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언제나 아들집이라고 가다보면 휴대품은 적정킬로를 훨씬 초과 하게되고
그동안 쌓아놓은 마일리지로 카바하게된다
이번 역시 넘치는 짐을 꾸역꾸역 쑤셔 박아서 이민가방 두개
그래도 남는짐은 어른 하나가 들어가도 됨직한 초 울트라 베낭에다
그리고 핸드 케리어 에다 또 다시 크로스 백에다...
콜 벤에다 하나가득 싣고는
뒤로 메고 옆으로 걸고...
예행연습을 해 본결과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쉘퍼가 아니었나 할 정도였다
어쨌던 비행기 시간에 마춰서 작별은 해야 겠고...
남편과 현관에서 아쉬운 작별의 포옹을 끝내곤 공항으로 향했다
때 마침 일요일이라 아이들도 동반하고 새로 지은 인천공항 구경도 할겸
모두 한차에 타고 신나게 인천을 향해 달려갔다
친절한 콜벤 기사님 께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에
우리는 카트에다 짐을 실어 세관 검색대 까지 밀어다 놓고
며느리와 손주 녀석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할머니 빨리 갔다올께 ...."
"엉 할머니 한밤만 자고 빨리와"
언제나 이별은 눈물을 동반하고...어서 빨리 가라고 아이들 등을 떠밀어 보내고
여유만만
대한항공 우대 코너에서 짐을 부치려고 컨테이너에 이민 가방 하나를 올렸다
37kg
네...조금 오바 되었습니다.
마침 대한항공 담당자는 손에 묵주 반지를 끼고 있었다
저...아저씨 저도 신자예요 그리고 티켓팅 할때 짐을 초과해서 가져 간다고 했는데요?
아 네.... 그럼 봐 드려야죠
우선 여권과 비행기 티켓 이리주세요
네 ..여기....미리써논 출국 증명서기 끼어 있는 여권을 내밀었다
여권을 들여다 보던 담당자
"아니 아주머니...이거 짐 도로 내려 놓으세요"
"아니 왜요? 봐주신 다면서 갑자기 왜 이러시는거예요?"
"아..네...일단 짐을 내려논 다음에 이야기를 히시죠?"
"아니 미국에서 나한테 입국 금지를 시켰나요?"
(먼저번엔 비지니스도 아니면서 너무 자주 온다고 이민국에 잡혀가서
겨우 2주쳬류받은적 있었다 자주 가는게 뭔 죄여? 나쁜나라시키)
"아네...그게 아니고요...저..아주머니 여권이 ..."
"아니 제 여권이 뭐가 어떻다고 그래요?
아니 비자에 미국 오지말란 도장이라도 찍혔어요?"
"아 네...그게 아니구요.. 비자 때문에 아니고...
저기 아주머니 여권이 2001년 12월 31일로 만료가 되었네요?"
"네?????? 아니 그럼 난 어떻게요?
이 짐보따리 다 어쩌라구요?
그리고 오늘 가는줄 알고 우리 아들 공항에 마중 나온다 그랬는데
아니? 아니? 아니? 우째 이런일이?"
"그러게요 참 딱하네요
같이 온 식구들 없습니까? 이렇게 짐이 많아서 아주머니 혼자 움직이기가 힘드실텐데.."
하면서 컨베어 벨트에 저만큼 미끌어져간 짐보따리를 꺼내어 카터에다 도로 실어준다
역시나...천주교 신자는 어디가달라도 다릅니당^^*
"아이구 난 어떻게요 우리아들 이사 가는날 잡아놓고 있어서 빨리 가야 하는데..클났네"
"네...그럼 지금 빨리 종로 구청으로 가서 여권 신청하세요 거기가 제일 빠릅니다."
이렇게 하여...
태산같은 짐보따리를 공항택시에다 싣고 집으로 향할수 밖에..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우리남편 요한씨 시카고의 작은아들과 한판 통화중...
"너거 어머이 지금 떠났을께다 시간 마춰서 나가그라 " 어쩌고 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고 죽은사람 만난듯 반가워 죽을 지경인가보다
안간게..
못간게 그리 다행이라며 까짓거 며칠 있다가 가면 되는거지
결과는 참 자알했다~~~그랬었죠
에구....오며 가며 콜벤 불러서 갔다리 왔다리 거금 16만원 깨먹고 서리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 까지 받고 보니 어찌나 얼떨떨 하던지
그날 부터 종로구청 뛰어 다니며 온갖 애를 다 쓴끝에 초특급으로 급행료 까지 내었건만
해외여행 붐이 일어서 인지 거의 2주일 만에 겨우겨우 여권을 손에 쥐자 한시름 놓았더니만
거기다 더하여 비행기 마져 애를 먹이는거였다.
