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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역사박물관

Corbit Sharp house 1774년 역사박물관

6월 23일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오데사에 

1700년대 고 건축물이 있다하여 구경나섰다.


건국 역사가 짧은 미국이지만

초대 미국인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볼수있어 너무 좋았다.


지난 한 시대의 유서깊은 건물들을 잘 보수하고 

후세에 길이 보존하는 기념물들은

 자긍심을 가진 연로한 동네분들이 돌아가며 자원봉사로

 조상들의 삶의 터전을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보여주는

사회환경 시스템이 본받을만 하였다. 

코빗 하우스의 마구간을 향해....


사냥으로 얻은 온갖 짐승들의  가죽이 오두막 곳곳에 

즐비하게 걸려있었다.


남북 전쟁 당시 많은 노예들이 밤 을 틈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야반도주를 하였는데

잡히면 과히 삼족을 멸할만큼 죄를 엄중히 물었고 

숨겨준사람도 사형에 처하는 엄벌을 받았다는데


박애주의자였던 매리코빗이 도망친 노예를 

자기집 2층 다락방에 숨겨 수많은 노예추적 기마병들로부터 

수색을 피해 무사히 노예를 구해냈다고 한다.

위의 사진의 흑인이 매리코빗이 구해낸 노예라고 한다.

*Underground railroad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땅밑의 지하철로 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었을 당시 도망친 노예들을 숨겨주고 
안전하게 다른 곳으로 피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라고 불렀다.

*흑인노예를 숨겨주었던 메리 코빗 부인은 그 당시 상당히 깨어있던 여성이다. 
노예를 숨겨줬다가 발각될 경우 모든 재산 몰수와 감옥행인데 
그걸 감수하고 흑인노예를 2층 대들보 사이에 숨겨줬다.


메리 코빗과 그의 딸..

퀘이커교도인 코빗가문의 메리코빗은

그 시대의 여자들로서는 보기드문 인텔리 여성으로서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 발언권과 처세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퀘이커교도는 남성은 밖에나가 열심히 돈을 벌고

부인은 집에서 아이를 기르고 살림을 하고 남는 여가시간에 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일체 바깥일은 상관을 않고 지냈는데

퀘이커교도들의 아내와 딸들의 취미생활로 공들여 만든 스텐실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Corbit-Sharp house 는 1774 년 지어진 
필라델피아-죠지안 스타일의 건물이다.

아포퀴니밍크 지역의 주민이었던 William Corbit 에 의해 지어진 집은 
1938년 H.Rodney Sharp 이 사들이면서 소유권이 바꼈다.

여기서 잠깐...Rodney sharp 은 학교선생님이었는데 
오데사 지역의 고건물들이 철거되고 신도시가 들어선다고 하자 
역사적인 건물들을 지켜야한다고 판단해서 
자비로 이 건물들을 사들여서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일개 학교선생님이었던 로드니가 어떻게 이런 대 저택을 살 수 있었을까...

바로 Du Pont 가문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에 부인의 유산이 어마무지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