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편린.31
1971년..
금호동으로 이사하고 2년이 지날 무렵부터 요한 씨가 운영하는 한의원은 공의생활로 익힌 양방진료와 한방을 겸한 세심한 진찰과 자상하고 친절한 설명으로 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8 식구의 대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요한 씨는 좁은 한의원에서의 갑갑함을 덜어내고 주변 금호동 사람들과의 안면을 익히기 위해 일요일이면 동호회를 따라 낚시를 다니면서 금호동의 내로라하는 터줏대감들과 교류를 나누기 시작했다.
3년 전에 개업한 40살의 젊은 한의사가 좁은 금호동에서 조금씩 이름을 떨치면서 환지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금호동에서 골목 안에서 오랜 세월 침술로 유명했던 X산한의원이 동업하던 동업자가 남편과 동창이었는데 동업을 접고 길가의 자기 빌딩으로 한의원을 옮겨가자 혼자힘으로 개업이 불가능 하게되자 환자를 잘 본다고 소문이 난 새내기 개업자인 요한씨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한의원 동업을 제의해 왔다.
금호동으로 우리가 이사 올 때만 해도 한적한 골목 안에서 개업하고 있던 XX한의원과 무쇠막의 간염 환자를 상대하던 한의원이 엄청 유명해 새벽부터 환지들이 나라비를 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환자가 줄을 선다는 한의원에서 요한 씨에게 동업을 하자는 제의가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건 아니라고 동업이란 영구한 게 아니고 언젠가는 갈라서게 되고 그럴 때는 서로 척을 지게 되니 우리는 이자리에서 열심히 환자를 보다 보면 우리 한의원도 줄을 서는 날이 올거라고 동업을 결사반대를 했었다.
요한 씨가 계속 망설이며 선뜻 허락을 하지 않자 그쪽에서는 점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같이 해보자고 졸랐고 누구환자가 많건 적건간에 매일매일의 수입의 반을 나누겠다는 조건에 요한 씨와 합의가 된 모양인지 그토록 말리는 1388번지 한의원 문을 닫고 폐업 중이던 골목 안으로 우리 한의원을 이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수입을 2등분 해서 가져오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것이 하루 수입이라고 가져오는 것이 일주일이면 우리의 한 달 수입에 버금가는 돈이었다.
옛 노인들 말씀에 아무리 어려워도 평생에 3번 맞이한다는 대운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반신반의하면서 이것이 우리에게 내려진 행운이라면 이 또한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며
내 집 마련을 위해 십원 한 장도 아껴 쓰면서 백만장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차곡차곡 돈을 모으며 우리도 멀지않아 훨훨 나는듯한 기와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사랑하는 손자에게 나의 뿌리알려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대집에 숨겨진 참담한 현실. (0) | 2025.03.08 |
---|---|
꿈에 그리던 내집을 드디어 마련했다 (2) | 2025.03.08 |
그해 겨울은 앵클부츠 가 있어 행복했네. (0) | 2025.02.22 |
성동유치원과 털신 에 담긴 추억. (0) | 2025.02.22 |
가족에게 덮친불행 폐결핵. (0) | 2025.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