그것도 썸머스쿨 가는 초등학생들 때문에
비행기 마다 만석이어서 티켓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였다
그리하여 새로 여권을 발급 받아서 떠나기 까지
거의 20일 만에 시카고행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
이리하여 온갖 우여곡절 끝에 시카고에 도착한 나는
무사히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마치고 지하실 공사를 한국아저씨 에게 부탁한후
연준이가 메네스로 박사과정을 옮기기전 마지막으로 이태리 여행을 하기로 했다.
마침 둘째놈도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중이라
요리를 전공 하는 아들에게 이태리 요리의 본고장에서
맘껏 식도락을 즐기는것도 배움의 일종이라고
때마침 바캉스 철이라 없는 비행기표 거금을 들여 간신히 구해서
7월 14일
나는 한달 체류 하는걸로 하고
인석이와 여자 친구 그림이는 는 2주일후에 돌아 오는 비행기 표를
비수기의 몇배를 주고 마련했다
후유! 그것도 없어서 인터넷으로 수십군데 찾아본 끝에....
이년전 준원이와 4월에 갔을때는 27일 체류 왕복에 일인당 400불 줬건만은
이번엔 일인당 1300불 거의 세배 값이었다
14일 아침 일찍 인석이 후배 세훈이 총각이
우리를 오헤어 공항까지 라이드를 해준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태리가 어떤 나라인지 꿈에도 모르는 인석이는
"얌마..니는 유럽여행 못 가 봤지롱? "
하면서 세훈이를 있는대로 약을 올려대는 것이었다 .
하모! 니 이태리 안가봤제? 가보문 알끼라!
나는 속으로 쿡쿡 웃음이 나왔다,
.
95년 부터 매해 짧으면 두달 길면 여섯달을 이태리 에서 보낸 나는
가자 말자 실망할게 뻔한 아들이 꿈에 부풀어 여기 저기 전화하며
이태리로 바캉스 간다고 자랑하던게 조금은 측은해 보이기조차 했다 .
꿈에 부푼 이태리 여행...
하지만 일은 오헤어 공항에서 부터 벌어졌다.
전에와는 달리 테러 이후라서 검색도 심했고
출국하는 게이트도 훨씬 더 넓고
그전의 휴게소 자리까지 출국 검사대로 쓰고 있었다.
우리셋은 차례로 짐을 엑스레이 검색대에 올리고 게이트를 통과 하는데
하필이면 우리 아들 차례에 경보가 삑삑 거리고 울리는 거였다.
공항경찰이 득달같이 달려 들어 슬리퍼를 벋기고
신발 밑창까지 샅샅이 뒤지더니 그것도 부족한지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두다리를 벌리게 하고는 발바닥서 부터 머리 끝까지
이잡듯이 검색봉으로 휘저어 대는게 아닌가?
이건 마치 텔레비젼 활극에서
악질 범인잡아 문초하는거랑 조금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경찰 아저씨 웃으며 하는 말이
"아무 것도 아니고 그냥 무작위로 뽑아서 해 보는거라나?"
아무 것도 아니긴??? 이것들이 인종 차별 하나 싶었지만
약소 민족이 무작위로 당첨? 된게 잘못이지
어쩔수 없이 그것도 얼마나 웃기는지 나 정말 죽는줄 알았다.
다 큰아들 뿡가?[준원이 표현] 밑에도
똥꼬 밑에도 인정 사정 볼것없다 작정 했는지
여지 없이 검색봉을 무법자 처럼 찔러대기 휘둘러대기...
그래도 계속 계속 어디선가 띠.띠.띠.띠. 울려대는 금속성소리
도대체 이게 뭔일이여? 영문을 모르겠구만..
결국에 가서는 범인이 뭔고 하니? "비녀" 였다.
총각한테 웬 비녀? 라고 놀라겠지만...
하.하.하....그게 뭔고 하니
우리 아들녀석이 몇년동안 머리 컷트 값 아낀다고 기른것이
제법 등어리 까지 내려 오는것을 묶고 다니기도 등이 걸리적 거린다고
어제 부터 한나절 비녀 꽂는 법을 익혀서 중국 여자들 머리에 꽂는 것 같은
꼭 우리나라 뒤 꽂이 처럼 생긴 쇠 꼬챙이를 머리에 찔른게
고것이 검색대 통과할때 요란을 떨었지 뭔가?
나참 ...재수가 없을랴니 별일도 다 많지!
어쨋거나 비녀가 범인인걸 보자 경찰도 웃으며 바캉스 잘 갔다 오라는 인사를 하기에
한시름 놓고 선 런던행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타기 위해 17번 게이트를 찾아서
대기 하며 사방을 두리번 거리다 보니까
아 글쎄 .. 밀라노 직행이 19번 게이트에서 이미 탑승을 시작 하고 있었다.
