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우리 유나는 이제 4살 이지만 얼마나 똑똑하고 약삭 빠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식구는 유나를 벼락방망이 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서찾는” 이라고도 한다.
제 오빠가 집안에 장손이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걸 알고 그러는건지
어찌나 샘을 내고 제 오빠를 괴롭히는지 보고 있자면 참으로 가관이다.
아침에 학교 가는 오빠의 가방을 감추거나 신발을 감추는건 예사 보통이고..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오히려 자기 전에 준원이가 신발이랑 가방을
옥상 방 에 숨겨 놓아야 제시간에 스쿨버스를 타게된다.
하루라도 깜빡 했다간 벼락방망이 같은 유나가 준원이의 소지품을 어디다가 감췄는지
그 이튿날 아침에는 온 식구가 집안을 뒤져도 못 찾을 때가 허다하거니와
어디다가 숨겼는지 찾는것에 귀신인 유나 자신도 못 찾을 때가 많다.
세상에 별종도 따로 있지 내 손녀딸이 그런 별종 이라니..
.아주 벼락 하고도 방망이다...
어떨 땐 제 애비가 버릇 가르친다고 종아리도 때리고 어미랑 내가 유나를 붙들어 앉히고
좋은 말로 타일러 보건만 샘바리 유나는 오빠 꺼 라면 눈에 불을 켜고 무조건 감춰 버린다.
거기다가 빨래라도 해 놓으면 오빠 팬티는 무조건 제 꺼 라며
아예 한 대 여섯 장을 겹쳐서 입고 잔다.
외출 하려고 예쁜 원피스라도 입힐라치면 어느사이 설합을 열고 오빠 팬티
있는대로 끄집어 내서 걸치고는 원피스 밖으로 삐죽이 나온 팬티를 벋기 자면
신발장 앞에서 거품을 물고 까물어 쳐 넘어간다.
이거 내꺼야 오빠 꺼 아니야 하면서....
아니 세상에 집안에 애들이라곤 둘 뿐인데 ..
그렇다고 손자나 손녀를 차별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유나는 나이 터울도 있고 어리다고 해서 어찌나 집안 식구들이 예뻐하는데
왜 유나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어쩌다 준원이가 할머니 무릎에라도 앉을라 치면 발로 차고 밀치고
어디서 그런 역발산 기운이 나오는지 기어코 오빠를 제치고 무릎을 차지하고 만다.
그리고 준원이랑 말 하는걸 들어 보면 아주 기가차서 말이 안나온다
일단...준원이가 무슨 말만 했다하면
우선 반사 !!!부터 외쳐댄다
그러면 준원인 또 기가막혀서 "반사에 반사"그런다
서로가 반사 반사를 끝없이 외쳐대다가 어느순간 유나는 거울 하고 들이댄다
그꼴을 보고있자면 진짜 기도 안찬다
쬐끄만 어린것이 8살짜리 오빠를 이겨먹을랴고 눈에다 불을키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하다 하다 안되면 깍쟁이 유나는 무한반사를 외치고는 도망을 가버린다
우리가 숫자 이야기 하다가 이세상에서 제일 큰게 무한수라고 하는걸 언제 듣고서는
약삭빠르게도 반사에다 무한을 부쳐서 지 오빠기를 꺾어버린다
나이도 어린게 어디가서 그런말을 배워 오는지 그렇다고 어린이 집에 보냈다 치더라도
적재적소에 필요한말 같다 붙이자면 교육이 필요할터.....
아니 누가 4살짜리에게 그렇게 말 잘하게 교육을 시키는 건지
참으로 귀신이 곡 할 노릇이다
준원이와 유나 에게는 “우리”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 고모가 어쩌다 집에 전화하면 준원이는 그런다
“고모 내 집에는 언제와?”
“엉? 언제부터 우리 집 이 네 집 됐어? 나는 아직도 우리 집 인줄 알았는데....”
“엉? 아니야 이건 내 집이야”
“그래? 그럼 고모가 네 집에 언제 가도되는데? ”
“엉 고모 빨리 와 고모 맘대로 내 집에 오고 싶을 때 오면 돼”
“아이고 이젠 고모도 우리 집에 갈려면 준원이 허락 받고 가야 겠는 걸?”
“우리집 아니고 내집 이라니까 그래 고모는?”
이러고 말장난 하고 있으면 벼락같은 유나가 중간에 끼어든다
“흥 아니야 오빠집 아니고 내집이야”
“아니야 내가 먼저 태여 났으니까 내집이야”
“아니야 내가 먼저 태워났어 내집이야”
“그럼 니가 먼저 태여 났으면 왜 니가 동생이야 내가 먼저 태어 났으니까 오빠지”
“아니야 오빠 아니야 내가 오빠야”
“아니야 이 기집애야 내가 오빠야”
“아니야 내가 먼저 태워났고 내가 오빠야 그리고 또 내가 언니고 여기꺼 다 내꺼야”
“좋아 이 기집애야 다 니가 가져 그대신 할아버지 할머닌 내꺼야”
“아니야 내 할아버지야 내 할머니고”
“뭐 그럼 다 니 꺼야? 나쁜 기집애 ”
분을 못이긴 준원이는 두주먹을 움켜쥐고 인정사정 볼것 없이 유나를 마구 두들겨 팬다.
독종 유나는 두드려 맞으면서도 눈에다 불을 켜고 오빠를 노려 보면서
내 할아버지 내 할머니를 외쳐댄다
일학년 짜리 준원이는 다른건 다 용서를 하고 양보를 해도
유나가 내 할머니야 라고 하면 아주 정신을 잃고 만다.
