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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메세지

일주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2024.8.12일

8월 5일 입원을 할 때 세실리아 아우님이 모든 수속을 도맡아 해준결과 간호통합 병실로 입원이 허락되었다.
병실에 퇴원환자가 생기면 차례로 배정되는데 어쩌면 입원비
하루 50 여 만원의 상급병실에 배정받을 수도 있다는 걸 들어 알고 있었는데 다행히 6인실이라 입원비 부담에서도 벗어나 얼 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환자복을 갈아입으니 내 수술
상담을 해 주던 교수님의 직속 부하직원이 남자 조력자 한사람과  나타나 난데없이 바리캉을
들고 와서 사근사근 웃는표정으로
죄송하지만 수술전 처치라며 뒷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로 나를 놀래켰다

목디스크 수술인데 뒷머리까지 바리캉으로 밀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꼭 깎아야 한다고
조심해서 수술할 만큼 아주 조금만 깎겠다고 하더니 뒤통수 전면을머리 꼭대기 가마있는데 까지 완전히 밀어버렸으니 이럴 어쩌나...
어차피 수술을 위한 것이니 디스크만 완치되면 삭발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바깥 출입할때 민둥산같이 쳐 올라간 뒷머리를 어찌해야하나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내일 있을 수술을 위해 오후 5시부터 물 한 방울도 먹으면 안 된다는 금식령이 떨어졌고 초저녁부터
옆침대 환자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밤새 잠도 설쳤다.

어슴프레 유리창이 밝아오는 6일
새벽 4시부터 간호사들이 드나들며 혈압재고 혈당 체크하고 수술용 주사기를 팔에 꽂아주고 부지런히 움직이더니 수술실로 가는 침대가 병실앞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니 수술에 대한 강박관염 때문에 성호도 못 긋고 기도도 못한 체 그저 두려움만 가득 안고 수술실에 도착하니 내가 1번 타자란다.
마취선생님이 오셔서 본인 확인하고
두세 가지 질문에 대답한 후  
지금부터 전신마취를 위한 주사와 패치를 붙일 텐데 편하게 잠을 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이마에다 반창고 같은 것을 붙여주었는데 천정의 전구 3개를 세다가 마취에 빠졌나 보다.

정신이 들어 수술실 문을 나오자
그때까지 수술현황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켜준 세실리아 님
형님 수술 잘 됐어요
깨어나서 고맙습니다 하며
눈물을 떨구는 모습이 전신마취에서 금방 깨어난 내 눈에도 천사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만 본 후
입원실로 들어갔더니 모두 놀라면서 반겨 주었다.
너무 오랫동안 수술실에서 나오지않아 불의의 사고를 당한건 아닐까 맘들을 졸이고 있는데 간호사가 내병실 물품들을 전부꺼내서 포장해 놓았기에
불안감이 컷다고 한다..
그래도 병실로 돌아와 주어서
고마운 일이라며 모두가 반겨주었다..

간호통합병실은 수술환자의 감염을 우려해서 가족면회도 안되고 지인이나 그 어떤 사람도 입원실로 통하는 문은 발을 들일수 없는
곳이라 전해줄 물건은 문밖에 두고
간호사들이 가져다주는 간병인이 필요 없고 전문지식을 갖춘 간호사들이 벨만 누르면 달려와 보살펴주니 일주일 동안 친절한 간호사들 덕분에 편히 지낼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의 목 디스크 수술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경추척수증 이라는 병명이었고  6시간에 걸쳐 수술이 진행되었는데
전신마취 후 수술 진행 중 갑작스러운
천식 기침을 멈추지 않아 수술이 중단될 위기에 빠졌었다고 한다. 4.5.6번 경추에 자라난 새부리 같은 뼈를 잘라내서 다시 제자리에 꽂아야 하는 정밀한 수술이라
기침이 심해  여러가지 응급처치로 겨우 수술을 마쳤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후유증이 생겨 응급병실에서 1시간 30분 상태를 살핀 후에야 병실로 이동했다고 한다..

