각하고
승희네가 7월 말쯤
윗동네 방 두 칸짜리로 이사를 간다고 하자 그 방에 부모님을 모셔오려고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방 두 개짜리 집을 통째로 우리가 사용하게 된다니
마당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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