일학년짜리 준원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언제나 문밖에 지키고 섰다가 5층까지 업고 올라가는 내가
온전히 자기의 할머니로 알고 있는데 생뚱맞게도 유나는 제 할머니라니....
그렇다고 정말로 유나가 할머니인 내게 잘 하는것도 아니다.
준원이는 어려서부터 고모나 삼촌한테 갈 때 마다 데리고 다녀서 이 할머니를
엄마보다 더 좋아하고 따른다.
하지만 유나는 기집애 라서 그런지 애미를 좋아하고 할머니가 손이라도 잡을라 치면
매정하게 뿌리쳐서 야속 하고 속 상 할때가 한두번이 아니건만 유독 오빠만 있으면
내 할머니를 소리높여 부르짖는다
애미가 볼일이 있어 집을 비우면 어쩌다 유나를 데리고
외출을 하거나 동창회나 모임에 데리고 갈때가 있다.
머리며 옷에다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 이쁘게 치장하고 데리고 가건만...
친구들 중에 나보다 더 이쁜 친구가 있으면 제 할머니는 아예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언제 봤냐는듯이 나를 뿌리치고
생판 모르는 다른 이쁜 할머니 품에 안겨 나를 외면해 버린다
언젠가... 발목이 으스러져 철심을 박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한테 찰싹 달라붙어 얼굴을 쓰다듬으며
쪽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해 대는 꼴을 보자니 어찌나 속이 터지던지
할머니친구가 다리가 아프니 무릎에 앉지말고 내려오라고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꼬시고 해도 들은 척도 않는 건 물론 이려니와 오히려
“나는 할머니 실러” 하며 발로 차는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친구들은 깔깔대고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하마터면 내 성질에 못이겨 그 자리에서 유나를 두들겨 패고싶은
마음을 다스리느라 입술에 이빨자국이 날때도 있었다
유나가 할머니를 별로 좋아 하지도 않으면서도
준원이와 맞붙어 열세에 몰리면 시도 때도 없이
내할머니를 외쳐대는 것은 순전히 시기심 때문이다.
밥을 먹다가...또는 테레비를 보고 놀고 있다가도
유나는 무슨 억화 심정 인지
갑자기 내할아버지 내 할머니를 외쳐대면
준원이는 펄떡 펄떡 뛰면서
아니야 아니야 이 기집애야
니 할머니 아니고 내 할머니야를 외쳐댄다
어떨때는 할머니 저놈의 기집애 어디다가 갔다버려 꼴도 보기싫어 하고 애원한다.
엄마는 왜 저런 동생 낳았냐고 매일 원망에 불평에 울상이다.
“니들은 왜 얼굴만 맞대면 싸우고 야단이니? 엉?”
“할머니 할아버지가 뭐 무슨 물건이야 니꺼 내꺼가 어딧어 같이 하면 되잖어 같이...”
“ 실러” 나는 내 할아버지고 내 할머니할 꼬야”
“또 그런다 또...
또 그딴 소리 한번만 해봐 혼날줄 알아 엉?
맨날 니꺼 내꺼 왜 찾는거야 엉? 엉?
또 한번 해봐 내꺼라고 엉? 몽둥이 여기 같다 놨으니까
한번만 그딴소리 더 해봐 둘다 마구 타작하듯이 패버릴 태니까 알어 몰라?“
“준원이 ..알어”
“유나......몰라”
“이눔의 가시나 몰라? 좋아 나는 니 할머니 아니니까 알아서 해
“나는... 이제부터 준원이 할머니만 할테니깐 나보고 할머니라고 불렀단 봐라
이제부턴 내 할머니라고 부르지 마 알았어?”
“아냐 몰랐어”
“좋아 난 이제 유나가 손녀딸 아니야 난 모르는 애야 나보고 아는채 하지마 엉?”
“실러 아는채 할 거야”
“니네 할머니 안한다니까 왜 그래 이눔의 가시나”
“실러 그럼 같이 할머니야 ”
“같이? 뭐가 같이 할머니야”
“할머니가 오빠랑 유나랑 같이 할머니라메? ”
나 원 참!!!
“그래 오냐 같이 할머니다 알았지?”
“이제 부턴 니꺼 내꺼 찾다가 둘다 혼나는 줄 알어 응?
무조건 모든 것 다 같이 하는거야 한번만 더 니꺼다 내꺼다 했단 봐라 ...“
어째서 요즘 아이들은 “우리”라는 말을 잘 쓰지 않을까?
우리집 우리삼촌 우리고모 우리 외갓집 우리작은집 ......
얼마나 아름답고 정다운 말 이던가 ?
우리 준원이와 유나는 서로가 주장한다.
내고모야 내삼촌이야 내집이야 내엄마야 내할머니야 하고.....
그렇게 니꺼 내꺼 찾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것만
모처럼 할머니를 잠자리에 차지한 유나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할머니~ 할머니는 오빠 할머니 아니고 내 할머니지?”
“오냐 그래 ..내가 유나 할머니 하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그걸 준원이 오빠가 알면 펄떡 펄떡 뛰다가 쓰러져 죽을 지도 몰라
그러니 나는 언제나 준원이랑 유나랑 다 같이 할머니란 말이야 알았어?
"치... 알았어 그럼 뭐 할수 없이 같이 할머니 해야지 뭐..."
하이고...요즘엔 할머니 노릇하기도 엄청 힘든 세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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