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이야베스의 어원과 기원
'끓이다'라는 의미인 부이이(bouillir)와 '낮추다'라는 의미의 아베쎄(abaisser), 두 개의 동사를 합쳐 부르는 유명한 지중해식 생선찌개인 부이야베스(bouillabaisse)는 프로방스의 속담 '수프가 끓으면 불을 줄여라(quand ?a bouille tu baisses)'에서 나온 이름이야.
원래 마르세이유의 어부들이 포획한 생선들 중 자신들이 먹기 위해 값싼 것들만 따로 모아서 한꺼번에 넣고 끓여 먹었던 데서 유래한 부이야베스는, 팔리지 않고 남은 생선이나 이리저리 채여서 형태가 안 좋아진 생선에 양을 늘리기 위해 감자를 넣고 끓여 먹었던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르세이유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 도시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는 값비싼 음식이 되었다고 하네.
2. 부이야베스가 비싼 이유
바로 이 샤프란이야.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항료 중 하나인데 빠에야, 부이야베스 등 유럽 해산물 요리에선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이지.
유럽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최고급 샤프란을 금고에 넣어놓고 도난 방지를 위해 노력한다고 해. 왜 향료따위에 도난 방지냐 하겠지만
가격이 엄청 비싸.
나라마다 가격이 차이가 나긴 해. 하지만 일반적으로 5그람당 8만원 이상돈이라 생각하면 되. 물가가 비교적 싼 터키에서도 5그람에 10만원돈
한다고 하고 그 중에 최고급 샤프란이라면 더더욱 비싸겠지.
뭐 비싼 이유는 이게 붓꽃과의 속하는 꽃 종류인데 1g의 샤프란이 나오기 위해 500개의 암술을 손수 손질해서 말려야 한다니 아무리 노동비가
싼 나라에서도 비싸게 거래 될 수밖에 없다네.
또 하나는 바로 이 풍부한 해산물량, 해산물을 넣고 끓인 뒤 국물과 건더기를 따로 주어 빵과함께 곁들여 머는다 하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해산물량이 ㄷㄷ 하지. 국물 자체도 샤프란의 향과 비교적 엄청나게 많은 육수에 풍덩풍덩 넣고 우려낸게 아니라 저 많은 해산물이 적당량의
육수들과 어우려졌으니 굉장히 진하지. 이를 보통 유럽에서는 비스크 스프라고 해.
3. 맛은?
대체적으로 진한 해산물 농축액 같은 느낌과 함께 육수들이 많지 않아 해산물에 적절히 베어 있어 나쁘지 않아. 단 샤프란의 향을 싫어하는 한국인
들도 종종 있고
"맛있긴 한데 굳이 이 돈을 주고.,...."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기는 해. 그만큼 엄청난 맛 이라기 보다는 풍미가 있는 음식 이정도로 생각하면
될듯.
일부 마르세유 가게에서는 국물을 먼저 주어 맛을 보게한 뒤 촉촉한 국물을 얹은 상태인 해산물등을 주는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샤프란을 넣고
끓이지 않고 샤프란 소스를 따로 주는곳도 많아. 그 비싼 샤프란으로 소스, 거기에 유로화 버프, 마르세유 관광지 버프, 놀러가서 먹어볼라면
정말 마음먹고 가는걸 추천.
![3594413345_881e911eff_z.jpg [음식이야기] 세계 3대 진미 스프들 | 인스티즈](http://fmkorea.net/files/attach/images/4330072/456/316/041/771997dd90ceda10112fb31d0e3b32a2.jpg)
- ?얌꿍-
1. ?얌꿍의 뜻,
?은 끓이다, 얌은 시큼하다, 꿍은 새우라고 보면 되. 한마디로 시큼한 새우탕 이라고 보면 될듯 하네. 현재 동남아에서는 라오스와 태국의 스프들을
모두 ?얌꿍 이라고 칭한다고 한다네.
