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째날 등반 8일째
1.오늘은 빨라스데 레이에서 아루수아까지 29.5키로를 걸었다.
마음을 비우고 걸으려 애쓰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풍광은 이쁘지 않다.
다 그저 그렇다. 넓은 목초지는 그냥 널부러져 있는 상태였다.
가꾸지 않은
황폐함,사람손이 닿지 않은 스산함이 가득하였다.
북부지역의 그 가꿔진 밀밭, 보리밭. 유채꽃이 그리웠다.
하다못해 레온산맥에
있었던 야생화 군락이 보고팠다.
마을도 이쁘지 않다.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났다고 한다.
노인들만 남은 황량한 쓸쓸함이
전해진다.
생명력이 없는 마을, 활력이 떨어진 마치 죽은 듯한 마을이다.
북부지역의 마을들은 전원주택같은 풍요로움들이 있었는데
중부지역의 마을들은 뭔지 가난에 찌든 느낌들이다.
2.출발전 가이드로부터 십자가에서 한팔 내린 예수님이 모셔진 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나는 문이 꼭 열려있을것만 같았다.
간단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그 지역의
어떤 신자가 매일 똑같은 죄를 고백하기에
그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품은 신부가 고해성사를 거부하자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팔을 내려 고해 성사와 축복을 주셨다는 이야기다.
3.그 십자가에서 팔을 내린 예수님을 정말 꼭 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기도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그 마을에 도착했을때 정말 그 성당문이 열려있었다.
오! 감사합니다!
4.그 성당에서 꽤 긴시간을 조배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이번 순례중의 기도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속에 무수한 생각들이 떠 오른다는 점이 참 특이하다.
5.내
느낌은 고해성사를 거부한 그 사제를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애처롭고,
자비스럽게 내려보시는 듯한 눈길로 느껴졌다.
그 사제를 야단치시는 모습이 아니라 깊이 있게 바라보시는 눈길로 느껴진다.
베드로를 돌아보실때와 같은 눈길, 그 눈빛이 아니었을까?
그때도 결코
혼내시는 눈빛은 아니었을것이다.
내가 모든 걸 이해한단다. 용서한단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의 의미가 담긴 눈길,
눈빛이었으리라.
6.내 마음속에 그 눈길과 그 눈빛이 새겨진다.
내가 사제로서 정말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타깝고 애절하게 바라보시며 당
신의 끝없는 용서와 사랑이 담긴 듯한 눈길,눈빛이 내 마음에 꽂히고 새겨진다.
그 모습은 언제나
나의 편이신듯한 느낌이다.
7.한참 묵상뒤에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뭔가 허전하다.
갑자기 그분의 내민 손을 잡고 싶어졌다.다시 돌아갔다.
그때마침 늦게 도착한 일행들이 보였다. 한사람, 한사람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그분의 손을 잡고,
그분의 발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8.점심은 그 지역의 문어요리와 익힌 갈비였다.맛난 요리였다. 우리의 막걸리같은
하얀 와인도 정말 맛있었다.
9.점심후
또다시 15키로를 걷는다.
도중에 성당이 있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도착해보니 성당문이 잠겨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올라가니 이층에서의 조배가 가능했다.아무생각없이 30분을 그냥 앉아 있는다.
10.그후
8키로를 더 걸어야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의 모든 걸 버려야 할것들이 떠 오른다.
어린시절,청소년시절,소신학교때,
대신학교때, 군대시절, 보좌때, 군종신부때,
개봉동,월계동,신정동.명일동,금호동의 모든 지나온 세월들이 마음속에 떠 오른다.
너무
많은 짐들,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많았나 하며 나도 놀랠정도이다.
하나씩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희한하게 이름과 얼굴들,사건들이 또렷하게 떠 오른다.
11.내가 너무 많은 마음의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왔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것도 버리고,저 사람도 버리고. 그 시절도 버린다.
버려야 할 것들이 이토록 많은 줄 몰랐다.
12.앞으로도 끊임없이 버리는 삶을 살아야겠다.
삶의 무거웠던 짐들을 메고 헉헉거리며 힘들게 살아온 나를
주님께서 그토록 애처롭고, 간절하게 바라보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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