왕 짜증이 난 나는 아들에게 푸념을 퍼부었다
다이렉트로 가는거 있는데 왜 영국 경유로 끊었냐고?
자기도 그러고 싶었지만 ..
런던 경유도 간신히 구했는데 왜 그러시냐면서
엄마가 런던은 한번도 못가봤다고 하시니까 이참에 영국도 구경하고
좋잖느냐고 얼렁뚱땅 애교를 부렸다.
할수 없지...
하기사 둘러가더라도 밀라노에 갈수 있다는걸 감사하게 생각 해야지 ...
마음을 접고 면세점에서 선물용 양주 한병을 구입한후
탑승 안내를 받고 비행기로 향하는데
아뿔사...
통로에 서있던 여자가 나를 보고 윙크를 하는듯 손가락을 까딱 거리면서 부르는게 아니가?
아니 나를?
me?
yes! you! plece come here!
그래 알아 들었다 왜 불러? 하고 가니까
짐을 내려 놓으랜다.
기내에 가지고 들어가는 핸드 캐리어며 핸드백이며 모조리 풀어 보는것이었다.
아들이 무슨 일이냐고 하니까? 그것도 또한 무작위로 해보는거래나?
나 원 참!
태러는 뭐 한국 사람이 했나? 왜 무작위로 뽑히는 사람이 꼭 우리 가족인가?
우리 패밀리가 범죄자 처럼 보이는건 아닐까?
내가 궁시렁 거리자 아들은
" 엄마! 쟤네들이 한국 사람들 치곤 너무나 근사하게 잘 생겨서
배아파서 그래 보는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ㅡ
그거 있잔아요 왜 못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하기사 그렇다면 모를까 걔들도 보는 눈은 있나부지?? ㅎㅎㅎ"
어찌 되었던 여행은 즐겁다고 했던가?
더구나 유럽 여행의 꿈에 부푼 우리 아들은 쉴새없이 여자친구와 속삭이는거였다.
그리기를 7시간 만에 런던에 도착 했는데
런던은 또 한 꼴불견 들로 공항이 붐비는 거였다
아니 찌는 칠월에 웬 파카에 버버리 코트에 ..
기내용 담요까지 몰래 가지고온 승객들이 터미널 1 에 득시글 거리는게 아닌가?
아무리 외국인들이 계절 감각에 무디다곤 하지만
여름철에 아무리 안개와 비로 젖어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까지 중무장을 하고 있나? 의아했다.
여유 있게 햄버거 하나씩 사 먹자고 한 우리셋은 맥도날드 가게에 줄을섰다.
장사진을 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차례가 된 우리는 너무나 비싼 런던 물가 땜에 단번에 기가 팍 죽어 버렸다.
글쎄 맥도날드 햄버거값이란게 ....
완전 미국의 세배가 아닌가?
아니!!!이노무 빌어묵을 나라가 미쳤나?
아니!!!우쨀라꼬 여행객 상대로 아주 떼돈 벌려고 작정을 했나?
거기다 파운드화가 강세라서 달러로 환산해 보니
에누리없이 3배.. 차라리 굶는게 났지 원 !
근데 다섯 시간을 무슨 수로 떼우나 하고 의자에 앉아
다른 여행객들 처럼 베낭을 베고 나몰라라 하고 눈을 감고 잠간 누워버렸다.
한 삼십분쯤 지났을까 ?
그때부터 조금씩 추워 지는게 나중에는 온 몸이 가만 있어도 중풍들린
아니..파킨스씨 병이라고 해야하나?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푸들 푸들 떨리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여행객들의 선견지명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짐을 비행기로 부치고 핸드 케리어 에는
식료품 조미료 라면 따위 뿐이었고
더구나 이태리의 여름 햇빛이 얼마나 위력이 큰지 모른다는 내 이야기에
우리 모두는 간편한 반소매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 었으니
런던 공항의 살인적인 추위와 습기는 한겨울을 방불케 했다.
아 그때야 깨달았다.
영국이 왜 버버리 코트가 유명하게 되었는가를
기내에서 담요라도 한장 슬쩍 해가지고 왔던들 이고생은 안할텐데....
옆의 의자를 보니 인석이와 그림이도
고픈배를 움켜 쥐고 몸은 최대한 오그라 붙이고 잠들어 있었다.
망할놈의 런던 날씨 같으니라고...욕을 욕을 해대며
기다리던 끝에 비행기를 탄지 한시간 만에
우리는 밀라노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엔 고등학생같은 나이의 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 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 가는 중이었다.
