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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Primadonna Yeonjune-Suh

일주일 동안 친정에 다녀 왔어요

2005년 11월 29일

안녕하세요~

지난 목요일이 미국에서는 Thanksgiving day 라고 한국의 추석 쯤 되는 명절이었어요.

신랑이랑 연애할때는 시카고의 오빠도 결혼 전이어서 혼자 살고 있었고,

말이 요리사지 집에서는 요리를 잘 안해주기 때문에 항상 시댁에서 명절을 보냈어요.

올해는 엄마도 계시고,오빠도 이제 결혼해서 안정되어 있고해서,친정에서 일주일 동안

좋은 시간 보내고 왔어요.

오빠도 결혼하더니 올해는 엄청 엄청 요리를 하더라구요..ㅎㅎㅎ

미국식으로 칠면조를 굽고,크랜베리 소스,그레이비 소스,감자요리,스터핑..진수성찬으로 차리고

엄마는 한국 요리 주방장 역할을 맡아서 육계장을 끓이고,커다란 무우가 들어있는 김장김치,

그리고 저를 위해서 김치와 무우을 냄비에 깔고 꽁치를 졸여주셨어요.

 

유나는 지금까지 저를 보면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더니만,이번엔 앤디한테 찰싹 붙어서

영어로 조잘거리다가 한국말로 조잘거리다가...저는 완전 찬밥 신세였어요.

앤디한테 "디비디비디" 게임을 가르쳐주고 하루종일 둘이서 "디비디비딥" 하면서 놀고

영어좀 배우라니까 도리어 앤디한테 엉터리 한국말을 가르쳐줘서

"익스큐즈미~ 미 뿡~" (미안,나 방구 꼈어요~) 이런거 새로 배우고  ㅜㅜ

"아줌마"에 이어서 이번엔 아저씨까지 배워서 이젠 앤디도 자기 자신이 "아자씨" 라고 합니다.

유나가 앤디랑 놀아주는 덕에 저는오랜만에 좀 푹 쉬다가 왔어요.

누가 누구랑 놀아줘야 하는건지 원..

 

저희 시부모님도 굉장히 좋으신 분들인데,그래도 시댁어른이라 가면 조심스럽거든요.

앤디도 전형적인 미국인 답게 18살 때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았기 때문에

시댁에 가면 첫날은 생글 생글 웃으면서 아주 잘 하는데 두번째 날부터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안달을 합니다.

그리고 시부모님도 저희랑 자주 통화하고 보고싶다고 하시면서도 막상 저희가 가면

직장일 때문에 바쁘시고,저녁때나 한자리에서 만나고 그나마 제가 식사 준비를 하지 않으면

나가서 외식하는게 보통인데..

이번에 시카고에서는 둘러매고 간 기타 케이스를 한번도 안 열어보고 도로 가져오고,

엄마랑 인터뷰를 해서 컴퓨터에 저장한다고 컴퓨터까지 가지고 갔는데 역시 들고 갔던 그대로

들고 왔을 정도로 재미있고 바쁘게 지내다 왔어요.

인터뷰란 과연 무엇일까 너무 궁금한데..앤디가 자기의 비밀 프로젝트라고 해서

저도 어떤 주제를 인터뷰 하려고 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어요..근데 앤디 한국말로 모르면서..

"어쩌다가 연준이를 낳아서 맘 고생하는지.." 이런거 물어보려고 했던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하옇든 시댁에 가면 3일 쯤 지나면 집에 가스 안 잠가놓고 온건 아닐까,다리미 꽂아놓고 온건 아닐까...하면서 온갖 생각이 다 나는데 시카고에서는 그런 생각도 안 났을뿐더러,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대도,불이 나거나 말거나 난 놀다갈거야... 했을거예요.

일주일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훌쩍 지났네요.

 

엄마가 아침,점심,저녁을 집에서 닭잡고,소잡고...한국식으로 상을 차려주고,

그 중간 중간에 다시 오빠가 외식 시켜준다가 여기 저기 데리고 가는 바람에..거의 먹다가 시간 다 보냈다고 봐야죠.

