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 연중18주일. 빵의 기적
찬미예수님
1.날씨가 정말 변덕스럽습니다. 휴가중 동창신부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여기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저기서는 햇볕이 나고, 밤에는 천둥번개가 하늘을 쪼갤 듯이 소리를 지르고, 하여튼 이토록 심한 기상이변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지구가 몸살이 나서 못살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파괴되어가는 환경속에서 인간은 수명을 다해 죽는 경우보다 자연재해로 죽을 확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2.오늘 강론은 빵과 물고기의 기적의 전반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3.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쉬기 위해 한적한 곳, 베타니아라는 동네로 가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행임을 알아채고는 여러동네에서 모두 달려나와 육로로 그들을 앞질러 그곳으로 갔습니다.
4.사람들은 이제 육체적인 치유보다는 영적인 치유를 갈구합니다. 어떤 면에서 육체적인 질병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치유를 갈구하지만 영적인 질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육체적인 질병보다 영적인 질병이 인간에게는 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5.희망이 없다는 것, 절망과 포기속에 살아간다는 것, 마음속에 기쁨이 없다는 것, 그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하다는 것,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는 것, 그 마음속에 무시와 무관심의 딱딱함만이 가득하다는 것,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 그래서 무감각해지고, 형식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는 것, 그래서 생명에 대한 경시,무시, 소외시키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하느님의 힘이 없다는 것, 그래서 성령보다는 악령에 쉽게 휩싸이고, 그 악령의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 율법속에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그 율법자체가 인간을 속박하고, 얽매고 있다는 것등등이 바로 마음의 질병이며, 영적인 질병입니다.
6.마음의 질병, 영혼의 질병은 육체의 질병만큼이나 많고, 고질적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마음깊은 곳에 숨어있기에 증상조차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없는 병, 마음의 병은 서서히 그 본색을 드러낼때까지 인간의 마음안에서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집니다. 육체의 병은 그 증상이 있기에 위기감과 불안감, 불편함, 괴로움을 느끼지만 마음의 병은 그 증상이 없기에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압니다. 그 마음이 서서히 어둠으로 가득차 가기에 그 어둠에 이미 적응이 되어 그 어둠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7.그러나 그 어두운 마음속에 빛이 스며들면 그 어둠의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그 어둠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어둠의 고통을 아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영적인 갈증에 목말라 하기 시작합니다. 그 갈증은 육체의 갈증을 훨씬 더 뛰어 넘는 타는 목마름인 것입니다. 목이 타는 갈증보다 영혼이 타는 갈증인 것입니다. 신체의 한 부분의 갈증이 아니라 그 인간 전체의, 그 존재의 갈증인 것입니다.
8.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직, 간접적으로 체험한 그들은 그영적인 갈증을 더 더욱 심하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니, 오히려 직접적으로 체험한 이들의 갈증이 더 심했습니다. 그 영적인 갈증은 영적인 활동을 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이젠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생존보다도 영혼의 생존문제가 더 중요함을 깨닫기 시작한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것을 보고는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갈릴레아 호수는 타원형에 가깝다. 배로 가면 직선거리이지만 육지로 가면 몇배의 거리를 가야만 합니다. 당시에는 호숫가로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언덕들을 넘고, 넘어 또 길이 없는 곳을 헤쳐나가며 그들은 달리고, 또 달렸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영적인 갈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달가운 고통이었습니다. 아니 설레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기만 해도 위안과 용기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어두웠던 마음이 일시에 밝아지는 것을 체험한 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능력을 보면 금방이라도 하느님나라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들에게는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9.절망이 있던 자리에 희망이 생기고, 포기가 가득했던 마음에 의지와 용기가 생기고, 슬픔과 고통만이 가득하던 마음의 자리에 기쁨과 희열이 생기고, 무관심과 무시로 가득찼던 마음의 자리에 사랑과 평화가 생기고,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듯한 황당함과 상실감이 있던 마음의 자리에 확고한 신념과 마음의 방향이 생기는 것을 그들은 이제 체험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0.예수님께서는 쉬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그들의 영적인 갈증과 육체적인 갈증을 보십니다. 그들의 갈증앞에 예수님의 인간적인 피곤함은 어느샌가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그 피곤함이 있던 자리에 그들에 대한 연민, 애타는 마음, 측은지심이 밀려옵니다. 그들 하나 하나를 둘러보시며, 그들의 애타는 삶, 그 질곡과 같았던 삶, 어둠속에 가득차 고통스럽게 살아온 그들의 삶을 보십니다. 어느때보다 사랑과 자비스러운 마음, 연민의 마음,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십니다. 예수님의 눈길, 말길을 따라 하늘에서 빛나는 빛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내려옵니다. 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속에 잠기기 시작합니다. 그들안에서 하느님의 힘과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내면이 열리고, 그들안에서 이미 함께 하고 있었던 하느님의 사랑과 목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많은 군중이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청은, 그 들음은 신비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들음으로써 그 마음속에 하느님 나라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그 내면의 세계를 일깨웁니다. 진짜 자기자신을 깨우치게 하십니다. 현상과 표면의 세계를 벗어나 진정한 내면의 세계가 깨어나게 하십니다. 그 진정한 내면의 세계는 하느님의 모상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 그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한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12.예수님의 말씀으로 내면의 생명이 깨어나는 시간은 참으로 감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니라 천상으로 연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의 시간이었습니다.