우리 세실리아 구역장님은
7시간 넘게 진행된 수술실 앞에서 무사히 수술이 잘 끝나도록 가슴을 조려가 계속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데
이웃을 위해 그 기나긴 시간을
수술실 앞을 지키며 치유의 기도를 올리는 희생이 그 어떤 말로도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입원실로 돌아와 정신을 가다듬으니
그때까지 내 입속에 물고있던 원통형의 플라스틱을 간호사가 제거해 주었고 윗입술이 뒤집어 질 만큼 부풀어 있었다..

일주일 동안의 입원은 고통이 어찌나 심한지 진통제 없이 견딜 수가 없었고 간호사들도 아프면 바로바로 말하라고 아픈 걸 치료하는 과정이니
참지 말고 말하면 바로 진통제를 투약해 주겠다고 하는데 그 진통제가 마약과 같이 투여된다는데 마약이라는 말이 어찌나 꺼리던지..
어쨌거나 아플 때마다 벨을 누르면 쏜살같이 달려와 처치를 해 주는데
아픈 게 멈추고 반쯤의 수면상태에서 헛것을 보고 대화를 하거나 누워서 허공 중에 대고 허우적거리며 잠꼬대가 아닌 야무진 말씨로 중얼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면 같은 입원동기 다섯 명이 일어나 앉아 근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곤 했다.
내가 지금 한 행동은 진통을 멈추려고 투약한 마약주사를 맞아서 환상과 환영이 보여 나도 모르게 하는 짓이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드디어 퇴원하는 날 8월 12일..

12일 퇴원하는 날도 간호사들이
집에 가시면 상처가 커서 많이 아플 거라며 오른쪽 가슴에 마약패치를 붙여주며 3일 지나면
떼어 내라고 설명해 주었다.

입원수속뿐 아니라 퇴원수속도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11시부터 퇴원 수속이라고 알렸음에도 주차난이 심하니 일찍 와서 기다린다고 9시부터 병실 앞을 지키고 있는 세실리아 님이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퇴원 수속이 끝났을 때는 오후 2시가 되어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형님 무사히 퇴원해서 다행이라며 찌는듯한
복 더위에 나의 퇴원을 위해 5시간을 환자 대기실의 촘촘히 둘러앉은 환자들 틈에서 장시간을 기다려 준
세실리아 님은 내 눈에는 이미 날개 없는 천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일주일 동안 비워놨던 집은 퇴원하루 전 루시아반장님이 대청소와 걸레질로 얼마나 말끔히 치워놨던지 발 들어 밀기가 아까울 정도로 깨끗하고 정결스러웠다..

나의 퇴원에 맞춰 박혜자 헤레나 아우님이 소고기미역국을 한 냄비 끓이고 온갖 장아찌와 마늘장아찌
김치에다 오징어 듬뿍 넣은 맛깔난 김치전까지 부쳐와 제발 입맛 돌아와서 잘 먹어야 회복이 빠르다며
수술받느라 고생했다며 격려해 주는 모습이 왜 그리 아름답던지..
격려에 힘입어 미역국에 밥 두 수저 말아서 마늘장아찌랑 먹는데 장아찌가 어찌나 맛있던지 도망간 입맛이 조금은 돌아온 것 같았다.
퇴원하면 보신을 잘 해야한다며 몸보신에 좋다고 소문난 염소탕을 퇴근길에 사와서 직접 요리해준 우리 루시아 반장님..

점심을 먹고 나서 소파에 잠시누웠는데
우리 집 집주소를 물어물어 찾아온
성가대의 30년 지기 장원희수산나
유영순 다리아가 양손에 시장을 잔뜩 봐  과일이며 야채 심지어 영양 많은 콩물까지 한병들고와서  비어있던 냉장고를 가득 채워 주었다.
30여 년 동안 성가대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한 친동생 같은 수산나와 다리아
아플 때마다 어려운 일 당할 때마다 내 일인 양 달려가서 서로 위로하며 도닥거려 준 질긴 인연의 성가대식구들..