추수감사절에는 새언니 친정에 다 모여서 젊은 사람끼리 뭉쳐서 카드 게임도 하고,볼링도 치고..

저는 운동이라면 질색이고,또 잘 하지도 못하는데 항상 돈내기를 하면 엄청난 힘이 솟아납니다.

아이들 두명까지 10명정도가 볼링을 치는데,앤디는 오른손은 기타때문에 손톱이 길어서

왼손으로 치다보니 점수가 안나온다고 하지만,

저는 힘껏 공을 밀어도 공이 삘삘삘삘 하면서 맥없이 굴러가다가 그나마 옆으로 새버리고 말아요.

첫 게임에서 30점 쯤 나왔었었것 같은데...유나도 한 70점 치던데..

그런데 두번째 게임은 게임비 내주기 내기를 하자고 하고 시작했는데,

아무도 앤디랑 저랑 같은 편이 되기 싫어하는 거예요. 칫~

그런데 막상 돈이 걸려있으니까 갑자기 팔에 알통이 빠박 생기면서 엄청난 기운이 샘솟는데,

우리 신랑도 저에게 전염이 됐는지 왼손으로 연짱 스트라이크를 치는 거예요.

제 공도 삘삘삘 가던것이 솨악~ 소리를 내면서 핀들을 잘도 맞추구요..

저희보고 사기쳤다고...

저렇게 공을 치면서 첫판에 공을 그렇게 못 굴리다니,그것도 기술이라고 하대요.

 

거기다 신랑은 엘진 카지노에서 100불 땄어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앤디는 그런거 한번도 안해봐서 잘 모르는데,자기 맘에 드는 게임 찾겠다고 카지노 안을 뺑뺑 돌기만 하는거예요..자기말로는 리서치 하는거라고 했지만

뭐가 뭔지 몰라서 손도 못대고 구경만 하는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블랙잭 카드 게임판에 꼈는데,게임 방법도 몰라서 딜러랑 옆사람한테 자꾸 물어보면서

하다가 백불 따니까 얼른 손털고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카지노 안에 담배냄새 때문에 엄마랑 둘이서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앤디가 걸어나오는데 저희가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저희를 못 알아보는거예요.

가까이 가서 손을 잡으니까 그제서야 저를 알아보더라구요.

그러더니 주섬 주섬 주머니에서 달러를 꺼내면서 "나 돈 땄어!" 하는데..

순진한 미국청년 앤디...돈 백불에 완전 넋이 나가서 어리버리 하더라구요.

저는 달러뭉치를 보는순간(뭉치라고 해봤자 20불짜리 다섯장인데 앤디가 얼마나 돌돌 말아가지고 있었던지 두께만 보면 엄청 두꺼웠어요)

"이건 일단 나한테 맡겨두고 얼른 도로 들어가서 더 따와" 라고 등을 떠밀었죠.

하하하

제가 백불을 들고 카지노 로비 안에서 깡총깡총 뛰면서 좋하서 어쩔줄을 몰랐는데,

엄마말로는 앤디가 1000불 쯤 땃으면 저보고 아마 심장마비로 병원 실려갔을거라고 하대요.

공돈이 생겨서 좋긴한데,그렇다고 자꾸하면 안되고...다음기회를 기약하며

앤디한테 블랙잭에서 돈따는 법..같은 책을 한권 사주려고 해요.ㅎㅎㅎ

 

그리고 앤디가 카지노에서 돈 따던 날,저도 또 다른 오페라단에서 연락을 받아서

내년 1월말에 하는 모짜르트 오페라 Clemenza di Tito에서 주역을 맡았는데

너무 좋아서 정말 개다리 춤까지 출 정도로 기뻐했는데,막상 이멜로 컨트렉을 받아보니

가수들이 일정량의 표를 사서 그 표를 되팔아야 하는..아주 나쁜 케이스죠.

차라리 돈을 아예 안받고 하는거라면 역할 하나 확실히 공부한다는 셈 치고 하겠지만

표까지 떠안고 해야한다면 너무 부담이 되죠.

