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꼬 신부님께 올리는 여섯번째 감사 편지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성령강림 본당 금호동 천주교회가 제 본당입니다.
80년도쯤 영세받을때 교리를 가르쳐주시던 복자 수녀원의
" 진 홍희 다미아노"수녀님께서 제 본명을 이쁘게 지어주셨어요.
소피아라고...
96년도
밀라노본당 신부님을 따라 성지순례를 하면서...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수도원을 방문 했을때
주변의 다른 유적지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성녀쏘피아와 관계되는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친구 신부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쏘피아성녀야 말로 지혜의 여왕이시며
동정순교자인 성녀피데스 성녀 스페스 성녀 카리타스 등
세분의 동정순교성녀를 키워내신 어머니 이시니
성녀의 지혜를 닮아 빛나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뜻으로
수녀님께서 이렇게 이쁜 이름을 제게 정해 준게 분명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80년도...환희에 떨며 받은 영세
본당교우 모두가 천사로 보이고 모두가 예수님으로 보이던..
그때부터 어디를 가던 떳떳하고 당당하게 천주교 신자임을 본명과 함께 밝히지만...
성당 출입문 옆에 모셔진 예수님..
아무리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졌다지만 어찌 저리 미남이실까
두 그루의 푸른 소나무 아취아래 다소곳한 성모님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도
하루세끼 먹는밥도 식사기도 제대로 한번 바친적없고
교우들과의 식사때도 무심코 먼저 수저를 들다가
다른분이 올리는 식사기도에 화들짝 놀라 성호를 따라긋는
무늬만 신자였지 별 볼일없는 구제 불능의 신자가 바로 저였지 싶습니다.
가정을 위한 기도 자녀를 위한기도...
그좋은 유익한 기도들은 영세의 기쁨에 들떠있던 신앙생활 초기의 일이었고
10년 20년...
날이가고 해가 갈수록 기도에 소홀해지고
감사기도는 더 더군다나 해 본적이 없는것이
내게 감사할 일이
감사할 꺼리가 눈 씻고 찾아봐야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일미사만 지키면 신자의 본분을 다 하는것이라고 제맘대로 치부하고
일년에 두번의 부활판공과 성탄 판공도 내가 뭐 그리 지은죄가 많다고 ...
지은죄를 일일이 신부님께 고백해야 하자니
세상 살면서 죄 아닌것이 없구만
그 많은죄를 어찌 일일이 알아내고 고백을 하라는것인지...
판공때마다 손님 신부님들이 오셔서 성사를 주실때는
장사진을 치며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것도
지은 죄를 제대로 고백도 다 못하고
주시는 보속도 제대로 다 듣지못하고 물러나올때는
고백성사가 너무나 형식적인 일로 생각되는게
6개월에 한번 ..일년에 두번인 판공성사도
지금 고백컨데 제대로 지키지 못한때도 숫 하게 있었습니다.
부활때는 시카고에 성탄때는 밀라노에-
이십여년을 아니 삼십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아이들의 유학생활 해외생활 뒤치다꺼리를 하러 따라 다니다보니
지금 생각하면 어디다 내놓고 천주교 신자란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럽고 민망한..
이런 죄인이 고개를 쳐들고 떳떳하게 성당문을 밀치고 36년을 들락 거렸으니
하느님께서 얼마나 저를 괘씸하게 여겼을지 이제서야 짐작이 갑니다.
어디서나 말을 아끼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데 익숙지못한 저를
사람들은 교만하네 건방지네 잘난척하네 없신여기네
많이들 수근거린것도 너무 잘 알고있었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엄청 수집고 내성적이며 상처받기 잘하는 저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도 인내와 겸손과 친절함이 필요하단것이 너무 힘들어
쓸대없이 말 많은 사람들과는 담을 쌓고
안보고 안듣고 안사귀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잘난척 내 방식을 고집하며 타협하지않고 살아온것이
지금에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후회가 막급입니다.
제가 정말 정말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애원하는 기도를
드린적도 있었습니다.
제 딸아이 글라라가 베르디 콘서바트리오에서 공부할때
밀라노에서도 수수백리 떨어진 오르비에또 콩쿨에 나간다고 신청을 할때부터
밀라노로 달려가 숙식을 거들고
하루 25단을 바치는 9일기도를 시작했었습니다.
영세받은지 십년이 훌쩍 넘어간 그때에도
너무 웃기는것이 제가 얼마나 기도에 대해 소홀하고 몰랐으면
묵주기도 5단을 바치면 되는것을 하루에 5단을 다섯번씩...
