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Chicago

시카고에 얽힌 추억 한토막!!!

 

경상북도 영주군...

지금은 시로 승격하여 영주시가 되었지만..

그곳에서 나서 자란 저는 단산공의로 근무하던 남편을 만나 공의 임기가 끝나고

영주에서 잠시  한의원을 개원하고 있다가 69년 꿈에도 그리던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서울이라고 해서 가슴 부풀어 아이들 형제를 업고 걸리고 올라왔더니 골짜기 골짜기 첩첩산중 ...

금호동 복개천옆 뜨거운 양철지붕밑 방 2개 짜리에  점포하나를 월세로 얻어 눈물나게 가난한 서울살림을

시작했더랬죠.

아이구,,,단산에서..영주에서 금호동에서...

가는곳 마다 아이를 하나씩 낳아 삼남매의 아이들과함께 어찌나 고생을 했더랬는지

친정에선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하던 봉투쌀을 다 사먹어보고..

서울생활 1년만에 대전에 계시던 시부모님 모시고 살아온것이 ..

아이구 이젠 금호동 터주대감 소리를 듣고 삽니다.

 

죽기살기 절약하고 모아서 집도 사고..

조금씩 형편이 좋아지니 나에게도 이런 호시절이 있단말인가  살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생활이 여유로워지니 아이들교육에도 신경을 쓰게되더라구요

남이 장에 간다면 거름지고 장에 간다고...

그 당시에도 부유층에서 해외유학이란 급물결을 타고 자녀들을 유학보낸다고 신문지상에 떠들때.

웬지 가만 있다간 큰 낭패를 만날것 같은 조바심에 학교 잘 다니고 있는 아이들 유학가라고 꼬드겼다네요

큰아들 대학 3학년때 영어회화 열심히 배워 유학가겠다더니만...

정작 때가 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엉뚱한 둘째가 대타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답니다.

해외라곤 제주도에도 가본적이 없는 순진무구한 우리 가족이 었기에

해외에 아는 사람 하나없이 유학을 간다는게 참 두렵더라구요

때 마침 우리동네 남편과 낚시동호회에서 안면을 익힌 분이 형제들이 있는 시카고로 이민을 간다고

유학을 보낼려면 시카고로 보내면 잘 돌봐 주겠다고 해서..

아이구 잘됐다 시카고로 보내자 하면서 덜컥 시카고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내고 들어가게되었어요

 

그리하여 합격 통지서를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우리집에도 해외 유학생이 나왔다고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는판에

아닌밤중에 홍두깨도 유 분수지 ..

여러경로를 통해 들려오는 시카고에대한 소문은 우리가족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늘 봐왔던 멋진 옷을 차려입고 파티만하는줄 알았던 미국사람들....

특히나 시카고란 대도시는  마피아란 무시무시한 갱들이 시내를 주름잡고

시도때도 없이 총질을 해댄다는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말 그대로 모골이송연하더라구요

 

아이구 잘키운 우리아들 하마터면 갱들 총싸움에 목숨버리게 되면 어찌하나...

안보내면 그만인것을 입학허가서 받았으니 꼭 보내야 하는걸로 알고...

가는날 받아놓고 울고불고...

행길 다닐때 몸조심 잘하고 조금이라도 험상궂게생긴 사람 옆에는 가지를 말라고...ㅋㅋㅋ

아이구,,,이런 순진무구 유치찬란한 시절이 먼 그옛날도 아닌 87년도의 이야기 입니다.

 

그러구러 일각이 여삼추....장장 6개월이 흘러...

스무살 둘째 아들이 일요일 밤마다 전화통에대고...

엄마아빠 보고싶다고 목놓아 우는꼴을 두고볼수 없어서

금호동지킴이 소피아아지매가 용감하게도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랐답니다 .

 

그 시절...

꼬부랑 영어라고는 학교에서 배웠으나 예쓰/노 도 제대로 입밖으로 안나오던 왕초보 여행객이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대기했다가 다시 탑승해야하는 비행기를 타면서

하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이런 코메디는 돈 주고도 못보는 울트라 수퍼 코메디를 연출한 겁니다.

우리 조카 사위가 그 시절 비행기 승무원이었어요

 때마침 처이모가 시카고행 비행기에 탑승하게되니

처이모를 대접한다고 비지니스석에다 자리를 마련해 앉혀줬네요

 

비행기라면 제주도도 못가본 제가 국제선 으리뻔적하는 비지니스석에 앉아으니...

마침 옆자석에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점잖은 신사분과 앉게되었네요

처음앉았던 이코노미석과는  확연히 차이가나는 기내서비스에

호기심가득한 소피아의 두 눈이  빤짝 떠 졌습니다.

우선 두리번 두리번 하다보니 옆자리 아저씨 멋진 슬리퍼를 신고 있는거예요

아이구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거워 지는구만...

40대 초반 소피아의 막장실수 끝내줍니다,

어머...그 슬리퍼 어디서 난거예요 ? 나는 왜 슬리퍼 없냐고 아저씨에게 생떼를 쓰고

지금같으면 당연히 보턴을 눌러 스튜어디스를 불렀겠지만...

궁금증이 생길때 마다 옆자리 아저씨를 물고 늘어졌으니 원참....

나중엔 해드폰 어디다  꽂는줄 몰라서 내꺼는 소리 안들린다고 끌탕을 했더니

어쨌던 아저씨가 everything 소피아의 불만제로 도우미 노릇하느라고 얼마나 애쓰셨는지..

