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제는 피곤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날이었습니다..
열두시에 잠원동 성당에서 본당 사목부회장 자제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훤칠한 키와 아름다운 미모을 갖춘 양가의 신랑과 신부는 모두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평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양가에게 큰 박수와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전주에서 오신 신부댁의 잘 아시는 두분 신부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한분은 저보다 십년후배이고, 또 한분은 은퇴하신 신부님이셨습니다.. 은퇴하신 신부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참 존경스러워졌습니다.. 연세가 77세인데 아직도 정정하십니다.. 운동도 기도도 열심히 하시는 분이셨고, 자신에게 주어진 은퇴의 삶도 정열적으로 살아가시는 건강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오후 네시에는 길동성당에서 저의 신학생때의 본당신부님의 금경축 축하와 건강을 기원하는 미사가 있었습니다. 묘하게도 두분은 동창신부님이셨습니다.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씀에 아마 그 신부님은 몸이 안좋으셔서 참석을 못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2.저의 출신본당은 그때당시의 학생들이 약 300여명이 지금도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만납니다.. 참 드문일이기도 합니다.. 약 십여년의 선후배들이 온갖 세월의 풍상을 견뎌나가면서 아직도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제도 10여명 탄생했고, 수도자도 꽤많이 있습니다..
3.이번에 얼마나 올까 하고 걱정을 하였지만 그래도 60여명이 참석해주었습니다.. 신부님들도 6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오시지 못할 것 같다는 주인공 신부님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채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말씀도 전혀 못하시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오시긴 했지만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도대체 이 상황은 뭐지? 하면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집니다.. 아프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이신줄은 몰랐습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쌩쌩하시고, 요트에, 행글라이더에, 오토바이에, 못하시는 게 없는 분이셨기에 더 더욱 놀라움과 막막함이 생겨납니다.. 학생때부터의 깊은 추억과 사랑이 있는 분이셨기에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모두가 마음속으로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어릴 시절 받은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죄책감에 더 가슴이 메어집니다...
4.그 신부님은 참으로 자상하시고 착하신 분이셨습니다.. 특별히 복사어린이들을 사랑하셔서 신부님의 방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나 조작놀이기구등을 준비해놓고, 아이들은 그야말로 자기세상을 만난 듯 너무나 신났습니다.. 그때의 복사아이들중에 10여명이 사제가 됩니다... 그런데 그 착한 신부님이 신자들의 구설수에 올라 임기전에 떠나시게 되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큰 상처가 되고 말았습니다..
5.착하시고, 자상하신 신부님은 젊은 후배신부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셨습니다.. 지구장을 하시면서는 지구내 신부님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격려와 위로를 아끼시지 않으셨습니다.. 서울교구의 인사정체를 걱정하시던 신부님은 조기은퇴를 결심하십니다...
6.왜 하느님은 이처럼 착하시고, 훌륭한 목자에게 왜 이리 힘든 말년의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 아직도 혼란스럽고, 가슴이 무겁습니다.. 어떻게 은퇴후의 삶을 살아야 할까 걱정스러워집니다..
7.몇년전에 해드렸던 청어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영국의 북단 북해에서 잡은 청어는 영국인들의 아침 식사에 가장 인기 있는 청어요리의 재료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싱싱한 청어를 원하지만 북해에서 잡은 청어가 영국에 도착하면 이미 거의 빈사 상태이거나 죽은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부들은 늘 어떻게 하면 영국에 올 때까지 싱싱한 청어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한 어부의 청어만은 대부분 싱싱한 채로 옮겨져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동료 어부들이 그 이유를 물었으나 그는 좀처럼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끈질긴 동료들의 성화에 결국 어부는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청어를 넣은 통에 메기 한 마리를 넣습니다."
그러자 동료 어부들은 놀라 물었습니다.
"그러면 청어가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나?"
"네, 맞습니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습니다. 하지만 그 통 안에 있는 수백 마리의 청어들은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계속적으로 헤엄을 쳐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싱싱한 청어가 될 수 있게 하는것입니다."
메기로부터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싱싱한 청어가 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8.은퇴하신 신부님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참 안타깝기 이를데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시면 오늘은 누가 찿아올려나? 하고 기대하시만 아무도, 아무도 찿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려나? 하고 기대하지만 아무일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은퇴후에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기쁘고 행복할 것 같지만 실상은 외롭고, 힘들다고 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속에서의 고독을 더 느끼신다고 합니다..
9.그렇습니다..현직에 있을 때는 그 책임감이 무겁고, 때로는 아프고 힘들어 에이 빨리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그 삶의 십자가가 삶을 버텨내게 하는 힘이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10.봄의 바람은 나무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나무는 그 고통 때문에 새로운 생명을 피어낼 수 있는 것이고, 청어는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메기의 공격과 그 공포가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며, 사람도 자신의 삶에 있는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1.오늘 복음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 자기 지위나 권력이나 학식이나 능력을 자랑하지 마라,,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이 걷어가시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다..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능력자이시며, 스승이시며, 아버지이신 것이다.. 모든 것은 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너희는 다만 너희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쓸데없는 원망과 한탄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너의 삶에 십자가가 있다면 그것조차도 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셔서 가슴이 아프시지만 허락하신 것이다..그 삶의 아픔과 십자가들로 너희들이 오히려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십자가들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라... 너희에게 주어진 삶에 보다 더 솔직해지고, 보다 더 겸손해야 한다.. 너희에게 주어진 삶을 섬기고, 감사해야 하며, 이웃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교만은 모든 진리에 어긋하는 것이며, 진실을 왜곡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희에게 주어진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너희는 그 구렁텅이같은 진흙탕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생명의 환희를 외칠 수 있을 것이다..
12.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앞에서 한숨과 탄식을 터트리며 우울해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삶에 대해서 보다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봐도 안된 삶이고, 거지같은 삶일지라도 그곳에도 하느님의 사랑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들꽃, 사람들 발길에 치이는 이름없는 들꽃이라 해도 다 존재의 이유, 창조의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들꽃은 절대 외로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느님께서 주신 창조의 아름다움을 나름대로 노래할 뿐입니다..
13.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숨막히는 고통이 있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을 섬기는 것은 그 삶을 주신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의 삶을 섬길줄 알 때 그 삶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주신 걸작품이며,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셔서 허락해주신 하느님의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선물은 기쁜 것입니다.. 선물을 우습게 여기면 안됩니다.. 기쁘게 받을 수 있어야, 감사할 수 있어야 그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서 더 큰 선물, 더 큰 축복을 베풀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14.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기도중에 끊임없이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신께서 꽃을 피워주시고 열매를 맺어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아니라 당신께서 해주셔야 합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주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에 인내속에, 침묵속에 당신을 믿고 따르게 하여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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