2. 만드는법과 재료들
꿍이 새우라는 뜻 처럼 베이스는 새우를 끓인 육수를 사용하고 큰 새우가 건더기로 여러개 들어가. 요즘엔 국내서도 유명해진 요리라 먹어본
사람이 많을거 같지만 그래도 간단히 설명을 해볼께. 아주 매콤한 태국식 마른 고추와 대파, 오징어 조개 등 해산물, 마늘,버섯 여기까지는
우리의 매운탕과 느낌이 비슷하지 하지만.
라임, 태국생강, 고수뿌리(향채, 중국어로 샨차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광동지방서 많이 먹는 가루세제맛 나는 향초), 코코넛밀크, 오징어소스나
생선소스,민트
여기서 말하는 오징어, 생선 소스는 태국 전통의 액젓이라고 보면 될거야. 맛이 아주 짜면서 음...냄새는 음.....그러하다.
3. 맛은?
재료설명으로 인해 대충 감이 올려나. 첫맛은 달고 중간맛은 진한 해산물 육수와 코코넛 기름으로 인해 부드러움이 느껴지지만 갈수록
치약맛과 세탁세제맛 그리고 단맛과 신맛이 같이 몰려오는 상당히 복잡한 맛이다. 개인적으론 단 음식을 안좋아해서 상당히 싫어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 태국 여행가서 맛있다고 잘 먹는 사람 있던데, 난 태국은 아니지만 외국 이곳저곳서 먹어봤지만....거기다 태국 친구가
고향의 맛이랑 비슷하다 해서 오리지날삘이라고 먹인건데....음.... 한 3수저 간신히 뜨고 포기. 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니;
- 불도장 -
1. 불도장 재료와 만드는 법
어원보다 먼저 이것을 소개해야 이해가 빠를것 같아 1번으로 넣었어. 불도장은 사진과 같이 많은 육류들을 포함하는데 여기에 중국식 햄도 들어가기도
해. 이 요리를 항아리에 담아 끓이는데 우리나라 곰통 푹 끓이듯 중간불 정도에 푹푹 익혀서 하루이상을 끓여야 제맛이라고 하네.
사진에도 나와 있지만 빠진것도 있을테니 대강 들어갈 재료들을 설명해보자면 일반적으로는 메추라기알, 비둘기 알, 작은 달걀, 죽순, 말린해삼
말린전복, 샥스핀, 상어입술, 생선들 껍질, 생선 부레, 새우, 오징어,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심줄, 돼지삽겹살, 중화햄, 인삼(중국 기록에는 고려 인삼을 넣어야 제맛이라고 표현), 도가니, 표고버섯, 토란, 구기자, 소흥주(술), 굴 등....무슨 산해진미가 다 들어간다.
2. 불도장의 어원
이 불도장이 하루 이상 끓인 뒤 항아리를 열때 냄새는 정말 진한 육수들의 향연이고 예술 그 자체라고 하네. 그 냄새가 멀리 퍼지기 일수여서
금육을 하던 스님들이 참지 못하고 절 담벽을 넘어 불도장을 먹어보러 간다 해서 불도장이라고 한다네. 오죽하면 이런 어원이 생길까 싶을
정도겠지만 정말 향이 예술이다 라는 이야기.
3. 기원
기원은 여러가지 설이 있어.
첫째, 청나라 시대 한 학자가 친구들과 청나라 대륙을 여행 중 식량들을 술을 담는 토기에 보관했대. 이후 그가 식사할 때마다 그 토기들에
물을 붓고 끓여 스프로 먹고, 남은것은 두었다가 다시 물을 붓고 재료를 조금 첨가해 끓여 먹었다고 하네. 그리고 그들이 푸젠성 푸저우(중국 남부)
에 도달해 절간 근처에서 방을 얻고 다시 끓여먹었는데 이 냄새에 이끌린 승려들이 담을 넘어와 구경을 나왔다는 설.
둘째, 130년전 청나라시대 관리가 손님들 대접을 위해 집에서 닭, 오리, 돼지, 해산물등 20여가지 재료를 넣고 푹 고아서 내놓았다고 하는데
이때 소흥주를 넣어 사용한 것이 지금도 이어진다는 설. 손님으로 초대된 간부의 동행으로 온 요리사 정춘발(鄭春發)이 이 요리에 반해 스스로
연구를 하여 해산물과 건어물, 그리고 버섯등을 첨가하면 더욱 맛이 좋아진다는걸 깨닫고 자신만의 요리로 만들었다고 한다네.
