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단편
2018.4.15일
일요미사를 다녀와
2주 후로 다가온 이사를 대비
장롱 가득 들어찬 짐 정리를 했다.
아이들 어린 시절 사진들은
여러 번에 걸쳐 본인들에게 보내주었고
가장 귀하게 여기던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20k
우채국 택배 박스로 한가득..
정리를 하다 말고 쭈그리고 앉아
편지들을 펴 보곤 웃음 짓는다.
맞아 내게 이런 시절도 있었네..
이렇게 살뜰하게 엄마 노릇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작은 박스에는 1986년
유학 보낸 첫 해
시카고 멜로즈 500번지부터
이사한 동네마다 따로 모아 둔
아들 딸의 편지와 더불어
내 답장까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편지 저 카드 읽어보노라니
웃음과 함께 눈물이 뺨을 적신다..
스무 살 두 남매의 유학일기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철부지들의 하소연과 투정과
어리광이 가득 들어있었다.
또 다른 박스를 열자..
빨간 끈으로 묶여있는
낯익은 글씨체의 편지들..
심장이 뚝 떨어지는 느낌
맞아..
내가 이토록 소중하게 보관해 놓고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네
나에게 또 다른 아들하나 있었지
이름하여 학사님
그러구러 30여 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신부님이시지
내 자식 삼 남매보다 더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했던..
지치지도 않고 십 년을 하루같이
사랑을 쏟아부었던..
우리 아이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던
참으로 씩씩하고 믿음직스럽고
의젓하고 장했던 그 모습!!!
편지를 열자 가슴이 뭉클해지는
눈물 젖은 편지
글자 한자 한 획까지 외웠던..
그 방울방울 흘린 눈물자국에
글씨마저 흐려진 편지를 받고
몇 날며칠 대성통곡을 했던가?
그 편지가 오늘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다니..
금요일.. 오랜만의 해후에
전보다 훨씬 좋아진 모습
보여주어 고마웠는데..
4시간여 지난 시절 반추하며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나를
편히 지내시라
힘든 일 하지 말라
행복한 여생 보내라
걱정걱정 해주며
30년 전의 내 모습
내 목소리 내 표정 내 눈빛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그 말에
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인연이란
한번 맺으면 끊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잊고 지낸 또 하나의 아들을
찾은 기쁨
지금까지 베풀어준 사랑
평생을 갚아도 모자람이라는 말에
왜 그리 눈물 나던지
내가 정말 그때에는 참으로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고 자랑스럽다.
이렇게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하느님께서 예정해 놓으셨음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백배 천배로
되갚아 주시는 하느님
학사님과 인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 신학대학에 입학하던 첫 해에 만나
대학4년 입대하여
군종병에서
부제 품을 받고 1991년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사제서품을 받으실때 까지
10 여년을 하루같이
내 자식보다 더 한 정성으로 보살폈는데
그 이후 35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제로부터
지극한 배려와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는지
내가 베푼 사랑은 겨자씨에 불과했지만
되돌려 받은 무한한 사랑은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주시는 확실한
보상이며 은총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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