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17.
금호동 1388번지 에서의 살림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한의원 간판도 달고 개업 신고도 했지만 금호동이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달동네라는 건 요한 씨는 몰랐던 것일까?
산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을 쳐다보며 저런 집이라도 한채 가지는 게
나의 꿈이자 소망이었다.
달동네 중의 달동네 아래에 한의원을 개업한 10 월
이제나 저제나 환자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간절함과 갈급함.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칠라고?
하면서도 애간장을 녹이던
그때는 돈이 다 떨어져 가니
금방 이사한 낯선 곳에서
외상도 못 얻을 처지라
한 됫박씩 사다 먹는 쌀은
왜 그리 헤프고
아껴 땔 수도 없는 연탄은
냉골을 덮히는 것은
물론이요
석유곤로가 없던 우리에게는
밥을 짓기 위한 유일한 화력이 하나밖에 없는 아궁이 연탄불 이었다.
좁은 주방을 같이 쓰는
승희네 엄마는 설흔살쯤 되는
전라도 분이었는데
남편이 택시운전을 하며
작은 단칸방에 살면서도
자그마한 부엌찬장도 있었고 석유곤로도 있었기에
승희네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택시 기사로 일 하지만
그날그날 나가기만 하면
돈을벌어 더러가다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전기 통닭구이도 들고오는 승희아빠가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사 오면서 밥그릇 몇 개와 접시 몇 개 수저 몇 벌 들고 온
우리는 승희네 찬장을 비껴
사과궤짝을 옆으로 뉘어
헝겊을 늘여트려
그릇들을 넣고 살았다.
그 어렵고 어려운 서울생활 일주일이 지나자
다행스럽게도 첫 환자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래된 감기에 아무래도 한약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며..
감기약 이틀분
첩약 4첩의 약값이 1600 원
지금까지 그때 첫 환자의 약값은 기억하는 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였을까?
1첩에 400 원의 약값이 우리 식구들의 생명줄이었다.
그때는 시장에서 산다는 것이
겨우 고춧가루 참기름
아마도 콩나물이나 시금치
같은 게 아니었을까?
남편은 언제올지 모르는
환자를 기다려야 하니
어린 두 아들은 오로지
내 몫이라
이사하고 처음으로 시장을 가면서 4살짜리 큰아들 손을 잡고
둘째는 등에 업고 금남시장
이라는곳에 장보기를 나섰는데
시장입구를 들어서니
순댓국을 큰 가마솥에 끓이고
풍채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순대와 머리 고기를 쓱쓱 썰어 담고 한편에는 국말이 순대국을
큰 그릇 가득 담아내는 것을 보니
얼마나 먹고 싶던지
나도몰래 흐르는 군침을
옷 소매로 훔치며
아장거리며 걷는 아들 팔을 잡아채며 안쪽으로 안쪽으로 돌아나가다가 집으로
가는 길을 못 찾아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집과는 반대방향 구종점
거리까지 간 걸 보면 초행길 시장보기에 길을 잃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금천목욕탕을 가려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모른다는 사람이 태반이었는데 겨우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저쪽길로 계속 계속 올라가면 나온다고 가르쳐 줘서 겨우 집을 찾아올 수가 있었다.
파김치가 된 나와
내손에 이끌려 한없이 걸어야 했던 네살짜리 큰아들은 졸면서 걷느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등에 업힌 둘째는 엉덩이까지 내려간 채 고개를 젖히고 자고 있었고..
한쪽 손에는 아들손을 붙잡고
또 한쪽 손에는 시장 바구니가
들려있어 엉덩이까지 내려간 둘째를 치켜 업을수도 없었던
난감하기 짝이 없던 그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이다.
고추기루는 종이를 고깔로 접어
1 고깔에 10원인지 20원인지
아이들 간장에 밥 비벼먹일 참기름은 활명수 병인지 박카스병인지에 담긴 걸 사서 먹었고
1 됫박씩 담은 봉투쌀은
그 후로 시부모님과 합가
할 때까지 계속된 것 같았다.
그 시절 여름이면
골목을 누비는 아이스게끼 장사
겨울이면 찹쌀떡 장사..
그 어느 것도 아이들에게
사 줄 수 없었던 아픔
한 집에 사는 우리 아이들과 달리
동갑 나기인 승희와 사내동생은
아이스게끼 장사가 지나갈 때마다
빨간 물이 든 아이스게끼
입에 물고 맛있게 먹는 걸 쳐다보고만 있던
우리 아들들의 슬픈 눈동자가
아직도 눈앞에 아련하다.
그 어렵고 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누구에게 아쉬운 손 벌리지 않고 사는 오늘의 내가 있겠지만..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이란 말...
그 말보다 더 슬픈 게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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