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버지의 소포를 받고 눈물이 앞을 가려서...
콧물,눈물이 쑥 빠지게 울었더니만 석달 묵은 감기가 뚝 떨어지는것 같네요.
제가 체격은 작아도 힘이 천하장사고 일명 "깡다구"가 보통은 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2년 전에 아기 낳고,"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야" 라는 생각으로 마구 기계를 돌렸더니만
이제 잔고장이 끊이질 않네요.
이틀동안 1000 마일도 넘게 운전해서 4군데 다른 도시에서 오디션하고 올라오는 길에
연주 한번 하고 오던 서연준이었는데....
그 깡다구는 다 어디로 갔는지 이젠 정신도 다 내려놓고 살고 있어요.
델라웨어로 이사온 뒤로는 감기가 끊이지 않고,
응급실 달려간 것만 해도 두번이고,
병원에는 노상 들락날락 거려서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들하고 정기 계모임 해도 될 판이예요
이상한건 감기가 오면 꼭 목감기가 오고..
감기가 다 나은듯 해도 왠지 개운하지가 않고
항상 코와 목이 답답하고 물속에 있는듯한 느낌이 들다가 다시 감기가 오고...
이렇게 반복적으로 감기에 시달리면서 지낸게 지난 8월부터네요.
목이 정말 많이 아파서 아예 말도 못하게 되는 경우면 연주를 취소하지만
코만 좀 답답하고 말을 할수 있을 정도면 저는 연주를 하거든요.
이게....천주교 신자가 이렇게 말하면 안되지만..
.무슨 신이 내린것도 아니구요...
.말할때는 코맹맹이 소리가 나고 기침이 나서 견딜수가 없어도
무대에 서서 주구장창 하는 오페라가 아니라 그저 몇곡 연주하는거면 또 거뜬히 연주는 해요.
노래한다고 하면 정말 닐리리야 하면서 노래할줄 알지만 실상은 전혀 달라요.
신랑은 파티 하는걸 아주 좋아해요..
그저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떨고 맛난 요리 나눠먹고 하는 파티요..
신랑이 그렇게 목을 매는 파티에 가자고 하면 저는 꼭 먼저 물어요,"총 인원이 몇이야?"
세 커플..그러니까 저까지 6명이 제가 정한 한계고..
그 보다 인원수가 많으면 저는 안가요.
장소가 친구집이 아니라 레스토랑이거나 바에서 만난다고 해도 안가요.
인원이 많고 소란스러운 장소면 저도 덩달아 목소리도 높아지고,
일일이 안부 묻고 얘기하다 보면 목이 피곤해 지거든요.
술,담배...절대 안해요.
연주 전날은 매운 음식도 안 먹어요.
평소에도 전화 하는거 즐기지 않아요.
전화를 하면 얼굴 보고 얘기하는것 보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거든요.
오로지 집 안에 쳐박혀서 악보 들여다보고 살고...
놀아도 피아노 근처에서 놀아야 덜 불안해요.
특별히 목에 좋다고 너구리를 잡아먹는다던가,
지렁이를 삶아먹는다던가..그러지는 않아도
아주 소중하게 다루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수 있도록 노력하는게
노래하는 사람의 기본 자세 라고 생각해요.
근데 목이 자꾸 아프고...
할수 있으면 약속된 연주는 어떻게든 해내지만 제 성에 차지않고,
오디션 같은 경우는 최상의 컨디션이 아닐경우에 노래를 하면
오히려 나쁜 인상이 오래 남으니까 취소를 하는게 멀리보면 더 낫거든요.
오디션 취소하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이러다보니 자꾸 불안하고,화가 나고,걱정도 되고...
종잡을수가 없더라구요.
이번에는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호흡곤란이 올 정도가 되서 병원을 찾아갔더니
"천식" 진단이 나왔어요.
오랜 기침 끝에 후두의 근육에 무리가 와서 호흡을 할때마다 기침이 나고,
호흡을 제대로 못하니 산소 공급도 떨어져서 머리도 항상 아픈거라고 하네요.
그래서 스테로이드 처방과 호흡기를 쓰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일단 호흡기를 쓰고 있어요.
약품을 넣고 호흡 곤란이 오거나 기침이 너무 심해지면 입에 넣고 분무하는 방법이에요.
제가 천식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 아버지가 전화를 하셔서 자꾸 우시는거예요.
약을 지어 보낼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시대요.
(엄마가 미국 들어오시면서 컴퓨터방 벽에다 삼남매 주소 다 써서 붙여놓고 오셨다는데
아마 경황이 없어서 생각을 못하셨을거예요)
지금 아버지 연세가 한국 나이로 80 이세요..