그러고 보니 25단 기도를 꿇어앉아 바치다보면 보통 너댓시간
묵주만 들면 왜그리 잠은 쏱아지는지 나도 모르게
꾸벅 꾸벅 졸다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다보니
기도가 끝나면 다리가 마비되어 일어나지를 못해 기어 다니다싶이했고
딸을 위한 기도라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오직 기도 기도 기도에 매달려
일주일 걸러 한주일씩 금식기도까지...
54일동안 묵주기도를 마치고나니
걷지못하고 절뚝거림은 당연지사요
극심한 영양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증으로
귀국할때는 완전히 대머리가 되어
한여름에도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고 다녔고
귀부인도 아닌 주제에 모자를쓰고 귀국한것이 생각납니다.
그때처럼...
성악가에게는 생사가 달리다싶이
무엇인가 자격증이 콩쿨 입상이 장래를 약속하는..
어느대학에 교수로 스카웃되어갈지
어느대학에서 강사로 받아줄런지...
모두가 조바심 치며 사는 살어름판같은 밀라노생활
유학생 99%가 성악도들인 이태리 유학의 키 포인트 는 콩쿨입상 경력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엄청난 면죄부처럼
오직 입상을 향해 죽어라 매진하던 때였기에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용기를 내어 평생에 처음으로 바치는 9일기도
죽을둥 살둥 성모님께 매달려 제발 제발 일등먹게 해달라고 빌었었는데
1등없는 2등 상장을 가지고 온것이 기억납니다.
그후...
기도는 언제나 마비되어 끌다시피한 다리와
원형탈모증의 기억을 앞세워 멀리하기 시작했고
지금 까지 살아오면서 죽어라고 열심히 간절히 애원하고 매달렸던
유일무이의 기도가 성모님께 바치는 그 때의 25단 9일기도 였습니다.
이러니... 저는 죄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내가 지은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면서
주일이면 열심인척 성당을 오르내렸으니까요.
세상을 살면서 힘든줄도 모르고
달라고 기도한들 나에게 내려줄것이 뭐가 있겠냐는 생각에
신앙생활의 기본인 기도를 멀리한체
용서와 사랑 화해는 더 더군다나 몰랐고
신앙인의 자세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단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만나면 즐겁고 잡다한 수다도 재미있고
함께하는 식사도 즐겁고 행복했기에...
그 재미로 성당에 놀러다닌 죄밖에 없음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천주교 신자라고 버젓이 고개들고 다닌 제가
정말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아야 할 판입니다.
제가 기도와 멀어지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2000년대도
지금도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는
대구교구의 수많은 신부님들이
밀라노에서 로마에서 인스부르그의
고풍스런 까니시아눔에 잠자리도 마련해 주시고
쏘피아큰언니란 이름으로 저를 초대해주시고
온갖 좋은 구경 다 시켜며주시며 깍듯하게 대접해 주시고
영광스럽게도 너무나 많은 사랑을 퍼부어주셨고 돌봐주셨으며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해주셨던게 생각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수많은 대리자들을 통해
저를 참 신앙인으로 살도록 그토록 보호하고 지켜 주셨건만
바보도 아닌 저는 그때는 왜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사랑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못했을까요?
아이들의 유학생활도 끝나고 제 각각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갖게되니
한국에는 달랑 우리부부
요한씨와 단 둘이 살게되면서 부부관계는 무늬만 부부인
이웃사촌만도 못한 지경으로 치닫게되었습니다.
요즘 회자되는 "남편..이라고 쓰고 웬수라고 읽는다."
이 정도 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던
소 닭보듯 조금 비약하자면
견원지간처럼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지금생각해도 오십대의 나이에도 철이 없었던지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줄로 착각하고
교만하여 신앙인의 모습을 내쳐버린 내게
자유분방하게 사는모습이 하느님 보시기에 불편하셨던지
몇년을 내리 내게 고통을 안겨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을 통해 정신번쩍 차리고 언제나 두팔 벌려
나를 맞아주시는 주님품으로 돌아오라고...
그 고통의 시작이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를 잃지않기위해
제게 보내시는 하느님의 신호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 도리도 다 하지못하면서 모든일에 투정을 부리며
나의 하느님은 왜 이렇게 나에게 고통만 안겨주시나..
정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존재하시는걸까?
미사때마다 바치는 사도신경 주의기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 남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습니다.
