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신은복되십니다.향기로운선한목자

2018.2월 18일 사순 제 1주일.

사순 제 1주일 2018. 광야에 계신 예수님

 

1.설 연휴는 잘 지내셨나요? 이번 설 연휴는 워낙 짧아서 금방 지나간 거 같습니다.. 저희 사제들은 보통의 경우 이런 설 연휴를 매우 싫어합니다.. 좀 의아하시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연휴를 즐겁게, 바쁘게 보냅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본가에 갔다가도 얼굴만 비추고는 금방 돌아옵니다.사제로 살다보면 세상사람들과는 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더 그렇습니다.. 형제들과는 웬지 모르게 사는 방식이 좀 틀리고, 대화의 내용도, 놀이의 내용도 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동창신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부모님들이 계실 때는 집에 가면 어머니가 좀 더 있다 가지?라고 하는데 부모님들이 안계시면 형님들이 일이 많을텐데 안가냐? 한답니다..

 

2.물론 사제들마다 다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집안 식구들을 웬만해서는 제가 있는 본당에 오지 못하게 합니다.. 사제는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고, 그 공동체의 신자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집안 식구들이 본당에 출몰하게 되면 사제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뭔지 모르게 자유롭지 못하고, 불편합니다.. 집안 식구들과 얽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도 합니다..

 

3.저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한편으로는 죄송스럽고, 안스러운 마음도 크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를 자유롭게 해주셔서, 저의 삶에 장애가 되지 않으셔서 감사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독자들이 사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부모님들이 아프기라도 하면.또 경제사정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자녀된 도리로서 부모님께 매일 수 밖에 없고,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서 사제가 된 것인데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집안사정에 묶이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4.사제도 항상 마음을 비워야 하지만 사제의 부모들도 항상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한번 하느님의 사제로 봉헌했으면 그만인것입니다.. 그 자식에게 기대거나 세상적인 욕심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5.그러면서도 명절이 되면 참 쓸쓸하기도 하고, 뭔지 모를 적막감과 고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 많던 전화와 메시지도 딱 끊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적막감과 고독감속에서 갖는 기도시간은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어느때보다도 더 깊은 관상의 시간에 빠지기도 합니다.. 세상의 것을 포기한 만큼, 그래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인간적인 고독감을 하느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위로해주시기 때문입니다...

 

6.기도는 고독감속에서, 적막함 가운데에서 드리는 기도가 최고의 기도요, 위로요, 마음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외로울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주시고, 우리의 적막함가운데에서 더 깊이 하느님의 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7.또 상실감과 절망감속에서 바치는 기도는 정말 더 큰 최고의 기도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마음을 에이는 아픔속에서는 기도가 잘 되지 않고, 또 설상 기도를 한다 해도 때로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듯한 어둠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고통속에서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어려움의 시간들을 하느님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최고의 은총이며, 하느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 시간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비록 우리의 현실앞에 있는 좌절과 절망이 금방 해결되지 않는다해도 하느님께서 그 고통들을 통하여 이끄시는 길이 얼마나 복되고, 은총의 길이었는지를 나중에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8.우리는 너무나 아둔한 사람들인지라 하느님께서 나의 삶에 있는 어둠과 고통을 통해서 우리를 어찌 이끄시는지는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보면 그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하느님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웬만한 세상의 어둠에는 끄덕하지 않는 강건한 사람으로 이끌어주심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9.그 어둠의 시간들, 그 고통의 시간들은 바로 광야의 시간들입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막막함, 세상의 어둠이 나를 향해 돌진하는 듯한 황당함, 나의 선의가 왜곡되고, 온갖 오해와 억측과 비난으로 살아온 모든 세월이 다 무너지는 듯한 억울함, 하느님이 어디계시냐고, 이런 하느님이라면 믿지 않겠다고 하는 신앙의 어둔밤, 비난에 분노의 화살을 날리고, 내가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미움의 복수심,, 내 마음대로 살아보겠다는 그래서 온갖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자포자기의 마음,, 이런 모든 마음들이 바로 광야에서 겪어내야 하는 시련의 시간들인 것입니다...

 

10.저도 개인적으로는 그런 광야의 시간들을 많이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억울하고, 답답하고,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친한 친구들마저 내 속을 몰라주고,, 동기가 오히려 흉기가 되어 내 마음속을 찌르고,, 믿었던 이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오히려 나를 험담하고,,, 어른들은 그저 행정적으로, 편의적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이 매일 매일을 마치 파도처럼 몰아치는 상처속에서 견뎌내야만 했던 슬픔의 시간들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향해 등돌리고,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나의 선의를 박살내고,,, 나를 향해 온갖 비난과 판단, 단죄속에서 믿을 분은 하느님밖에 없었던 그 비참한 어둠을 겪어본 바가 있습니다...

 

11.그런 시간속에서 제주도의 이시돌근처에 있는 글라라 수녀원으로 마치 도망을 치듯 피정을 갔습니다... 로사리오 호숫가로 기도하려 나갔는데 급히 오느라 묵주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어쩌나! 하는데 문득 제 발밑에서 작은 묵주가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집어서 보니 누군가가 잃어버린 묵주인 듯 한데 사람들 발길에 짓밝혀 짓이겨진 묵주였습니다.. 마치 내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 처참하게 이겨지고, 짓밟힌 묵주로 기도를 하는데 그때 제 마음속에 떠오르던 희망과 위로와 용기의 그 아름다운 마음속의 무지개는 지금도 여전히 제 마음속에 살아있는 하느님의 사랑이셨습니다...

 

12.그때의 그 죽음과 같은 광야에서의 시간들은 그후 또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정말 귀중한 시간들이었고, 은총이었고, 하느님의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3.하느님은 단번에 큰 산을 오르도록 이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조금 높은 산을 오르게 하시고, 그 다음 그보다 좀더 높은 산을 오르게 하시고,, 그 힘으로 더 큰 산을 오르도록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산을 오를 때 마다 마치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들은 더 큰 고통을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14.왜 인생의 산을 올라가야 할까요? 더 많은 것을 보기위해서이고, 더 큰 자유를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또 높은 인생의 산을 올라가야 이유는 더 깊은 마음의 깊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산이 높을수록 계곡도 깊고, 정말 맑고 청아한 호수를 갖기 마련입니다..

 

15.어차피 겪어야할 인생의 광야라면 함께 하시는 하느님과 겪어내는 것이 당연히 현명한 선택이고, 지혜로운 길입니다..인생에 있어 똑같은 고생을 했는데도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와 치유되지 못한 상처만 가득하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가련한 인생이겠습니까? 똑같은 인생의 산을 올랐는데 그 인생에 하느님의 힘과 은총, 하느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이겠습니까?

 

16.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광야를 겪어내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하느님의 힘이 있는 것이고, 어떤 어둠도 이겨낼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만나야 하는 인생의 광야에서 우리의 선배이며, 스승이십니다..

 

17.그분은 광야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유혹과 고통을 다 견디어 내신 분이십니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는 것은 그 유혹과 고통을 당신의 힘으로 이겨내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이겨내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신 길은 우리가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광야에 함께 계신분이십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힘들어 지칠 때, 목마르고, 배고플 때,.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온갖 자포자기의 유혹앞에 서 있을 때 우리가 어떤 광야의 길을 가야하는지를 알려주시는 인생의 선배이시고, 인생의 스승이시며, 우리 인생의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일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