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05.2.28.
여러분!!!
그동안 가내가 두루 평안하시며
행복한 나날 보내셨는지요?
오랜만에 소피아가 문안 인사 드립니다.
귀국한 지도 벌써 두 달이 가까워 오건만..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상 때문에 머릿속이 무거웠다는 게 한 가지 핑계이고
오늘에야 맘 잡고 제 소식을 기다리는 여러분들께
늦었지만 메일을 올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네...
문밖을 나서면
어느덧 불어오는 바람에도 조금씩 봄기운이 느껴지는 게 엊그제 토요일엔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이 막내딸을 시집보낸다기에...
모처럼 스커트 정장에 하이힐까지 신고 참석했지만
아뿔싸!!!
밍크 쟈겥을 입은 사람은 웨딩홀 전체를 통틀어 저 하나뿐이었어요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맞춘 듯 화사한 봄색깔의 가벼운 정장 차림 이어서
저는 그만.. 유행에 가장 둔감한 서울 촌놈의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날따라 덥기는 왜 그리 더운지...
예식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남자 동창들과 한데 어울려 타워호텔 커피숖에서 2차까지 끝나고 연례행사인 3차 노래방엔 도저히 따라붙을 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
어딜 가던 일기예보가 참 중요하단 사실을 절감한 하루였습니다
특히나
고향 영주에서 올라온 친구들
그리고.. 멀리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들의 옷차림엔 어느덧 봄빛 환한 미소가 빛을 뿜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더하여...
딸을 시집보내는 친구의 패션 감각이야 말로 어느 월간지의 표지모델을 서도 손색이 없는
아니..
스크린에 주연으로 발탁된 스타처럼 아름다웠어요
진분홍 치마의 하얀 말기엔 모란으로 수를 놓고
연분홍 저고리에 평소 길렀던 머리를 틀어 올려 봉황잠으로 얌전히 쪽을 찐 친구 모습은 친정 엄마가 아니라 누가 보아도 대갓집 안방마님처럼 귀티가 자르르한 우아의 극치였습니다.
거기다 더하여
한복 두루마기를 멋스럽게 차려입은 친구의 남편도 얼마나 돋 보이던지요
하얀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어여쁘고 다소곳한 신부와 나란히
팔짱을 끼고 들어가는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멋진..
아니... 환상의 신부 일가 였습니다.
에구.... 원 씨야
나도 우리 아들 결혼 시킬 때 왜 저걸 못생각 했을까?
결혼식 내내 쪽 찐다는 걸 생각 못한 것이 참으로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하기야..
지피지기 란 말도 있듯이
제 주제를 생각한다면...
뭐 언감생심 이 따로 없었죠
오이씨 같이 갸름하고 가녀린 몸매의 친구에겐 정말 잘 어울리는 차림새였지만
제가 만약 한복에 쪽까지 찌고 서 있었다면
귀티는커녕 주막집 아줌마 같지 않았을까 싶네요
차라리 우리 아이들 결혼시킨 후에 본 게 정말 다행이었지
따라쟁이인 제가 봤다면...
그런 차림을 하고 공개망신 당할 뻔했지 않습니까?
아마 제가 그런 우스꽝 스런 차림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하객들 전부 요절복통 하는 꼴 생각만 해도...
휴....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이 원수 놈의 살을 쳐 무찔러서
한국에서 전통혼례를 하고 싶어 하는 파란 눈의 앤디의 소원을 들어주는 척????? 하면서
나도 한번 쪽을 쪄봐 봐??
아니지
그런데... 요즘 금값이 말이 아니게 비싸 다는데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 우리 신랑한테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건 아닐까요?
네... 저 소피아는 다 좋은데..
항상 자기 주제를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죠?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2월 9일
큰아들이 시카고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며느리랑 아이들은 6월 말 경에 떠나기로 하고
미리 자리도 잡고 준비도 할 겸 해서 떠났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이..
18년 동안 미국 생활에
반은 미국인인 둘째 아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러다 오늘 메일이 왔네요
예전 90년대에 큰아들이 포틀랜드에서 어학연수 때 받아놓은 쏘시얼 넘버랑
쾌쾌 묵은...
골동품에 가까운 미국 운전 면허증을 지금껏 보관하고 있던 보답인지 무시험으로 운전 면허증을 받았다지 뭡니까?
저도 9.11 바로 3일 전 시카고에서 운전면허증 따려고 필기고사 봤는데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막상 문제지를 받으니 한국어로 된 것만 컬러가 아닌 검은색이더라고요
아니 이것들이....
왜 이렇게 한국사람 차별하는지 원..5개 틀려서 못 받았죠
언제나 어디서나...
늙어서도 공부, 공부, 해야 한다는 사실
네...
다시 재 시도 해 보려고
20불짜리 스티커까지 사서 붙여 놨는데...