저 사람은...
저 수녀님은 ..
저기~ 제단위에 제의를 입고 서 계신 저 신부님은...
하느님의 존재를 정말 믿는것일까?
저렇게 일생을 바쳐 하느님께 간구하고 매달리며
양떼를 돌본다고 맹새하고 서약하시는데
정말 하느님을 체험하기나 하신것인가
미사내내 서서 성가를 부를때 빼고는
내 머리속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나 말고 다른사람들의 신앙심이 참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나와같은 생각을 표현만 안하고 무늬만..색깔만 신자로 사는것인지...
참으로 복잡미묘하고 말로 표현할수없는 왜지 왜지 왜지???
의문 투성이지만
성체봉사자가 내미는 영성체도 넙죽이 절 하며 받아모시고
의자에 앉아 또 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나보다 더 잘나고 많이 배우고 신앙심깊은
저 수녀님
저 신부님도 저리 하느님의 존재하심을 믿고
일생을 하느님 구원사업을 위해 한 몸 맡기기를 서원하며
희생하고 봉사하고 사시는데...
그래도 내가 다른 사이비 종파에 빠지지않고
사기꾼 내지는 날도적같은 신흥종교 교주에게 현혹되어
몸 망치거나 가산탕진 한것도 아니고
가정이 풍비박산 난것도 아니고
신앙심없고 의심이 많으면서도 변함없이 천주교 신자로 36년간
버텨온것이 참으로 장한일이다
작심삼일인 내가 이리 오랜 세월동안 이 높은 금호동 산꼭대기 성당을
헐떡거리며 절뚝거리며 오르내렸으니...
정말 하느님이 나를 불러주셨기에 가능했을까???
어쩌면 그럴수도 있을것같에 ...
아니라면...
이런 의심가득한 죄인인 나를 어째서 신부님들은 그리 어여쁘게 보시는걸까
내 겉모습만 보시고 마음속을 꿰뚫지 못하시는건 아닌가?
내가 모르는 나의 착한 구석을 사제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무언가 감지해 내시는건가?
겉보기에 교양있어 보이고 인품이 너그러워 보인다고 ???
가슴속에 날카로운 매의 발톱을 숨기고
날 선 비수를 품고사는 나를 잘못 판단하신건 아닐까?
왜 한결같이 신부님들은 나를 이뻐하시지 이렇게 부족하고 교만한죄인을....
상처받을까 두려워
그동안 받은 상처가 아직도 채 아물지 않아서
때로는 다른사람의 등뒤에 숨어...
성당 마당에서 마주칠 신부님의 눈 길을 피했고
때로는 죄인처럼 도둑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지하실 계단을 통해 빠져나오던...
신자들과 한발자욱 더 가까이 다가서시려고 미사가 끝나면
한결같이 웃음띈 얼굴로 손 내밀어 악수를 청 하며
성당 마당에 서 계신 신부님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던 내가...
신부님께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항상 먼 빛으로 바라보며
신부님 수녀님과 마주치기를 그리도 꺼리던 내가
요한씨의 죽음으로 다시 태어난것 같았습니다.
요한씨의 임종을 준비하며
동동걸음으로 종부성사를 주러 날다싶이 달려오신 오신
응급실에서 마주한 초면의 보좌신부님도 너무 고마웠으며
응급실담당 의사의 1시간밖에 남지않았다는...
심폐소생기에도 응답하지않는 요한씨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져
눈물도 한숨도 나오지 않고 이미 백치가 되어버린 나를 대신하여
성사의 은총을 받지못할까 나보다 더 애를 태우며
한시간동안 내 손을 잡고 묵주기도를 바쳐준 수녀님께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요.
아이들이 미국에서 귀국하는 사흘동안
혼자서 요한씨의 빈소를 지킬 자신이 없었지만
영세만 받았지 30년 넘게 냉담하며 오히려 부처님을 믿는게 났다던 요한씨가
수많은 레지오 단원들의 전심을 다해 바치는 연도와 기도와 성가속에
마지막 가는길이 그리도 엄숙하게 그리도 경건하게
장례예절이 치러졌으니 하느님께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내가 천주교인이 아니었다면 아이들 귀국때까지 어찌 혼자 견뎌냈으며
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미사를 어찌 감히 올릴수가 있었으랴...
끝까지 나를 버리지않고 붙잡아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경건하고 엄숙한 장례미사도 많은 신자들의 기도속에 치뤄졌으며
제 각각 출국해야하는 아이들은 삼우미사를 마친후 성당 마당에서
이제부터 우리 엄마를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늙은 노모를 홀로남겨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울먹였는데
그 때 부터였지 싶습니다.
