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12일 밀라노에서
"엄마! 나야..
요즈음... 갑자기 엄마가 너무 너무 보고싶어 죽겠어
힘도 너무들고 먹고 싶은것도 무지무지 많고.. 그러니 엄마 빨랑좀 와!!!
딸의 전화는 우리 가족에겐 언제나 다급한 SOS 로 들린다.
그리고 디프로마 때문에 체력보강을 해 줘야 한다는 그럴듯한 핑계에는
우리남편 요한씨도 군말을 못한다.
하기야...귀염둥이 고명딸로 태어나 시도 때도없이 응석과 어리광으로 자란
연준이의 주문이고 보면 누구도 감히 반대할수 없는..거절의 여지가 없는 명령인 것이다
더구나 고교 졸업이후 오랫동안 계속해온 다이어트 때문에 우리식구들 모두는
은연중에 연준이가 거식증에 걸린걸로 착각하고 있던 중
맛있는거 많이 해달라는데 마다할 엄마가 어디있을까?
더구나 백제의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무녕왕의 직계 (서동)왕족으로서
옛날 같으면 감히 아무도 맘놓고 쳐다보지도 못할 지고한 공주님임을 자처하며
제멋에 겨워 살아가는 연준이는 서울의 엄마를
건넌방으로 불러내듯 내일 당장 이태리로 오랜다
그리하여 이틀후 ...미친듯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준비한 각가지 식료품들을
이민가방 두개에다 태산같이 싣고마침내...밀라노행 비행기에 올랐다.
94년 11월 연준이가 처음으로 밀라노 땅을 밟은후부터..
1년이면 3-4개월씩 ..더러는 5.6개월씩..이태리땅을 오고가건만
길눈이 어두운 나는 두오모에 데려다 놓으면 집도 못찾아 오는건 당연지사요
돌돌말린 ( ㄹ )발음 때문에 그렇게 곤욕일수가 없다
겨우 할수있는 말이라곤 본죠르노,삐아체레.그라찌에. 벨라 밖에 모르니 ..
눈뜬 장님에다 벙어리 냉가슴까지 앓고 있음에야 더 할 나위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 성당에 가는것도 그렇다.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도 분별이 안되는 곳을 심봉사 작대기 짚고 따라다닌 격인데다
4월 2일 주일날은 딸에게 긴급한 오디션이 있어서 나 혼자 성당을 찿아가야 할판이었다
말도 못하고..길도모르는 나는 ..
토요일 부터 염체불구하고 여기 저기 성당식구들을 통해 차편을 알아보았다
하긴...만리타국에서 제각각 공부하기도 바쁘고 생할하기도 힘든세상에
남의 사정 봐주기가 그리 쉬운일인가?
더구나 휘발유값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라는데...
거기다가 차 얻어타기는 오죽이나 미안한가?
나는 연준이에게 차를 못사준 죄로 하루에도 골백번씩..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자동차로 태어나겠다는 딸의 푸념을
못들은척 하는 도리밖엔 없었다 .
하긴...비행기로 태어난다면 혹시 또 몰라..
그래도 우리 사정을 잘아는 구역장 건우씨 내외가 기꺼이 모시고 가겠다지만
한가지 불안한 것은 귀가편은 다른곳에 알아봐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였다.
일요일 새벽...연준이가 집을 나가면서 화장대 위에다 차표 한장을 두고 갔다.
오디션이 빨리 끝나는대로 성당으로 올테니 걱정말라고 했지만
오디션이 어디 우리 맘 대로 생각대로 되는게 아닌데...
어쨌던 성당 갈 시간이 다가오자 점점 걱정이 태산으로 밀려들었다.
지난 일요일에도 "뽀르따 베네찌아"의 기계가 작동하지 않아서
차 표 때문에 쩔쩔매던 생각이 나면서...
딸이 두고간 것이 기차표인지 전철표인지 아리송해지기 시작했다
늘 딸이랑 같이 기차며 전철을 타고 다녔지만...
어디를 가던 항상 통과만하면 되도록 입에 혀같이 곰살맞은 딸이
온갖 시중 다 들어주고 비서 노릇까지 톡톡히 해 오던중
오늘같이 비서같은 딸의 시중없이 혼자가 된 나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 한장의 차표는 대체 무엇일까?"
안되겠다 싶어 나는 가까이 살고 있는 홍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하고
성당가실때 귀찮더라도 나를 좀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차피 오고가며 여러사람 괴롭히느니 차라리
한사람 신세지는 편이 나을것 같단생각이 앞섰기에....)