정춘발은 1877년에 푸저우 시내에 취춘원을 열고 개량을 계속해서 식객들 사이에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글재주가 있던 손님 하나가 아직 음식에 정식명칭이 없던 것을 알고 "?啓?香飄四?, 佛聞棄禪跳墻來"(항아리를 열면 특별한 향기가 근처에 떠돌아서, 불가의 승려도 선(禪)을 버리고 담을 넘어온다)이라고 하는 구를 읊어 주었으며, 이로부터 불도장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는 설.
무엇이 맞는지는 뭐 밝혀진 바는 없어.
4. 한국에 온 불도장
한국에는 신라호텔 중식당인'팔선'[9]의 주방장인 대만 화교 요리사 후덕죽(侯德竹)에 의해 1987년 처음 소개되었다. 이 요리는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한국식 중화요리의 대세를 쓰촨(四川)요리에서 광둥(廣東)요리로 바꿔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89년에 조계종에서는 이 요리의 이름이 불경스럽다하여 판매를 반대하기도 하였는데, 비록 불도장은 잠시 사라졌었지만 이러한 논쟁은 대중사이에 요리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요리가 유명해 지는 결과를 낳았다.
(불도장은 1972년, 미-중 수교를 위해 처음 중국을 방문한 닉슨 대통령에게 중국 정부가 자신있게 내 놓은 음식이다.)
5. 세계속의 불도장
런던에 있는 중식당인 카이 메이페어(Kai Mayfair)는 2005년에 108파운드짜리 불도장을 선보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프의 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곳의 요리에는 상어 지느러미, 꽃버섯(Japanese flower mushroom), 해삼, 말린 전복, 닭, 후난(湖南) 햄, 돼지고기, 인삼 등의 재료가 사용된다.[12] 일본에서는 고급 중화 요리점이나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불도장을 접할 수 있다. 대부분 예약이 필요하지만, 대중용이나 관광객 전용 레스토랑에서는 예약 없이 먹을 수 있도록 저렴한 간이요리로 만드는 곳도 있다.
-위키피디아 참고-
6. 맛은?
3대 스프 중 가장 한국인들이 좋아할거라 생각한다. 진한 육수와 푹 삶아져 부드러워진 고기, 더군다나 저기 들어가는 돼지 등심이나 삼겹살은
따로 하루동안 푹 고아서 아주 부드럽게 만든 뒤 다시 항아리에 넣고 끓인다 하니 푸딩같이 부드럽겠지만 육수가 빠져 뻑뻑함은 다른 고기들과
해산물들의 육수가 돼지고기에 베어 돼지+해산물 맛이 나는 부드러운 고기 푸딩이나 이보다 더욱 맛날리가......
더군다나 마른 해산물은 다른 고기들의 육수를 머금고 표현이 힘든 풍미를 자랑하며....아 아무튼 불도장이 현재에도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번외: 밥이 보약이란 말이 시작된 이유-
불도장의 재료에 효능들이 써있다 보니 생각나서 간단하게 번외편을 써볼까 해. 아시아 중에서도 중국요리는 수천 수만가지를 자랑하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맛도 다양하지. 그럼 중국인들이요리를 발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잘못 알고있는 사람들은 "개네 반찬 엄청 여러가지 놓고 저녁 먹던데 그런 호화습관 때문 아닌가?"
뭐 어찌보면 맞기도 하지만 기원은 좀 재미져. 한나라 이전시대까지 중국에서는 의사와 요리사가 같은 직종이였어. 즉 몸이 아픈 환자가 생기면
재료들을 들고 찾아가 병에 좋은 스프나 요리를 만들어서 먹이면서 처방을 했다고 하네. 이것을 ‘약식동원’ 사상이라고 해.
몸을 위해 조화로운 음식등을 구별하기 시작했고 더군다나 넓은 중국 영토는 바다, 산지, 냉지와 습지등 다양했으니 재료의 양도 다양해
시험하기 좋았지.
