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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조이의 미쿡 학교 생활

준원이의 스티븐슨 스쿨

 

 

                                                                                                                 2001년 12월

                                                                               
95년 3월 1일 .  

우리나라의 국경일에 우리 준원이는 태어났다.


올해 일곱살인 준원이는 덩치로 보아선 초등학교에 가야 하지만
하루사이를 놓고  여덟살이되어서 들어갈수도 있다기에

나는 아주 다행으로 생각했다.


애미는 한살이라도 어릴때 학교를 넣어야

나중에 재수를 하더라도 손해가 없다고 말 하지만
내 생각은 그게 아니다.


왜 일년이라도 먼저 학교에 보내 고생을 시키는가

학교에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고생문이 훤한데 

여덟살에 보내자고 벅벅우겼다
앞으로 일년동안은 아무것도 생각 않고

준원이를  실컷 놀리는게 내 목적이라고 할까?
그리하여 우리는7월 2일  준원이와 나는홀가분한 마음으로 

 미국을 향해  떠나올수 있었다.


어릴때 부터 내 등에 업혀

외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풍물을 접해온 준원이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갔다온 곳은 어디든지 

잊지 않고 기억해 내는 재주가 있었다.

 

두돌때 부터 준원이는 할머니를 따라 

고모가 있는 이태리나 

 삼촌이 있는 시카고를 드나들기 벌써 여섯해.
준원이와 나는 한해의 절반은 외국에서 보내기에

반은 외국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어린 준원이가 제 부모와 떨어져

 외국으로 자주  다니다 보니  한가지  내 큰걱정은 
준원이 나이에 알아야 할 기초적인  한글이나 수개념등을 

제대로 못배우게 된것이 제일 아쉬움이 었다


그래도 준원이는 엄마 아빠가 아무리 붙잡아도

어디든지 할머니가 가는 곳이면
앞장서서 떠나기 때문에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들었다.

 

거기다 이태리나 시카고에 한번씩 다녀 올때마다

몰라보게 부쩍부쩍 자라 주어서 

귀국하면 이웃사람들이  몰라볼 지경이였다
.

한국에 있으면 일년내내  편도선이 붓고 고열에 시달려서

밤이면 늑대우는 소리를하기 예사고

한달이면 20일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준원이도
어쩐일인지 영하 20도가 넘는 혹독한 시카고 추위에는

감기한번 걸린적이  없고
이태리에서도  구창나서 치과병원에 한번 다녀온 외에는 

아프기는 커녕  병원신세 질까봐

여행할때 마다 들어논 보험은 쓰일곳 없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준원이는 완전히  외국에서 살팔잔가

의아 해질 정도로 또래 아이들 같지않게

엄마 아빠 보고싶다고 보채거나

집에 가지는 말은 한번도 한적이 없다
.

너무 잘 먹고 너무  건강하게 쑥쑥 자라는게

보기만해도 재미가 날지경이었다.
어릴때부터  유난히 국수를 좋아하던 준원이는

스파게티며  라자니아  진하고 고소한

이태리 무공해 우유며 요구르트 치즈, 

그리고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하며 ,

거기다  고모가 만들어 주는 맛있는 이태리 음식을

그렇게 좋아할수가 없었다.


한국과 같은  4계절 구분이 확실한  이태리는

 편안히 여행하기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이태리에서  아쉬운것은

어린 준원이가 어른처럼 오래 참지 못하는

용변볼 화장실 이 귀하다는거 외에는.....


준원이는 이태리 여러곳을 

 해마다  여행하고  독일이며  스위스며 

특히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룩은 수도원에서 방을잡아
그곳에서 공부 하시는  학사님들  부제님들 

여러 신부님들과 한동안 지내다 올때가 많았고
거기다 서품식이 있을땐 꼭 들러리로 초대받아 가곤해서

정말 정이많이 들었었다.


어린 준원이는 밀라노에 없는  버거킹 가게를 보면
 "저거내꺼!  저거내꺼! "하곤 소리쳐서 신부님들을 곳잘 웃기고
 하늘에 핼리콥터만 지나가도 "저거내꺼  저거 내꺼 해서"

 별명이 " 저거내꺼 " 였다.


거기다 신부님들은 좋은집 멋있는 성이라도 지나치려면
" 준원아 저거 니꺼제? "하고 "
 "이것도 준원이꺼"
 "저것도 준원이꺼"  하면
"맞어 맞어" 하고 좋아 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곱살이 되었네.


미국에선 미국대로  삼촌이 쉬는 날이면

우리 세식구는  일류 요리사들의 음식을 먹으러
유명 레스토랑을 찾아 다니는게 일과여서 그런지

준원이는 유난히 입맛이 예민한  완전 미식가였다.


[그것도 준원이 삼촌은 바로 유명한 프랑스요리사 이기때문에 

 남의 요리를 맛봐야 공부가 된다고 해서......]


