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별고 없으셨지요?
형과 수정이도 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버님 목소리를 들으니 평안하신줄 느끼에되어
무척 다행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수정이도 무척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셔서요.
여기서 저도 열심히 살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저깨는 잠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위스컨시주 매디슨이라는 곳인데
그레이 하운드 버스로 네시간을 갑니다,
서울 부산 보다도 약간 먼 거리입니다.
쌩스기빙데이 휴일을 맞아 기숙사 사람들과 함께 갔었습니다.
뭐 신통한 구경은 하지못했지만
오랫만에 바깥바람을 쐬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원래는 2박3일간 지내겨고 갔는데
제가 멍청하게도 지갑을 집에두고 가는 바람에
돈이 하나도 없고 쌩스기빙데이는 미국 추석이라
거리가 모두 문을 닫고해서
너무 심심하여 형 친구집에서 하루만 자고 돌아왔습니다.
요즘은 고민이 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무얼해먹고 살아야 하는지,
군대문제는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등등....
부모님께서 옆에 계시다면 의논할텐데
전 여기 혼자이고 제일이라 저 혼자
생각해 보려고 하니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굉장히 힘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큰 적은 외로움입니다.
맨 처음엔 거의 몰랐었는데
제 생활을 찾아가고 적응해갈수록,
이 사회에서
날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비참해 집니다.
수창이형은 집에서 약혼식 비데오 테이프를보내서
저한테 마구자랑하고
기숙사 누나들도 시집갈 궁리들하는걸 보면
어떨땐 내 나이가 몇살만 더 먹었더라면...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유학생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란걸
정말 절실히 느꼈습니다.
아버지 남자대 남자로서
제가 서울가면 제 고민좀 들어주세요.
아버지와의 대화가 별로없었던게
지금와서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습니다.
아무리 작은 아버지라도 할말 못할말이 따로있고,
아버지와의 우정도 제가 고려해서
행동하려니 무척 힘이 듭니다.
가기전에 기숙사 예약해서 돌아오면
새학기부터는 거기서 생활하다가
룸메이트 구해서 아파트로 나갈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집안일도 다 잘되고 아버지 건강도 괜찮으시지요?
그리고 마을금고 이사장님께도 고맙다고...
덕분에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해 주세요.
엄마 안녕하세요?
수정이 마지막 뒷처리 해주는것 힘드시지요?
이제 사나흘이면 끝이 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서울가서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 먹고싶어 미치겠어요
먹고싶은게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어서빨리 2주일이 지났으면 좋겠어요.
참 ..한국가면 엄마옆에서 자야한다고 그러셨죠?
허락을 구할게 하나 있어요.
친구들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상헌이란 친구가 설악산을 가는데 같이 가재요.
12-15일이라고요
설악산은 한번도 안갔잖아요
그래서 욕심이 나요.
물론 가서 결정해야할 일이지만
될수있으면 허락해 주십사 미리 말씀드립니다.
미국까지 보냈더니 기껏 3개월만에
오자마자 딴데로 놀러 다닌다고 욕하지 마세요
그냥....가고싶다...이거니까요 한번 생각해 봐주세요.
그럼 그동안 음식--이만큼...장만해서 절 기다려 주세용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1988년 11월 23일 시카고에서 둘째아들 인석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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