불에 볶거나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원시시대 이후에 문명이 생길 무렵, 야만인들과 문명인들을 구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중국역사가들의 주장도 있어. 야만인들은 생식을 주로 했지만 이놈들은
"우린 불도 항상 있고 땔감도 충분하고 잘 사니 이것을 화려하게 이용하겠다." 라는 취지로 숙식 위주의 음식들이 개발되었고 생식하는
민족들을 열등하다 치부했어. 이것이 중화사상 시초 중 하나일거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뭐 진실은 기록이 자세히 없으니 모르는 법.
이후 한나라 때부턴 의사와 요리사 직업이 분리되었고 서역에서 국수문화가 들어오면서 중국 요리는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국수와 시장의 야식 거리가 연관이 있는데 당나라 이후 실크로드가 활발히 열리면서 장안 근처에 큰 상점단지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시장 뭐 이리보면 될듯)에 외국인들 출입이 혹은 출국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외국인이 당시 비행기를 타고 오는것도 아니고 실크로드를 다녀온 중국인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아침에 도착 예정이였지만 사막폭풍 등을 만나
밤에 올수도, 그래서 밤새 장사를 하고 다음날 다른 지역으로 출발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지. 기록에 따르면 장안의 하루 출입하는 상단의 사람들만
만명 이상이였다고 해. (5만명 이상이라고 말하지만 중궈 뻥튀기 사상 때문에 학자들은 만명으로 추정)
이 사람들이 밤새 장사하거나 혹은 도착했으면 상당히 배가 고팟고 그렇다고 시장에서 죽치고 앉아 차를 마시면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기엔
빨리 장사를 시작하거나 흥정을 하던 중 나온것이기에 시간적으로 부족했지. 그래서 중국은 국수요리가 발전하기 시작했어. 국수는 회전력이
상당히 빠르고 볶음밥과 튀김류 등도 그와 마찬기지였지.
이때부터 내려져온 시장의 야식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고 보면 되. 중국 요리의 발전은 청나라 시대때 르네상스를 맞이하는데
서태후는 대단한 미식가여서 한번 맛본 음식은 다시 손을 데지 않았기에 전국에 수 많은 요리사들이 그녀의 사치를 위해 요리대회나
궁에 들어오기 위해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 요리가 소문나면 서태후는 꼭 궁으로 불러 맛을 보았다고 하지.
(서태후와 시녀들)
요리사들에게 출세길이 열리니 지금 공무원고시 준비하듯 밤새 열심히 연구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이는 자연스래 중국요리의 발전으로
이어졌어. 연구와 더불어 약식동원 사상이 더해져서 약재와 함께 건강도 챙기는 요리들의 연구도 활발해졌지. 지금도 그렇지만 기득권들은
심심하면 건강진료를 받거나 입원하는 등 건강 챙기기에 열을 올리지.(진시황제가 죽기싫어 불로장생약 찾은 것도 이러한 부분이랄까)
맛도 좋은데 건강도 챙기는 요리라면 서태후를 비롯한 왕족과 귀족들은 환영했고 이는 자연스래 다시한번 약식동원 사상이
당시 급발전 하던 요리문화와 믹싱되어 급변하게 되. 지금도 북경을 여행하면 자금성 근처에서 서태후 때부터 궁에서 요리하던
요리사들의 후손들이 세우고 그의 비법이 전수된 식당이 있다고 하네. 청황제가 먹던 음식을 코스로 나오는데 외국인들은
1년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하고, (운 좋으면 한달전) 중국 당국서도 이들이 사이비가 아닌 진짜 후손이라는 증거를 확인한 후 관광지로 개발 중이라니
북경 가볼 사람들은 한번 도전해보길.
아무래도 우리나라도 저런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지 (확실하진 않다) 현대의 요리집에서도 무슨 음식을 시켜놓고 가게를 보면
장어의 효능, 두부의 효능, 오리의 효능 써있고 이것에 관심깊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지. 이상하게 피부미용, 정력증강, 피로회복과
한약제를 넣어.....조리한, 이 말은 빠지지 않는것 같다. 우리나라는 그만큼 한약재가 길가에 돌맹이 채이듯 흔한건지 원
글이 길어졌지만 좋은 참고 자료가 되면 좋겠다.