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신은복되십니다.향기로운선한목자

3.프란치스코신부님의 산티아고순례일기

열두째날 등반 9일째

1.그동안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오늘은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아침식사때 비가 줄줄 내리고 추워서 오늘 과연 순례가 가능할까 걱정되었다.

일행중 한사람은 아예 포기하겠단다.

2.출발 하려는데 언제 비가 왔냐 할 정도이다.

오전내내 걷고 또 걸었다.아루수아에서 점심 먹는 장소인 살쎄다까지 11키로다.

이젠 걷는데 이력이 났다. 한시간에 5키로에서 빠르면 6키로까지 걷는다.

다리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걷는게 빨라진다.

거의 선두그룹을 놓치지 않는다. 선두와 후미는 거의 한시간 반 차이다. 

처음에는 늦게 걷는 사람들이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간차이가 좋다.

그만큼 성당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3.이쁘지도 않고, 멋있는 길도 아니다.

그저 무미건조한 길이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지자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도보로는 사리아라는 지역에서 적어도 100키로는 걸어야 순례증이 나온다고 한다.

우리는 200키로를 걸었다.

전체 길 중에서 중요한 길만을 선택한 주최측의 노고가 고맙다.

800키로를 걷는 사람들.

그들의 초인적인 노고앞에서 우리의 순례는 한없이 작아져만 간다.
그들은 12키로이상의 무거운 베낭을 메고, 알베르게라는 공동숙소에서

불편한 잠을 자면서 먹는 것도 부실하기 이를데 없다.

40일 이상을 연속해서 매일 20키로 이상을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일이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4.우리 일행들의 평균연령은 70세다.

요즘에는 70이 넘어도 자기관리만 잘하면 참 건강하다.

86세의 노인도 아들과 함께 왔는데 하루 5-6키로는 걷고,나머지는 택시를 타며 이동한다.

새로운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

나이 70에 은퇴기념으로 800키로 완주라는 새로운 삶의 목표다.

체력관리뿐만 아니라 영어 혹은 스페인어도 공부해야겠다.

5.오전 중반쯤 갑자기 좋았던 날씨가 이상해진다.

흐려지더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는 것이다.

우박이 비처럼 내리는 모습은 처음본다.
갑자기 우비를 챙겨입었다.추워지기 시작한다.

우박을 맞으며 걷기 시작한다.

조금 지나니 언제 그랬는듯이 말끔히 하늘이 맑아진다.

점심은 등갈비구이로 맛있게 먹었다.

에너지를 많이 쏟았는지 엄청 식욕이 땡긴다.

이 스페인에서의 고기는 참 맛있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대초원에서 방목을 한다.

마음껏 먹이를 먹으며 자유롭게 자라는 소와 양들은 일단 골격부터 크다.

갇힌 우리에서 사료로 자라는 우리나라 소와는 비교도 안된다.

방목과 사육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된다.

6.점심을 먹는데 또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걱정이 되는 사람은 버스를 타고 3키로를 점프하기로 했다.

근데 막상 점프해야 할 사람은 악착같이 걷는단다.

아! 미치겄다. 그 한사람땜에 도착지 집결시간이 한시간이 늦어졌다.

낼부터는 제발 버스좀 타주길.

그러나 그 덕분에 이 순례일기를 미리 쓸 수 있는 여유를 얻긴 하였다.

7.비바람이 몰아친다.

눈을 아래로 깔고 바닥만을 보고 걸어가길 한시간.

어느샌가 또 거짓말처럼 날씨가 맑아진다.

키 큰 나무 유카리투스의 진한 향기가 코에 스민다.

발 밑에는 물이 흥건하지만 상관없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발에 힘을 주며 걷는다.

8.오늘은 중간에 성당도 없었고, 변덕스런 날씨땜에 묵상도 잘 안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말씀이 마음에 스며든다.

네가 부족하기에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나는 너의 부족함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것이다.

너의 부족함을 자책하지 마라.

너의 부족함은 너를 지키고 일으켜 세우는 나의 힘이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선택하여 뽑아 내 세운 것이다.

나의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났듯이

너의 부족함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것이다.

바로 나의 서품성구였다.

어떤 수녀님이 선택해주신 성구이긴 해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말씀이다.
그 말씀이 놀라운 힘이 되어 내 마음속에 새겨진다.

맞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부족함을 이용하여 당신의 일을 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었지만

바로 나의 부족함을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마음속의 울림은 내 머리를 쮸뼉 세운다.

나의 부족함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느님,

그뿐 아니라 그 싫디 싫은 부족함을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