선뜻 그러시라는 대답에 한술 더 떠서 사정이 이러하니
혹시 모르니까 전철표도 한장 꾸어 달라고 부탁하고
기차표는 홍대 아빠가 사주기로 하고 10시20분에 RHO 스따찌오네 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자면 구역장님에게 전화를 해야지...사정 이야기를 하고 기차로 가겠다고 하니
가는 편이라도 모시고 가겠단다. 그런 아름다운 배려를 고맙단 인사로 대신하고
10시가 되자 정거장으로 향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길거리는 한산하고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안개처럼 포도를 밀려오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정거장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홍대아빠가 오기전에 기차표를 한번 사 보기로 했다.
속담에도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벙어리도 불편없이 사는세상에...
까짓거 속는셈 치고 나도 한번 부딧쳐 보자!!
이태리 말이 안되면 바디랭귀지라도 통하겠지...
창구에는 "플라시도 도밍고"를 찜쪄먹게 생긴 미남 콧수염 아저씨가
나를 보고 정다운 눈웃음을 보낸다.
매일같이 딸과 함께 밀라노에 나가는걸 눈여겨 보고
"니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저 여자는 엄마냐? 아니면 언니냐?"등등등...
여러 가지로 궁금해하던 바로 그 도밍고 아저씨였다.
도밍고 아저씨의 친절한 웃음을 보자 갑자기 용기백배 해 진 나는 창구로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최대한의 상냥함과 혀를 있는대로 굴린 애교있는 목소리로
"Buon Giorno"와" Milano"를 외치고는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도밍고 아저씨는 한 마디에 척 알아듣는다.
역시...궁 하면 통 한다는 속담이 사실임을 확인한 나는
의기양양.. 손가락으로 승리의 V 자를 그리며" Due"하면서 일만 리라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러니까 도밍고 아저씨가 차표 두장과 거스름돈을 쓱 내미는게 아닌가?
우와!!!나는 결국 해 내고야 말았어!!!
그런데...그렇게 흐뭇해 하고 있는내게..도밍고 아저씨가 말을 걸어오는게 아닌가?
평소에..엄마는 이태리말 못한다고 딸이 분명히 말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잖게 당황 스러웠지만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었다.
잘 알아들을수는 없었지만 Lei 는 어디가고 너 혼자서 밀라노에 가느냐???
짐작컨데 그런걸 묻는것 같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그렇다고 대답 한마디도 못한다면 얼마나 창피스러운 일인가?
나는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Lei ?아!! 오찌 꽁꼬르쏘...아우디찌오네..하고 들은 풍월을 읊어댔다.
그런 나의 언어 배열을 도밍고 아저씨는 단번에 척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잘 다녀 오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태리말도 별거 아니란 사실을..
.
흐흐흐.나는 역시 똑똑한 편인가 봐!!!
혼자서 해 냈다는 자부심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때 친절한 홍대아빠가 도착했다.
차표를 미리 사 두었으므로 우리는 시간 맟추어 도착한 기차를 타고...
..
(이태리 기차..시간 제 멋대로임)
전철을 타고...
뜨람을 타고...
돌고..돌고..돌아서..드디어 밀라노 한인 순교자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안에는 이미 도착한 신자들이 조용히 묵상을하며 경건한 몸가짐을 한체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의 미사집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의 환영식도 끝이났다
성당밖으로 나오자 정다운 얼굴들이 삼삼오오 마주서서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얼마나 보기좋은 모습인가?
힘들고 고달픈 외국생활에서 서로 위로가 되고 힘이되고 도움이 되어 사랑을 함께 나누는
밀라노 성당 식구들이 참으로 고맙고 대견해 보였다.
멀리..로디에 살고 있는 태모씨 내외도 나를보자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했다.
성준이의 감기때문에 식구들이 함께 고생했는지 부부가 전보다 더 핼쓱해 보였다.
언제 보아도 겸손하고 예의바른 태모씨 부부의 훌륭한 태도에 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따뜻한 차와 커피가 기다리는 친교실로 향했다.
친교실에서는 신자들의 한주간 소식과 고국의 톱뉴스..거기다 연예가 중계에까지...
각가지 재미난 소식을 명 MC인 택승이 아빠가 구수하고도 명쾌한 입담으로 풀어놓고 있었다
편안하고 재미있는 택승이 아빠의 재담이 ...