거기다가 싱어들은 표를 떠안아야 하지만 오케스트라들은 돈을 받는다는 거예요

싱어들은 땅파서 공부한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심사숙고 하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중에, 오페라단에서 자꾸 전화를 해서

컨트렉에 나와있던 확실한 대답을 해야하는 날짜보다 3일이나 전부터 당장 대답을 해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안하겠다고 했어요.

물론 제가 안하겠다고 한게 아니고 나의 메니져,앤디가 정중하게 이멜로 거절하는 메일을 보냈어요..

제가 만약 했다면 "싱어들은 땅파서 공부했냐? 그게 무슨 프로페셔널 컴퍼니냐?

싱어들은 내 몸 갉아먹으면서 공부하는데 거기에 따른 최소한의 대우는 해줘야 하는거 아니냐.."

뭐 대충 이렇게 했을거니까 앤디가 아주 정중하게

"귀사의 컨트렉을 읽어보고 신중히 생각해본 결과,리허설 스케쥴과 3월달 오페라 리허설과

겹치는 관계로 아쉽지만 사양하기로 결정했읍니다.

귀사의 발전과 행운을 빕니다..."   이렇게 보냈어요.

엄마도 처음엔 좋아시다가 사정을 듣고는 "싱어는 땅파서 공부한대니?"

역쉬 우리엄마 답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시간이 어찌 간줄도 모르게 재미있게 지냈는데

금요일 저녁때부터 엄마는 자꾸 우는거예요.

그리고 토요일 아침에는 아침상을 차려주면서도 언제 몰래 저희 짐 안에다가 챙겨 넣었는지

집에 와서 풀어보니 엄마가 쓰던 화장품부터,향수,꽁치통조림....엄마꺼 오빠네거 할거없이

여기저기 짐 안에 쑤셔넣었더라구요.

어쩐지 공항에서 짐을 부치는데 짐이 너무 많다고 25불 벌금냈는데 ㅎㅎㅎ

그리고 공항까지만 따라오시고 건물 안으로는 안 들어오셨어요.

벌써 울고불고 하셔서 눈이 퉁퉁 부었는데,공항 안에서 울면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고 안 들어온다고 하셔서 공항입구에서 헤어졌는데,

유나는 뒷좌석에서 벌써 까무라쳐서 울고불고 떼쓰고 난리를 치고..

좀전에 앤디랑 뽀뽀했으니까 앤디랑 결혼해야 한다면서 좋아하더니,이젠 죽는다고 웁니다.

공항의 이별은 항상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1월달에 엄마 한국 가시기 전에 다시 한번 시카고 가려고 계획은 하는데,

오페라 리허설 때문에 쉽지 않을것 같아서,저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자꾸 눈물이 나더라구요.

앤디는 서씨 여자들은 왜 이렇게 잘 우냐고 하는데...에구,앤디야 너도 나이들어봐라~

나이들면 그냥 눈물이 이렇게 많아진단다~

 

영주권 나오면 한국에 한 3개월쯤 나가려고 해요.

3개월 동안 부모님 속을 막 썩여드려야지 얼른 가라고 등 떠밀어 보내지

1주일 동안 재미있게만 지내다가 오려니까 서로가 너무 힘이 드네요.

제가 그동안 오디션 해놓은게 너무 많아서 아직 결정된건 없지만

썸머페스티발에 특별히 참가하지 않으면 여름 내내 한국에 나갈수 있을것 같아요.

미리 미리 영어레슨,기타레슨 신청 받습니다.

저는 부모님이랑 놀러 다니고 앤디가 레슨 할거예요~

 

시카고에서 공주같이 대접받다가 왔는데,다시 신데렐라 입니다.

어제 밤에 도시락 싸서 오늘 새벽에 앤디 출근시키고,청소하고,이불 호청 새로 씌워서 꿰매고 하니까 오전이 금방 다 가버렸네요.

지금 제 모습을 보니 무릎나온 츄레이닝 입고 머리 질끈 묶은 전형적인 아줌마입니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푹 퍼져서 공부 좀 하고,내일부터 뉴요커로 변신할래요.

 

이제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네요.

겨울이 정말 코앞이네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건강하세요.

 

서 연준 드림

 

 

 

 

 

chi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