"엄마는 내게 맡겨 ㅡ 내가 책임지고 잘 돌봐드릴테니 걱정말고들 가 ㅡ"
신부님의 그 말씀 한마디가 나를 구해주고 살렸지 싶습니다.
나를 그토록 애테우던 요한씨도 떠났고
빈 집에 덜렁 혼자남은 무서움은
내가 만약 잘못되었을때 연락해달라고
아이들의 전화번호도 두 분의 지인에게 남겨둔터라
신부님께서 책임지고 잘 돌봐주신다는 말씀에
이제는 어려울때 기댈곳이 있다는 생각
아이들을 안심시키려고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잘 돌봐주겠다니 ...
빈 말로 하신 말씀이라도 마음 한구석이 정말 든든해 왔습니다.
나를 힘들게했던 요한씨도
당신이 오죽 힘들었으면 내게 그리했을까..
돌아가시고 나니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고...
살아생전 잘 해주지못한 늬우침이 미안함이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되어 흘러 내리더라구요.
아이들이 출국한 후
요한씨를 위한 50일 동안의 연미사를 봉헌하면서
평생을 주일만 지키면 신자의 도리를 다하는줄 알고있던나는
남편의 미사가 봉헌되는 화.수.목.금 10시 미사에
되도록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지
고작 50번인데....
그거야 말로 남편에 대한 내가 자켜야 하는 마지막 도리요 예의가 아닐까?
한국에서 50회 미사가 끝나면 그다음은 시카고에서 그다음은 델라웨어에서
요한씨의 연미사는 계속해서 릴레이로 이어져 나갈것임에...
한국에 있는동안은
남편의 연미사가 봉헌하는동안 내 책임을 다하자
남들 보는 눈도 있는데...
우선은 미망이이 된 나를 바라보는
신자들의 눈초리가 먼저 의식되기도 했습니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아직도 나이를 거꾸로 먹었는가 봅니다....
미사를 다니면서 새롭게 안 사실은
화요일과 수요일은 보좌신부님께서
목요일과 금요일은 주임신부님께서 집전하신다는 사실을 알계되었습니다.
사실... 이것도 정확한것은 아닌 저 혼자의 넘겨집기 생각입니다만...
내가 참석할수없는 새벽미사와 토요 특전 미사 빼고는
이렇게 일주일에 4번 올리는 요한씨를 위한 연미사는
정말 엄청난 은총으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보좌신부님은 보좌신부님대로
성서시대의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물론이고
그 시대적배경 날씨 홍수 바람 폭풍우까지 모래 한알에 이르기까지
식물이며 동물이며 풀뿌리 나무 한그루 잎사귀 하나까지
얼마나 깊게 공부를 하셨으면 청산유수처럼 ..
목소리도 어찌나 이쁘고 카랑카랑 성가도 잘 부르시고
어찌저리 똑똑하시고 천사처럼 착하게 생기셨을까
피부는 또 어찌 저리 해맑고 고우시지
하느님께서는 신부님될분을 어찌저리 잘 알고 뽑아가실까?
영성체를 위해 줄을지어 나가다보면
성체를 내려주실때의 그 온화한 표정
조심스럽게 손바닥에 얹어주는 주님의 성체는
바라보기만 해도 감동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 같은 교만한 죄인의 찬미영광 받으소서!!!
성서말씀에 한자 한획에도 막힘없이 해박한 설명으로 갈증을 풀어주고
새로운 신앙의 신비에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예의바르고 심성착한 아론 보좌신부님을 우리 본당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사때마다 언제나 서재수요한을 제일 첫번째로 불러주시어
내게 뜨거운 감사의 눈물 흐르게 만드시는
우리 프란치스꼬 주임신부님!!!
미사가 끝나 성당 마당을 나오면 기다렸듯이 악수를 청하며
한 주간동안 잘 지내고 있었느냐고
잘 버티어 내라고 등 두드려 주시고
아이들이 아주 많이 걱정하니 좋은생각만 하고 잘 지내야 한다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삼남매와의 약속을 지켜주시는..
제가 신부님으로부터 받는 은총이 얼마나 큰지
신부님은 모르시겠지요?
