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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복되십니다.향기로운선한목자

수난 예고와 베드로

200830 연중 22주일 수난예고와 베드로

찬미예수님 

1.교우여러분들의 기도덕분에 개인피정을 마치고 잘돌아왔습니다. 피정중 급작스럽게 폭발하는 코로나와 태풍, 극심한 폭염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수시로 변하는 상황속에서 교우여러분들의 안위가 무척이나 걱정스러웠습니다. 부디 이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 문래동 공동체와 교우들을 잘 지켜주시도록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바리사이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3.성질 급한 베드로가 나섭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그래서는 안된닫고 펄쩍 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십니다. 

4.베드로를 보면, 당연히 펄쩍 뛰었을 것 같은 그 모습이 연상되어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분이라고 고백하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부터 말없는 칭찬을 받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위권까지 받은 베드로였습니다.

5.베드로는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누구이신데, 그 엄청난 말씀, 생명수와 같은 말씀들, 그 엄청난 기적들, 사람들 마음속을 파고드는 예수님만의 능력들을 보면 그런 끔찍한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권위와 위엄은 바리사이들을 훨씬 더 초월하고 있었기에 그런 그분이 그들의 손에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역시 눈에 보이는 하느님 나라,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이 구체적으로 사람들안에 실현되는 눈에 보이는 나라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역시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단순하고, 우직한 열정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신중하기보다는 그저 몸이 먼저 앞서는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6.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돌아보십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살피신 것일까? 나머지 제자들은 그저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이 상황을 제자들은 적응하기조차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루는 하늘을 다 얻은 듯 천지가 밝아지고, 또 하루는 그 하늘이 무서지는 듯한 어둠이 가득하고, 도대체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적당히 바리사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으련만 예수님께서는 갈수록 태산이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예수님의 말투는 날카로워지셨고, 바리사이들의 마음을 예리한 칼날로 긁는 듯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점차 걱정되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친절하시고, 다정다감하시고, 온갖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보살피시더니 가진 사람, 힘있는 사람들, 멋진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살피시지 않고, 온갖 반감과 불신이 생기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처사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7.예수님의 시선을 느낀 제자들은 그저 예수님과 베드로를 번갈아 가며 쳐다 볼 뿐입니다. 이 묘한 긴장의 분위기는 무엇일까? 제자들은 적잖은 불안감으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8.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시며, 느닷없이 폭탄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첫마디를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습니다. 아니 여태까지 수없이 급한 베드로의 성정에 꾸지람을 하긴 하셨지만 그 꾸지람속에는 이해와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우가 다릅니다. 아주 냉냉하시고, 아주 단호하십니다. 그리고아주 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적어도 제자들에게는 감정적으로 야단을 치지 않으셨는데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마귀들을 쫓아 내실때의 그 어투요, 말투이십니다. 예수님의 표정도 굳어 계십니다. 정말 베드로안에 있는 사탄을 물리치시는 엄숙함이십니다.

9.모두가 얼어붙었습니다. 아니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제자들의 심장이 모두 멈추는 듯하였습니다. 상황파악을 잘 못하는 베드로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를 향해 쏟아지는 예수님의 꾸지람은 피를 거꾸로 솟게 만듭니다. 정신을 도저히 차릴 수가 없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온몸의 감각이 일순간에 마비된 것만 같습니다. 머릿속은 일순간 멍해지고, 온몸의 힘이 빠져버립니다.

10.잠시의 뜸을 들이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엄숙한 표정으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11.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또 충직한 마음으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한 것뿐인데 사탄이라는 꾸지람과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꾸지람을 듣고 맙니다. 머릿속으로는 하느님의 일만 생각하겠다고 오늘 아침에도 다짐을 했건만 그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꾸지람은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진정 그의 고백처럼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누구보다도 믿고 있었는데,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예수님을 따라왔는데 이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의 참담함과 절망감과 좌절감을 순간적으로 겪고 있었습니다.

12.아마 이 일은 베드로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주님을 배반한 일도```

13.예수님의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고난과 버림을 받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에 대해서 차분하게, 감정을 가라앉히시고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 폭풍과 같은 순간이 지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그랫냐라는 듯이 다시 친절하고,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14.예수님을 따르는 길, 그 길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헛된 야망과 욕심과 탐욕을 갖고는 그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다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위한, 자신의 생존을 위한 그 모든 생각과 경험과 느낌마저도 다 버려야 합니다.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신뢰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비우고 비워서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심뿐만 아니라 자기보호본능마저 하느님께 맡기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면서 살면서 얻은 삶의 지혜도, 결론도, 깨달음조차도 온전히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신을 비워야만, 설사 꼭 필요한 것일지라도, 본능적으로 필요한 것일지라도, 비우고 비워내야만 바로 그 비움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생존마저도 포기해야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길입니다.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통해 시시탐탐 노리는 악의 세력이 멋진 얼굴로 스며들고 말 것입니다. 완전히 하느님께 자기 삶의 주도권을 내어 드려야 하는 길입니다. 그저 수동적인, 완벽한 수동적인 자세를 지녀야 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자신의 삶에 부여된 자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름대로의 삶의 십자가가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이고, 어떤 사람은 명예이고, 어떤 사람은 권력입니다. 각종 모양의 십자가가 각자에게 다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삶, 존재의 저 깊은 곳에서 부족한 부분이 바로 우리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 깊은 부족함은 평생 우리의 삶의 짐처럼 우리 어깨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 깊은 부족함에서 해방되는 길은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일입니다. 합리화와 핑계로, 책임전가로 그 십자가를 부인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그 십자가가 평생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는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삶의 과제이고, 숙제임과 동시에 그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숨겨두신 보물을 찾는 너무나 귀한 도구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피하거나, 회피하거나, 무시하거나, 핑계를 대거나, 합리화를 해서는 도저히 그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향해 있던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 향하는 방향으로,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는 너무나 귀중한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깊은 반전의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5.그래야만 주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자기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을 버려야 가능한 길입니다. 또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기쁘게 짊어지고 하루 하루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 길을 통해, 자기를 버리는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죽어서도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생명, 살아있으면서도 진정 살아있을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숨을 살리는 길이며,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16.그리살았을 때 언젠가,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우리의 삶에 다시 오실때에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기특함, 대견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살리려고만 한다면 그는 주님께 부끄러운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17.제자들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경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체험을 영원히 잊어버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체험은 바로 몸으로 새겨진 체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성으로, 감정으로, 이해된 경험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한, 즉 몸에 새겨진 체험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머리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이 말씀들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가장 또렷하게 새겨졌을 것입니다.

18.예수님은 참으로 현명하고 지혜로우신 교육자이시기도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의 가르침을 마음속 깊이 새길 수 있는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19.우리도 이 어려운 세상속에서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속에 함께 계시고, 아파하시는 주님을 뵈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