어느날은 멕시칸 음식,
어떤날은 아르헨티나 음식,
또 어떤때는 프랑스요리 

 
그리고 노스웨스턴 대학교옆 뚝방깊옆에 있는 맆가게에서

 한시간씩 줄을서며  식도락을 즐기다 보니
이쁘고 얄쌍하던 꽃미남 준원이는

어느날인가 부터  미륵부처를 닮아가려는지
턱밑이 둥그스레 해지고 콧대가 주저앉은것 처럼 

두 뺨이  퉁퉁해 지는게
아무래도 집에 가면 아들 며느리 한테 혼날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거기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바지 하나를 사면
한달이면 바지단을 뜯어서 내려야 할만큼

 키도 부쩍부쩍 자라는거였다.

 

마침 집앞 오피스 건물에 아파트 주민을 위한 수영장이 있는데
풀은 국제 규격이라 너무나 넓고 깨끗하지만

수영하는사람은 아무리 많아야 스므명 정도나 될까?

준원이는 7월2일 미국에 도착하자말자 놀이방에 보내서
미국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하고

오후다섯시 이후엔 8시 까지 수영장에서 보내기로 했다. 


수영장에간 첫날 ...

어린이들이 노는곳을 조금 벗어나자

그만 깊은 물속으로 빠져 허우적 거리는데

나는 준원이를 건지러 뛰어 들었는데 물이 너무 깊어 같이 허우적 대다가

옆집에 사는 인도총각이 우리를 건져줬다.

그래서 아들이 거금 들여사준 쎌폰 물에 빠져 새로 장만할수 밖에....

 

그후로 물을 두려워 하던 준원이도 어느날 부터인가

혼자 익힌 솜씨로 수영도 썩잘하고 다이빙이며 잠수도 곧잘하더니

수영선수처럼 멋진 폼으로 어른들과 레이스도 하고 아주 물개가 다 되버렸다.

 

피부가 하얗고 인물이 준수해서 보는사람마다  귀공자 같다고들 했는데
지금은 하얀곳이 이빨밖에 없는게 그냥 깜둥이가 다 되어바렸다.

 

수영장은 보호자로 따라온 부모들이 쎈텐을 하고

아이들은 수정같이 깨끗한 물에서 신나게 놀고
그때마다  나는 한국에 두고온 유나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

 

유나도 이민가방에 넣어서라도 데리고 올껄 하고...


7.8월이 가고 새학기가 시작 될때 까지

비싼돈을 내고 놀이방에 다니던  준원이에게
학교유치원을 이용해 보려고 나는 용기를 내어

 집부근의 스티븐슨 학교를 찾아갔다.


마침 한국말을 하는 여자 선생님이 계셔서

통역을 부탁해서 교장 선생님과 만났고
방문객도 학교 유치원을 다닐수 있느냐?

우리 아이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달라고 떼를 쓴 끝에

 허락을 받은것이 95년 3/1일이 생일인데 생일이 지났기 때문에

킨더가튼은 안돼고 초등 학교 일학년으로 가야된다나?


세상에  말도 안돼
기절초풍 한다더니 이를 두고 한말이 아닐까?
나는 너무나 놀라  진짜로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준원이는 아직도  한글도 못뗀판에

영어라곤  아니 에,비, 씨, 라곤 도통 구경도 못해본  아인데 학교라니?....
준비물이 적힌 프린트 종이  한장을 주시며  선생님은

내일부터 준원이를 학교에 보내라고 하시는데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였다.

 

그리고 한가지 학교를 다닐려면 미국이 원하는 예방접종을 해야하는데

그것이 자그마치 4개의 예방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가정의학과병원에가서 한꺼번에 4대의 예방주사를

거금 400$을 주고 맞으면서

한국의 의료보험이 얼마나 싸고 좋은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리한 예방접종으로 밤새 열이 펄펄 나는 준원이가 어찌나 안쓰럽던지

내가 대신 아픈게 낫지...
어쨌던 입학에 필요한 준비물을 다 챙겨놓고

나는 밤새 준원이에게 에이,비 씨를 가르쳤다.


웬일 인지 준원이도 급한꼴을 이해했는지

꾸벅꾸벅 졸면서 알파벳을  하룻만에  독파했다.

그 이튿날  출근을 조금 늦춘  삼촌과 손을잡고 걸어가던 준원이는
뒤쳐져 걸어가는 내게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눈짓을 보낸다.


유치원 하고 똑같으니까 학교도 재미있게 노는 곳이니 울지 말라고 하고
일학년 3반 교실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선생님을 따라 갔다.

담임 선생님은  준원이가 한국아인걸 알아보고
같은반에 다혜란 한국아이를 불러 옆에 앉히고 통역해주라고 

그리고 잘 돌봐주라고 하셨다.

 
입실할때는 고삐맨 송아지 처럼 버팅기며 끌려들어가더니

하교할때 데릴러 갔더니만 싱글벙글 웃는걸 보니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루를 학교에 다녀온 준원이는 말한마디 못하면서도 재미있어 하고

한반은 14명이라며 새로 사귀게될 

친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튿날 부터 일등으로 학교에가서  자기반 자리에 줄을 서면 

늦게온 친구들이 슬쩍 준원이 앞에 서버려도 아무말 못하더니
한달쯤 지나자 누가 새치기 라도 할라치면 단호하게 no를 외친다 .