13.정신없이 그 아름다운 하느님의 세상에 심취해있다보니 어느샌가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해가 느엿느엿 서녘하늘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이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과 잠자리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도록 농가나 근처 마을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아주 당연한 생각입니다. 남자만도 오천명이 넘었으니 걱정이 안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현실적인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예수님께서는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깜짝 놀라 “아니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이백데나리온도 모자랄 터인데 저희가 사다 먹이라는 말씀이십니까?”하고 되묻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있습니다마는 그게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하고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안드레아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반신반의의 마음이었을것입니다.
15.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아마 각자 먹을 것을 다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한아이가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 놓으니 그 많은 사람들도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내어놓고 나누어 먹었다고 나눔의 차원에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그런 해석은 맘에 차지 않습니다.
16.즉 사람들의 마음에는 예수님만이 있었기에 그들은 현실적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을것입니다. 빵을 챙길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내어 달렸을 뿐이었습니다.
17.아무도 빵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앞에 배고프지도 않았고, 목마르지도 않았습니다. 정신적인, 또 영적인 욕구가 채워지는 상황에서 그들은 육체적인 한계를 뛰어 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가 느엿느엿 넘어가는 상황을 본 제자들이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어찌 먹여야 하나, 어디서 재워야 하나.`` 의 걱정은 제자들의 걱정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채움에 그저 흡족할 뿐이었습니다. 배고픔고 목마름도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기뻣던 것입니다. 그 시간은 바로 천상의 시간, 하느님 나라의 시간, 천국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휘어잡고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시간은 바로 하느님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아쉽지만 오늘 강론은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담 기회에 빵의 기적 2부를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아멘
찬미예수님
1.날씨가 정말 변덕스럽습니다. 휴가중 동창신부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여기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저기서는 햇볕이 나고, 밤에는 천둥번개가 하늘을 쪼갤 듯이 소리를 지르고, 하여튼 이토록 심한 기상이변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지구가 몸살이 나서 못살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파괴되어가는 환경속에서 인간은 수명을 다해 죽는 경우보다 자연재해로 죽을 확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2.오늘 강론은 빵과 물고기의 기적의 전반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3.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쉬기 위해 한적한 곳, 베타니아라는 동네로 가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행임을 알아채고는 여러동네에서 모두 달려나와 육로로 그들을 앞질러 그곳으로 갔습니다.
4.사람들은 이제 육체적인 치유보다는 영적인 치유를 갈구합니다. 어떤 면에서 육체적인 질병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치유를 갈구하지만 영적인 질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육체적인 질병보다 영적인 질병이 인간에게는 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5.희망이 없다는 것, 절망과 포기속에 살아간다는 것, 마음속에 기쁨이 없다는 것, 그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하다는 것,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는 것, 그 마음속에 무시와 무관심의 딱딱함만이 가득하다는 것,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 그래서 무감각해지고, 형식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는 것, 그래서 생명에 대한 경시,무시, 소외시키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하느님의 힘이 없다는 것, 그래서 성령보다는 악령에 쉽게 휩싸이고, 그 악령의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 율법속에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그 율법자체가 인간을 속박하고, 얽매고 있다는 것등등이 바로 마음의 질병이며, 영적인 질병입니다.
6.마음의 질병, 영혼의 질병은 육체의 질병만큼이나 많고, 고질적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마음깊은 곳에 숨어있기에 증상조차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없는 병, 마음의 병은 서서히 그 본색을 드러낼때까지 인간의 마음안에서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집니다. 육체의 병은 그 증상이 있기에 위기감과 불안감, 불편함, 괴로움을 느끼지만 마음의 병은 그 증상이 없기에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압니다. 그 마음이 서서히 어둠으로 가득차 가기에 그 어둠에 이미 적응이 되어 그 어둠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7.그러나 그 어두운 마음속에 빛이 스며들면 그 어둠의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그 어둠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어둠의 고통을 아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영적인 갈증에 목말라 하기 시작합니다. 그 갈증은 육체의 갈증을 훨씬 더 뛰어 넘는 타는 목마름인 것입니다. 목이 타는 갈증보다 영혼이 타는 갈증인 것입니다. 신체의 한 부분의 갈증이 아니라 그 인간 전체의, 그 존재의 갈증인 것입니다.