13일은 김마리아 자매님이
회복하는 데는 고기가 최고라고
자신도 불의의 사고로 다리뼈가 부러져 넉 달 동안 입원 했었는데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걸으면서 기계로 썬 고기가 아닌 부챗살을 손수 썰어서 불고기 3팩을 만들어 왔다.
성당반상회에서 인사를 나눌 때
김 마리아라고 했지만 교류가 없던 나는 소 닭 보듯 스쳐 지나다가
한 달 전쯤 초대받은 점심자리에서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눈 후
대화를 나누면서 너그럽고 푸근하고 이해심 넓은 덕성스런 사람이란 걸 알고 친밀감이 생겼고 깊은 신앙심과
올바른 가치관에 나도 몰래 마리아 자매님께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불편한 다리로 한참을 쉬고 또 쉬면서 들고 왔을 정성과 사랑이 담긴 불고기는 여전히 먹지 못해 어지럽고 떨리면서 비 오듯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바로 저혈당이다 싶어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워 물 2리터와 함께 미친 듯이 들이켜서 위기를 넘겼다..
미리 아파 본 마리아 아우님의 선견지명에 또다시 감사를 드린다..

자고 나면 또 다른 선물들이 문밖에 쌓이고 음식을 잘 넘기지 못하는
나를 보고 가더니 환자들의 영양식이라며 뉴케어 1 BOX를 택배로 보내왔다. 구수한 맛에 약간의 단맛이 첨가되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삼키기 좋은 뉴케어는 내게 딱 맞는 영양식이라 벌써 10팩이나 먹으면서...
작년 추석 무렵 당한 자동차사고로
오랫동안 병원생활 재활운동 후에도
완전치 못한 몸으로 무거운 보따리 들고 온 수산나에게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이 모든것들을 경험하며
하느님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늘 신호를 보내주시는게 아닐까 생각하게된다..

8월 15일 태극기를 계양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아침나절을 보낼 때
대녀 미카엘라가 찾아왔다.
면회가 안 되는 병실이라 해도 못 찾아본 것이 죄송스럽다며 무거운 복숭아상자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린 얼굴을 보니 내 대녀가 되어준 미카엘라가 너무 고마웠다.
채끝등심을 사 왔다고 구워드릴 테니 한 젓가락이라도 드시는 것 보고 가겠다는데 진짜로 먹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복숭아를 깎아주며 얼마나 힘드셨냐며 위로해 주는 미카엘라를 바라보며 내가 미카엘라의 대녀가 된 기분이었다.
하느님은 어찌 이리도 잘 아시고 미카엘라 같은 순직한 사람을 대녀로 삼게 하셨는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도 모든 것은 하느님의 주관아래 있다는 게 경의로울뿐이다.

자고 나면 또 다른 방문자..
유영순 다리아가 코스트코에서
한가득 장을 봐왔네
건더기 음식을 못 삼키는 나를 위해
쇠고기죽과 양송이 크림슾을 들고
끙끙 대며 들어서는 다리아의 모습도 땀 투성이다.

이 찌는 여름에 편히 앉아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누구란 말인가...

꿰멘 실밥을 19일 순천향에서 제거할때까지  집 가까운 병원에서 상처치료를 두번이상 받으라는데 어지럽고 힘이빠져 워커를 구매해서 루시아님과 세실리아님의 안전한 부축을 받으며 병원을 오가고 드레싱을 받으며 흡사 내가 호위무사를 거느린 여왕이 된 느낌이었다..

베픈것 하나 없는 나에게 아우님들은 이런 것이 참 삶이니 ..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 선행을 베푸는 것이 옳은일이니 이참에 잘 배워두거라.. 하는 것처럼

오늘 또 불편한 다리를 끌고 마리아님이 이북식 인절미라며 거피 고물로 감싼 찰진 인절미를 가져왔다.
냉동실에 넣어두고 녹혀 먹으라고..
담소를 나누다 일어서는 마리아와 나는 정말 친형제가 된것같은 마음에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런 동생 있어서 좋다고..
이런 형님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하느님이 맺어주신 형제가 분명하다고 감동의 허그를 한참동안 풀지 못했다..

절뚝거리며 조심스레 발걸음 내 딛는
마리아 아우님의 모습을 보고
문득 깨달음이 비수처럼 꽂히며
내 가슴속에 작은 불씨 하나가 켜졌다..

나도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한 몫을 해야겠다고..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의 꽃을 피우도록 꽃씨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이 아픔과 고통을 통해 이웃들이 행하는 참사랑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는 것 만도 하느님이 내려주신 축복이리라..

지금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베풀어주신 그 사랑
영영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