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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행주산성 답사






















행주산성 답사
2021.6.30.

약사로 근무하시는 우리
루시아 반장님.
이 세상에 희생 봉사하려고 태어난 사람아닌가 싶다.

일주일이면 서너번씩 오후근무 끝마치면
금호역 도착이 밤 11시 반이란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나는
3년 동안이나 비어있는 집 지켜달라고
반장님에게 키를 맡겼던 내가
얼마나 몰염치한
짖이었던지 부끄럽기 짝이없다.

그래도 착한이표 루시아 반장님
세실리아 구역장님..
한솥밥 먹다가 이사가면 아쉬워서
어쩌냐고 매일같이 여기저기
밥 사준다며 나오란다.

30일은 루시아 반장님이
능곡에서 근무날 이라며
맛있는 한탄강 민물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고 가까운 행주산성
산책하고 가자고 나오란다.

세실리아님과 옥수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능곡역에 내리니
백년만에 만나는 이산가족처럼
반갑다고 두손 흔들어대는
반장님을 따라 예약해 놓은
매운탕집으로 go go.

내 평생 메기 매운탕 이란걸
처음 먹어본것이고
행주산성 또한
초등학교때 배운 행주산성
70 이넘어 현장을 답사하는
참으로 뜻깊은 날이다.

어린시절 내 기억속의 행주산성은
임진왜난때 권률 도원수를 도와
왜적들을 격파하기 위해 부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랐다는 ..그래서 행주산성 이라고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데
산책나온 동네 젊은 주부의 말에 의하면 살구나무가 많은 곳이라서 고려시대때 부터 사용한 오랜 지명이라고 한다.

"(1) 행주동(幸州洞)
행주동은 고려시대 때부터 사용하고 있는 오래된 지명이다. 원래는 살구나무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고 해서 '살구 행(杏)'자를 써서 '행(杏)주리'라 부르다가 행주대첩 이후 왕이 다녀간 뒤 임금이 행차한 마을이 되면서 그 표기가 '행(幸)'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 예로 행주서원은 '살구 행(杏)'자와 '물가 주(洲)'자를 사용했는데, 이는 '살구나무가 많은 강변마을'이란 뜻을 담고 있다."


서울에 뿌리를 내린지 반세기..

삼국시대에 창건한 역사적인
토성을 찾게 되다니
이 모든 행운은 다방면에
만능 엔터테이먼트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루시아님 덕분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영주를 떠나
서울 금호동으로 이사한지
어언 56년..
이제 내게는 금호동이
금호동 사람들이..
내 고향처럼
내 고향의 친지 친척들처럼
따뜻하고 평화롭고
정겨운 곳이 되어 버렸다.

자고나면 마주치는 이웃들..

어언 50년 지기들이 되어
혼자 지내는 나를 늘 가까이서 지켜봐주며 피를 나눈
형제자매 처럼
따뜻한 손길과 보살핌이있어
내 삶은 언제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수있어 감사하다.

이제 이사날이 다가오니
만나고 뒤 돌아서면 또 그립고 보고프다는 지인들의
이.구.동.성.

제발..
하루가 일년처럼 길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