고생..고생 ...
차 없는 설음 겪어가며 성당에 나온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신부님의 강복으로 친교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연준이도 때 맟춰 도착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언제나 편안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사람좋은 구열씨가
나를 보자 반갑게 손을 붙잡으며 나눔지에 실을 원고를 부탁했다.
세상에나...이게 무슨 날벼락이라니???
엄마가 벌써 50 하고도 중반인 나이에 글이라니 당치도 않게스리.....
아무리 어불성설 이라며 팔을 휘졌는 내게 끈질긴 구열씨는 물러날줄 모르는양 ..
밀라노 성당 신자의 의무운.운. 해가며 사람을 옴싹달싹 못하게 옳아매는 것이었다 .
게다가...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젊은이들의 집산지 밀라노성당 나눔지에 어찌 감히 글을 쓸수가???
난감해 하는 내게 엄마도 4/1신자니까 임무완수 책임이 있다고 옆에서 북치고 장구까지 치는 사태가...
에고 ...어쩬대니? 꼭 .꼭.해야한다면 어쩌지?
까짓거...그래 좋아!!! 내 사전에도 불가능은 없다!!!
쓰다가 안되면 ...연준이라도 도와줄것이고...그도 저도 안되면 유행가 가사라도 적어서 내야지....
난감하기 짝이없는 숙제를 받아가지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딸과 함께 이차.저차.삼차를 번갈아 갈아타며 간간히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차가 있으면 30분이면 도착하는 집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3번이나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에다
외곽지대를 빙빙둘러 다녀야 하니 2시간은 넘게 고생을 해야 집에 올수있으니
"확 죽어서 차나 되어버릴까보다 "하는 딸의 넋두리가 실감나는 하루였다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우리집이 최고야!!!
우리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피곤한 몸을 뜨거운 커피와 차거운 콜라로 번갈아 달래며
구열씨의 과제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그런데 아니...
우째 이런 일이???
도와줄것 처럼 옆에서 바람잡이 노릇까지 했던 우리딸 연준이가
나몰라라 하고 돌변해 버리는게 아닌가?
숙제는 엄마가 받았고...고로 받은 사람이 해결해야 된다는...
자기는 뭐 디플로마 준비때문에 머리가 터져 죽을 판에 한가하게 엄마 숙제까지
도와줄 시간이 어디있냐는 완전 배신때리는 얄미운 딸래미...
생 떼 같은 딸의 괘변에 나는 완전 덤테기를 쓴 기분이였다.
뭐 엄마가 글도 잘쓰고 못하는거 빼놓고 다 잘한다고 ..어쩌고 저쩌고...하며
옆에서 부추길때 알아봤어야 하는건데...얄미운 기집애..
"너 아까 구열씨 있을때는 엄마 도와준다더니만 ...그러고도 내 딸 맞어?"
"엉 아까는 엄마 도와줄라 그랬는데 ..엄마 숙제니까 엄마가 해야지 안그래 엄마? 히히히"
나는 괘씸한 생각에 어쩔줄을 몰랐다
딸년은 소용 없어 지 좋은대로만 생각 하고...
역시 우리 준원이가 최고지 ...에구..우리 준원이 보러 빨리 한국에나 가야지....
우리 준원이가 태어나기 전엔 장.장. 26년간...
연준이가 온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지만..
이제는 비교할수 조차 없는 라이벌인 어린 왕자가 태어난 것이다
왕자라기보다 제왕이라고 해야 할 판인 예쁜 손주 준원이...
나는 딸에게 상한 마음을 달래려 비디오를 튼다.
준원이나 유나 앞에선 언제나 자기자신이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는 기정사실을 잘 알고 있는 딸은
괜히 악보를 펴놓고 공부 하는체 하면서 슬쩍슬쩍 비디오를 훔쳐보며 엄마 눈치를 살핀다.
흥...그러면 누가 모를줄 알고???
나는 딸이 못보게 TV를 막아 앉으며 화난 사실을 확실하게 몸으로 보여준다.
안달이 난 딸의 마음을 읽을수 없는 TV는 충실히 제 몫의 일을 해 내고 있는 것이다
화면 속에는 두살배기 예쁜 준원이가...
우리집안의 보배 납짝코 준원이가 온갖 재롱을 다 부리며 다가온다.
화면에는...얄미운 딸 연준이가 준원이에게 옛날 얘기며 동물 울음이며...