그래도 내릴때 명함주시더라구요

넘 재미있었다고 저때문에 지루한줄 모르고 잘왔다고...

나중에 샌프란시스코 오는 기회있으면 꼭 연락해달라구요 하하하.

아이구 저 같으면 뭐 이런 무식한 여자 다있나 하고 자리바꿔 앉았을 법 한데

지금 생각하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마음너그러운 신사중의 신사분이었네요.

 

온갖 주접을 떨어가며 시카고 오헤아 공항에서 무사히 도착하여

6개월간 오매불망 그리던 둘째아들과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채

감격의 포옹을 하고 아들이 살고있는 플러튼의 원베드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아이구...같은 학교에 다니는 형이 바로 옆방에 살고있어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요

그런데...도착하고보니 미국냄새때문에 속이 뒤집어지고 구토증 때문에 견딜수가 없는거예요

무슨 놈의 나라가 이렇게 냄새가 역하냐고...

그때만 해도 공해없는 청정지역에 살던 제가 사방팔방 자동차매연의 홍수속에 빠져들어

숨쉬기가 어찌나 힘이들었던지...참 옛날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아이스크림 좋아한다고 아들이 동네 아이스크림집에가서 큰 컵으로 하나가득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었지 싶네요.

세상에 이렇게 진하고 고소한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겠냐면서

욕심내어 다 먹어치운 덕분에 날밤을 꼴딱새우며 위경련에 죽을 고생을 했더랬어요

위경련이 아니라 아마도 위장이 반쯤 얼어서 그랬는지 위통이 심해 초죽음 당했더랬어요

아이구 세상에 아이스크림도 사람을 잡을수 있다니... 난생 처음 경험했지요

지금도 아이스크림 보면 그 당시 고생했던 생각이 절로납니다.

 

제가 도착한 이틑날이 옆방의 형 생일이라 미역국 끓이고 불고기 만들어 파티해주고....

메리어트호텔에서 학교대표들과 교수들의 합동 댄스파티가 있대서 파티에도 참석하여 아들과 춤도추고...

아이고 그때 사진보면 나름대로 첨단 멋쟁이로 분장을 했겠지만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완전 웃기는 아줌마지 제가 아니더라구요 .

두달 동안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가장 궁금한것은 소문에 들어오던  갱들이랑 마피아는 어디에 사는지

그게 그리 궁금하더라구요

 

제가 상상하던 시카고는 거리에 나서면 서부활극처럼 총잡이들이 넘쳐나는줄 알았었는데

지극히 평화롭고 여유로운 미국인들의 일상을보고....

파티드레스로 꾸미고 춤이나 추고 파티만 하는줄 알았던 미국인들이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바람에

나다는는 모습을 보고 제가 얼마나 무지했었나 부끄러워지더라구요.

제가아는 남편 친구분도 미국으로 이민간다면서 ...

그 시절 앙드레킴 샾에서 드레스만 다섯벌 준비해가지고 간단 소리 들었기에....

모두들 저녁이면 화려한 드레스로 휘감고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띵까띵까

쌍쌍으로 부등켜안고 춤추고 노래하며 먹고 마시는  파티만 하는줄 알았어요

 

참...생각해 보면 어제일같이 생생하게 생각나는 벌써 23년전의 일이네요

그동안 우리나라의 위상도 많이 높아져 이젠 코리언이라면 대강은 눈치로도 알아주는데..

그 시절 코리아란 나라가 어느구석탱이에 붙어있는지 모르는게 당연지사였죠

23년전 아들을 유학보낼때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어찌 그리 무지 했었던지...

미국땅에 첫발을 내딛고 부터는 제 인생관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 까마득한 옛날 청년 리승만이 통통배를 타고 서양문물을 배우려고 유학을 왔었는데....

비행기로 14시간...하루만이면 오는 미국땅을

그 옛날 화물선을 타고 석달열흘 걸려서라도 새로운 문물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를 갈망하며

홀홀단신 두 주먹을 불끈쥐고  미지의 땅 미국땅에서의  유학을 시도했으니

그 분들이야 말로 시대를 앞장선 선구자 이며 후학들을 학문의길로 이끌어준

선각자였다는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지요

 

요즘세상 하루만에 도착할수있는...

 한발 더 가까워진 미국땅을 왜 이제서야 알았나 하는 후회는

막내딸도 하루빨리 미국땅에서 공부를 시켜야 겠다는 결심을 앞당기게 되었답니다.

두 남매는 엘리노어 루즈벨트여사가 세운 유서깊은 루즈벨트 유니버시티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를 하게되었고 이젠 시카고와 뉴욕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23년이 지났네요

이제는 배짱만 늘은 소피아 영어에 대한 공포심도 없어졌어요

미국사람이 한국말 못하는거나 제가 미국말 못하는거나 쎄임이니까요

나이를 먹으면 다 없는 배짱도 생기고 그러나 봅니다.

 

그 옛날엔 시카고라고하면 ..마피아와 갱들의 총격전 시가전이  머릿속에 떠 올랐었는데

지금은 시카고...하면 우리 아이들 삼남매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리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윈프리가 먼저 떠 오르는걸로 봐서... 아이들의 생각처럼 소피아에게도 시카고는

 제 2의 고향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게 아마도 20여년을 시카고 한곳에 정을 주고

 드나들었기 때문일거예요.

오늘따라 시카고들 드나들면서 겪었던  수 많은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시카고...아름답고 정겨운곳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있어 더욱 마음이 가는곳

수 많은 추억이 깃든 아름다운 시카고에 대한 추억 한토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