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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복되십니다.향기로운선한목자

2018.1.21. 연중 제 3 주일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연중 제 3주일 2018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1.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의 행태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유럽에서는 차량이 날아가고, 비행기가 흔들릴 정도로 겨울폭풍이 몰아치고,

미국에서는 체감온도가 영하 70도에 이를 정도이고,

호주에서는 영상 40도를 웃돈다고 합니다..

지진에, 화산에, 추위에, 더위에, 온 세계가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추울때는 정말 춥고, 추위가 풀리면

뽀얀 미세먼지가 전국을 덮고 있습니다.

 

2.왜 이렇게 자연의 질서가 깨져버린 것일까요?

참으로 걱정되고, 답답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끼리도 평화롭게 살고 싶지만 세계각국은 저마다 자신들의 이익이라는 현실앞에

더 이기적인 모습들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3.자연의 질서도 깨지고, 인간의 질서도 깨져가는 현실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4.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들도 더 각박해지고, 눈앞에 이익에 혈안이 되어가고 있으며,

서로에게 마음의 총질, 칼질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보다는 적으로 단죄하며, 끝없이 비판, 단죄, 처형하고 있습니다..

 

5.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답답한 죽음과 같은 현실속에서 명쾌한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희망이 없는 세상, 죽음과 같은 세상,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세상속에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6.지난 번 이태리에 갔을 때 베드로대성전에 있는 피에타의 성모님앞에서

한참동안을 묵상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 있는 성모님,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성모님의 모습은 처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셨습니다..

분노하거나, 좌절하거나, 미움에 가득찬 모습이 아니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억울하고, 처참한 죽음앞에

성모님은 마치 아무 고통도 없는 듯한 그저 아름다운 모습이셨습니다..

어둠앞에서, 죄악앞에서, 죽음앞에서 성모님은 참으로 어린 소녀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셨습니다.

 

왜 미케란젤로는 단말마의 고통앞에 있어야 하는 성모님을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을까요?

 

또 한가지 희한했던 점은 성모님의 오른 손은 예수님의 몸을 받치고 있었지만,

왼손은 예수님의 몸과는 떨어져 있었습니다..

또 성모님의 시선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성모님의 손은 예수님의 얼굴을 어루만져야 하는 것이고,

또 성모님의 시선은 예수님께 향해 있어야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미켈란젤로는 성모님의 시선은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하고,

 또 성모님의 손을 예수님의 몸에서 떨어뜨려 놓을 것일까?

한참동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도대체 왜 미켈란젤로는 아들의 처참한 죽음앞에서 그 아들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 아들을 만지지도 않고, 그 아들을 바라보지도 않게끔 조각을 했을까요?

또 그 아들의 죽음앞에 고통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아닌

그저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의 성모님으로 표현을 했을까요?

 

8.우리네 보통 인간들의 모습은 아들의 죽음앞에 절규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하느님께 대해 원망하는 모습일것입니다...

 

9.왜 성모님은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시는 것일까?

과연 어디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일까?

 

10.성모님은 당신 삶을 통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시간을 많이,

너무나 많이 겪고 체험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길은,

마음의 길은 그저 그 모든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또 돼새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시간이 가면 그 마음속에 있는 되새김이 안개가 걷히고,

 만물이 또렷해지듯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깨닫게 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눈앞에 있는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좌우되지 않으셨습니다..

멀리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궁극적인 것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11.그리하셨기에, 성모님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단말마의 고통에 휘감기지 않으실 수 있었습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앞에서도 성모님은 어미의 고통속에 헤매이지 않고

하느님의 이끄심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고통속으로, 그 어둠속으로, 그 죄악속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2.우리도 살면서 무엇을 바라보는가? 는 참으로 중요하고, 절대절명의 과제인 것입니다.

눈앞에 이익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소탐대실의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실망과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명예와 권력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눈먼 장님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고통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고통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3.멀리 바라보는 것, 궁극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

본질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만이 이 혼란스런 세상에서 우리가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는 기준이요, 원칙인 것입니다..

 

14.작년인가 보았던 침묵이라는 영화,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나옵니다..

주인공이었던 두 신부는 신자들의 처참한 고문과 죽음앞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배교를 하고 맙니다.. 그 두신부는 눈앞에 있는 현실,

신자들의 고통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막상 죽어가는 신자들은 현실너머에 있는

궁극적인 것, 본질적인 것,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신부들은 눈앞에 있는 신자들의 고통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15.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어떤 지향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 삶의 중요한 핵심이고, 기준점이고, 방향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양식이 달라지는 첫 번째 발걸음인 것입니다..

 

16.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구세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내적인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었던 구세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내적인 열망은 멀리 바라보는 삶의 자세였습니다..

이 세상을 넘어서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내적인 시각이었던 것입니다..

이 답답한 세상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의 마음은 궁극적인 것, 본질적인 것,

하느님을 향해 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17.그러했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그들의 유일한 생존수단이었던 그물을 버리고,

삶의 뿌리였던 아버지를 버리고,그들의 여태까지의 모든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게 됩니다..

 

18.아무런 의심도 없이, 의혹도 없이, 의구심도 없이, 이것 저것 재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19.우리도 우리 눈앞에 있는 현실속에 갇혀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도 멀리 보아야 하겠습니다..

궁극적인 것, 본질적인 것,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게 주어진 삶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꿈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내게 주어진 삶속에 계신 하느님을 바라보아야만 그 하느님의 뜻과 꿈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20.내가 내 눈앞에 있는 현실, 그 고통, 그 어려움만을 바라본다면

나는 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고통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현실에 잡혀 있다는 것, 그것은 노예생활인 것입니다..

 

21.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