자기가 무슨 구연 동화가인 양 폼을 잡고 있다
준원아!준원아!
늑대가 어떻게 우는가 하면 이렇게 우는거야....아우~~~하고...
딸은 두 손으로 허공을 긇어대며 하늘을 쳐다보며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고모따라 해 보라고 준원이를 부추긴다.
예쁜 준원이는 어느새 고개를 쳐들고 "아우~~~아우~~~"하며 고모를 금방 따라한다.
"아이구!!예쁜 준원이는 똑똑도 하지!!! 고모따라 금방 잘도 하네"
준원아!!!음메~~~하는 송아지 있지? 송아지는 이렇게 우는거야
음메~~~음메~~~ 따라해봐
"음메~~~"
"옳지 옳지 잘한다 !!! 그럼..삐약삐약 노랑 병아리는 어떻게 울까?
준원이는 금방 따라 운다 "삐약~~~삐약~~~
옳지 옳지 잘한다 !!!그 다음에 야옹이는 어떻게 울더라? 야옹이 우는거 해봐봐!!
이제는 가르켜 주고 자시고가 없다 준원이는 금방 "야옹~~~야옹~~~금방 대답한다.
옳지 백점!!!우리 준원이 백점이예요..너무 너무 똑똑해 우리 준원이 !!!
그럼 꿀꿀..꿀돼지는 어떻게 울까요???
"꿀돼지는 꿀.꿀.꿀. 울어"
"옳지 옳지 잘한다!!! 자~~그럼 멍멍이 어떻게 우나 해봐.. 멍멍이...
"멍멍이는~~~ 멍.멍.멍.울어...."
준원이는 소리를 내며 작은 입을 오무린다.
"아유~~~예쁜 준원이 너무 너무 잘하네 !!그럼 이번에는 아주 쉬운거....
"자~~ 강아지는 어떻게 울까요???
"강아지? 준원이는 한참 눈망울을 굴리다가 자신있게 대답한다
"강아지는 강.강.강.울어"
그 꼴을 보고 있던 집안식구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잘한다고
예쁘다고 똑똑하다고 난리법석이다.
여우같은 연준이는 제 조카를 잠시도 그냥 안둔다.
"그럼..이번에는 어려운거 아주 쬐끔 어려운거...여우는 어떻게 울까요?생각해봐 준원아..."
갸웃갸웃 생각하던 준원이..
"여우? 으응~~~여우는 여~~~우~~~~울지"
식구들은 하하 호호 콜록콜록 켁켁켁...
기침에 가래에 눈물에 콧물까지 흘려가며 죽겠다고 웃는다.
얄미운 고모는 ...그럼 이제 마지막인데...정말 어렵거든???
근데..우리 예쁜 준원이는 잘 알아 맞출수 있을꺼야 그치?
준원아 ..코끼리 있지 코끼리...코가 이따만 하고 몸이 이따만한 짐승 코끼리는 어떻게 울까?
갸웃 갸웃 고개를 흔들던 준원이 드디어 ...
"고모!! 코끼리는 코~끼~리~하고울어"한다.
"잘한다!!! 잘해!!! 이기 이기 뉘집 손주인고?"
식구들은 요절 복통해가며..
준원이의 조그만 궁둥이를 돌아가며 장구치듯 두드려댄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들이 그 꼴을 보고 제 동생을 야단친다.
"너는 왜 어린애가 헷갈리게 이상한 답을 유도해서 스트레스 주냐?"고...
그런 핀잔에 고모는 대답한다
"오빠!!조카 똑똑하게 만들어주느라 수고하고 있구만 칭찬은 못해줄망정 왜 야단쳐?"
"아니...이게 애 똑똑하게 만드는거냐? 애 바보 만드는거지? 강강강이 뭐냐?"
"오빠는 ..도대체 왜그래?
꿀꿀이는 꿀.꿀.꿀.
멍멍이는 멍.멍.멍.
강아지는 강.강.강.....다 맞는데 왜 그래?"
영문도 모르는 준원이는 제 아빠가 화가 났건 말건 강.강.강. 하며온 집안을 뛰어 다닌다.
화면속의 준원이의 재롱을 보고 있자니 딸에 대한 감정과 숙제에 대한 걱정은
봄 눈녹듯 사라지고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간다.