8.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직, 간접적으로 체험한 그들은 그영적인 갈증을 더 더욱 심하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니, 오히려 직접적으로 체험한 이들의 갈증이 더 심했습니다. 그 영적인 갈증은 영적인 활동을 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이젠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생존보다도 영혼의 생존문제가 더 중요함을 깨닫기 시작한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것을 보고는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갈릴레아 호수는 타원형에 가깝다. 배로 가면 직선거리이지만 육지로 가면 몇배의 거리를 가야만 합니다. 당시에는 호숫가로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언덕들을 넘고, 넘어 또 길이 없는 곳을 헤쳐나가며 그들은 달리고, 또 달렸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영적인 갈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달가운 고통이었습니다. 아니 설레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기만 해도 위안과 용기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어두웠던 마음이 일시에 밝아지는 것을 체험한 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능력을 보면 금방이라도 하느님나라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들에게는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9.절망이 있던 자리에 희망이 생기고, 포기가 가득했던 마음에 의지와 용기가 생기고, 슬픔과 고통만이 가득하던 마음의 자리에 기쁨과 희열이 생기고, 무관심과 무시로 가득찼던 마음의 자리에 사랑과 평화가 생기고,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듯한 황당함과 상실감이 있던 마음의 자리에 확고한 신념과 마음의 방향이 생기는 것을 그들은 이제 체험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0.예수님께서는 쉬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그들의 영적인 갈증과 육체적인 갈증을 보십니다. 그들의 갈증앞에 예수님의 인간적인 피곤함은 어느샌가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그 피곤함이 있던 자리에 그들에 대한 연민, 애타는 마음, 측은지심이 밀려옵니다. 그들 하나 하나를 둘러보시며, 그들의 애타는 삶, 그 질곡과 같았던 삶, 어둠속에 가득차 고통스럽게 살아온 그들의 삶을 보십니다. 어느때보다 사랑과 자비스러운 마음, 연민의 마음,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십니다. 예수님의 눈길, 말길을 따라 하늘에서 빛나는 빛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내려옵니다. 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속에 잠기기 시작합니다. 그들안에서 하느님의 힘과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내면이 열리고, 그들안에서 이미 함께 하고 있었던 하느님의 사랑과 목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많은 군중이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청은, 그 들음은 신비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들음으로써 그 마음속에 하느님 나라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그 내면의 세계를 일깨웁니다. 진짜 자기자신을 깨우치게 하십니다. 현상과 표면의 세계를 벗어나 진정한 내면의 세계가 깨어나게 하십니다. 그 진정한 내면의 세계는 하느님의 모상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 그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한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12.예수님의 말씀으로 내면의 생명이 깨어나는 시간은 참으로 감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니라 천상으로 연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의 시간이었습니다.
13.정신없이 그 아름다운 하느님의 세상에 심취해있다보니 어느샌가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해가 느엿느엿 서녘하늘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이 많은 사람들의 배고픔과 잠자리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도록 농가나 근처 마을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아주 당연한 생각입니다. 남자만도 오천명이 넘었으니 걱정이 안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현실적인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예수님께서는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깜짝 놀라 “아니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이백데나리온도 모자랄 터인데 저희가 사다 먹이라는 말씀이십니까?”하고 되묻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있습니다마는 그게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하고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안드레아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반신반의의 마음이었을것입니다.
15.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아마 각자 먹을 것을 다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한아이가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 놓으니 그 많은 사람들도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내어놓고 나누어 먹었다고 나눔의 차원에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그런 해석은 맘에 차지 않습니다.
16.즉 사람들의 마음에는 예수님만이 있었기에 그들은 현실적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을것입니다. 빵을 챙길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내어 달렸을 뿐이었습니다.
17.아무도 빵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앞에 배고프지도 않았고, 목마르지도 않았습니다. 정신적인, 또 영적인 욕구가 채워지는 상황에서 그들은 육체적인 한계를 뛰어 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가 느엿느엿 넘어가는 상황을 본 제자들이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어찌 먹여야 하나, 어디서 재워야 하나.`` 의 걱정은 제자들의 걱정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채움에 그저 흡족할 뿐이었습니다. 배고픔고 목마름도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기뻣던 것입니다. 그 시간은 바로 천상의 시간, 하느님 나라의 시간, 천국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휘어잡고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시간은 바로 하느님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아쉽지만 오늘 강론은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담 기회에 빵의 기적 2부를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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