그 돈 돌려받지도 못하고 9.11 사건 터지는 바람에
네... 지금까지
도로아미 타불 꽝 입니다요.
이런 와중에 우리 큰아들은 24일 토요일 면허증 받았다니 완전 공짜배기 로또복권 아닙니까?
안 그래도 금요일 밤 꿈에..
제가 백마를 타고 하늘을 훨훨 나는데 내 옆에 같이 탄 사람이 최민수 아니겠어요?
저는 이게 무슨 메시지 인가 한참을 생각했네요
둘째 며느리 and 우리 딸 중에 누가 임신을 했나?
최민수처럼 멋진 사내아이를 가진다는 건 아닐까?
괜히 시카고로 뉴욕으로 전화해서 알아보느라고 살림 좀 축냈습니다.
오늘 에사 편지를 받고 보니...
혹시나 태몽인가 했던 것이
운전면허증으로 둔갑을 한 것 같네요.
아쉽기는 하지만..미국에서 생활하려면 발이(car)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저는 또 한 번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어쨌건 둘째 아이들 내외가
큰아들네 4 식구가 미국에 잘 적응할 때까지 지들 집에 함께 생활하며 돌봐주겠다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사생활 침해받는 걸 얼마나 싫어하고 시집식구 보기 싫어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세상에.... 우리 둘째 내외는 참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여름이면 에어컨 켜야 하고 겨울이면 어쨌건 히딩 틀어야 하니 커다란 집에 둘이 살아도 직장 나가면 하루종일 비어 있는데 왜 딴 곳에 집 얻어서 돈 낭비 하느냐고
서로 곁에 같이 있어야 도움주기도 좋다고...
거기다 더하여 새 며늘아기
서 씨 가문에 시집와서 일 년이라도 같이 생활하면서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한국에 올 처지가 못되니 미국에서 라도 큰동서와 한집에 살며 며느리 할 도리를 배우겠다니 어찌 이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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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어른 내외분!!
그림이를 잘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서인석이 누구 나들이로?
니 장소피아 아들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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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준원이가 벌써 한국 나이로 열두 살...
벌써 14년째 한집에서 생활하는 큰아들 내외가 이제야 자유로운 생활 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젠 미국에서 아랫 동서 교육까지 시켜야 할판이니
참... 큰며느리 임무가 막중하단걸 알겠습니다.
지금껏...
시집살이하기 싫어 산다 못 산다 한마디 말 없었고
우리 친정어머니까지 8년이나 모시고 살아도 불평 한마디 없던 우리 큰며느리 준원이 에미
명절이면 친정에 간다 못 간다 그런 일로 맘 상한 적 없고 등 떠밀어야 어쩌다 한번 가는 친정 나드리
부부싸움 한번 없이 늘 웃기만 하는 말이 없는 에미
그런데도 조금은 억울하단 생각이 드는 건
언제나 며느리가 착해서 한집에 살 수 있다고 하는 말
시어머니가 잘해서란 말
우리 친구들도 안 해 주더라고요
나뿐 계집애들^^;
어쨌든..
금호동 동네가 다~아는 우리 착한 큰 며느리
일리노이 아니 전 미국에 광고해도 모자랄 우리 둘째 며느리의 착한 심성...
이렇게 착하디 착한 아들 며느리 딸과 사위가 곁에 있어 저는 언제나 행복한 시. 엄마입니다.
사실 이렇게 많은 복을 받고 살고 있지만
아이들만큼은
이 할머니도 어떻게 손을 볼 수 없는 것이
성당 엄마들도 모두들 한 마디씩 합니다.
천하의 장 소피아형님도..
손자. 손녀에겐 꼼짝을 못 한다.
네...
우리 벼락 방망이 같은 손녀딸 유나는 아주 이 할머니의 머리 꼭대기에 앉았습니다.
외출할 때마다
핸드폰 감춰서 못 가지고 나갈 때가 허다합니다.
큰아들이 출국하면서
집 전화랑 번호가 같고
신형이라고 지가 쓰던 핸드폰 엄마 주고 갔는데...
우리 손녀딸 유나가 보기엔 지 아비가 쓰던 거니까 당연히 제 거 되는 줄 압니다.
어쨌거나...
카메라가 작동되는 최신모델을 할머니 구닥다리 전화기랑 바꾼 줄 알면서도 절대로 인정 안 합니다.
하물며...
지 아비 떠나는 날 인천 공항까지 따라가서는 작별한다고 지 아비는 눈물을 글썽이는데 글쎄 우리 유나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다니까요
딴 때 같으면 벌써 울고 불고
앉아서 발버둥 쳤을 아이가...
집에서부터 생으로 난리 쳤을법한데..애비가 짐 쌀 때부터 좋아서 아주 까물어 칩디다.
참..... 쟤가 왜 저러냐??