이제 우리 준원이가 한국나이로 여섯살....(95년3월1일생)
작년까지 준원이는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나비천사인 고모와 꽃다발을 들고 결혼하는게 꿈이었다
준원이는 고모가 피터팬에 나오는 요정 팅커벨을 닮았다며
고모를 부를때는 언제나 나비천사라고 부른다
유리 막대기를 휘두르면 별이 쏟아지는 신기한 나비천사 연준이고모..
그런데 귀국하는 고모가 꽃다발을 가져오지 않아서 결혼식 못한다고
마중나간 공항 대합실에서 울고불고 나 딩군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누가 알았으랴...지금은 영재삐아제 유아원의 미술 선생님으로 상대가 바뀔줄이야....
그렇게 상대가 바뀌어지고 찬 밥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진 고모가
안달복달 고민해 가며 귀국 인편에 한아름씩(100개)사보내는 쵸코렛의 위력에도 끄떡없이
준원이 마음은 점점 미술선생님에게 빠지고 있었으니...
국제 전화 할때마다 내딸은 준원이에게 나는 어떻하냐고 통사정에 애원이다.
"준원아!!!고모랑 결혼하자~~
이번엔 꼭 꽃다발 갖고 갈테니까...그러니까 이번엔 고모랑 꼭 결혼하는거다..
이번에는..진짜로 준원이 결혼식 구두도 사 가지고 갈께.."하고 아양을 떨어대는 고모한테
야속한 준원이는 자기네 미술 선생님 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고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벌써 ...밀라노에 온지가 3개월..
나를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준원이다.
왜냐하면 ...이웃 장난감 가게에 새로나온 로보트며 사이보그 .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경주용 자동차들이 준원이를 유혹하기때문이다.
호랑에 제 아빠의 무서운 얼굴도 할머니 앞에서는 꼼짝을 못한다는 사실을
똑똑한 준원이가 왜 모르겠는가?
아기때 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준원이 특유의 냄새를 솔솔 피우며
오늘만 할머니와 자 줄께 하며 선심을 써가며 침대를 파고들던 예쁜손주 준원이!!!
포대기만 보면 어부바 해 달라며 등에 매달리던 손녀딸 유나!!!
말없고 착하기론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아들과 며느리...
마누라가 원 하는건 무엇이던지 군말 없이 들어주는 사랑하는 남편...
동네어귀시장 아줌마들의 얼굴까지 정답게 느껴지는 금호동으로..
나는이제 18일이면 돌아가게 된다.
밤은 깊어 정적이 깔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신세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신세를 언제 다 갚을꼬?
5년 동안...늘 크고 작은 일 있을때 마다
많은 기도와 염려로 아버지처럼 돌봐주셨던 김도율 쥬세뻬신부님!!!
성당 갈 때마다 전화해서 같이가자며 승용차로 편히 데려다 주던 명랑한 친교부장 태성씨..
구역장이란 죄로 무,배추 배달에서 부터 크고 작은 어려운 부탁까지
한번도 거절 않고 들어주던 착한 건우씨 내외...
쌀 떨어질 만 하면 5K 무거운 쌀봉지 몇개씩 포개서 가져다 주던 듬직한 준석씨...
또 음악적으로 부족한 연준이에게 격려와 성원으로 말없이 도와주는 태모씨와 얌전한 태연씨..
그리고 정작 어렵고 힘들때에 조언과 질책을 아끼지 않고
보살펴 주고 챙겨주며 이끌어 주던 건민엄마 유리씨...
연준이는 차가없어 무우 배추 사먹기 힘들거라며
인스부륵에서 밀라노 오실때 마다 김치거리 한차 가득 실어다 주시던 고마우신 신부님 !!!!!
그 외 ...이름을 거론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수 없이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연준이가 어떻게 유학생활을 잘 할수 있었을까?
석달을 함께 지내다 훌쩍 돌아가지만 ..
이번 만큼은 그 전과 달리 발걸음이 가벼울것 같다.
왜냐하면 새로 오신 신부님께서는 진정 마음을 비우시고
신자들과 하나 되시기를 바라는 분이기 때문이다.
온갖 어려운 일 그리고 어떤 도움이라도 필요한 사람은 언제던 신부님께 연락만 해주면
밤이던 낮이던 지체없이 달려가 신자들을 위해 몸바쳐 살겠다는 신부님이 계시기에...
나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만능 해결사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 해 내실수 있는
장 병배 베드로신부님을 믿고 기쁜 맘으로 돌아갈 것이다.
밀라노 성당 교우 여러분 너무 너무 감사 합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그리고 신부님!!!!우리 연준이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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