예쁘고 미끈 미끈하게 생긴 이탈리안들은 얼마나 재잘 거리던지
비행기에서 그렇게 장난 하는걸 난생 첨으로 보는것 같았다.
아마 한국 사람이 그런 행동 했다면 분명 경고처분에 도충하차 ?
아니 그게 아니고 비상문 열어 제키고 허공에다 던져 버리지 않았을까?
시끌시끌한 학생들이 줄지어 나간후
드디어 우리 가족 차례가 되었다.
출입국 관리는 아니꼬운 자세로
" 니들 한국 사람들이지? " 하고 물었다.
" 그래 한국사람이다 왜?"
아들이 영어로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미국에서 출발하기전 부터
이태리 사람들이 월드컵 때문에 흥분해서 있어서
한국사람들 테러 당할까봐 영사관에서 거리 나다니는걸 조심시켰다고 그래서
연준이도 일주일치 식료품을 사다 놓고 문밖을 못 나갔노라고 하던터다.
어! 그래도 영어로 당당하게 대꾸 하니까
이것들이 살짝 꼬리를 내리고
'너 월드컵 봤니? "하고 물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 나쁘다고 서툰 영어로 막 떠들어 대니까
아들이 젊잔케 말했다.
"그러냐? 너는 축구 좋아 하나본데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럭비를 좋아 하거던?
럭비 얼마나 멋지냐? 축구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랬더니 혼자 열을 내며 떠들던 놈이 머쓱 해져서 여행 잘하래나?
어쨋건 사건은 사건이다.
끝까지 가는데 마다 시비를 거네?
짐을 찾아서 카터에 실어야 하는데 분명히 우리나라 기업 삼성에서 기증한 수레를
왜 이태리 사람들이 돈받고 빌려 주는지 이해가 안된다.
이태리 여행을 자주한 나는 옛날에는 리라로 1000원인가 했는데
파운드로 바뀌니까 미쳐 준비가 안되 크레딧 카드로 카터를 빼냈다.
간신히 출국장으로 나오니까
와!~~~~~~~~
훅 하고 달려드는 찌는듯한 열기 !
이건뭐 얼었다 녹였다 완전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두리번 거리며 있던 우리를 발견한 연준이가
비행기 시간을 잘못 가르켜준 공항 직원 때문에 막 도착했다며 허겁지겁 뛰어 왔다.
"RHO" 까지 가려면 상당한 거리라서 택시비가 많이 나올꺼라며
자기 친구 하나를 섭외 했으니까 벤을 가지고 나갈테니 걱정 말라고 했던터라
이민 보따리 6개를 줄줄이 끌고 나오는데
웬 할아버지가 우리들을 보고 자꾸만 " 삐아체레" 를 외치고 있었다.
'설마 !!! 우리보고 그러는건 아니겠지? '
'저 할아버지 누구보고 저러는 거니?
우리보고 그러는거 같은데? '
'아는 사람이야? ' 하고 물으니 연준이는
"응 내 친구 할아버지 " 하는거 였다.
'니 친구의 할아버지?
'아이고 미안해라 삐아체레 "
[처음 뵙게되서 반갑습니다 그런뜻인것 같다 꼭 처음 만났을때만 하는 인사]
그리고 바치오도 해주고 거기다가 덤으로는 악수 까지 얹어서....
손주녀석 친구 땜에 수고 한다 싶어 인정사정 없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랬더니 그게 아니고 ..
할아버지가 연준이 친구랜다
"아니 저렇게 늙은 사람 하고 지금 니가 친구 하고 있단 말이야?
나는 젊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엄마는??? 친구가 뭐 나이로 사귀나?
나한테 잘 대해주고 많이 도와주면 그게 친구지.."
하기사 맞다.
차안에서 물어 보니까 72살 연준이 아버지랑 동갑내기다.
아주 친절하고 소박 하고 좋은데 말할때 마다 입에서 얼마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지 원 !
이탈리안들 머리도 자주 안감던데 거기다가 양치질도 제때 안하남?
나도 몰래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사십여분을 달려가자 RHO 라고 쓴 소박한 팻말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었다.
마쎄로니 할아버지는 우리를 집에 데려다 준다면서도
자기집앞에 차를 세우고 뭐라도 먹고 가야 한다며 한사코 붙잡아서
뿌리치지 못한 우리는 꾸어다 논 장닭처럼. 멀뚱 멀뚱..
말도 안통하는 할아버지 집에서 한시간을 눈치를 봤다.
빨리 집에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 했지만
어쩌랴.....
마쎄로니 할아버지의 허락없인 한발자국도 나갈수 없음을 깨닫고야 말았으니...
제 2 탄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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