마음속에 태산같이 쌓여있던 분노와 증오와 미움이
평일미사의 말씀의 은혜로 봄 눈 녹듯 사라지고
안개에 가린듯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세상이
어느순간부터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것도
모두 하느님께서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단단히 들러붙어 암덩어리와 같이 나를 괴롭혔던 온갖 상념들을
깨끗이 털어내고 비워내니
미워했던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기 싫었던 사람이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제게주신 빛의 영광을 맛보게 된것도
말씀 하나하나가 은혜로 다가오고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의심많은 제가 믿게된것은
당신의 대리자 프란치스꼬 신부님을 통해서
말씀으로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하느님의 실체를
인품 훌륭하시고 감성깊은 신부님의 강론과 따뜻한 품성을 통하여
확인하게되어 기쁘고 감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송년미사에서 만난 나의 하느님...
바로 송년미사가 은총이며 감사이며 기적이었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 인류구원을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하신다는 하느님의 실체를
저는 2016년을 마지막장식하는 송년미사에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감격해 쓰러져 죽는줄 알았습니다.
작은것에도 감격하며 감사하며 감동받으며
작은일 하나 하나에도 가슴떨며 눈물흘리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라 여길수있는
은혜로운 마음을 제게 주셨으니
자비의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송년미사가 끝나고
제단위 ...
빛에 둘러쌓여 신비로움을 자아내던 세분 신부님과
제단아래 두분의 수녀님께서 나란히 서서
성당을 가득메운 신자들을 행해
새해인사를 올리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니
그 맨바닥에 다섯분이 엎드려 올리는 새해인사의 큰 절은
가슴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감동이며 전율이었습니다
우리가 올려야할 송구영신 새배를
신부님께서 한해 동안 감사했다며 절을 하시는모습에
가슴이 메어지고 형언할수없는 감사의 눈물 주체할수 없었습니다.
이 작은 사건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본당 신자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이며 은혜이며
사랑이신 당신의 현존하심을 신부님들을 통해 증거하는
바로 저분들이야 말로 하느님의 실체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구나..
그저...제 눈에는 신비로운 기적으로 보였습니다 .
나는 내 양들을 사랑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업드려 큰절로 인사하노니
이것이 너희를 사랑한다는 나의 증표이며
세상 끝날까지 너희곁을 지키며 보호하는 아버지이며
너희를 주인처럼 업드려 절 하며 받들어 모시는 너희 하느님이다...
이렇게 말씀하는것 같았습니다.
낮은곳에 임하신다는 예수님을 본받아
당신의 양때를 성심을 다해 돌보겠다는 서약을 히신 신부님들도
더러는 신자들의 위에 군림하셨고
당신의 위엄을 드러내시길 좋아하셨으며
신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섬김을 받고
무슨일에나 항명없이 무조건 따라주기를
높이 받들어 모셔주기를 희망하며
신자들에게 가시돋힌 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신부님도 계셨습니다.
제가 영세받고 36년동안 우리 본당을 스쳐간
이제는 본명조차 기억 하지못할 만큼 많은 신부님들이 계셨지만
땅바닥에 엎드려 신자들을 주인으로 받들어 모시듯
큰 절로 새배드린 신부님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신부님께서 작년에 또는 재작년에...
제가 없는동안에 새배의식이 치뤄졌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 광경을 난생처음 목격했기에
신부님의 업드려 절하는 모습이 경의롭고 놀라워
기적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더러는 성탄이나 부활때에 금호동을 떠 나 있을때가 많았지만
제가 이곳에 살면서 성당을 다닌 몇십년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못한
낮은곳에 임하신 하느님의 현존하심의 기적을 송년미사때
비로서 알게된 것입니다.
당신의 존재를 세분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을 통해
우리에게 ...저에게 직접보여 주시고 믿음을 주셨으니
나의 신앙의 열매는 더욱 크고 단단하며
하느님에대한 경외심으로 더욱 정성으로 하느님을 섬길수있어
이보다 더한 감사와 기쁨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만날때마다 매 미사때마다
우리에게 뜨거운 감동과 사랑을 주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임을 잊지않게 하시고
기름부어 축성된 당신의 대리자들을 더욱 보살피고 사랑하시고
더욱 큰 능력의 지도자로 만드시어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한몸 한형제가 되어
하느님의 천국을 이 땅에서 맛보게 하소서.
낮은곳으로 임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더욱 자주 가까이서 접할수있도록
신부님들에게 솔로몬의 지혜와 권능의 능력 내려 주시옵기를
사랑이며 말씀이신 우리주 그리스도의 이름받들어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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