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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손자에게 나의 뿌리알려주기

나랏님께 하사받은 사방 칠십리 땅

자랑스런 우리 조상님들
영돈영부사 , 판중추부사,
선대조 할아버지들 께서 벼슬에서 물러나시자
대를 이어 충성하며 청렴하게 살아오신 그 공로를 기려
임금님께서 하사하신 사방 칠십리의 전답...

이번에 귀국하여 90세인 언니를 통해 어렸을적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을 이야기를 이어들었다.
우리가문이 어째서 그리 많은 땅을 소유했는지 의문이 단번에 풀리는 이야기였다.

4대 독자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張 得伊 를 여의신 아버지는
어머니마져 보쌈을 당하여 어린 손자의 크는 모습을 애통 절통해하는 조부모님의 슬하에서 외롭게 자라셨다.
각별하신 조부모님의 사랑과 특별한 관심과 배려속에 소년시절 부터 엄청난 재력의 가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오신 아버지
고종황제시절 대 기근이 발생하여 유리걸식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산골짜기 부석면 임곡리에
까지 줄을 이어 내려오자
할아버지께서 하인들을 시켜
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곡간의 쌀을 퍼내 행랑 아주머니들에게 죽을 쑤게해서 나누어 주었는데
삽작밖은 동부여대 고향을 떠나온 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었다고 내 어릴적에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께 들은 기억이 있다.

내가 이렇게 명망높은 가문의 후예라는걸 왜 진즉에 알지 못했을까?

내 어린시절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나는건 뿌리를 중요시 여기시던 아버지께서 윗대부터 내려오는 족보를 이어가야 하기에 문중의 요청을 거절하지못하고
우리집의 방 하나를 내어주고
꽃계에 사시는(장수면 화계리) 우리와 같은 덕 자 항렬을 쓰는
원덕 건덕 이라는 상투틀고 수염기른 종친 두명이 일년넘게 우리집의 수발을 받아오며 족보를 완성한 기억이 있다...

족보가 완성된 기념으로
문중이 모이는 시사때면 제 올리는 제삿상부터 제례용기 일습을 방짜유기로 특별히 주문하여
꽃계종가에 희사하여 큰 칭송을 들었다고 한다.

검은수염 기르고 상투에 망건쓴
무명 바지 저고리에 검정 조끼를 입은 약간 통통한 살집이 있던 흰 얼굴의 원덕이 오라버님
약간 마르면서 얼굴이 노르스름 건조해 보였던 가느다란 눈의 건덕이 오라버님들의 모습이
67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