평생 한의원 에서만 지내시고 바깥일은 엄마가 다 알아서 척척해와서
우체국 가셔서 해외로 우편물 부치고 하는거 안 해보셨을텐데,
약을 꼭 보내주신다고 주소를 불러달라고 하시네요.
지금 귀도 조금 어두우신 분한테 영어로 주소를 알려드리자니 저도 답답하고 아버지도 답답했죠.
그런데 아버지께 목청 높여서
"브이" "아이""씨""티" 하면서 주소를 불러드리다 보니 목청이 트이더라구요.
"아버지...약 보내주신다는 말씀만 들었는데 벌써 다 나은것 같아요" 하니까
아버지가 또 엉엉 우시고,저도 울고...오밤중에 완전 청승 떨었죠.
그게 지난 주말이었는데 오늘 벌써 빠른 우편으로 약이 도착했네요.
소포를 열어보니 우체국 큰 박스 안에 아버지가 우체국으로 들고 가셨을 법한 작은 종이박스가 있더라구요.
작다지만 무게는 엄청 나가요.
그 안에 플라스틱 백으로 두번 동여매시고...
다섯 첩씩 묶음으로 4개가 들었는데...어찌나 꼼꼼하게 싸셨는지...
그리고 성질 급한 제가 테이프 동여맨거 보고 팔팔 뛸까봐 번호표를 다 붙여놓으셨어요.
순서대로 1번 테입부터 벗겨내면 차례대로 다 풀립니다.
아버지가 한문은 서당 차려도 될 실력인데 한글이 좀 약하셔서 항상 소리 나는대로 쓰세요.
경상도 분이라 "편지 덜어있다" 라고 발음하시거든요.
아이구..우리 아버지 억양까지 다 들리는듯 해요....
편지는 차마 공개할수가 없어서...
공개하면 여럿 다칠거 같아서요....하하하하
사랑하는 내딸 연준아
보고푼대 아푸다고 약을 지어보내고저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이렇게 시작된 편지가 장장 뺴곡히 두장에다가 혹시라도 필요할때 쓰라고 제 몸에 맞는 약 처방까지 따로
세장에다가 약 달일때 편리하게 쓰라고 약보자기까지 몇장을 보내주시고 설명까지 달아주셨어요.
이런 편지를 공개하면 엄마 블로그 오시는 분들 다 눈물,콧물 범벅되고.
.엄마 블로그 인기 떨어질것 같아서 공개는 안하겠읍니다.
그리고 사진 실력이 딸려서 글씨를 다 잡아낼 재주도 없구요..ㅎㅎㅎ
큰오빠가 보면 제 뒤통수 때리고 싶을만한 사진이네요.
쪽지에는 "사랑하는 민서한테 주거라" 되어있는데
이놈이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알까싶어 저만 먹었읍니다.
약을 우선 다섯첩을 달여서 첫물을 마셨는데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전혀 쓴맛이 없고 걸쭉하니 꼭 호박죽 마시는 기분이었어요.
아버지께 약도 잘 받았고 약을 먹었더니 아주 맛있더라고 전화를 드렸더니
,제가 아프다고 하니까 너무 경황이 없어서 민서 장난감이라도 하나 사서 넣으려고 했는데,
우체국 가는게 너무 급해서 한의원에 있는 홍삼캔디를 넣었다고 하시네요.
아버지 사랑은 정말....이 못난 딸을 울립니다.
약첩이 보이시죠?
평생 약을 만지셔서 약첩을 쌓으면 바로 각지게 네모 반듯하게 나옵니다.
노란 비닐 끈으로 돌려묶고,그 위에 다시 플라스틱 백으로 싸고
,다시 약보자기로 싸고....보통 정성이 이니시죠?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제 생각에 이 깨같이 보이는건 아마 싸리나무 열매이지 싶네요.
몸속의 순환을 돕는걸로 알고 있어요.....아닌가?
약첩 밑에 아버지가 부치셨던 번호표는 제가 간수하려고 따로 모아둔거예요.
말로는 항상 "아버지 딱 200년만 더 사세요" 하지만 그럴수 없는거 잘 알아요.
이렇게 아버지 필체라도 간수하고 있으면 나중에라도 한번씩 꺼내보고 그리워할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받은 사랑은 너무 큰데 다 돌려드릴 방법이 없어서 슬퍼요.
제발 제가 천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수 있도록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셔주셨으면 좋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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