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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살고있는 델라웨어 이야기

봄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

2024.4.8 일

봄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

화분 안에서 어언 4년째..
北風寒雪 속에서도
봄이면 파릇파릇 연약한 싹을
내미는 부추의 강인한 힘..

집 뒤꼍 산책 길 너머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3월 말까지 집 안에서도
오리털 파카를 벗어 버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건만
밤새 얼어 죽었지 싶은
연약한 부추 들은
하루가 다르게 싱싱하게
자라는 것에
신비스러움이 느껴진다.

저 젓가락 같이 여리고
연약한 풀포기가
세찬 바람에도
얼어 죽지 않다니?

2월 4일 델라웨어에 도착한 이후
매일같이 얼어 죽을 염려에
부추 화분을 살피는 게
일과가 되어 버렸다.

서울의 금호동 시장에서
판매되는 부추보다 더욱 튼실한..
화분 속에서도 잘 자라준 부추는
이곳 마트에서
딱 한 움큼씩 포장해서 판매되는 중국부추와 흡사하게
향기도 좋고 튼실하다..

1$에 20 포기가 안 되는 쪽파도
뿌리 쪽 2센티를 남겨
화분에 심었더니
차가운 봄 날씨에도
예쁘게도 자라줬네..

이곳 델라웨어는 한인 마켓이 없어
김치거리나 한국 식품을 구입하려면
왕복 4~5 시간이 소요되는
필라델피아의 H 마트를 가야 하는데
투쟙을 뛰는 딸은 한인 마켓을 다녀올 엄두를 못 내고 고작 해서 일 년에 두어 번이나 다녀올까?
그것도 내가 딸의 집에 다니러 올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집 가까운 10분 거리에 있는
미국마켓 알디에는
2주일째 쪽파가 보이지 않아
오늘은 큰맘 먹고
화분에서 일천정성으로
고이고이 키운 쪽파를
가위로 잘라 불고기에도 넣어주고..

이제 가는 날 일주일을 앞두고
잘 자란 부추를 잘라
양파 2개를 썰어
새우젓 1 수저에 삼 게 소스와
매실청.. 굵게 빻은 매콤한
고춧가루를 넣어
부추김치를 담았더니 어찌나
아삭하고 감칠맛이 있는지
민서어미 혼자서 6개월은
먹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 내 나이도 있고
자꾸만 건강이 무너지니
언제 또다시 델라웨어를 찾을 수 있을지...
이렇게 정성으로 담은 부추김치로
엄마 손맛을 오래도록 느껴보라고 솜씨를 부려본다..

그리고
부추 농사짓는 분들의
유튜브를 보면
한 곳에서 3~4년이 지난
부추는 뿌리가 뒤엉켜
잘 자라지 않아 분갈이를
해 줘야 한다는 걸 보고
이 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을 대신해서
분갈이까지 해 놓고
가기로 맘을 먹었다.

분갈이를 하려고 화분흙을
파 내려고 해 보니
시멘트보다 더 단단하게
한데 뭉쳐서 요지부동..

할 수 없이 화분을 둘러엎어보니
1말 들이가 넘는 화분
밑바닥까지 뒤 엉킨 뿌리가 한 덩어리로 뭉쳐서
어찌나 단단하고 질긴지
칼로 자르고, 낫으로 쳐내고,
안간힘을 써서
뜯어내기도 하고..

겨우겨우 4~5 포기씩 갈라
밭에다 옮겨 심었는데
무릎이 아픈 나는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엎드려 부추  모종을 심 고나니 쓰러져 죽는 줄 알았다.

가로 세로 1.5  미터
손바닥만 한 밭에
몇 뿌리 안 되는 부추 모종
옮겨 심는 게 이렇게도 힘이 드는데
아지랑이처럼 이랑 긴 밭에
농사짓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존경보다 더한 것을 생각게 한다.

그 연약한 부추 뿌리가 뒤엉켜
사람의 힘으로 허물어 트릴수 없는 단단하고 질긴 강인한 생명력이
바로 생명의 신비 그 자체이다.

언 땅을 뚫고
찬서리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솟아오르는
귀하디 귀한 생명체..

그래서 봄 부추는
사위도 안주는
귀한 채소라고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