 

" 네가 늦었으니 go! back ! "해라하고
하이고 세상에!
신통 하기도 하지 !
준원이가 말귀를 알아 듣는 모양이네?
나는 밤을 세워  자리에 누워서도 스펠링 외우기 뜻 알기   파닉스 등 

준원이가 학교 에서 바보 될까봐 온갖신경을 다 썼다.


스티븐슨 학교엔 다혜 말고도  같은반에

4월 달에 이민온 애니란 한국여자애가 있었는데
말도 안통하고 여러가지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문제학생으로 부모님이 교장 선생님께 

자주 불려가고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경우

문제아동 반으로 옮기겠다는 서약까지 한상태였다.


바로 이웃에 있기때문에  같은 수영장에서 늘 만나고 ,
그리고 준원이가 학기 시작한지 일주일 후에

그 애니 엄마의 도움으로 학교에 입학하게 되어서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고 있었다.


애니는 준원이를 곧잘 괴롭히고

자기 잘못을 준원이 에게 떠넘기기,일수여도
착한 준원이는 애니가 집에서 혼날까봐

대신 죄를 뒤집어 쓰곤 한 모양이다.


한번은 학교의 에프터스쿨에서,

옆 테이블의 여자애가 썩잘만든  조각그림을

애니가 이마로 받아서 깨버려서 선생님이  누가 그랬냐니까

겁이난 애니는 준원이가 그랬다고 핑계를 대고
말이 서툴던 준원이도  자기가 실수로 그랬다고 시인을 한 상태라서

선생님이  내일 학교에 할머니를 모셔 오라고 하니까
준원이는 집에 와서 그동안 

애니대신 여러번 억울하게  꾸중들은 이야길 하는거였다

 

깜짝놀란 나는 왜 그동안 그런말을 숨기고서

 나쁜학생으로 보였느냐고  묻자 준원이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애니누나가  한번만 더 잘못하면 그 학교에 못 다니게된데 ,
그리고 나는 잘못해도 할머니가  그러면 안된다고 말로 타이르지만
애니누나가 잘못한거 알면 엄마아빠가 죽도록 때리기 때문에 

누나네 엄마 아빠가 폴리스 한테 잡혀가면 안되잔아?

그러니까 조그만 것은 내가 잘못했다 그래도 괜찬아 

할머니는 내가 착한거 다 알잖어? " 하는게 아닌가?


하루는 농구공에 맞아 왼쪽눈이 퉁퉁부어 반은 감겨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나와 서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학교에서도 널스가 치료 까지 해주고 안대까지 매주었는데

며칠동안 눈때문에 고생해도 그게 애니때문에 그런줄 몰랐다.

애니가  보기에도 준원이가 너무 많이 다친것 같으니까

죠셉이 그랬다고 거짓말 하래서

놀라서 묻는 내게 준원이는 전학간 죠셉이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

 

세상에 무슨 이런일이?
나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올 정도였다.


 

그 얌전하고 상냥한 애니 엄마가 나를 친정 엄마 처럼 따르고,
모르는것 학교 숙제 같은건

밤늦은 시간에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하는처지에...
애니를 그냥두면 정말로 큰일 나겠다 싶어 

애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 하자 애니엄마는  죄송하다고
 어른인 자신도 준원이 보기가 부끄럽다고 하면서

애니를 사과하러 우리 집으로 보냈다.


그후로도 애니는 번번히 우리 준원이를 괴롭히고 

준원이는 여자니까 보호해 주는거라고

어른스런말로 나를 놀라게 하는거였다.

 

착한 준원이는

학교에서 규칙을 제일 잘지키는 아이로 상을 받았고
12월 학기 말에받은 통지표는 영어 말고는 모두가 A였다.

 

집에 돌아오는 12월 28일까지 학교 선생님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아이들보다 준원이 머리가 더 뛰어나니
지금에야 겨우 안정된 학교생활을 하는데

한국으로 돌아간다니 너무나 아깝다고

자꾸만 데리고 가지말라고 만류 하는거였다
.

그러나 비자가 만료되기 3일전

우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한국을 향해 돌릴수 밖에 없었다.


돌아 오면서 마지막으로

 제니스 선생님반 친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선생님은 동화책 한권과 치솔 과 치약을 선물 하셨다.


한국에 가서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과 잘 지내라는 카드와 함께...

6개월간의 미국생활
4개월간 다녔던 스티븐슨스쿨의 기억들이 새롭게 떠 오른다.


착한 준원이  계성학교에서도  모범적인 학생이 되어야 할텐데 ...
똑똑한 사람보단 착한 사람이 되길

 이 할머니는 준원이에게 부탁할께.

   
우리 가족 모두가 준원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 준원이도 잘알지?

 

착하고 올바르게 자라서 우리 가문을 빛내거라

화이팅 서.준.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