뭘 잘못 먹었나???
참으로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출국 창구로 들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아비가 껴안으며 뽀뽀를 하니까
아주 헤. 헤. 헤 웃고 난리도 아닌 것이
세상에나.... 알고 보니깐
바로 그 까만색 지 애비 핸드폰 지꺼 된다고
춤만 안 췄지 룰루 랄라...
좋다 못해 미치기 일보 전이라
영문 모르던 우리는 병원에 데리고 갈라 그랬네요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노래를하다 하다 레퍼토리 떨어지니까 "도레미파솔라시도"
까지 하더라니깐요?
네... 이리하여
아직까지 보름이 넘었지만...
밤새 유나가 숨겨놓고 유치원 가버리면 전화기 찾느라고 우리 식구들 있는 대로 눈에 불을 켜고 삽니다. 나 원 참!!
요즘 아이들 너무나 영악. 합니다.하마터면 아이들한테 상투 잡힌다니까요
지금도...
벌써 새벽 1시 하고도 36분이 되었건만 지금껏 안 잡니다.
유치원 졸업했다고
지 오빠 봄방학이라고
신나게 놉니다.
사실 저도 오늘 중요한 검사를 한 관계상 몸을 무리하면 안 된다는데 하도 오랫동안 문안 인사를 못 드려 무리해서 메일을 쓰고 있구먼..
옥수수 달라 참치캔 따서 섞어 달라 온갖 주문 다 합니다.
말이나 못 하면 얼마나 좋게요?
지 엄마는 너무 피곤해서 쉬어야 하니까 이런 거는 할머니가 해야 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요
그래서 지금 엄마 자는 거야? 하고 물었더니
유나 왈... 엉 엄마는 지금 자는 건 아니고..
너무 피곤하니까...
엎드려서 퍼즐 풀기하고 있거든? 이랬다네요 이 할머니한테
얘네들은.. 제가 어제
대장 내시경 찍느라고...
새벽 3시부터 10분에 한 컵 씩
5시까지 4L의 구역질 나는 약 퍼마신줄 몰라서 하는 소리죠.
두 번만 그딴 거 마시라면...
차라리 대장암에 걸려 죽는 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결과는 아주 아주 깨끗해서 참으로 다행인데요
일전에 병원에 직장 검사하러 가서 만난
천안에서 오신 할아버지...
어쩌다 만나면 가만 안 둘 겁니다. 자기가 6년 전 대장암 수술했으면 단가? 의사도 아닌 주제에..
뭐 나보고 대장암 초기라고
요요요?????
우리 큰아들 엄청 열받았습니다.
그 영감님 만나기만 해 봐라!!!
지금 벼르고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어림짐작으로 남에게 겁을 주는 것도 언어폭력 이니
참 삼가야겠죠?
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바쁜 제 일상 때문이란 걸
여러분 이제 아셨죠?
거기다 넷째 시동생의 장례가
섣달 그믐날 있어서 명절 차례 못 지낸 것도
그러하거니와...
시이모님의 정신이 이상한 아들이 글쎄
우리 선산에...
그것도 우리 시조부님
그리고 시부모님 산소에다 불을 놓는 바람에 아픈 허리에도 불구하고 산소에 다녀왔죠.
참 아무리 정신병자라도 그렇지...
눈 멀어 앞못보는 소경 시이모님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가셨기에 불쌍하다고 우리가
시 이모님 묘소에 비석까지 세워 줬건만 불을 지르다니..
그래도 동네 사람들 미친 사람이니 그냥 모른 체 넘어가라네요
어쩌겠습니까?
가만있는 게 상 수 란걸 저희도 알았죠
이렇게 지난 두어 달 동안
몸을 쪼개도 모자랄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이 소피아를 불러 댔답니다.
그리고...
이 메일을 빌어...
지리산 자락 산청으로 휴양을 떠나신
프란치스코 신부님...
신부님! 제가 25일 신부님 서품 24주년 기념일에 메일 보냈어요
안 보셨던데 어디가 많이 불편하신 건 아니신지요?
무척 걱정이 됩니다.
마음껏 자유를 누리시라는 뜻에서 전화도 삼가고 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김기수 프란치스코 맨해튼 성당신부님!!
중국에서 교포사목 하시느라고 얼마나 애 많이 쓰십니까?
신부님께서 꿈꾸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 지시기를 또한 기도드립니다.
언제나 두 분 신부님과
그리고 숨겨 받기에 적어놓은 모든 신부님께 하느님의 특별하신 가호가 있으시길 간원드립니다.
아울러.. 소피아가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소망이 하느님 은총아래 이루어지시며 모든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두 손 모아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
그리고 얘들아 편지 보고 놀라지 마라 아버지께서 비녀 안 사 주신다니 쪽 찔까 봐 염려 안 해도 되느니라.
금호동에서 소피아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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